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의뢰를 떠나기 전에 우선 페트릭에게 집을 맡기기로 했다.
“페트릭, 하르랑 집을 좀 부탁할게.”
“네? 어디 가시나요?”
“응, 의뢰가 들어왔거든.”
그러자 페트릭이 입을 벌리며 놀란다.
“우와, 블랙 용병에게 의뢰라니. 의뢰주가 돈이 많나보네요.”
확실히 블랙 용병에게 의뢰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런데 저는 따라가면 안 되나요?”
“응, 아무래도 나 혼자밖에 안 되는 거 같아.”
이미 물어보았지만, 거절당했다.
이 의뢰는 비밀이 지켜져야한다며 더 이상의 인원이 늘어나는 것을 의뢰주가 원치 않는다고 하였다.
“아쉽네요. 블랙 용병 임무면 마족을 또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또 불길한 소리를 하네.”
“헤헤, 지금 도시 안에서도 밖에서도 스승님이 마족을 잡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 걸요.”
“어우···.”
떠나야하는 이유가 늘었다.
소문이 잠잠해질 때까지 잠시 떠나있어야겠다.
“그나저나, 쟤들은 왜 이렇게 바뀌었대.”
넘버완 일행을 말하는 것이었다.
블랙 용병 승급 이후로 많이 바뀌었다.
“그러게요, 스승님. 원래 열심히 하던 애들이었는데 이제는 뭐···.”
거의 오늘 뿐이라는 생각으로 일하는 것처럼 온갖 정성을 다 들인다.
뭐 나쁜 일은 아니었으니 상관은 없었다.
“그런데 며칠 동안 나가계실 생각인가요?”
“음···.”
나도 잘 모르겠다.
호위 임무뿐이라면 금방 복귀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임무가 추가적으로 내려진다고 했다.
“아무래도 블랙 용병에게 의뢰하는 만큼 어려운 일이겠지. 아마 긴 시간동안 못 올 거 같다.”
“그렇군요.”
“뭐, 그래도 최대한 빨리 끝내고 돌아오마. 너의 훈련도 있으니까.”
“스승님···.”
물론 페트릭의 훈련뿐만이 아니라 내 훈련도 해야하기 때문에.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1년 안으로 소드마스터가 되는 걸 목표로 정했다.
“그럼, 이제 가볼게. 집을 잘 부탁한다.”
“예, 스승님.”
***
조르던의 광장에서 의뢰주를 기다렸다. 그러자 저 멀리에서 마차가 오는 게 보였다.
“1황녀가 타기엔 평범한 마차네.”
마차는 평범했다. 전혀 일국의 황녀가 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 마차는 아니겠다.”
하고 말했지만, 마치는 내 예상과 다르게 내 앞에서 멈추었다.
“···한스 라이크?”
마차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1황녀인 에피니아일테지.
“의뢰주이십니까?”
함부로 1황녀의 이름을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의뢰주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그러자 마차의 문이 열렸다.
나는 마차 안에 탑승했다.
“내가 미케네르 제국의 1황녀인 에피니아 미케네르다.”
에피니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게 불투명한 천이 황녀를 가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황녀를 보좌하고 있는 시녀가 있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블랙 용병을 만나는 것 또한 영광이지.”
“과찬이십니다.”
마차는 출발했다. 그리고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평범한 마차인 줄 알았는데.’
드라이크 남작이 만든 마차가 틀림없다. 다른 마차보다 흔들림이 적었다.
마치 드라이크 남작의 마차처럼.
“혹시 제게 하실 의뢰라는 게···.”
“그것은 황실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예.”
미케네르 황실로 가는 여행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블랙 용병을 섭외한 만큼 가는 여정에도 위험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황녀님, 도착했습니다.”
“그렇군.”
여행하는 동안 많이 괴로웠다.
황녀라는 신분 탓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그저 침묵한 채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미케네르 제국의 1황녀라고 하면 온실 속의 화초로 기억하는데.’
