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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52화 (52/150)

#52화.

여관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에 메시아가 내게 온 편지를 전달해주었다.

“드디어···.”

콜로세움의 첫 경기 일정이 잡혔다.

‘드렉스?’

경기 상대의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다.

아무래도 별거 없는 상대임이 틀림없었다.

“내일이란 말이지?”

콜로세움에 참가한 내 목표는 하나다.

“파스타르랑 경기 한 번 해봐야겠지.”

챔피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파스타르다.

파스타르와 경기를 할려면 많은 승리를 거둬야할 터였다.

“에피니아에게 말하면 그것도 필요없겠지만.”

내가 감명받았던 파스타르는 콜로세움의 검투사인 파스타르였다.

그런 그를 콜로세움에서 상대해보고 싶다.

“파스타르의 나이를 생각하면···.”

소드마스터치곤 젊은 축에 속한다.

그렇기에 로토 왕국의 검성인 케론 사르키드보단 실력이 뒤떨어질 터였다.

그렇다는 것은.

“내게도 희망은 있다.”

소드익스퍼트 최상급에 오르고 나서 성장이 없던 게 아니다.

꾸준히 성장한 끝에 최상급 완숙의 경지에 다다랐다.

“그래도 소드마스터와는 격차가 많이 나겠지.”

염동력을 이용해 허점을 노리는 것도 생각해보았지만, 콜로세움에 있을 때에선 쓰지 않을 생각이다.

오로지 검으로만 승부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과의 대련을 통해 성장해봐야지.”

최상급에 이르러서는 단순한 훈련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련이 더 도움이 된다.

메시아가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대련 상대가 누구십니까?”

“드렉스라고 하네.”

“드렉스 말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메시아가 방을 나가더니 다시 들어왔을 때엔 손에 종이 뭉치가 있었다.

“드렉스는 제국 소속의 기사였습니다. 주로 빠른 공격을 하고, 경지는 소드익스퍼트 중급으로 추측됩니다.”

하며 메시아는 내게 드렉스에 대해 적혀있는 종이를 건네주었다.

“이런 거까지 준비해준 거야?”

깊은 감동을 받았다.

“황녀님의 명령으로 최대한의 편의를 봐드리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메시아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유능한 사람인 것은 틀림없었다.

드렉스에 대해 완벽하게 적혀있었다.

“외형부터 신상정보까지··· 대단하네.”

단시간 만에 구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메시아가 가져온 종이가 전부 검투사에 대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혹시 내 정보도 있어?”

“예, 있습니다.”

메시아가 내 정보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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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카시아스 [한스 라이크]

나이 : 17

외형적 특징: 흑발의 184cm의 장신

신상정보: 조르던 자유도시의 블랙 용병. 멸문한 라이크 가문은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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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과 다르게 적혀있는 게 많지 않았다.

“나는 왜 조금 밖에 안 적혀있는 거야?”

드렉스와 비교해도 많은 것이 비어있었다.

“황녀님의 명령으로 간결하게 조사했습니다.”

“그렇구나···.”

아마도 깊게 조사하면 내 신분이 거짓이라는 게 들킬 우려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황녀님께서 카시아스님의 정보를 잠그셨기 때문에 다른 이들도 많은 정보를 못 캐낼 겁니다.”

고마운 소리일이다. 콜로세움에서는 승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인기가 오를수록 나에 대해 조사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제국의 귀족이 나를 섭외하기 위해서 뒷조사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

황녀가 정보를 잠궈놓는 걸로 제국의 귀족은 나를 포기할 것이다.

“그나저나 내일이라···.”

제 아무리 중급이라도 방심은 금물이다.

한 번의 방심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지 않았는가.

“몸 좀 풀어볼까.”

다행히도 이 여관은 기사들 또한 자주 묵는 여관이라 훈련장이 구비되어 있었다.

“메시아, 나 몸 좀 풀고 올게.”

하고 방을 나섰다.

뒤에서 인기척을 느껴져서 뒤돌아보니, 그곳엔 메시아가 서 있었다.

