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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45화 (45/150)

#45화.

이야기로 전해진 마족 중에서 가장 강한 종족으로 일컬어지는 악마종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큰일났네.”

내게 마족과의 전투 경험은 없었다. 마족이 빙의할 뻔한 밀리아 누님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렇게 당황하는 동안에도 악마는 점점 밖으로 나왔다.

아직 상반신만 나왔지만, 오우거보단 확실히 커다란 덩치.

“데오르 경, 페트릭! 모두를 데리고 여기를 빠져나가요!”

지키면서 싸우는 것을 불가능하다. 차라리 혼자서 싸우는 게 편하다.

내 말에 급하게 후퇴를 하는 조사대였지만,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

적들이 후퇴를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붉은 머리의 남자가 미친 듯이 웃었다.

“하하, 도망쳐봤자 소용없다!”

“인간이 마족을 소환하다니, 마족이 네 생각대로 따라줄 거 같으냐!”

“안 따라준다면, 나야 뭐 도망치면 되지.”

얄밉게만 느껴진다. 다행히도 조사대는 출구 근처까지 후퇴하는 데는 성공했다.

“······.”

그 시간 동안 악마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두 발과 두 팔로 이족보행을 하는 듯한 가축의 모습. 이야기에서 전해진 그대로였다.

“$%^$^@^!”

악마가 뭐라고 말하고 있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섬뜩한 기운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아무래도 그 기운의 원천은 저기 있는 악마였다.

“제법 싫은 녀석들이 있군.”

악마가 사람의 말을 내뱉었다. 사람의 말을 할 줄 알았던 것인가.

“꺼져라!”

악마가 무언가 중얼거리더니 섬뜩한 기운이 한데 모였다가 곧바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기운 중 하나는 내게 쏟아졌다.

나는 다급히 그 기운을 피해냈다.

“괜찮나요?”

급히 뒤를 돌아보며 조사대를 확인했다.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다시 정면을 바라본 순간 눈앞에 벌어진 참상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적들이 전부 죽었어?”

대치하던 적들의 머리가 전부 사라져 있었다.

악마의 행동이 이해가질 않았다.

붉은 머리칼의 사내도 어디론가 이동했는지 보이질 않았다.

“흐음, 두 놈이 살았군.”

아니, 조사대를 생각하면 두 명이 훨씬 넘는다. 그런데 둘이 살았다니.

아무래도 노리던 것은 나와 적들, 그리고 붉은 머리칼의 사내였던 모양이다.

“어째서 아군을 공격하지?”

내 입장에서는 악마와 적들은 같은 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악마는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군···? 웃기는군. 언제부터 인간이 아군이었던 거지? 그것도 마계를 쳐들어온 짜증나는 힘을 가진 녀석들이.”

짜증나는 힘이라. 분명 내가 가진 특별한 힘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나 확실해진 것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네가 가진 힘··· 뭔가 익숙하구나.”

적어도 퇴마검의 주인을 만난 적이 있던 상대임이 분명했다.

“그 검은 머리칼 또한 익숙하군. 그놈의 후손이냐? 아니지, 후손일 리가 없지.”

“그 사람의 힘을 내가 받았다.”

갑자기 불쾌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구겨지는 악마의 표정.

“그 힘을 네가 받았다고···? 그렇다면 살려둘 수는 없겠군.”

다시금 섬뜩한 기운이 내게로 날아왔다.

나는 섬뜩한 기운을 피하며 악마에게 접근했다.

그러자 악마가 미소를 지으며 허리춤에 있던 커다란 검을 꺼내들었다.

“접근전이라. 나 역시 접근전을 좋아하지.”

그러면서 악마가 내게 검을 내려찍었다.

내 몸보다 큰 검을 휘두르는 악마.

염동력까지 사용해가며 검을 부딪혔다.

“으윽···.”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의 힘이었다.

“크하하하, 그 힘의 전 주인보단 많이 부족하구나.”

나는 몸을 틀어 피했다. 그리고 어정쩡하게 서있는 조사대를 향해 외쳤다.

“뭐하고 있어, 빨리 퇴각해!”