회귀 전에 미케네르 제국의 1황녀가 죽기 전까지 황실에 갇혀 살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여행길에 많은 질문을 받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1황녀는 바깥에 대한 관심이 없어보였다.
‘마치 바깥에 많이 다녔던 것처럼.’
마차는 곧장 황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1황녀의 거처로 이동했다.
황실 안에 요새처럼 만들어진 공간이 1황녀의 거처였다.
마차에 내린 뒤에 응접실로 안내받았다.
“황녀님께서는 이제 간단한 채비를 하시고 오실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황녀니까, 황족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단장을 하고 올 모양이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황녀는 내게 어떤 의뢰를 할 생각이려나.”
회귀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숨겨진 황녀.
게다가 갑자기 죽었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그 죽음과 관련되어 있겠지.
“잠깐만···.”
추측하기를 미케네르 제국과 나테아르덴 제국의 전쟁에 이유는 1황녀의 죽음이 있다고 했었다.
만약 그 추측이 사실이라면.
“이거 나테아르덴 제국도 연관되어 있는 의뢰인가?”
생각보다 커다란 의뢰의 가능성을 느꼈다.
“지금이라도 받지 않겠다고 할까?”
돈에 눈이 멀어 제국과의 다툼에 연관되면 피곤해진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응접실에 문이 열리며 얼굴을 천으로 가린 1황녀가 들어왔다.
드레스차림에 은발의 머리.
‘목소리를 듣고 에아 선배랑 착각했었지.’
하지만 에아는 적발이고, 1황녀는 은발이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게 있었다.
‘이제 곧 안식기간이 끝이 날텐데 이곳에 있을 리가 없지.’
1황녀는 내 앞에 앉았다.
“이제 제대로 된 의뢰를 말해드릴 차례네요.”
“네.”
도대체 어떤 의뢰일까.
“제가 당신에게 드릴 의뢰는···.”
의뢰는?
“아니, 그보다 먼저 사실 확인부터 들어가야겠군요.”
“네? 어떤 사실요?”
“마족을··· 악마를 쓰러뜨린 게 사실인가요?”
루기 마을에서의 일인가.
그런데 왜 마족을 쓰러뜨린 게 맞는지 묻는 걸까.
“맞습니다만··· 설마···.”
페트릭의 말이 또 현실이 되어 찾아오려는 것 같다.
“이 의뢰가 마족과 연관되어 있습니까?”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아니었으면 했다.
“네.”
이 의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하여도 말이다.
마족을 직접 경험해본 이상 온전한 힘을 가진 마족이라면 지금의 나라면 무리다.
“그렇다면 거절해야겠습니다.”
“어째서죠? 마족을 한 번 쓰러뜨리셨다면서요.”
1황녀는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듯했다.
분명 내가 말하기를.
“저는 마족을 쓰러뜨린 게 아닌 마계로 돌려보낸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했었다.
“게다가 그 마족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살아있는 거고요.”
“······.”
아무 말 하지 않는 1황녀.
1황녀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이 의뢰는 받아서는 안 된다.
“마족과 연관되어 있지만 마족이 나오는 게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1황녀가 뒤를 돌았다. 그리고선 갑자기 등의 지퍼를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인계라면 저에게 안 통할 겁니다!”
확신은 못하겠다.
천으로 가렸지만 황녀는 미인이 틀림없다.
“제대로 봐주시죠.”
황녀의 머리카락을 치우자 그 뒤에 새하얀 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 새하얀 등에 새겨진 검은 문양.
“마족에게서 받은 저주입니다.”
“네···?”
1황녀가 다시 지퍼를 올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마족이 제게 남긴 저주입니다.”
“저주라니··· 그보다 왜 저주에 걸리신 겁니까?”
황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싫은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모양이다.
“제가··· 어렸을 적에 일이었습니다.”
“네···.”
에피니아 미케네르가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에피니아는 어려서부터 총명한 아이였다.
