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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47화 (47/150)

#47화.

블랙 용병으로 승급한 당일에 나는 토트에게 블랙 용병패를 받았다.

검은색과 금색의 단조로운 조합.

그렇지만 패에는 복잡한 각인이 그려져 있었다.

토트가 내게 블랙 용병패에 대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 용병패만 있으면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귀빈 대우를 받을 수 있다네.”

“아··· 그런가요.”

“게다가 돈을 쉽게 빌려주기도 하지.”

“그렇군요···.”

그런 혜택은 바라지도 않았다.

“혹시 이 패를 거절해도 되나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토트에게 말해본 것이었다.

“하하, 이 친구 농담도 참 재밌구만.”

그저 웃긴 농담으로 치부하는 토트였다.

“하하, 농담이 아닌데요···.”

내 표정을 확인한 토트가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안하지만 이미 자네는 승급되었다네. 이미 이루어진 승급을 거절할 권한은 자네에게 없다네.”

“그렇군요···.”

“어쩔 수 없다네. 골드 용병의 실력을 가진 자들이 일부러 브론즈 용병에 남아 다른 사람을 골려주려고 했던 사례가 있었다네.”

어찌 됐건 나는 블랙 용병이 되었다.

넘버완이 내게 다가왔다.

“한스 형님, 축하드립니다!”

밝게 웃는 넘버완을 보니 주먹이 근질거렸다.

생각해보니 이 녀석도 한통속이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은 내 표정을 확인한 넘버완이 뒤로 물러났다.

“형님, 전 이만 밭을 보러 가보겠습니다. 애들아, 가자!”

다급히 도망치려는 넘버완 일행.

나는 그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따가 보자.”

내 말에 경직된 채 떠나는 넘버완 일행이었다.

나는 이곳에 남아 내가 기절시킨 이들에게 사과했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이들을 기절시킨 것이었으니.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단칼에 죽이지 않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블랙 용병의 승급에서 무고한 사람이 피를 볼 뻔했다. 다행히 이상함을 느껴 기절시킨 거로 끝나서 다행이지.

“그나저나 토트, 원래 블랙 용병의 승급은 이런건가요?”

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누군가가 죽었을 거다.

“사실은 나 또한 당황스럽군.”

“뭐가 당황스럽다는 거죠.”

“저들은 충분히 다이아 용병을 노릴 수 있는 자들이라네. 자네 실력이 이렇게 뛰어난 줄 몰랐다네.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 했어.”

“······.”

그러니까 저들이 골드 용병이라는 소리인가.

“앞으로 승급 시험 내용을 바꾸든가 해야겠군.”

“그러는 게 좋군요.”

나처럼 실력을 모두 드러내지 않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전 이제 가보겠습니다.”

블랙 용병으로 승급한 마당에 이제 더 이상 볼일이 없었다.

애당초 블랙 용병으로 승급을 하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니라 넘버완 일행을 찾으러 내려온 거뿐이었다.

“그래, 이만 가보는 게 좋겠군.”

“예··· 혹시 제가 블랙 용병으로 승급했다는 사실은 비밀로 부쳐줄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하네.”

“그렇군요. 하아···.”

한숨을 내쉬며 나는 집을 향했다.

집에서 기다릴 넘버완 녀석들을 생각했다.

‘감히 나를 속여?’

다신 그런 생각을 못하게 단단히 혼내줄 필요를 느꼈다.

***

넘버완은 늦은 저녁 자신의 집을 찾아온 이를 확인했다.

“어? 토트 길드장님이 아니십니까?”

“자네한테 긴히 부탁할 게 있네.”

넘버완은 당황했다. 도대체 용병 길드장이 자신에게 무엇을 부탁할 것인가.

토트의 이야기를 들은 넘버완은 당황한 감정에서 황당한 감정으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제 고용주가 블랙 용병으로 승급할 수도 있다고요?”

“그렇다네. 그래서 그런데 자네가 힘 좀 써줘야겠어.”

넘버완은 자신이 일개 건달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가 어떤 힘을 쓰라는 소리십니까?”

“자네가 납치된 거처럼 연기를 해주면 되겠네. 아니지, 연기를 할 필요도 없네. 그냥 동굴 속에서 숨어있으면 될 것이네.”

