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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56화 (56/150)

#56화.

여관이 눈에 들어올 무렵, 여관의 밖에서 메시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메시아!”

메시아는 다급하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에피니아에게 다가간 메시아가 에피니아의 몸 곳곳을 확인했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응. 아무렇지도 않아.”

“후··· 다행이군요.”

메시아가 아무 말 없이 에피니아를 쳐다보았다.

“앞으로 호위를 대동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이번엔 악마가 한 짓이라 어쩔 수 없었어. 내가 소드익스퍼트 상급인데 무슨 호위가 필요있겠어.”

고개를 젓는 메시아.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아미스님에게 말해둘테니 그렇게 아세요.”

“에···.”

“앞으로 이렇게 몰래 나오는 행동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나도 옆에서 거들었다.

“저도 메시아의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신분이라는 게 있잖아요.”

“알았어···.”

혹시라도 모르니 이번엔 내가 에피니아를 황실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에피니아를 황실로 데려다주는 길에 에피니아는 메시아의 잔소리를 끊임없이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여관으로 돌아가서 페트릭에게 다시 편지를 썼다.

‘운이 좋았네. 천천히 온다고 했으니까, 아직 출발은 안 했겠지.’

나는 페트릭에게 제국으로 올 때 에이션트 스네이크를 잡고 얻은 책을 가지오라는 부탁을 편지에 적었다.

***

메시아가 나를 찾아왔다.

“다음 상대가 정해졌습니다.”

드디어 경기가 잡혔다.

“상대가 누군데?”

“검투사 랭킹 7위의 파야입니다. 경지는 최근에 소드익스퍼트 최상급으로 올랐다는 게 판명 났습니다.”

랭킹 7위라니.

갑자기 상대의 랭킹이 많이 올랐다.

“걸맞은 상대를 찾아준다고는 들었지만. 확 올랐네.”

“카시아스님의 경기가 없는 동안 토너가 많은 경기를 치렀고,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습니다.”

내 상대의 실력이 많이 오른 이유를 알아차렸다.

토너가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뽐내는 걸로 자신의 경지를 증명했을 것이다.

그런 토너를 내가 단칼에 이겨버렸다.

“토너 때문인가. 아니, 덕분인가.”

앞전 두 경기를 치렀지만, 그렇다할 재미가 없었다.

그저 관중의 환호성을 듣는 게 짜릿했을 뿐.

경기, 그 자체에서의 재미는 없었다.

“역시 비등한 사람이랑 해야 내 실력도 오르는 거겠지.”

물론 비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음 대전 상대인 파야는 최근에 최상급에 올랐으니 숙달의 경지에 오른 나와 비교했을 때 동등하진 않다.

하지만 최상급인 만큼 나에게 재미를 선사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 파야라는 사람은 무슨 무기를 써?”

“채찍이라고 합니다.”

채찍?

흔한 무기는 아니다.

“파야는 용병 출신으로 다이아 용병까지 갔던 인물입니다.”

같은 용병 출신이라고 하니 정감이 갔다.

“게다가 카시아스님과 같은 조르던 자유도시에서 용병활동을 하셨습니다.”

“뭐···?”

이건 놀랐다.

난 단 한 번도 파야 같은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용병 일에 회의감을 느껴 검투사가 된 인물이라고 합니다.”

“잠깐만···?”

파야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비슷한 사람은 본 적이 있다.

다만 파야와 같이 채찍을 쓰는 사람.

아나였다.

‘아나는 페트릭과 함께 나를 상대한 인물이었지.’

꽤나 까다로웠던 걸로 기억한다.

“혹시 아나라고 알아?”

“음···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메시아가 손에 든 종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에 아나에 관해서는 안 적혀 있지?”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물이겠다.

일단 나는 훈련장을 향하기로 했다.

상대가 채찍을 사용한다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하는지 생각해내기 위해서다.

***

사회자가 나와 파야를 두고 소개를 시작했다. 내 소개가 끝나고, 파야에 대한 소개로 넘어갔다.

“검투사 랭킹 7위에 위치한 파야입니다.”

간결한 소개.