귀여운 외모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다.
그런 에피니아에겐 하나의 취미가 있었다. 바로 독서.
“메티아, 나 책 읽고 싶어.”
에피니아는 자신의 시녀인 메티아를 통해 책을 구해왔다.
하지만 에피니아는 자신이 직접 책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책이 도서관에 있단 말이지?”
“그냥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아니, 나는 직접 책을 고르고 싶어!”
메티아의 만류에도 에피니아는 도서관을 향했다.
그 뒤에는 메티아가 뒤따랐다.
“여기가···.”
도서관에 처음 온 에피니아는 감탄을 숨길 수 없었다.
사방이 책이었다.
책을 좋아하던 에피니아는 천국이 있다면 이곳이라 생각했다.
“우와··· 진짜 많다.”
에피니아는 손이 가는대로 책을 읽었다.
자신이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리 오거라···.
책을 읽던 에피니아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
“누구야?”
-이리 오거라···.
반복되는 소리에 공포보단 호기심이 동했던 에피니아는 그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그곳엔 알아차리지 못한 문이 있었다.
그 문틈 사이로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거기 누구 있어···?”
문을 열며 작은 목소리로 답하는 에피니아.
그곳엔 어둠만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소름이 끼친 에피니아가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 할 때였다.
-가지 마···.
지금까지 들었던 것이 진짜였다고 에피니아에게 확신이 들게 해줄만한 목소리였다.
분명히 어둠 저편에서 소리가 들리고 있던 것이었다.
“너는 누구야?”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의문의 목소리에 에피니아는 화가 나려고 했다.
“너는 누구냐니까!”
-요정이라고 해두지.
“요정?”
에피니아는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다.
에피니아가 생각하는 요정은 이렇게 어두운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너는 왜 여깄는 거야?”
-게임을 했다.
에피니아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게임이라니? 게임 때문에 이곳에 있다고?”
-믿지 못하겠지. 그나저나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나는 책을 읽으려고 왔는데 네가 불렀잖아!”
그렇군, 하는 목소리가 어둠 저편에서 들려왔다.
한동안 침묵이 유지되자 에피니아는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난 그럼 갈게.”
-잠깐만!
다급하게 불러세우는 요정.
“왜?”
-나와 게임을 하지 않겠는가?
에피니아는 요정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게임이라니.
그보다 게임 때문에 저곳에 갇혀있다고 요정이 말했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게임을 왜 해.”
-일단은 게임을 이겼을 때 받는 보상부터 듣는 게 어떤가.
에피니아는 잠시 고민했다. 보상을 듣는 것 정도야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떤 보상인데?”
-예언서. 게임에서 이기면 미래를 알려주는 책을 네게 주마.
책이라는 말에 에피니아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미래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하였다.
지금 당장 게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나 게임할래!”
-잠깐··· 계약은 준수해야지. 나는 아직 네게 승리의 보상밖에 말해주지 않았다. 아직 패배의 조건이나 게임이 무엇인지는 말해주지 않았지.
에피니아는 요정의 태도를 보고 이 게임은 공정한 게임이라고 생각을 했다.
-네가 패배했을 경우··· 너의 영혼은 내게 귀속된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오는 에피니아였다.
하지만 미래를 알 수 있는 책을 포기하기엔 아까웠다.
마지막으로 게임의 내용만 듣기로 했다.
“어떤 게임인데?”
-숨바꼭질. 나는 어디로 숨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지. 기간은 20년. 20년 안까지 나를 찾아내면 된다.
20년 정도면 충분히 가능할거란 생각이 들었기에 에피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게임할래!”
-좋다! 너는 이제부터 나를 찾아야 한다. 그전에 네 이름이 뭐지?
“에피니아!”
어둠의 저편에서 요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악마···.”
에피니아가 읽었던 동화 속에 나오는 마족의 모습이었다.
-에피니아, 너는 이제 나와 게임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