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암시장에 가기 위해 시청 인근으로 향했다.
아무도 시청 인근에 암시장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완벽한 장소란 생각이 들었다.
“음··· 분명히···.”
일단 시청 근처의 폐건물을 찾았다. 간간이 그곳을 들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저기구나.”
나는 폐건물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험악하게 생긴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초대장은?”
“여기.”
말이 짧은 게 심히 불편했지만, 뭐 뒷세계에선 말이 짧은 게 보통이라 들었기에 무시했다.
내 초대장을 확인한 남자는 나를 지하로 안내했다.
“오호라.”
내 생각과 다르게 지하의 공간은 매우 넓었다.
혹시라도 무너지지 않을까란 걱정이 생길 정도였다.
“자, 원하는 걸 골라라.”
남자는 내게 여러 종류의 가면을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익명으로 진행되는 경매이라 가면을 주는 모양이다.
나는 늑대 가면을 골라서 썼다.
“조금은 두근대는군.”
회귀 전에도 이런 암시장에 간 적이 없었다.
첫경험이라 그런지 두근거린다.
일단 빈자리에 앉았다.
아무래도 경매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시간이 남은 모양이다.
“뭐 할 게 없으려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처럼 가면을 쓴 채 앉아있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역시 그냥 기다려야겠네.”
모두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매가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소리를 증폭하는 마도구를 이용해 경매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번 경매의 첫상품은···.”
대충 카탈로그를 확인했을 때 뿔은빛늑대의 뿔은 중반부에 있었다.
“오, 재밌는 것도 많이 파네.”
암시장에선 이상한 물건을 파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저주받은 물건까지 파는 이유는 모르겠다.
“그나저나 저 검도 좋아 보이네.”
피칠갑의 검이라 소개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의 피를 머금어 저절로 붉어진 검이며, 저주받은 검이라 말했다.
예기가 살아있는 게 좋은 검이란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뭐, 난 퇴마검이 있으니까, 필요는 없지.”
여러 신기한 물건의 경매가 지나고 뿔은빛늑대의 뿔의 차례가 찾아왔다.
생각보다 경쟁이 있었지만, 단번에 크게 불러 경쟁자를 떨칠 수 있었다.
“좋아, 뿔은빛늑대의 뿔도 구했겠다. 이제 가볼까···.”
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시선은 다음 경매물품에 고정되었다.
“저것은···.”
***
백작이 된 후에 수하르는 잦은 업무와 적은 휴식 탓에 몸이 안 좋아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요즘 따라 너무 피곤하군.”
수하르의 말에 한스 집사장이 미소를 띠었다.
“백작님, 제 밑의 시녀가 백작님을 위해 영양제를 구해왔다고 합니다.”
“오호, 영양제라.”
수하르는 내심 몸을 위한 보약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딱히 보약을 짓진 않았었다.
“이것입니다.”
알약 형태의 특이한 약이었다. 보통의 약과는 다르게 검었다.
수하르는 막상 약을 보니 먹어도 되나 싶었다.
의심의 눈초리로 약을 바라보던 수하르는 한스 집사장의 다음 말에 믿고 알약을 삼켰다.
“백작님께 드리기 전에 검사를 마쳤습니다. 독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먹어도 봤는데 진짜로 몸에 활력이 돌더군요.”
알약을 삼킨 수하르는 곧바로 자신의 몸에 변화를 느꼈다.
몸 깊은 곳에서부터 활력이 솟아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약 좋은걸? 계속 구해다줄 수 있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약을 구한 시녀에게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
나는 저 경매물품을 알고 있었다.
검은색의 알약. 영양제로 알고 있던 것이었다.
“왜 이런 곳에서 파는 거지?”
나는 얌전히 사회자가 하는 물품소개를 집중했다.
“이 약은 암살용 약입니다. 즉각적으로 나오는 게 아닙니다. 몇십 년에 걸쳐 복용자의 몸을 쇠약하게 만들어 결국 돌연사를 하게 만드는 신비한 약이죠.”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일에 지쳐 과로사한 게 아니었단 말인가.