하지만 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것만으로도 파야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파야를 향해 말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저도 한 수 부탁드려요.”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내 예상과 다르게 파야는 채찍을 휘두르며 내게 접근했다.

채찍을 끊을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채찍은 질겼다.

끊어지지 않는 채찍이 내 검을 휘감으려 했다.

“읏차!”

나는 뒤로 빠지며 검이 휘감아지는 걸 막았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달려드는 파야의 채찍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곤란하네···.’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채찍이 끊어지질 않았다.

막으려고 하면 채찍이 검을 휘감거나 휘어지며 나를 노려왔다.

‘그보다 반대 손이 신경 쓰여서 뭘 하질 못하겠네.’

한 손에 채찍을 감고, 다른 한 손으로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그 덕에 짧아진 채찍으로 근접전을 유도하고 있었다.

“되게 테크니컬 하시네요.”

몇 번의 공방, 정확히는 내가 채찍을 피하기만 했다.

채찍의 길이가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착각을 했다.

그 이유는 채찍을 감은 손에 있었다.

“풀거나 조이면서 채찍의 길이를 조절하시다니. 대단하시네요.”

“금방 알아차리시네요.”

빈틈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찾을 수가 없다. 채찍의 속도가 정신없을 정도로 빨랐다.

아예 거리를 벌리고자 마나를 담아 곧바로 비기를 파야에게 날렸다.

파야는 내가 날린 마나덩어리를 채찍으로 휘감더니 하늘로 날려버렸다.

나는 그 사이에 파야와의 거리를 벌렸다.

“후··· 힘드네요.”

잠시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파야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조르던 자유도시에서 활동하셨던데요.”

“네, 맞습니다. 파야, 당신도 조르던 자유도시에서 활동했다고 들었습니다.”

메시아가 내게 가져다준 정보엔 그렇게 적혀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파야.

“그렇다면 혹시 아나라는 아이를 아시나요?”

“네···?”

알고 있다.

“반응을 보니 아시는군요. 그 아이는 잘 지내나요?”

“네. 그런데 무슨 사이신가요?”

“제가 살짝 가르쳐준 아이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경기가 끝나고 이야기하죠.”

나는 자세를 취했다.

저 채찍이 문제다. 다시금 내게 근접전을 위해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예상대로 파야는 채찍을 휘두르며 내게 접근했다.

날아오는 채찍을 검으로 막아냈다. 검을 휘감으며 내 쪽으로 오는 채찍의 끝.

하지만 멈추었다.

파야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채찍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내 검과 꽉 달라붙어있다.

“이게 무슨···?”

무언가 벽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져 나간 채찍. 내 검과 떨어지지 않는 채찍.

하지만 나는 염동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지금껏 사용했던 염동력을 풀어냈다.

‘이건 염동력을 쓴 건 아니지.’

염동력을 푼 탓에 검을 휘두르는 순간 퇴마검의 실들이 뿜어져나왔다.

그리고 채찍과 실이 만나는 순간 엉켜버렸다.

나는 검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갑니다!”

끝까지 채찍을 손에서 놓지 않은 파야는 허공에 뜬 채로 내 쪽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나는 검을 버리고 주먹을 쥐었다.

“정권지르기!”

호기롭게 기술명 외쳤다. 내 주먹은 파야의 명치를 파고들었고, 파야는 몸을 구부리며 쓰러졌다.

옆에 있던 사회자가 경기의 끝을 알렸다.

세 번째 승리가 내게 찾아왔다.

‘그런데 열 번의 경기를 치루기도 전에 챔피언이랑 붙겠는데?’

랭킹 7위를 이겼으니 챔피언을 제외하면 다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

일단은 이런 생각을 접었다.

사회자가 내 승리를 알렸고, 나는 관중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승리를 만끽했다.

그 후 대기실에서 쉬고 있던 나를 파야가 찾아왔다.

“대단한 실력자시네요.”

“하하, 뭘요.”

“역시 블랙 등급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군요. 게다가 뭔가 숨겨둔 한 수가 있을 거 같고요.”

정답이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해줄 생각은 없지만.

