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조사대와 함께 루기 마을에 도착했다.
데오르 경이 침음을 흘렸다.
“음··· 이건···.”
참상이 벌어져있던 것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평범했다.
데오르 경이 말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예상도 못하겠군.”
이상할 게 전혀 없어서 문제였다. 말 그대로 마을사람들만 사라져 있었다.
마을 안에 가축은 여전히 있었다.
단체로 떠날 생각을 했다면 많은 것을 챙겼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게 남아있었다.
“그저 몸만 사라졌군.”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이 사건에 휘말렸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내가 데오르 경에게 다가갔다.
“데오르 경은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예상하실 수 있겠습니까?”
“만약 마을사람들이 납치를 당했다면 마을이 어지럽혀야 정상입니다. 아무래도 강제적인 무언가가 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역시 그들 스스로 떠났다고 생각하시군요.”
도대체 어떤 자가 한 마을의 사람들을 모조리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인간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는 페트릭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히 이상한 말을 해가지고 허튼 망상을 하게 만들어버리고.”
“···역시 진짜 피리부는 마족일까요?”
“허튼 소리 마라. 만약 피리부는 마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와서 이런 짓을 하겠어!”
마족은 아닐 거다.
게다가 마족이라면 왜 마을사람들을 사라지게 만들었겠는가.
“그렇다면 혹시 제물이 아닐까요?”
“제물···?”
“옛날부터 흑마법사 같은 녀석들이 제물을 이용해 마족을 불러들이잖아요.”
“말 같은 소리를 해라.”
아무리 흑마법사라고 한들 이렇게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순 없다.
일단 루기 마을을 둘러볼 필요가 있었다.
이미 데오르 경은 부하들에게 마을 안을 살피라는 명령을 내린 채였다.
“어서 우리도 마을 안을 확인해보자.”
“넵.”
페트릭과 함께 마을 안을 둘러보았다.
눈에 띄는 집으로 들어갔다.
별 이상한 점은 없었다.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먼지가 조금 쌓인 정도.
“도무지 모르겠군.”
“계속 찾다보면 무언가 단서가 나오겠죠.”
“그러길 바라야지.”
이후로 계속 찾아봤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일단은 이 마을의 여관으로 보이는 곳으로 조사대가 모였다.
나와 페트릭 또한 여관으로 모였다.
“데오르 경, 혹시 조사대에선 무슨 단서를 찾았습니까?”
“전혀요. 정말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옆에 있던 페트릭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렇다면 마법이 아닐까요?”
데오르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 마법사에게 물어봤지만 마법이 사용된 흔적이 없다고 하는군요.”
“고위마법사라면 모르잖아요.”
“뭐 고위마법사라면 이름이 알려져있기에 그들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고위마법사는요?”
“자신을 숨긴 고위마법사가 있어도 불가능합니다. 마법의 흔적을 지우는 행위는 말이죠.”
마법도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탓에 조사대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날도 어두워졌기에 더 이상의 조사는 무용지물이다.
“이만 쉬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스.”
데오르 일행이 방에 들어가고, 나와 페트릭만이 남았다.
페트릭이 어디서 꺼내온 것인지 술 하나를 들고 왔다.
“그 술은 어디서 났냐.”
“하하, 보아하니 주인이 아끼던 술 같던데요. 꽁꽁 숨겨놨더라구요.”
주인이 사라진 마당에 페트릭을 질책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나도 좀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페트릭이 잔을 찾기 시작했다.
“페트릭, 내 잔도 부탁해.”
“네? 스승님도 술을 마시려고요?”
내 나이는 열일곱. 술을 마시기엔 무리가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회귀 전에는 가끔이지만 술을 즐겼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
“으음··· 애들은 술을 주면 안 되는데.”
내가 표정을 찌푸리며 페트릭을 바라보았다.
“술맛은 아니까, 그냥 가져와.”
“네.”
께름칙하다는 페트릭의 표정.
페트릭이 잔 두 개를 들고 내 옆에 앉았다.
“그런데 스승님은 왜 갑자기 술을 마시려고 하시는 거예요?”
나도 모르겠다. 그냥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냥 마시고 싶더군.”
“뭐 그럴 때가 가끔 있긴 하죠.”
페트릭이 내 잔에 술을 따랐다.
나는 그 술을 들이켰다.
“좋군.”
오랜만에 마시는 술은 달았다.
“오, 스승님 잘 마시네요.”
나는 빈 잔을 페트릭에게 건넸다.
페트릭은 내 잔의 술을 다시 채워넣어주었다.
“왠지 불길하군.”
“네? 어떤 게요?”
“페트릭, 네가 이상한 말만 하지 않았어도.”
내가 마족을 쓰러트려서 있을 자리가 사라지는 게 문제가 아니다.
퇴마검의 주인이 남긴 글을 떠올렸다.
[마족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은 끝없는 지옥을 맛본다고 하더군.]
만약 이게 진짜 마족의 짓이면 마을사람들은 지옥을 느끼고 있을 거다.
마족이 아니길 바라야 했다.
“그나저나 단서가 없는 게 문제군.”
“그러게 말입니다.”
어느 정도 술을 마시자, 취기가 몰려왔다.
취기의 탓인지 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나는 여관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기로 했다.
“난 이만 들어가서 잠 좀 자마.”
“네, 저는 좀 이따가 들어가볼게요.”
페트릭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왠지 자신의 일과 겹쳐보이는 모양이다.
나는 페트릭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마을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 거다.”
“네···.”
