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금방이라도 울 듯한 토너를 보고는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함정이라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저기, 토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
내가 토너에게 다가가며 오해를 풀려고 하였지만, 토너는 그런 나를 밀치며 말했다.
“제3자는 저리 꺼져. 이 사람, 아버지가 심어놓은 기사죠!”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내가 이렇게 간단하게 질 리가 없잖아요. 나는 천재인데!”
그러니까, 지금 토너는 나를 마타르나 후작의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가.
의뢰는 받았지만, 단연컨대 마타르나 후작과는 첫만남이다.
“저기 오해가···.”
다시 토너에게 접근해봤지만, 토너가 다시 나를 밀쳤다.
약간 화가 날려고 했다.
“아버지랑 이야기하고 있잖아! 거슬리니까, 나가있어.”
완전 아랫사람 대하듯 하고 있다.
퍽!
나도 모르게 토너의 뒤통수를 때려버렸다.
조심스레 마타르나 후작의 눈치를 봤지만, 상관없는 듯했다.
오히려 좋아하고 있었다.
“감히 날 때려?”
“제 말 좀 들으시죠. 전 마타르나 후작님의 기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뭔데!”
“용병이죠.”
옆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메시아가 말을 덫붙였다.
“지금은 카시아스라는 이름을 쓰고 계시지만, 한스 라이크 블랙 등급의 용병이십니다.”
순간 토너의 행동이 멈추었다.
“블랙 등급의 용병···?”
“메시아의 말대로입니다. 이렇게 당신과 대련하게 된 것은 우연이지만, 제가 블랙 용병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마타르나 후작님이 제게 의뢰를 넣었죠.”
“의뢰라니?”
나는 마타르나 후작의 쳐다보았다. 사실대로 말해도 상관없냐는 의미였다.
마타르나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당신을 압도적으로 이겨달라는 의뢰였죠.”
토너가 이 말이 사실이냐는 듯이 마타르나 후작을 쳐다보았다.
마타르나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니, 어짜피 전 당신을 압도적으로 이길 생각이었기 때문에 의뢰는 상관없었습니다.”
“뭐라고?”
토너가 당황하며 나를 쳐다봤다.
“당신은 대전 상대에 대한 예의가 전혀 없더군요.”
“내가···?”
설마 자신이 했던 행동이 무례했다는 인식조차 없던 것이었나.
“당신은 나와 대결하기 전에 제 힘을 얕잡아봤죠. 게다가 초대면인 상대에게 아랫사람 대하듯 하더군요.”
“흥, 그게 사실이라도 나는 귀족이다.”
팔짱을 낀 채 거만하게 나를 쳐다보는 토너.
“그렇군요···.”
버릇이 없어도 너무 없다.
나는 마타르나 후작을 쳐다보며 말했다.
“또 때려도 되겠습니까?”
“그걸로 자식 놈의 버릇이 고쳐진다면야.”
후작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토너의 뒤통수로 손을 휘둘렀다.
내 손을 막으려고 토너가 손을 들어봤지만, 내 손을 막을 순 없었다.
퍼억!
전보다 더 큰 소리의 타격음이 들렸다.
토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이 씨, 이 자식이!”
토너가 내게 달려들었지만, 나는 몸을 틀어 피한 뒤 다리를 걸었다.
요란스럽게 넘어지는 토너. 씩씩거리며 다시 일어났다.
“음··· 잠시 진정하시죠.”
“닥쳐!”
토너가 내게 다시 달려들었다.
나는 토너의 턱을 노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기절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의도는 보기 좋게 성공했다.
“으어억.”
턱을 정통으로 맞은 토너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토너가 쓰러진 직후 마타르나 후작이 내게 다가와 손을 맞잡았다.
“자네에게 의뢰를 하나 더 맡기고 싶다네!”
“예?”
“자주 이렇게 토너를 때려줬으면, 아니 혼내줬으면 하네!”
나는 당황했다.
그래도 자식이 맞는 건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마타르나 후작 때문이었다.
“그래도 좀···.”
아무리 버릇없다고 하더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인물을 자주 때리는 것은 마음에 걸린다.
“의뢰비는 내가 두둑이 챙겨주겠네.”
내 부업이 하나 생겼다.
시간 날 때마다 토너를 때려, 아니 혼내주기 말이다.
