#42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검성은 없었다. 말도 없이 떠난 것이다.
조금 서운했지만 검성답다란 생각이 들었다.
“페트릭, 나 뭐 좀 사가지고 올게.”
나는 도시로 내려가 염색약을 샀다.
검성의 말대로 나는 나를 너무 드러냈다.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검성은 가볍게 찾아냈다.
“페트릭, 어때?”
“생각보다 잘 어울리십니다!”
본래 금발이었던 머리색을 갈색으로 염색했다.
“으음··· 뭐가 부족하단 말이지.”
기존 머리칼은 금발이었기에 꾸미지 않아도 화려함이 드러났다.
하지만 바뀌어버린 갈색 머리는 화려함이 사라졌다.
“뭐, 목적을 생각하면 오히려 좋지.”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눈에 띄지 않으니 말이다.
“음··· 그리고 훈련법을 바꾸기로 했다.”
“그럼, 이제 그 야만··· 아니, 어둠 속에서 하는 훈련은 안 하나요?”
“가끔씩 하고 싶긴 한데, 뭐 검성님이 이젠 필요 없을 거라고 하시니까.”
검성의 인정을 받았다는 이야기에 페트릭은 감격했다.
“이젠 내 훈련도 겸해서 하려고. 내 능력을 알고 있지?”
사실 페트릭에게 내 능력을 밝힐 생각은 없었다.
그저 습관처럼 염동력을 쓰는 모습을 페트릭이 봐버렸고, 나는 내 능력에 대해 말해주었다.
“네, 염동력 마법 같은 거요.”
“그래, 앞으로 너는 내가 염동력으로 휘두르는 검을 피해야할 거야.”
페트릭은 의아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게 훈련인가요? 너무 쉬울 거 같은데.”
“눈을 감고서 말이야.”
내 말을 듣는 순간 페트릭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떤 고수는 눈을 감고 모든 공격을 피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드마스터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사람은 보는 것에 의존한다.
“그리고 이제 한동안 쉴 거야.”
“저요? 아니면 스승님이요?”
“나.”
검성이 찾아왔더니 너무 많은 기가 빨렸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기 싫다. 어짜피 돈은 충분하니 말이다.
“걱정은 마, 훈련은 계속해줄 거니까.”
좋은 듯 좋지 않은 듯 애매해 보이는 페트릭의 표정.
나는 그런 페트릭을 무시하고는 앞으로 어떻게 쉴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검성이 떠난 지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고 자부한다.
“솔직히 돈만 안 부족했어도 더 쉬는 건데.”
약초를 키우는 데 생각보다 돈이 들었다. 인건비나 비료값. 농사도 쉬운 게 아니었다.
내가 짓는 것이 아니지만, 돈은 내가 내니 말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넘버완이 데리고 온 친구들은 성실했다.
“생각 외였지.”
솔직히 며칠만 열심히 하고 말 줄 알았지만, 매우 성실하게 약초들을 길렀다. 그래서 가끔 웃돈을 챙겨주었다.
그 때문인지 더 열심히 하는 넘버완 일행이었다.
“그나저나 재밌는 의뢰가 있었지.”
다이아 용병의 임무는 하나같이 규모가 크다.
그런데 내가 발견한 임무는 매우 새로운 것이었다.
[사라진 마을사람들의 조사]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마을 사람들이 동시에 사라졌다고 한다.
조르던 자유도시에서 꽤 떨어진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일은 나라 차원에서 다뤄야할 법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긴 자유도시고, 딱히 나라라고 할 게 없으니까.”
왕이 아니라 투표에 의해 지도자가 뽑힌다.
큰 도시 하나에 주변에 있는 작은 마을이 끝이다.
작기 때문에 군사력이 없다. 그래서 용병길드가 성장한 것이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사라지다니 진짜 무슨 일인거지?”
딱히 혈흔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기에 단체 이주가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작은 마을이라고 하여도 사람의 수는 많다.
그 사람들이 이동하는데 아무도 모른다는 것은 수상한 일에 엮였을 가능성이 있다.
“조금 위험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위험한 일은 되도록 하기 싫은 나였다.
하지만 같이 갔던 페트릭이 나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몰살당한 자신의 마을이 생각난 모양이다.