나는 페트릭이 혼자 있을 수 있게 먼저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그리고 단잠에 빠져있던 나를 데오르 경이 노크소리로 깨웠다.
“한스, 단서를 찾은 거 같습니다.”
난 데오르 경의 말에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어 데오르 경을 마주했다.
“정말입니까?”
“그 사라진 마을사람들에 대한 단서라고는 할 수 없지만 루기 마을에 살던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렇군요···.”
루기 마을에 살던 사람은 젊은 청년이라고 했다.
돈을 벌기 위해 마을 떠났고, 이제 막 돌아왔던 참이라고 들었다.
“일단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시죠.”
데오르 경을 따라갔더니 훤칠한 청년이 있었다.
시골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게 제법 부유해진 모양이다.
“메트, 많이 기다리셨죠. 이번 조사대에 용병으로 참가하신 다이아 용병 한스 라이크입니다.”
메트라는 청년에게 나를 소개시켜준 데오르.
나는 청년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청했다.
“마을에 대한 일은 안타깝게 됐습니다.”
“······.”
내 생각과는 다르게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메트의 표정.
“혹시 루기 마을에 대해 기억하고 계신 게 있습니까?”
“음···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떠난 지 오래돼서···.”
“그렇다면 루기 마을에 계셨을 터인 가족분들은···?”
메트가 말을 멈췄다.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으니까. 별로 슬프지도 않습니다.”
아무래도 메트는 루기 마을에 미련 따윈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루기 마을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캘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루기 마을에 대해 조금이라도 기억이 나질 않으십니까?”
분명 메트는 기억은 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야기를 하기 싫은 것뿐.
“음···.”
“제발 부탁드립니다.”
고민하던 메트가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네요.”
“어떤 게···!”
“루기 마을엔 이상한 종교가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종교라니.
이상하거나 수상한 종교는 마족과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혹시 어떤 종교인지 기억하시나요?”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저 이상했던 종교로 기억해요.”
“어떤 게 이상했나요?”
“음···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너무나도 옛날 기억이라.”
계속해서 대화를 해봤지만, 메트에게서 알아낸 건 루기 마을이 이상한 종교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던 중에 계속해서 의구심이 하나 들었다.
나는 조용히 페트릭에게 향했다.
“페트릭.”
“네, 스승님.”
“메트라는 자. 조금 수상해. 어떻게든 조사해봐.”
아무리 옛날의 기억이라도 하나도 기억 못한다는 건 억지에 가까웠다.
메트는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여관을 떠났다.
“음··· 종교라···.”
종교라고 하면 집회장소가 존재할 것이다.
그 집회장소로 보이는 곳을 찾아낼 필요가 있었다.
“음···?”
조사대의 몇 사람들이 있는 곳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저곳이 종교의 집회장소로 일 터였다.
“저기요, 마크.”
조사대의 유일한 마법사 마크도 그곳에 있었다.
“어, 한스. 메트와 만났나보군요.”
“네, 이곳이 종교와 관련된 장소인가요?”
“맞습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집회를 했을 걸로 예상합니다.”
확실히 큰 집이었다.
하지만 가정집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이곳이 종교의 집회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좀 이상합니다.”
“네?”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일까.
“새로 지어진 것처럼 깔끔합니다.”
“새로 지은 걸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게 그래도···.”
아무래도 수상한 점이 더 있는 모양이다.
“집회장소라고 보기엔 사람의 흔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새로운 곳이라고 해도.”
“음··· 그런가요.”
우연이라기엔 확실히 어려울 거 같다.
건물의 완성과 동시에 마을사람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기엔 어렵지 않는가.
마치···.
‘종교라는 핑계를 대기 위해 갑작스레 만들어진 것 같구나.’
메트가 점점 수상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메트가 이걸 혼자서 지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무언가 뒤에 있을 것이다.
“일단 종교의 집회장소면 어떤 종교와 관련된 물건이 있을텐데···.”
“그런 것도 전혀 없습니다. 그저 여러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마치 종교의 건물을 본 따 만든···.”
만약에 메트가 한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해보았다.
그것 또한 말이 되질 않았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고? 그냥 루기 마을을 떠났으면 될텐데.’
굳이 이곳을 다시 찾아올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메트가 어떻게 마을사람들을 사라지게 했을까.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능력이 없는 듯한 사람이었다.
“머리가 아파오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조사대 측에서도 메트를 수상하게 여기고 있나보다.
하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이 심문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어떻게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만약 이곳이 메트가 만든 곳이면 둘러본다고 해도 답은 나오질 않을 것이다.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한다.
떠나려던 찰나에 마크가 내게 물었다
“어디로 가실 생각인가요?”
“음··· 아무래도 마을 밖에서 단서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네, 저희 조사대도 마을 밖에서 단서를 찾고 있으니 만나면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마을 밖으로 나갔다.
확실히 조사대의 복장을 갖춘 사람들이 보였다.
주위는 평지였다. 무언가 있을 거 같다면 마을에서 좀 떨어진 산에 있을 것 같다.
“저곳도 한번 봐바야겠지?”
저 산을 향하려는 찰나에 조사대원 복장을 갖춘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용병님, 저기는 가보셔봤자 무용지물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추종술로 확인한 결과 거기로 사람이 간 흔적이 없습니다.”
추종술로 확인한 결과 그곳으로 사람이 간 흔적이 없다라.
그런 것보다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었다.
“난 당신을 처음 보는데 누구죠?”
조사대원의 숫자가 많다고 하지만 모든 이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확실히 내게 말을 건 사람은 처음 본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