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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51화 (51/150)

#51화.

내가 에피니아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그 목걸이 바로 가지러 갈 필요는 없는 거죠?”

“음··· 빠르면 빠를수록 좋긴 한데. 아직까진 시간이 많이 남았을 거라 생각해.”

“그럼··· 저 한 가지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전부터 제국에 오면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미케네르 제국의 콜로세움에 참가할 수 있을까요?”

“참가하면 되잖아?”

“그게···.”

제국 콜로세움에 검투사가 되려면 제국민이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랬었나? 그랬던 거 같네.”

“그런데 아무래도 검투사가 되겠다고 제국민이 되는 건 조금···.”

내가 콜로세움에서 검투사가 되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를 하고 있는 이들의 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좋은 훈련 상대가 될 것이다.

“뭐,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해줄 수 있을 거 같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금 챔피언이 누구인지 알아?”

그야, 기억하고 있다.

아마 이맘쯤부터 챔피언의 자리를 차지하고, 은퇴까지 무패를 기록한 소드마스터 챔피언.

“파스타르잖아요.”

파스타르.

방패 하나와 단창 하나로 콜로세움을 제패한 강자였다.

게다가 쇼맨쉽 또한 뛰어났다.

“그 파스타르가 나중에 너를 도와줄 사람이야.”

“네···?”

파스타르가 에피니아와 연관이 있었던 것인가.

하지만 파스타르는 제국에게 귀족작위는 받지 않았다.

“파스타르가 제국의 귀족이었나요?”

“음··· 귀족은 아니야. 그냥 기사작위를 받았을 뿐이지.”

귀족작위와 기사작위는 다르다.

고귀한 신분이라는 점은 같지만, 귀족작위는 보통 영토와 부가 주어진다. 그에 반해 기사작위는 오로지 명예뿐이다.

“파스타르가 미케네르 제국에 기사작위를 받았었군요.”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일단 기사작위를 받은 이상 황실에 충성해야하는 의무를 지니기 때문이다.

“파스타르라···.”

맨몸에 가까운 복장에 커다란 방패와 단창을 쓰는 전사.

그와 합을 맞춘다고 생각해보았다.

“파스타르··· 너무 튀는데요?”

은밀한 임무는 전혀 불가능할 거 같다.

“그건 걱정 마. 파스타르도 은밀한 임무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복장을 갖추거든.”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럼, 저는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로 좀 활동하겠습니다.”

에피니아가 나에게 어떤 패를 주었다.

“이게 뭔가요?”

“황실에서 신분을 보증한다는 패야. 이거라면 제국민이 아니라도 검투사가 될 수 있을 거야.”

“오, 감사합니다!”

에피니아에게 신분패를 받았다.

“그럼, 저는 이만···.”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잠깐.”

그런 나를 에피니아가 멈춰 세웠다.

“왜요?”

“앞으로 연락은 어떻게 할지 정해야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연락이요? 어차피 밤이면 다시 이곳에 올 건데.”

표정이 굳어지는 에피니아.

“난 상관없지만, 황실 그것도 1황녀의 처소를 젊은 남자가 들락거린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아, 아무 생각 없었다.

난 그저 이곳에 손님을 재우는 방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에피니아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어리석었다.

“아··· 그건 그렇네요. 그럼, 저는 근처 여관에서 지낼게요.”

“아니, 그건 생각 안 해도 돼. 내가 따로 여관은 잡아둘테니까. 연락을 어떻게 하는 게 문제지.”

에피니아가 나를 찾아오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에피니아를 찾아가긴 어려운 일이다.

“음··· 그렇다면··· 에피니아 선배가 연락하실 때는 제가 지낼 여관에 기별을 주시면 될 거 같네요. 문제는 제가 연락할 필요가 있을 때인데.”

그러자 에피니아가 웃었다.

에피니아의 갑작스러운 웃음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가 아카데미도 아니고, 에피니아 선배는 또 뭐니.”

“아··· 그럼, 에피니아 황녀님···?”