“메시아?”

“물에 젖은 수건과 마른 수건을 챙겼습니다.”

역시 메시아는 유능했다.

***

심판으로 보이는 이가 요란한 행동을 하며 나를 가리켰다.

“역대급 신성이라고 판단되는 카시아스입니다!”

콜로세움 관객들의 함성 속에 내가 입장했다.

심판은 내 반대편에 위치한 민머리를 한 험악한 남성을 가리켰다.

“산적이라고 오해받지만, 실은 기사였던 남자. 드렉스입니다!”

심판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버렸다. 심판의 말이 너무 찰떡이었다.

내가 비웃는다고 생각한 것인지 드렉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사죄를 표했다.

“자, 두 분 마주보시고요.”

드렉스는 겉으로 보기엔 속도에 치중한 검술보단 우악스러운 힘에 치중된 검술을 사용할거처럼 보였다.

‘메시아가 조사해온 게 아니었으면 착각할 뻔했네.’

양측에서 인사를 하고 심판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잘 부탁합니다.”

“······.”

내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는 드렉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빠른 시일 내로 챔피언과 대련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관중에게 인상적인 경기를 보여주면 되는 일이다.

‘그렇다는 것은.’

애당초 실력을 숨길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조심하세요.”

나는 곧장 드렉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이를 예상했다는 듯 드렉스는 내 검을 맞받아쳤다.

“그래선 안 됐는데.”

내 검과 드렉스의 검이 부딪히는 순간 드렉스의 검이 잘려나갔다.

내 검은 그대로 드렉스의 목을 향했다.

목에 지척에 다다른 순간 나는 검을 멈추었다.

“끝입니다.”

콜로세움의 관중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가 맞는 말이겠다.

드렉스는 허망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드렉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최대한 빠르게 챔피언과 대련을 해보고 싶다.

“···순식간에 승부가 났습니다. 승자는 카시아스!”

멍하니 있던 심판이 급하게 내게 다가와서 내 팔을 들려 내 승리를 확정지었다.

그와 동시에 울려퍼지는 관중들의 환호성.

“카시아스!”

“카시아스!”

모두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원하던 고양감이었다.

심판이 내게 다가왔다.

“승리소감 한 번 부탁드립니다.”

나는 콜로세움 한켠을 검으로 가리켰다. 그곳엔 파스타르가 있었다.

“곧 도전하러 가겠습니다.”

“와아아아!”

동시에 관중들의 환호가 더욱 커졌다.

파스타르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게 답해주었다.

“열 번. 열 번을 연속으로 이기면 네 도전을 받아주마.”

“아주 쉽군요.”

“너 같은 녀석은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입만 산 건 아니라고 생각되는군. 기대하마.”

파스타르가 말을 마치고 어딘가로 떠났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동경하던 사람과의 대련··· 재밌겠네.’

나는 관중의 환호성을 들으며 경기장을 떠났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경기를 여관에서 회상했다.

전율이었다.

“남들에게 내 실력을 드러내는 것이 이렇게 짜릿하다니.”

진작에 알았으면 실력을 숨기는 짓 따윈 하지 않았을 거다.

“아니지, 아니야. 실력을 모두 드러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지.”

“네, 맞습니다.”

옆에 있던 메시아가 맞장구를 쳐주었다.

“어··· 메시아? 언제 들어왔어?”

분명 내가 방에 들어왔을 때는 메시아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서 헤벌쭉 웃으실 때부터 있었습니다.”

창피한 모습을 보여버렸다. 하지만 메시아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노크는 좀 해주지.”

“여러 번 했습니다. 다만 답이 없으시길래 위급상황이라고 판단하고 들어왔습니다.”

“···흠.”

그나저나 메시아는 왜 나를 찾아온 것일까.

“근데 왜 내 방에 찾아온 거야?”

“황녀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에피니아가?

“그래?”

나는 곧장 방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은 열리다 말고 도중에 무언가와 부딪혀 막혔다.

“어···?”

“아야··· 문 좀 살살 열지.”