넘버완은 잠시 생각해보았다. 뭐가 됐건 한스를 속이는 행위였다.

“아무래도 앞으로를 생각하면 불가능할 것···.”

뒷말을 잇지 못하게 된 넘버완이었다.

토트가 넘버완에게 건네 돈은 자신이 벌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일이 끝나면 추가로 이만큼 더 주겠네.”

“뭐, 제 고용주님이라면 이런 일은 쉽게 눈을 감아주실 거라 전 믿습니다.”

돈에 현혹된 넘버완은 토트의 말대로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당일 아침에 넘버완은 친구들과 함께 토트가 소개해준 용병을 따라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넘버완의 친구가 넘버완에게 물었다.

“그런데 넘버완.”

“왜?”

“고용주님이 오실 거라고 믿냐?”

“음···.”

넘버완은 생각했다. 블랙 용병의 승급과 일개 피고용주인 자신을.

“아무래도 안 오시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 서럽긴 하네.”

넘버완은 침묵했다. 그리고 넘버완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선택을 한 한스를 보았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변화가 느껴졌다.

넘버완은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참아냈다.

‘앞으로 평생을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넘버완의 마음에 한스가 고용주에서 평생 모실 형님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

나는 넘버완 일행에게 기합을 주고 있었다.

“야야, 쓰러지지 마라.”

엎드려뻗친 채로 나란히 있는 넘버완 일행.

“아무리 그래도 목숨 가지고 그런 장난을 쳐?”

솔직히 많이 당황했었다.

첫만남은 좋지 않았지만 묘하게 정이 가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내 밭을 관리해주며 이들을 알아가게 되며 내 감정은 많이 바뀌었다.

‘잠깐 길을 잘못 들었을 뿐인 좋은 녀석들.’

그런 녀석들이 위험하다는 걸 듣고 많이 걱정했다.

하지만 내 걱정과 무관하게 블랙 용병의 시험이었다.

“앞으로 너희들이 나를 배신 못하게 철저하게 관리해주마.”

넘버완 일행이 힘들어서 반항이라도 생각했지만 생각과는 달랐다.

묵묵히 내가 내린 기합을 받는 넘버완 일행.

넘버완 일행에 눈에 묘한 충의도 보였다.

“에효, 됐다. 이제 일어서.”

일어난 넘버완 일행의 표정엔 어떠한 불만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니 더 이상 기합을 내리는 게 우습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가서 일해.”

“네, 알겠습니다. 형님!”

형님···?

어느샌가 호칭마저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고용주라고 하던 녀석들이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번 일로 많이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뭐, 나쁘진 않네.”

회귀 전에도 많은 이들의 충성을 받았다. 그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사람의 진심을 가졌다는 느낌.

“그나저나 페트릭은 어디로 간 거야. 하르야, 네가 냄새로 찾아볼래?”

품속에서 얼굴을 내민 하르였다.

넘버완 일행 때문에 제법 거칠게 움직였는데 어느새 잠들어있는 태평한 녀석이었다.

품속에서 나와 고개를 절래 흔드는 하르.

“하긴 네가 개도 아니고.”

나는 곧장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에 숨을 들이켰다.

“어, 스승님! 블랙 등급 승급 축하드립니다. 제가 지금 맛있는 것들을 좀 하고 있습니다.”

날 위해서 음식을 하고 있었다.

“···고맙다.”

“하하, 제자 된 도리로 이 정도는 당연하죠. 아직 음식이 많이 완성이 안 돼서 좀 기다려주십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 나와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블랙 등급이라···.”

이젠 돈벌이가 궁할 리가 없다.

이제 슬슬 완전한 독립의 때가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가문에 한번 돌아가볼까.”

지금쯤이면 데이브 형이 백작이 되는 것은 확실해졌을 거다.

지금은 경쟁자도 없으니 말이다.

“가족 얼굴도 보고 싶고 말이야.”

스승이라는 이유로 나를 축하해주는 페트릭이 가족과도 겹쳐보였다.

“뭔가 기분이 묘하군.”

회귀 전의 나이까지 합하면 나이를 꽤나 먹었다.