“그나저나 아나를 알고 있다고 하셨죠?”

“네, 제가 다이아 용병 승급을 할 때 제 상대가 페트릭과 아나였습니다.”

생긋 웃는 파야.

나이와는 다르게 젊은 처녀와도 같은 미소다.

“아나··· 그리고 페트릭. 여전히 사이가 나쁜가요?”

“네···?”

“페트릭은 모든 것에 무관심한 아이고, 그런 페트릭을 아나가 되게 신경 쓰고 있거든요.”

“그런데 왜 사이가 나쁜 건가요?”

“원래 신경을 쓰면 잔소리가 많아지잖아요. 그래서 아나도 페트릭에게 어렸을 때부터 계속 잔소리를 해댔거든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내 생각이지만, 우연하게 페트릭이 아나를 만난 건 아나의 계획이었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군요.”

“제가 페트릭의 양부와 친구라 아나에게도 페트릭을 신경 쓰라고 했거든요.”

페트릭의 양부?

혹시···.

“페트릭의 양부면 오드 말입니까?”

“어, 오드를 아시나요?”

“페트릭에게 들었습니다.”

페트릭을 위기에서 구해준 남자. 골드 등급 용병임에도 오우거를 단신으로 해치웠다.

“네? 페트릭이요?”

“네.”

“그럴 리가··· 페트릭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싫어할텐데.”

내가 경험한 페트릭과 파야가 경험한 페트릭이 다르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요? 전 페트릭이 직접 이야기해줬는데.”

“페트릭, 그 아이도 많이 바뀌었나보네요.”

“그렇겠죠? 제가 본 페트릭은 약간은 비밀이 있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밝아보였으니.”

파야가 고개를 몇 차례 끄덕였다.

“역시 사람은 바뀌는 법이네요.”

“그리고 페트릭은 지금 제 제자입니다.”

“네···?”

잠시 놀라는 파야였지만 이내 수긍했다.

“그 정도 실력자시면 제자를 둘만 하네요. 그런데 이거 참 우연이네요. 페트릭을 제자로 받아들이시다니.”

“하하···.”

이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수도 있겠다.

“혹시 오드가 어디로 사라진지 아시나요?”

“그건 저도 잘··· 갑자기 떠나버렸거든요.”

“네···?”

“달랑 편지 하나만 두고, 떠나버렸죠.”

편지라니 무엇을 적고 갔을까.

“페트릭에게 뭐라 남긴 말도 없었나요?”

“그런 게 적혀있었으면 제가 페트릭에게 전해줬죠.”

맞는 말이다.

“뭐 하도 이상한 내용이 적혀있어서 페트릭에게 말해주기도 애매하더군요.”

이상한 내용이라니 뭘까.

“혹시 편지의 내용을 알 수 있을까요?”

“뒤늦게 사춘기라도 온 것인지 낯부끄러운 말을 하더군요.”

낯부끄러운 말이라니.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오겠다고 적었더라니까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편지의 초반 부분에서 알 수 없는 말을 하더니, 마지막에 그렇게 적혀있었어요. 보고 오겠다니까, 언젠간 오겠죠.”

나 역시 이해할 수는 없는 말이었다.

“확실히 페트릭에게 말해주기 애매하군요.”

두루뭉술한 말뿐이었으니.

“그래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뒤통수나 한 대 때려줄려고요.”

“하하. 왜요? 갑자기 떠난 것 때문에요?”

“아니, 한창 클 나이의 꼬마 녀석을 두고 간 것에 대한 복수죠. 철딱서니 없이.”

“재밌는 이야기네요.”

파야를 통해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새롭게 인연이 이어졌다.

“혹시 다시 붙게 된다면 이번엔 이렇게 허무하게 지진 않을 겁니다.”

“네. 기대할게요.”

그렇게 파야는 떠나고, 나는 여관으로 향했다.

별다른 말없이 떠난 오드의 근황이 궁금했지만, 언젠가 마주치게 될 거라는 근거 없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말이야.’

여관에 도착하니, 메시아가 나를 마중 나와 주었다.

나는 그런 메시아를 미소로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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