“에이, 너한테까지 황녀님 소리를 듣긴 싫어.”

그렇다면 어떤 게 좋은 걸까.

“그냥 에피니아라고 불러.”

“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황녀를 그렇게 격 없이 부르는 것은 좀···.”

“됐어. 우리가 남도 아니고. 같이 유적을 돈 사이잖아.”

하며 웃는 에피니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수긍했다.

“그나저나 그럼, 제가 연락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음···.”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황녀에게 연락을 취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도저히 생각나질 않았다.

에피니아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손뼉을 마주쳤다.

“그래, 그 방법이 좋겠다.”

“어떤 방법이요?”

“내 시종을 보내줄게.”

에피니아는 자신의 시종을 보내주는 것으로 필요한 연락은 시종을 통하면 될 것이라 말했다.

나 또한 그것이 좋은 생각이라 여겼다.

“그게 좋겠네요.”

“응. 그럼, 나중에 여관에 내 시종을 보낼게.”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가볼게요.”

“응, 나중에 봐.”

나는 응접실을 나왔다. 그리고 에피니아가 말해준 여관을 향했다.

“오···.”

역시 황실이었다.

여관마저 비 싸보이는 곳으로 예약해주었다.

“한동안 이곳에서 지내야하는 건가.”

낯선 곳에서 지낼 생각에 왠지 모르게 페트릭과 하르, 그리고 넘버완 일행이 생각났다.

사람과 지내는 게 익숙해졌는데 다시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니 괜히 회귀 전이 떠올랐다.

“괜히 궁상을 떨게 되네.”

잡념을 떨치고,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회귀 전에 보았던, 그리고 드라이크 남작의 호위건으로 잠시 제국에 왔을 때에 봤던 콜로세움을 생각했다.

언제 봐도 웅장했다.

“저기 있네.”

콜로세움의 문이 열려있었고, 소란스러웠다.

아무래도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곧바로 신청하기보단 경기를 구경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 들었다.

“저기요.”

접수처에 다가갔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경기를 보고 싶은데요.”

“네, 알겠습니다.”

접수처에서 알려준 금액을 건네고, 입장권을 받았다.

입장권을 내고 콜로세움 안을 들어가니 안은 경기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더울 지경이네.”

빈자리를 찾아 앉고 경기를 구경했다.

눈에 익은 인물이 있었다.

“파스타르!”

“파스타르, 저딴 몬스터한테 질 생각이냐!”

관객이 외치는 소리에 저자의 정체가 파스타르란 걸 깨달았다.

아무래도 이벤트 경기인 듯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맨몸의 인간이 오우거와 싸울 리가 없으니 말이다.

“대단하네.”

파스타르는 아무런 장비 없이 오우거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저게 과연 인간일까.”

오우거와 힘겨루기 하는 인간이라니 매우 생소했다.

“어···?”

파스타르가 오우거를 흘리더니 오우거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곧바로 오우거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저게 가능하다고?

오우거의 목은 거목과 비교된다. 그 거목을 파스타르가 조이고 있었다.

이내 실신한 오우거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실신한 오우거의 위에 올라탄 파스타르는 팔을 위로 치켜세웠다.

“파스타르!”

“파스타르!”

모든 관중이 하나의 이름을 되뇌었다.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다.

“예전에도 그랬지.”

회귀하기 전에 보았던 콜로세움의 경기에서도 모든 관중이 파스타르의 이름을 외쳤다.

그때의 상대는 트롤이었다.

트롤보단 오우거가 강하겠지만, 인간이 맨몸으로 상대하기엔 오우거보단 트롤이 더 까다롭다.

“그때보고 감명받았었지.”

그 경기를 본 이후로 제국에 있을 동안엔 빠짐없이 콜로세움에 갔었다.

“마치 지금과 비슷하네.”

경기를 마친 파스타르가 경기장을 떠났다.

경기장엔 오우가만 달랑 남아있다.

“크··· 나도 저런 거 하게 되려나?”

검투사는 크게 두 종류의 경기를 치른다.