“물론 꾸준히 복용이 가능할 수 있게 미약하게 중독성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번이라도 약을 먹는 순간 계속 이 약이 떠오를 겁니다.”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 약의 시작 경매가는···.”
도무지 경매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먹은 약이 독약이었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게다가 저 약은 훗날에 대량생산이 된다.
그렇기에 나뿐만이 아닌 다른 귀족들도 즐겨먹는···.
“설마···?”
어림짐작에 가까웠다.
나와 같이 특별한 힘을 가진 인간들의 목표는 잃어버린 귀족의 자리를 되찾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기존의 귀족이 사라져야하는 일이다.
“이 모든 게 그 조직의 계략···?”
너무 과한 상상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귀족뿐만이 아니라 평민 또한 즐겨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지, 잠깐···.”
부유한 귀족과는 달리 평민은 가격이 비싸 매일같이 먹을 수 없었다.
그에 반해 귀족은 굳이 참을 필요가 없다. 부유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하나 있군.”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저 약을 가져온 시녀가 있다고 한스 집사장이 말했었다.
한스 집사장이 가져왔을 거라 생각도 되지만, 한스 집사장도 이 영양제를 즐겨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메드락···.”
밀리아 누님이 어떻게 메드락을 얻게 된 것일까.
이번에 마족을 상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나와 같이 특별한 힘을 가진 이들은 마족과 관련된 것을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다.
“분명 메드락에 관해서도 알고 있었을 거야.”
그렇다는 것은 내 약을 준비한 시녀와 밀리아 누님에게 메드락을 준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는 것은···.”
예상되는 시녀를 추려내보았다.
그리고 한스 집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기존에는 밀리아 아가씨를 모시던 아이인데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밀리아 누님의 전속시녀. 레아가 틀림없었다.
지금 당장 가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잠깐만···.”
생각해보니 굳이 급하게 갈 필요가 없었다. 데이브 형에게 미리 사정을 말해줘서 이 약을 먹지 말라고만 하면 문제가 없을 테니.
게다가 목적이 있는 레아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내가 가문에 돌아갔을 때 레아의 뒤를 밟으면 분명 그 조직에 대한 단서를 알아낼 수도 있을 터.
물론 레아가 그 조직의 인물이 아니라 다른 귀족 파벌이 심은 첩자일 수도 있겠지만.
“드디어 단서를 찾았군.”
어느새 경매는 끝나있었다.
나는 내가 구매한 뿔은빛늑대의 뿔의 값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갔다.
페트릭이 하르의 옆에서 간호해주고 있었다.
나는 뿔은빛늑대의 뿔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걸 곱게 갈고 물에 타서 하르한테 먹이면 될 거야.”
“다행입니다.”
페트릭이 내게서 뿔을 가져간 뒤 곱게 갈아 물을 탔다.
“하르야, 먹어라.”
페트릭이 그릇을 하르의 앞에 두었지만 도통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스승님, 하르 녀석이 입을 대질 않네요.”
“그래?”
나는 한번 맛을 보았다. 씁쓸한 약의 맛.
“보니까, 냄새로 맛없다는 걸 먼저 눈치챈 모양이네.”
나는 페트릭에게 하르를 붙잡으라고 한 뒤에 억지로 약을 먹였다.
잠시 괴로워하던 하르가 얌전해졌다.
“옳지. 이제 한숨 자면 괜찮아질 거다.”
내 말에 안심한 듯 하르가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페트릭이 내게 다가왔다.
“스승님,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
충격적인 사실을 안 터라 표정관리가 안 되었나 보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가요···?”
그리고 곧장 나는 침실로 들어갔다.
레아에 대한 정보를 떠올려보았다.
‘오랜 기간 칼데르트가에서 일한 시녀. 내게 독약을 먹인 원흉. 밀리아 누님에게 메드락을 주었을 거라 예상된다.’