그런데도 뭔가 어려진 듯했다.

아무래도 몸이 젊어지니까 마음마저 어려진 거 같다.

“가족이 생각나는 날이군.”

잠시 상념에 잠긴 채로 계곡가에 앉아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자 페트릭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스승님, 음식 완성됐습니다. 넘버완 일행도 불러오겠습니다.”

나는 일어서서 집으로 들어갔다.

상을 가득 채운 음식에 군침이 절로 흘렀다.

어느새 하르도 집 안으로 들어왔다.

“좋은 날이구나.”

이윽고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페트릭과 넘버완 일행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나의 승급 축하파티가 시작되었다.

***

검성이 편지를 확인하더니 표정을 굳혔다.

“이게 무슨 소리지? 그럴 리가 없다.”

검성은 곧장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내 자식인 에오트라가 위급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이지만 검성은 자신의 가문으로 돌아갔다.

***

블랙 용병이 된 후로 바뀐 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도시로 내려갈 때마다 주위 사람들이 경외 어린 시선으로 나를 보기 시작했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시선이었다.

심지어는 몇몇의 사람은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정말 존경합니다. 저희 조르던 자유도시에 블랙 용병이 나타나다니.”

“아니··· 별로 존경받을 일은 아닙니다.”

“역시 블랙 용병! 겸손도 하십니다.”

사람들의 관심에 매일 피곤해졌다. 더 이상 도시를 내려오는 것도 번거로울 지경이었다.

“하르야, 너 때문이다. 인마.”

내려오긴 싫었지만 내 품 안에 있는 하르가 갑자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약이 필요할 것 같아 내려왔다.

“그런데 얘는 어디로 데려가야하지?”

치료마법을 받는다고 해서 치료될 만한 게 아니었다.

질병 같은 부류는 마법으로 치료할 수는 없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동물을 치료해주는 곳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곳은 이곳엔 없습니다.”

뒤에서 누군가의 말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 확인해보니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로브로 온몸을 가린 인간. 하늘길 여관의 사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었다.

“밖에도 돌아다니시는군요.”

솔직히 나는 그가 하늘길 여관의 지하에만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에이, 저도 사람인데 그곳에만 박혀있을 순 없죠. 그나저나 은빛늑대가 많이 아프신가봐요?”

“네···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긴 그.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암시장에 도움이 될만한 게 경매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암시장이요?”

내가 아는 암시장는 시중에 팔 수 없는 물건을 파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하르에게 쓰일 약이 암시장에 판다는 게 무슨 소리일까.

“뭔가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암시장은 막 출처를 알 수 없는 수상한 물건만 파는 게 아닙니다.”

“그럼요?”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도 팔죠. 그냥 돈 되는 건 다 판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그런가요? 그런데 이 녀석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게 무엇인가요?”

“이번에 은빛늑대 돌연변이인 뿔은빛늑대의 뿔이 경매에 있습니다.”

뿔은빛늑대라니. 그냥 은빛늑대에 뿔이 달린 게 아닌가.

“보통은 관상용으로도 쓰이지만, 같은 짐승부류의 몬스터에게는 영약이나 다름없죠. 특히 같은 늑대에겐 만병통치약으로도 쓰입니다.”

“진짜로 하르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약이네요.”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가격은 상관없다. 블랙 용병이 된 이후로 작은 일에도 보수가 컸다.

그렇기에 돈에 부족함은 없었다.

“그렇다면 암시장은 어디에서 열리고, 언제 열리나요?”

“암시장은 시청 인근의 지하에서 열립니다. 그리고 이번 암시장은 내일 정오쯤이겠네요.”

희소식이었다.

하르의 상태도 심각한 건 아니기에 내일까지는 충분히 버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그가 내게 초대장을 건네주었다.

“암시장은 초대장이 없으면 입장이 불가합니다.”

초대장을 받고는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그가 정색하는 말투로 말했다.

“꽁짜로 드린 게 아닙니다. 5골드만 주시죠.”

“역시 장사꾼이시네요.”

나는 5골드를 그에게 건넸다.

5골드를 받은 그는 순식간에 자리에서 떠났다.

일단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르야, 좀만 참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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