보통은 인간을 상대로 싸우지만, 소수의 인기 검투사는 몬스터와 싸우기도 한다.

“나라면···.”

염동력을 빼고 생각하면···.

“나도 오우거 정도는 맨몸으로 잡으려나?”

파스타르처럼 근육질에 거구는 아니지만 마나를 두른다면 파스타르만큼의 힘은 낼 수 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짜릿하네.”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오우거와 힘겨루기 하는 나를 상상해보니 짜릿했다.

이 들뜬 마음이 가시기 전에 검투사 신청을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곧장 접수처로 향했다.

“검투사가 되고 싶은데요.”

“검투사가 되시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두 가지?

“하나는 제국민이고, 다른 하나는 소드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입니다.”

소드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이라니.

생각보다 높았다. 물론 내가 검투사가 되는 데엔 무리는 없었다.

“여기 신분패입니다.”

에피니아가 내게 준 신분패를 건넸다.

그러자 눈이 휘둥그레지는 접수처의 사람이었다.

“황실의 증명패···!”

“이거면 제국민이 아니라도 가능할 거라고 그랬는데요.”

“네, 충분히 가능하십니다.”

다행이다.

“그럼, 다른 하나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혹시 경지가 어떻게 되시나요?”

잠시 고민해보았다. 사실대로 솔직히 말할 것인지 경기를 하며 천천히 밝힐 것인지.

“소드익스퍼트 중급 이상은 확실합니다.”

천천히 본 실력을 드러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 말에 접수처의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서류를 건넸다.

“여기 서류에 이름이나 혹시라도 쓸 가명 같은 걸 적어주시면 됩니다.”

“네···?”

이상했다. 그저 말만 했을 뿐인데 통과된 것인가.

이런 식이면 실력을 속이면서 검투사가 되는 이들도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원래 실력 검증 같은 건 없나요?”

“황실의 증명패를 가지고 있으신 분이 거짓말을 하실 거라 생각 안 합니다.”

생각보다 에피니아가 준 패가 대단한 모양이었다.

나는 차근차근 서류에 내 정보를 기입했다.

그리고 가명의 여부를 생각했다.

‘내게 가명이 있긴 하지만···.’

한스같이 흔한 이름을 쓰긴 싫었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던 중 문득 한 이름이 떠올랐다.

“카시아스···.”

방금 떠올렸지만 무언가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카시아스가 좋겠군.”

나는 콜로세움에 쓸 가명을 카시아스로 정했다. 서류를 접수처의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그곳엔 내 본명이 수하르를 적었고, 가명으로 카시아스를 선택했다.

“앞으로 궁금한 게 있으시면 제게 물어봐주십쇼. 제 이름은 폴테인입니다.”

“알겠습니다.”

“경기가 정해지면 적어주신 주소로 기별을 보내겠습니다.”

“예.”

말을 마친 나는 콜로세움을 떠났다.

콜로세움의 밖은 사람이 많아 복잡했다.

“오오···.”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적었던 길거리 음식점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아무래도 경기가 끝나는 시간부터 이렇게 줄지어 서 있는 모양이다.

“맛있어 보이는 것들뿐이네.”

마침 허기진 상태였다. 나는 길거리 음식을 모두 먹어볼 생각으로 음식들을 사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남으면 여관에 가져가면 되겠지.”

***

음식을 한아름 들고 여관에 도착했다.

내 방에 들어가자 낯선 여자가 있었다. 누가 보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혹시 1황녀님이 보낸 사람인가요?”

“한스님이 이곳에 계실 동안 제가 모시게 되었습니다. 메시아라고 합니다.”

“그런가요? 일단 저를 카시아스라고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의문을 표할 법한데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수긍했다.

“제가 콜로세움에서 쓸 이름이거든요.”

“예.”

메시아의 성격이 조금 무미건조하다고 느껴졌다.

뭐, 그런 걸 신경 쓰는 내가 아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잘부탁드리겠습니다, 카시아스님.”

내 제국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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