***
나는 메시아에게 편지를 건넸다.
“이거, 조르던 자유도시에 있는 페트릭에게 보내줘.”
“알겠습니다.”
“무슨 편지는 안 물어봐도 돼?”
사실 물어봐줬으면 했다.
“괜찮습니다.”
“그래···.”
페트릭에게 보내는 편지는 하르를 데리고 제국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한동안 이곳에 지내게 될 것 같으니 하르는 내가 데리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애당초 하르가 보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편지를 전하러 메시아가 여관을 나섰다.
“그나저나···.”
에피니아에 대해 생각했다.
정확히는 내가 회귀하기 전의 에피니아를 생각했다.
“죽었었지.”
갑작스레 미케네르 제국의 1황녀가 죽었다는 소식에 나 또한 장례를 찾아갔었다.
“아마 악마를 물리치진 못했을 거야.”
힌트에 대한 단서는 결국 못 찾고, 악마와 마주했을 거다.
하지만 계획한 것과 다르게 흘러가 결국 에피니아 죽게 되었을 것이다.
정확히는 악마에게 혼을 빼앗겼겠지.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나테아르덴 제국과 전쟁을 한 지?”
확실한 이유는 아니지만, 에피니아가 죽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미케네르 제국이 나테아르덴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1황녀의 죽음이 나테아르덴 제국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주의 내용이나 지금까지 들은 말로는 나테아르덴 제국과 전쟁을 할 이유는 전혀 없었지.”
에피니아의 죽음과 제국끼리의 전쟁은 상관 없는 걸까.
때마침 메시아가 여관으로 돌아왔다.
“저기 메시아.”
“네, 카시아스님.”
“궁금한 게 있는데 나테아르덴 제국과 미케네르 제국의 사이는 어때?”
내가 알기론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그래도 황실에 속해있는 메시아라면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평범합니다.”
“평범이라면?”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습니다.”
내가 생각한 그대로였다.
“진짜 뭐지?”
“무슨 고민이 있으신 겁니까?”
“아니야.”
훗날 나테아르덴 제국과 미케네르 제국이 전쟁을 할 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저 속에 담아둘 뿐이었다.
“토너는 어때?”
“토너님 말입니까?”
“응, 토너.”
토너는 이제 내 옆방에 지내게 되었다.
마타르나 후작의 강제로 내 옆에 붙여놓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 날 때마다 혹은 심심할 때마다 토너를 찾아가고 있었다.
오늘도 토너를 찾아가 스트레스를 풀고 왔다. 스트레스는 없지만서도.
옆방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으신 대로 많이 분해하고 계십니다.”
“그래?”
이유도 없이 맞으니까, 많이 분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옆방에 사람이 있는데 저렇게 시끄럽게 해서는 안 된다.
“잠깐 갔다 올게.”
“깔끔하게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토너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등의 뒤처리는 메시아가 맡아서 해주니 많이 번거로울 것이다.
“이번엔 한 방에 끝낼게.”
나는 내 방을 나가고 옆방을 찾았다.
똑똑.
예의바르게 노크를 우선했다.
방금 전까지 시끄럽던 방 안이 조용해졌다.
“어라? 없나? 방금 전까지 소리가 들렸는데?”
나는 문에 귀를 가져다댔다.
소드익스퍼트 최상급에 알맞게 신체의 감각 또한 뛰어났다. 청각 또한 마찬가지다.
방 안에서 옅은 숨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씨익 하고 웃었다.
“있는 거 같은데?”
나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옆방의 여벌열쇠였다.
문에 열쇠를 꽂고 돌렸다.
“들어갑니다!”
문을 연 순간 토너가 내게 달려들었지만 나는 곧장 토너의 턱에 주먹을 휘둘렀다.
“악!”
턱을 맞았지만 토너는 기절하지 않았다.
확실히 천재는 천재였다.
“그 와중에 얼굴을 들어 기절은 피했다고? 대단하네.”
“흥, 맨날 턱만 노리는데 내가 언제까지 당해줄 거 같아!”
하지만 나는 곧장 토너에게 달려들어 무릎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뒤로 넘어진 토너.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토너가 손으로 코를 닦더니 화들짝 놀란다.
“코··· 코피!”
