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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55화 (55/150)

#55화.

메시아가 들고 온 소식인 충격적이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다시 한번 말해봐!”

“에피니아 황녀님이 납치되셨습니다.”

에피니아가 납치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보다 회귀 전에도 과연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범인이 누구야?”

“모르겠습니다···.”

설마 나테아르덴 제국과의 전쟁한 이유가 에피니아를 납치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시기가 너무 이르다.

적어도 에피니아는 악마와의 게임이 끝나고 죽었을 것이다.

“일단 가자!”

“네, 마지막에 목격된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나는 메시아를 뒤따라 달렸다.

메시아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은 으슥한 골목이었다.

“이곳이··· 황녀가 납치된 곳이라고?”

“네··· 황녀께서 감시역을 따돌리시려고 몰래 골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음? 그럼 납치된 게 아니라 감시역을 따돌린 게 아닌가.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메시아의 다음 말을 통해 사라졌다.

“황녀님이 골목에 들어가는 순간, 골목에서 황녀님의 단말마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급히 감시역이 골목에 들어가니 이것만 남긴 채 황녀님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메시아의 손에 들린 것을 확인했다.

브로치였다. 내 기억으로도 이것은 황녀가 착용하던 브로치였다.

“혹시 다급히 도망치다 흘린 게 아닐까.”

그럴 가능성도 있다. 단말마도 감시역이 잘못 들었던가.

“아닙니다. 이것은 황녀님의 어머님께서 남기신 유품입니다. 절대로 흘릴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골목 안을 살폈다.

그런데 묘하게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께름칙한 기운.

“어···?”

루기 마을에서 마주했던 마족이 뿜어내던 기운이 틀림없다. 마족이 사용하는 마나. 마기다.

“어째서 이곳에 마기가···?”

“마기라니. 납치를 한 범인이 마족이라는 겁니까?”

그렇다면 노블리스의 짓인가.

아니라면 혹시···.

‘에피니아와 게임을 하는 악마의 짓인가!’

그런데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좀 위험할 수 있겠어. 메시아, 너는 이곳에서 기다려.”

“······.”

“상대가 진짜 마족과 연관되어 있다면 넌 방해만 될 뿐이야. 황녀님은 내가 구해올테니까 걱정 말고 기다려.”

“알겠습니다.”

일단 나는 남겨진 마기를 따라갔다.

마기는 미케네르 제국의 바깥까지 이어졌다.

“산···?”

루기 마을에서도 산속에 마족이 있었다. 더욱 의심이 갔다.

그런데 갑자기 마족이 이런 짓을 왜하는 걸까.

“이곳인가···.”

정확히 마기가 동굴의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천천히 주위를 경계하며 동굴의 안으로 향했다.

“에피니아!”

얼마가지 않아 정신을 잃은 채 묶여있는 에피니아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순간 께름칙한 마기가 나를 덥쳐왔다.

나는 에피니아 근처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나를 덮쳐 온 마기의 정체를 확인했다.

“당신은···.”

모르는 사람이다. 복장을 보니 평범한 산적과 같았다.

점점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눈이 검어졌다.

“왜 이런 짓을 한 겁니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치를 하던 중에 나를 습격했던 산적이 말했다.

-가증스러운 방해꾼이 드디어 나타나주셨군.

께름칙한 목소리. 산적의 입에서 나온 것 같지 않았다.

산적의 표정은 무표정. 분명 무언가 빙의가 된 듯했다.

“네놈이 에피니아와 게임을 하고 있는 악마냐!”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그러자 산적의 입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마치 웃는 듯한 목소리. 아마 웃는 것이겠지.

-네놈이야말로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거지?

“뭘 말하는 거지?”

-아니, 질문이 잘못됐군. 네놈의 정체가 뭐지?

내겐 정체라고 말할 것이 없다.

“그게 무슨 말이지?”

-네놈의 존재는 잘못되었다.

“내 존재가?”

-모든 것이 적힌 책엔 네놈이 에피니아를 만나는 일 따윈 없었다.