그리고···.
“노블리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짓을 할만한 조직은 노블리스를 제외하면 떠오르지 않았다.
레아는 왜 칼데르트가가 멸문되도록 유도했을까.
“단 한 사람 때문에 칼데르트가가···.”
도무지 믿기질 않았다. 내 형제가 단 한 사람의 손에 놀아나고, 나 또한 놀아났단 생각을 하니 곧바로 가문으로 돌아가 레아의 목을 베어내고 싶어졌다.
“레아만이 아닐 수 있다.”
칼데르트가에 숨어든 자는 레아뿐만이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좀 더 신중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레아 또한 나와 같이 특별한 능력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잠시 밀리아 누님이 마족에게 빙의 당했을 적을 떠올렸다.
“잠깐만···?”
모든 이들이 후계자 경합건으로 대전에 있었다.
그런데 왜 레아만이 밀리아 누님의 방 앞에 있었을까.
“역시 레아가 밀리아 누님에게 메드락을 준 게 분명해.”
메드락으로 벌어질 일을 짐작하지 않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서야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군.”
아직 레아가 노블리스라는 조직과 관계가 있다고 확정된 건 아니다.
하지만 내 감이 말하고 있었다.
“분명 레아는 노블리스의 일원이야.”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두 가지다.
가문으로 돌아간 후에 레아를 감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해져야한다.
“노블리스에 대한 정체도 강함도 모르니까···.”
보다 강해져 다가올 적을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소드마스터···.”
아직까진 불투명한 유리로 너머 보이는 듯한 경지였다.
이 경지에 도달한 뒤 가문에 돌아가자는 다짐을 새롭게 정했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훈련만이 답이다.
혼자서 하는 훈련도 좋지만, 페트릭과 함께하는 훈련이라면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내일부터 할 생각이다.
“오늘은 많은 생각을 해서 그런지 머리 아프네. 빨리 자야겠다.”
바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피로했던 탓인지 바로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를 깨우는 것은 낯선 이들의 방문이었다.
“블랙 용병인 한스 라이크 씨 댁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미케네르 제국에서 나왔습니다.”
하며 내게 편지를 건네는 남성.
편지의 중앙엔 미케네르 제국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틀림없는 미케네르 제국의 문양이었다.
“진짜군요.”
그러자 약간 감탄하는 남성.
“오호, 제법 조예가 깊으신가 봅니다. 미케네르 제국의 문양을 진품을 확인하실 수 있으시다니.”
“뭐, 그냥 어릴 때 배웠습니다.”
회귀 전에 미케네르 제국과의 외교는 내가 맡았었다.
질리도록 업무를 하며 보았던 것이다.
“그나저나 미케네르 제국이 어째서 저에게···?”
“단순한 의뢰신청입니다.”
의뢰라···.
앞으로의 훈련을 생각하면 의뢰를 할 시간 따윈 없다.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려는 찰나 다급하게 나에게 말했다.
“일단 어떤 의뢰인지 확인만 하시죠. 그리고 이 의뢰에 대한 비밀은 지켜주셔야 합니다.”
“아··· 예.”
편지를 뜯어 의뢰내용을 확인해보았다.
겉보기로는 황실까지의 호위가 임무였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냥 호위 임무가 이렇게나 많이 줄 리가 없습니다.”
“이 의뢰는 에피니아 미케네르. 제국의 1황녀님이 의뢰하신 내용입니다.”
“어···.”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에피니아 미케네르···.”
회귀 전에도 들었던 미케네르 제국의 베일에 싸인 1황녀였다.
“그분이 제게 의뢰를···?”
“거기에 적힌 의뢰뿐만이 아니라 추가적인 의뢰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런가요.”
“이 의뢰를 받으실지 안 받으실지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다만 비밀은 엄수해주셔야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1황녀가 의뢰한 임무인 만큼 난이도가 쉽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의뢰 받아들이겠습니다.”
거절하기엔 너무 큰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