“뭐, 한두 번 흘려보는 것도 아니고.”
“이 자식이 정말!”
“자꾸 말을 놓네.”
약간의 감정을 실어 토너의 뺨을 후렸다.
마나도 약간 담은 탓인지 때린 방향으로 토너가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토너는 기절했다. 토너의 뺨엔 내 손바닥 자국이 남아있었다.
“언제쯤 정신 차릴래.”
사실 이 의뢰를 받았을 당시까지만 해도 토너의 정신교육은 쉬울 거라 생각했다.
마치 검성이 그랬던 것처럼 몇 번 때리면 다 정신교육이 되니 말이다.
하지만 토너는 천재답게 끈질겼다.
“이제 지겨울 지경이다.”
몇 번을 맞더라도 도전해온다.
게다가 이대로면 무리라고 판단해 밤중에 나를 습격하기까지 했다.
“이 녀석을 어떻게 한담.”
머리를 긁적였다.
문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문 쪽을 보았다.
메시아였다.
“······.”
메시아는 한숨만 내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제 서야 방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건을 널브러져 있고, 몇 개는 파손되어 있다.
게다가 토너의 얼굴마저 엉망진창이다.
“먼저 방에 들어가 계십쇼. 뒤처리를 하고 가겠습니다.”
“하하, 깔끔하게 처리하려고 했는데···.”
메시아가 우선 토너에게 다가갔다.
나는 조용히 방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퍽.
무언가 맞는 소리가 토너와 메시아 쪽에서 들려왔다.
뒤돌아 확인해보았지만 메시아는 토너의 주위부터 정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토너의 고개가 전과 다르게 돌아가 있다는 것을.
‘메시아··· 역시 무서운 녀석이야.’
나는 못 본 채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
조르던 자유도시, 페트릭은 편지를 뜯어 확인했다.
“응? 뭐야, 제국에게서 받은 의뢰가 콜로세움의 검투사가 돼라는 거였나?”
편지에는 수하르가 제국의 콜로세움에 검투사가 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하르를 데려오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스승님··· 또 이름을 바꿨네. 카시아스는 또 뭐람.”
한숨을 내쉬는 페트릭.
“하르야!”
페트릭의 부름에 하르가 달려왔다.
하르를 품에 안고 페트릭이 말했다.
“네 주인님한테 가자.”
그러자 발버둥치는 하르였다.
“왜 싫어?”
“끼잉, 끼이잉.”
고개를 절래 흔드는 하르. 싫은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럼, 왜? 설마 귀찮아서?”
“컹!”
그게 맞다는 듯 하르가 짖었다.
페트릭이 이마를 짚곤 한숨을 내쉬었다.
“평상시엔 활발하더니, 이런건 귀찮다는 거야?”
“컹컹!”
그것과는 다르다고 말하는 하르였다.
“그래도 스승님이 너 데리고 오라니까, 가야한다.”
하르가 꼬리를 내리며 싫은 티를 내기 시작했다.
“에휴··· 그럼, 천천히 출발하자. 어차피 좀 늦어도 괜찮을 거야.”
“왈!”
그러자 방방 뛰며 좋아하는 하르. 방정맞다는 게 어울렸다.
“진짜, 늑대라기보단 강아지 같다니까.”
방정맞은 하르를 보며 페트릭이 미소를 지었다.
***
나는 페트릭에게 온 편지의 답장을 확인했다.
“천천히 오겠다라.”
뭐 상관은 없었다.
그보다 문제는 토너를 상대한 이후로 경기가 없었다.
“수준에 맞는 상대를 찾아주겠다더니.”
소식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론 내 상대는 챔피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소드익스퍼트 최상급이 흔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난 숙달의 경지.
벽 하나만 넘으면 소드마스터다.
최상급을 데리고 와도 내가 이길 자신이 있었다.
“에휴···.”
방의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고 잠시 명상을 하던 중에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메시아인가?”
경기가 잡혔다는 걸 말해주러 오는 걸까.
그런데 다급해 보이는 왜일까.
내 예상대로 소리의 정체는 메시아였다.
다만 문을 열고 들어온 메시아는 평상시의 무표정이 아니라 잔뜩 불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에피니아 황녀님이 납치되셨습니다!”
“뭐?”
나 또한 침대에서 다급하게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