그 부탁에 나는 승낙했다. 거기다 사람을 돕는데 돈까지 벌면 기분도 좋고.
“페트릭, 준비는 끝냈어?”
“네!”
바로 오늘이 그 마을로 가기로 한 날이다.
이제 도시로 내려가서 조사대와 만나 마을사람들이 사라진 루기 마을로 가야한다.
“이제 내려가자.”
도시의 중심인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산을 내려가 광장을 향했다.
광장은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저 사람들이겠지?”
기사로 추정되는 갑옷을 입은 사람들과 안경을 쓴 사람들.
“혹시 조사대이십니까?”
그들의 중심으로 보이는, 갑옷을 입은 붉은 머리칼의 사내가 답했다.
“네, 맞습니다. 루기 마을 조사대의 대장인 라카이 데오르입니다. 혹시 한스 라이크 씨가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반갑군요, 데오르 경.”
“저도 반갑습니다, 한스 씨. 다이아 용병은 쉽게 뵐 수 있는 게 아니죠.”
조사대와 합류한 우리는 루기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거리가 되는지, 하루 만에 가진 못했다.
말을 타고 있는 우리나 조사대의 몇몇을 제외하면 전부 걸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야영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평지라 많이 인원이 쉴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데오르 경에게 물었다.
“혹시 불침번은···?”
개인적으로 하기 싫다. 자다 깨는 것이 싫다.
다행히도 데오르 경은 우리가 불침번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저희 조사대엔 마법사가 있어서 불침번은 없어도 됩니다.”
“그건 다행이로군요.”
“마크!”
데오르 경의 부름에 나온 사내는 왜소한 체구에 안경을 쓴 사람이었다.
“마크, 주변에 경계마법과 알람마법을 펼치게.”
“알겠습니다.”
나는 마크가 마법을 쓰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크의 주위로 마나가 모이는 게 느껴지더니 이내 주변으로 넓게 펼쳐졌다.
“데오르 단장님, 끝났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마법이 펼쳐졌다. 이래서 마법사가 대우받는 것인가.
“언제 봐도 신기하네.”
“그러게 말입니다.”
페트릭은 마법을 펼치는 것을 처음 보았다고 말했다.
“그게 보통은 마법사들이 용병을 하려는 경우가 없어서 마법을 볼 기회가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마법이 써지는지는 몇 번을 봐도 모르겠군.”
내 눈엔 그저 마나를 모으고, 그것을 펼치거나 뭉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것만으로 마나가 불이나 얼음으로 바뀌다는 사실은 보고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그럼, 이제 휴식을 취하고 다음 날 출발하겠습니다.”
“네, 데오르 경도 편히 쉬세요. 저희는 잠시···.”
임무를 하던 중에도 훈련을 쉬어서는 안 된다.
페트릭과 함께 야영지에서 멀어졌다.
검이 허공에 뜬 채로 움직이는 걸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런데 눈을 가리고 검을 막는 게 진짜 가능한 겁니까?”
당연한 페트릭의 의문. 나 역시 동의한다.
만약 검만 허공에 떠있는 게 아니라 사람도 같이 휘두른다면 그나마 알아차리긴 쉬울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검만 움직이기에 기척도 최소한이다.
“뭐, 그런데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 해본 결과, 나는 피했다.
물론 허공에 뜬 검을 내가 조종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검에 기척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실험하지 않는 이상 확실한 건 아니었지만.
“단 한 번이라도 검을 막아봤다면 알 텐데.”
“정진하거라! 그럼, 바로 시작하는 게 좋겠군.”
주변의 나뭇가지를 꺾어 허공에 띄웠다.
솔직히 이 훈련에서 가장 성장한 건 내 염동력이다.
처음엔 두 개가 한계였지만, 이젠 다섯 개까지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다섯 개로 해보자.”
“예에?”
평상시에는 두 개로 훈련했다. 개수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버렸다.
시작도 전에 페트릭은 의기소침해졌다.
“두 개도 힘든데···.”
“오히려 많은 게 더 쉬울 수도 있다.”
그만큼 검끼리 부딪혀서 소리가 날 수도 있으니까.