얼굴을 천으로 가린 에피니아였다.

“에피니아, 왜 오신 거예요?”

자신의 이마를 어루만지는 에피니아.

“경기 봤어.”

아, 봐버렸구나.

그렇다는 것은 내가 파스타르에게 도전한 것도 보았겠지.

“파스타르랑 대련하고 싶으면 내게 말하면 되는데.”

“그건 별로··· 콜로세움의 경기장에서 챔피언으로서의 파스타르랑 대련해보고 싶었어요.”

내 말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에피니아.

“하긴 나도 황녀가 아니라면 콜로세움에 검투사로 참가하고 싶긴 하더라.”

“그렇죠!”

에피니아 또한 상급의 검사다.

검사라면 이해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너 진짜로 많이 강해졌구나.”

“······.”

에피니아가 나를 마지막으로 본게 소드익스퍼트 중급이었을 때였다.

단기간에 높은 성장을 이룬 나였다.

“아마 지금 대련하면 내가 지겠네.”

“하하···.”

실제로 그랬다.

소드마스터와 최상급의 격차만큼 최상급과 상급의 격차 또한 많이 났다.

익스퍼트 초급이 중급을 이기는 경우는 있어도, 익스퍼트 상급이 최상급을 이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오늘 찾아오신 게 파스타르에게 도전한 것 때문에 오신 거예요?”

“얘는 무슨. 용건 없으면 오지 말라는 이야기니.”

“그건 아니지만요.”

입술을 내민 채 자신의 기분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에피니아를 보니 높은 신분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냥 황실이 심심해서 왔어.”

“그건··· 그렇겠네요.”

회귀 전에도 느꼈다. 나라의 수장이라면 일이 많아 심심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의 수장에 자식들이라면 어떨까.

높은 신분 탓에 주위는 격식을 차리는 이들뿐.

게다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안에 갇혀 사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까지 에피니아는 아카데미를 다녔잖아요.”

생각해보니 에피니아는 다른 왕족이나 황족과는 다르게 바깥에서 생활했다.

“생각해봐. 도박을 해본 사람은 왜 다시 도박을 하고 싶어 하겠어.”

그야, 끊을 수 없는 중독이 있으니까?

“한 번 맛본 쾌락은 잊기 힘든 법이야.”

비유도 황녀가 할 만한 비유는 아닌 것 같다. 그게 에피니아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가요. 그래서 이번에 찾아온 건 놀러온 거라고요?”

“응.”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메시아가 입을 열었다.

“황녀님··· 혹시 일을 내팽개치고 몰래 나오신 건 아니겠죠?”

메시아의 말과 동시에 굳어가는 에피니아의 표정.

“황녀님···?”

“에피니아···?”

“······.”

멋쩍게 웃는 에피니아.

“수하르, 아니 카시아스. 나 이만 가볼게.”

“······.”

아무래도 메시아의 말이 맞는 모양이다.

한숨을 내쉬는 메시아의 모습을 보니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나보다.

‘혹시···?’

에피니아가 내게 메시아를 보낸 이유가 메시아가 너무 유능해서는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메시아가 유능한 탓에 쉴 틈을 주지 않아 내게 떠넘기듯이 보낸 것 같다.

아마 정답이라고 생각된다.

“그럼, 조심히 가세요.”

“응, 다음에 봐.”

메시아가 변함없이 무표정으로 말했다.

“이 건은 아미스 님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아미스만큼은 안 돼··· 메시아, 제발 말하지 말아줘.”

누군진 모르겠지만 메시아의 상관에 에피니아를 보좌하는 인물 같았다.

“그렇게 말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아미스에겐 전달할테니.”

에피니아가 어깨를 늘어트린 채 조용히 여관을 떠났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메시아에게 물었다.

“아미스가 누구길래, 저 황녀님께서 저렇게 기가 죽으신 거야.”

“······.”

지금껏 표정을 보이지 않던 메시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마치 차가운 얼음장 같았다.

“어··· 그래.”

나는 조용히 말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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