설마 보상으로 준다는 미래를 알려준다는 책인가.

“내가 에피니아르 만나는 일 따윈 없었다고?”

-어떤 수작을 부린 거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회귀 전엔 나와 에피니아의 접점은 없었다.

하지만 회귀 후엔 에피니아와 접점이 생겼다.

그리고 미래가 적힌 책엔 회귀 전의 미래가 적혀있는 것이겠지.

“어떻게 수작을 부렸을까···?”

분명 그 미래가 적힌 책엔 에피니아는 결국 게임에서 패배하는 미래가 적혀져 있겠지.

그래서 내가 회귀하기 전까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네놈의 존재는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게다가··· 그 힘··· 가증스러운 그 힘···.

내가 가진 염동력 또한 눈치챈 모양이다.

“많이 당황했나보구나.”

-실수했군. 늦어버렸어. 이렇게 빙의를 하고 난 뒤에 그 가증스러운 힘을 알아차렸으니.

내가 에피니아 앞에서는 염동력을 쓴 적이 없으니까. 악마가 내 힘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알고 있겠지?”

아무리 상대가 많아도 나를 이길 수 없을 거다.

지금까지 저 악마가 에피니아를 통해 나를 지켜봤을 거고, 보기만 했을 때는 그저 소드익스퍼트 최상급의 용병이었으니까.

-흥, 그건 해봐야 아는 법이지.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이 전부 멈추었다. 정확히는 움직이지 못하게 내가 염동력으로 묶어버렸다.

“이럼, 어떻게 할 거지?”

-네놈··· 얼굴 기억했다.

“기억이고 뭐고, 너는 관여해서는 안되는 게임에 관여했다.”

-······.

“악마와의 계약이 이렇게 허술한 거였나?”

악마와의 계약은 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 제약은 악마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악마는 계약을 위반했다. 빙의까지 해가며 방해를 했으니까.

“자, 어떻게 되는 거지? 게임이 끝나는 건가?”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나를 찾을 때까진. 하지만 한 가지 에피니아에게 걸린 제약을 풀도록 하지.

산적의 입에서 마기가 뿜어졌다.

마기는 곧장 에피니아의 등으로 향해졌다.

-낙인은 없앴다. 더 이상 내가 지켜볼 방법도 사라졌지. 하지만···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라.

점점 목소리가 옅어지더니 이내 사람들의 눈 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장 쓰러지는 사람들.

나는 에피니아를 흔들어 깨웠다.

“에피니아, 에피니아. 괜찮아요?”

“으응···?”

눈을 비비며 에피니아가 깨어났다.

“어디 몸에 이상은 없죠?”

“어···? 무슨 일 있었어?”

에피니아가 자리에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본 에피니아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 분명···? 그보다 저기 쓰러져있는 사람들은 또 뭐고?”

“제가 설명해드릴게요.”

갑자기 에피니아가 손뼉을 마주쳤다.

“생각해보니···.”

에피니아는 자신이 납치당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납치당해주었다는 것이다.

“낙인에 담긴 저주가 그저 표식뿐만이 아니었네요.”

“그러게···.”

무언가 골목은 자신을 불러들였다고 에피니아가 말했다.

그리고 골목에 들어선 순간 눈이 검은 자와 마주하고, 갑자기 몸에 힘이 빠져 쓰러졌다고 하였다.

“이젠 낙인 따위 남아있지 않아요.”

“뭐라고?”

에피니아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등을 확인해보려 했지만 무리에 가까웠다.

잠시 몸을 움직이던 에피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무기력했는데 왠지 지금은 무기력하지가 않네. 낙인이 사라진 거 같기도 해.”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래요.”

나는 에피니아에게 모든걸 이야기해주었다.

물론 미래가 적혀있는 책과 지금의 미래는 다르다는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악마가 빙의해서 나타나 내가 에피니아에게 협력하려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악마의 계략은 실패로 돌아갔고, 부정한 방법이기에 그 대가로 저주가 담긴 낙인은 사라졌다는 것.