그러자 조사대가 다급히 도망쳤다. 이젠 악마와 나만이 남았다.

악마의 옆에 갑자기 붉은 머리의 남자가 나타났다.

“이름 모를 마족이시여, 잠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십쇼!”

“···놓쳤던 녀석이 다시 돌아오다니 운이 좋군.”

악마가 붉은 머리칼의 남자에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가볍게 피하는 붉은 머리의 남자.

“날파리 같은 녀석이군.”

“마족이시여, 저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당신을 부른 것도 바로 저입니다.”

그러자 흥미롭다는 듯 붉은 머리의 남자를 쳐다보는 악마였다.

“소개가 늦었습니다만, 제 이름은 오트리스입니다. 보시다시피 순간이동의 능력을 가졌죠.”

“그래서 왜 날 불렀지? 그것도 인간의 귀족이?”

“하하, 저는 지금 귀족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당신을 부른 것이기도 합니다.”

악마가 광포하게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결국 인간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냐! 역시 인간은 사악한 존재구나.”

“맞습니다. 그런 사악한 인간들을 아래로 끌어들이기 위해 도와주십쇼.”

“나보고 뭘 도와달라는 것이지?”

“인간의 세상에 혼돈을 내려주십쇼!”

악마가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혼돈이라 너무 좋지. 그런데 한 가지 말할 게 있군.”

“네···? 어떤···?”

“본래 내가 주려는 게 혼돈이었는데 네놈이 말한 탓에 왠지 네놈 말을 들어야하는 것같이 돼 버렸군. 마치 내가 네놈의 수족처럼 말이다.”

“아니, 그런 게 절대 아닙···.”

손까지 내저으며 부정하던 오트리스의 머리가 터졌다.

“흥, 마계로 쳐들어온 녀석의 후인을 내가 살려둘 거라 생각한 건가.”

그리고 나를 노려보는 악마가 있었다.

저 마족에게 도망치는 것은 무리라 판단했다. 최선을 다해 싸워야하는 상대였다.

“도무지 모를 일이군.”

회귀 전에는 악마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과연 회귀 전에는 저 악마를 오트리스가 설득했다는 이야기일까.

아닐 터였다.

‘그래도 아직 내겐 퇴마검이 남아있다.’

마족과의 싸움에서 상성의 우위를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검이었다.

나는 실을 염동력으로 검에 감았다. 그리고 내게 풍겨져오는 섬뜩한 기운을 막기 위해 실을 최대한 퍼트렸다.

“오호, 그 검 또한 그 전 힘의 주인 것이구나. 옛 기억이 떠오르는구나.”

자꾸 거슬린다. 마치 이 전 주인보다 윗줄의 고수인 듯한 말투.

만약 진짜라면···.

‘위험하겠네.’

“그 녀석에 당한 상처가 아직도 욱씬거리는구나.”

악마의 가슴팍에는 열십자의 상처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그 상처에 내가 한 줄 더 그어주지.”

“오호, 제법 기개가 있구나.”

악마가 내게 달려와 검을 휘둘렀다.

챙!

그 검을 맞받아쳤다. 실을 감았던 덕에 전보다 수월하게 받아낼 수 있었다.

“제법이구나. 말뿐이 아니야.”

악마가 내게 말을 걸어도 나는 답할 수 없었다.

몰려오는 섬뜩한 기운을 실로 몰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주인 녀석도 지금의 너와 같았지.”

“······.”

“결국에 혼자 남아 우리를 상대했었지.”

내 아카데미 시절에 꾸었던 꿈을 회상했다. 혼자서 검은 형체들을 막아내는 사내.

그 모습을 떠올리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 말인즉 내게도 승산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악마와 부딪혔다.

여러 번의 검끼리 부딪힘.

그것만으로 내 손에 힘이 빠져나갔다.

“그 녀석은 너희들에겐 영웅이었겠지.”

“······.”

“하지만 결국엔 그 녀석 또한 우리에게 패했다. 너 또한 같을 거다.”

아니, 그 사내는 패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일을 훗날에 맡겼을 뿐. 사내는 충분한 역할을 했을 터였다.