내가 아직 허공에 검을 다루는 실력은 미숙하다. 그렇기에 많을수록 페트릭에게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자, 간다!”
내 말에 다급하게 눈을 감는 페트릭. 집중하는 게 겉으로도 보인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가 아파져오는 걸 느꼈다.
다섯 개의 나뭇가지를 페트릭을 향해 쏟아냈다.
“여기!”
나뭇가지가 가던 방향에 페트릭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너무 일렀다. 허공에 휘두른 페트릭은 대가를 톡톡히 받았다.
다섯 개의 나뭇가지가 각각 움직이며 페트릭을 두들겼다.
“아악! 잠시만요!”
하며 페트릭이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그러자 운 좋게 나뭇가지 하나와 부딪혔다.
나뭇가지가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순간 내 염동력도 끊겼다.
“오, 축하한다. 성공이다.”
“음··· 역시 다섯 개는 아니에요.”
딱히 기뻐 보이지 않는 페트릭. 당연한 일이다. 순전히 운에 의해 걸린 결과니 말이다.
“다섯 개니 마구잡이로 휘두르면 스승님이 피하질 못하네요.”
“두 개가 아직까지면 완벽한데.”
“다시 두 개로 부탁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지를 위로 올리자 땅바닥에 떨어진 다섯 개의 나뭇가지 중 튼실한 것으로 두 개가 떠올랐다.
“바로 시작한다.”
“네!”
눈을 감은 페트릭이 다시 집중했다.
두 개는 완벽에 경지에 다다랐다.
나뭇가지가 순식간에 페트릭에게 날아들었다.
“여기다!”
페트릭의 감은 정확했다. 페트릭이 휘두른 곳엔 정확히 나뭇가지 하나가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뭇가지를 비틀어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페트릭을 나뭇가지로 두들겼다.
“악! 악!”
분에 못 이긴 페트릭이 검을 이리저리 휘둘러봤지만, 소용없다.
두 개만큼은 완벽하게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페트릭의 모든 공격을 피하며 때렸다.
이내 페트릭이 기권을 선언했다.
“항복입니다.”
나는 단호히 이야기했다.
“몇 번이고 말했지만, 항복은 없다.”
내 스트레스··· 아니, 페트릭의 훈련이 만족될 때까지는 해야한다.
‘뭐, 사실 계속해서 놀아서 스트레스도 없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검을 피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된 페트릭이었다.
간간이 내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훈련의 종료를 선언하니 페트릭이 그 자리에서 누웠다.
집에 있던 손질된 나뭇가지와 다르게 야생에서 갓 채취한 나뭇가지는 날카로웠다.
그렇기에 페트릭의 몸 곳곳엔 잔상처가 생겼다.
“음··· 훈련막대 챙겨올 걸 그랬나?”
“뭔가 더 위험해서 그런지 더 잘 피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건가.
“그렇다면 나중엔 진검으로 하면 더 좋겠네.”
내 말에 굳어버린 페트릭이었다.
나는 페트릭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농담이야. 제자를 죽일 수야 없지.”
페트릭이 내 말에 안도했다.
다만 페트릭의 표정에는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담겨있었다.
가끔 보면 나에 대한 원한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때마다 격차를 보여줘서 존경심을 갖도록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페트릭은 내 제자가 된 것에 후회를 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놓치지 않을 거야.’
그만큼 페트릭이 주는 돈은 쏠쏠했다.
“그나저나 페트릭 너는 뭐라고 생각해?”
“무엇을요?”
“루기 마을.”
갑자기 사라진 마을 사람들. 몬스터의 습격을 당한 건 아닐 것이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어떤 이야기.”
“피리 부는 마족의 이야기요.”
피리 부는 마족은 옛날부터 익히 알려진 동화다.
그저 어린아이들을 겁주기 위한 동화란 인식이 강했다.
“재밌군.”
“뭐, 실제로 피리 부는 마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마을 사람들이면···.”
나는 페트릭의 뒷말을 막았다.
칼데르트가에서도 마족으로 인해 있을 곳을 잃었다. 여기서도 마족이 나타나면 내가 처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다시 자리를 잃기 싫다.
“부정 타는 소리는 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