“그게 진짜요?”

“네, 한 치의 거짓도 없어요.”

“잠깐만···.”

잠시 말끝을 흐리는 에피니아.

“왜 네가 나한테 협력하려는 것을 막으려는 거지?”

“아마도 힌트를 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 마도구가 제게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닐까요?”

“음···.”

나 역시 생각에 잠겼다.

그 반응을 보면 힌트는 진실일 것이다. 근데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게 나 또한 있었다.

무엇이 이상한 걸까.

에피니아가 내게 말했다.

“내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어째서 게임의 룰까지 어겨가면서 너를 처리하려고 했던 거지.”

그야 나는 미래가 적힌 책엔 없는 변수니까, 라고 생각했다.

“말했잖아요, 제게 힌트를 해석할 수 있는 마도구가 있다고.”

“잠깐 생각해봐, 악마가 힌트를 준 것도 이상하긴 한데 그 힌트가 진짜라는 거잖아.”

“그렇겠죠, 이 반응을 본다면?”

“그 힌트가 진짜인데 내가 그걸 해석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던 걸까.”

에피니아의 말을 들으니 무엇이 이상한지 찾아냈다.

힌트를 준 이상, 악마는 에피니아가 힌트를 해석했을 가능성도 생각했을 거다.

“조금 과한 반응이긴 하네요.”

미래가 적힌 책엔 나오지 않는, 변수 같은 인물이 나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노린다는 것은 이상했다. 힌트를 해석할 수 있는 마도구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것도 손해까지 봐가면서 말이다.

“아···!”

한 가지 가능성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미 제가 게임에서 이길 방법을 알고 있다면···.”

“너 혹시 악마가 어디에 숨은 건지 아는 거니?”

“아니요. 그렇지만···.”

에이션트 스네이크를 잡으며 얻었던 책.

에이션트 스네이크가 두 마리가 함께 무언가를 지킨다는 건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마족의 명령이 있던 것이면.

“저는 악마는 몬스터를 부릴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지.”

“전에 무언가를 지키고 있는 에이션트 스네이크를 잡은 적이 있어요.”

“무언가?”

“책이었어요.”

그 책이 에피니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 감이 말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 책이 악마가 있는 위치를 말하는 책이라고.

“그 책은 어딨는 거야?”

“조르던 자유도시에 있는 제 집에 두고 나왔죠.”

“혹시 그 책··· 읽어봤어?”

“고대문자라 읽진 못했어요.”

에피니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고대문자라고 그러니까, 왠지 신빙성이 있네.”

“전 왠지 그 책이 악마와 연관되어 있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회귀 전에 에피니아가 원하던 그 책을 나테아르덴 제국에서 가져간 것일까.

벌어져야 할 일이 벌어지지 않았기에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에피니아가 게임에서 이기고, 미래가 적힌 책을 얻는다면···.

‘잠깐만 그 미래는 회귀 전이잖아. 게다가 미래가 바뀌어버려서 별로 쓸모없는 책일텐데.’

그저 회귀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 수 있는 책일 뿐이다.

‘만약 에피니아가 게임에 이기고, 미래가 적힌 책을 얻게 된다면 회귀에 대해서 말하는 게 맞겠네. 그 책엔 내가 회귀 전의 이야기가 적혀있을테니까.’

변명할 게 없다. 그때는 단념하고 솔직하게 에피니아에게 말하도록 하자.

그리고 회귀 전에 에피니아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확인하고 말이다.

“에피니아, 이제 슬슬 돌아가죠.”

“저 사람들은?”

에피니아가 널브러져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아무런 부상도 없을테니, 놔두면 알아서 돌아갈 거예요.”

“그래···?”

“그보다 메시아가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

“메시아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에피니아의 표정. 마치 메시아에 한해서 그럴 일은 없다는 듯 말이다.

“메시아가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처음 봤어요.”

“진짜···? 믿기지가 않네.”

에피니아와 나는 천천히 메시아가 있을 여관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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