그러다 문득 악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느긋한 말투와는 다르게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듯한 모습.

“너··· 약해지고 있구나.”

악마가 뿜던 살벌한 기운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말에 시치미를 떼는 악마.

“흥, 네놈의 착각이다.”

“착각이라···.”

실을 감았기 때문에 악마의 검격을 받아내기 수월해졌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아니라 악마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회귀 전에 악마는 모두를 죽이고서 힘이 점점 사라져, 결국 마계로 돌아가거나 소멸한 모양이다.

“훗, 이젠 여유가 없어 보이는데?”

이젠 오히려 악마가 내 검격을 힘들어한다. 주위에 뿌려둔 실은 서서히 악마에게로 좁히고 있었다.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는 악마.

“칫, 쓸모없는 녀석들. 나를 소환하는데 제약을 걸었나보군.”

붉은 머리칼의 사내가 다시 돌아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저 악마에게 걸어둔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지는 예상 못했겠지만.

“···더 이상은 힘들겠군.”

“도망칠 생각이냐!”

악마의 등 뒤에 거대한 포탈이 생겨났다. 분명 저곳이 마계가 틀림없었다.

소름끼치도록 불길한 기운이 모인 곳.

나는 서둘렀다.

“이미 포탈은 열렸다. 네놈을 뿌리치고 난 돌아가야겠군.”

“나를 뿌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나는 전보다 거칠게 악마에게 검을 휘둘렀다.

남은 힘으로 포탈을 열어서 그런지 악마는 더욱 약해져 있었다.

악마를 공격하며 비기를 준비했다. 한 방에 끝낼 생각이었다.

“마나를 한곳에 모으다니··· 또 새로운 걸 만들어냈군.”

나는 비기로 악마의 방어를 뚫고 가슴팍에 검을 찔러 넣었다.

악마는 내 비기를 맞고 뒤로 밀려났다. 가슴팍에는 엑스자의 상처가 추가로 생겼다.

분노하는 악마.

“으아아악! 네놈 따위가 내게 상처를 입히다니, 용서 못한다!”

나는 긴장하며 다시 악마에게 검을 겨눴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랐다.

“두고 보자꾸나!”

악마가 포탈로 순간에 빨려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내 미소를 확인한 악마는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악마가 산산조각 나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게 대놓고 포탈을 열어두면 어떡하나.”

나는 퇴마검에 나온 실을 포탈의 앞으로 팽팽하게 만들어놓았다.

언제 도망칠지 모르는 악마를 위한 함정이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악마를 걸려들었다.

“다만 조금 아쉽네.”

악마의 시체가 산산 조각나며 포탈에 빨려 들어갔다.

시체도 남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아니, 다행이려나?”

그 누구도 내가 악마를 시체도 남기지 않고 쓰러뜨렸다는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조금 버티다 보니 악마가 스스로 돌아갔다고 말하면 될 것이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동굴의 밖에서 나를 반겨준 것은 겁에 질린 채 무장을 한 조사대의 인원들이었다.

“마족은 어떻게 된 겁니까?”

긴장한 듯한 데오르 경.

나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악마의 힘이 점점 약해지더니 마계로 도망쳤습니다.”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내 말에 모든 조사대원의 긴장을 푼 것인지 제자리에 쓰러졌다.

페트릭은 내게 다가와 내 몸을 살폈다.

“악마와 대치하셨지만, 많이 괜찮아 보이시네요. 역시 스승님입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힘들어 죽겠는데.”

머리가 아프고, 온몸이 아파왔다.

그만큼 악마는 빌어먹을 만큼 강했다.

만약 처음의 그대로 악마의 힘이 유지되었다면 이렇게 살아남지는 못했을 거다.

‘고마워해야하는 건가?’

붉은 머리의 오트리스. 그가 악마를 소환할 때 제약을 걸어둔 탓에 살았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다.

만약 그 악마가 오트리스의 제안을 승낙했다면···.

‘그 조직은 마족을 어떻게 쓰려고 한 거지?’

다행히도 마족 녀석이 인간에게 조종당하는 걸 싫어해서 다행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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