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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57화 (57/150)

#57화.

내가 검투사 등록을 했을 당시에 접수처를 맡았던 폴테인이라는 사람이 내게 찾아왔다.

“자그마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긴 거죠?”

앞으로 경기를 잡는데 더 높은 랭킹만 상대하면서 챔피언에게 도전하기는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랭킹 7위에 등극하신 이상 챔피언을 제외하면 다섯 분밖에 없습니다.”

“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일곱 경기를 치루시면 챔피언에게 도전할 자격이 생기십니다. 그런데 당신보다 윗줄의 사람은 여섯 분이죠.”

그렇다.

“그래서 말입니다.”

잠시 말에 뜸을 들이는 폴테인.

“이벤트 경기에 참가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이벤트 경기라고 하면.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과 같은 거 말입니까?”

“네, 그리고 이벤트 경기에서 승패는 크게 따지지는 않습니다. 지시더라도 경기수는 차감된다는 소리입니다.”

그건 쓸데없는 소리였다. 이벤트 경기라고 하여도 나는 질 생각이 없다.

“좋습니다. 저도 이벤트 경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두 경기를 이벤트 경기로 대체하겠습니다.”

두 경기라니.

오우거는 무조건 상대할 거 같다. 파스퇴르 역시 오우거를 상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트롤은 아니다. 파스퇴르 역시 트롤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에게 트롤을 상대시킬 것은 아닐 거다.

“혹시 이벤트 경기는 뭐를 상대해야하나요?”

“마지막 경기에서 오우거와 이벤트 경기가 있고, 그 전에 다수를 상대하는 이벤트 경기가 있을 예정입니다.”

다수를 상대?

그렇다면···.

“상대는 누가 될까요?”

“아무래도 다수를 상대하는 것은 복수전의 양상으로 갈 거 같습니다.”

복수전이라면.

“당신에게 패배했던 검투사들과의 재전입니다. 물론 파야 씨 같은 고수는 참여하지 않죠. 밸런스가 맞지 않을테니 말이죠.”

“오호···.”

재밌겠다.

지금까지 내게 패배한 사람이라면 토너와 드렉스, 파야다.

그런데 파야가 빠진다면 토너와 드렉스가 되겠다.

그 둘이라면.

“아무래도 밸런스가 맞지 않겠는데요?”

“네···?”

“파야도 끼는 게 밸런스에 맞지 않을까요? 토너와 드렉스는 제가 너무나도 쉽게 이겨서.”

적어도 파야가 있어야 재밌는 경기가 될 것이다.

“흠··· 그렇다면 따로 건의하겠습니다. 최대 다섯 분을 상대하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네.”

기대가 된다.

이야기를 마친 폴테인은 여관을 떠났다. 그리고 메시아가 들어왔다.

“저기,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누구?”

“페트릭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페트릭이 왔다.

나는 메시아에게 어서 이곳으로 안내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윽고 페트릭이 품 안에 하르를 안고 내 방으로 찾아왔다.

“스승님, 오랜만입니다!”

“컹!”

“정말 오랜만이네.”

오랜만에 보는 페트릭은 변화가 없었다.

변화가 있던 것은 하르였다.

페트릭이 품에 안는 걸 버거워할 정도로 하르가 성장해있었다.

“페트릭··· 그런데 하르가 좀 이상한데?”

갑자기 성장한건 그렇다 쳐도 이마에 무언가 나 있었다.

마치 뿔은빛늑대처럼 말이다.

페트릭이 내게 하르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아무래도 약으로 먹었던 뿔은빛늑대의 뿔이 하르에게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거야?”

뿔은빛늑대는 은빛늑대의 상위종이다.

하지만 상위종의 뿔을 달여먹는다고 한들 상위종이 되진 않는다.

“몬스터를 연구하는 학자한테도 알아봤는데 그럴 수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럴 수도 있다고?”

“네, 애당초 뿔은빛늑대는 성장하면서 뿔이 돋는 거라 하르의 부모가 원래 뿔은빛늑대일 가능성도 있고요.”

그건 확실히 아니다. 이런 말은 이상하지만 하르의 부모는 내가 사냥했다.

그때의 하르의 부모는 평범한 은빛늑대였다.

“하르의 부모는 그냥 은빛늑대야, 이건 확실해.”

몬스터의 세계에서 입양이라는 건 들어본 적이 없으니 확실했다.

“그렇다면 그저 하르가 개체값이 높다는 거겠네요.”

개체값?

처음 듣는 단어였다.

“개체값이라니?”

“저도 몰랐는데 몬스터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쓰는 말이라네요.”

“그게 뭔데.”

“같은 오우거라도 키랑 무게가 다른 것처럼 좀 더 우월한 오우거를 개체값이 높다고 표현한다네요.”

이해는 된다.

하지만 하르의 개체값이 높은 거랑 종이 달라진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쉽게 말해서, 진화한 거래요.”

“진화···?”

쉽게 와닿는 말이 아니다.

기나긴 시간을 지나며 환경에 적응한다는 말이 여기서 왜 나오는 걸까.

“쉽게 말하면 시조래요.”

시조?

“본래라면 긴 시간이 지나면서 하르의 유전자를 가지는 녀석들은 훗날 새로운 은빛늑대의 종으로 될 예정이었다나 뭐래나.”

머리 아픈 이야기다.

페트릭이 말한 대로라면.

“그럼, 하르는 뿔은빛늑대랑은 또 다른 거네?”

“그럴 걸요?”

이게 자연의 신비라는 걸까.

“뭐 결국엔 뿔은빛늑대의 뿔 안에 담긴 마나를 받아들이고 급격히 바뀐 거래요.”

“음···.”

뭐 상관없다.

어차피 여전히 하르는 귀여웠으니 말이다.

“하르!”

내가 하르를 부르자 하르가 페트릭의 품 안에서 내려와 어기적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하르의 모습은 그렇게 나를 반기는 것 같진 않았다.

“야, 오랜만에 주인을 보는데 꼬리를 힘차게 흔들어봐.”

그러자 전보다는 꼬리를 흔드는 하르였지만, 여전히 느렸다.

“야! 에휴··· 됐다. 너를 두고 간 내 잘못이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짚었다.

그래도 하르는 내게 다가와주긴 했다.

“그래, 이거라도 고맙다!”

하르를 쓰다듬으며 페트릭을 바라보았다.

“내가 말한 책은 가져왔어?”

“네. 그런데··· 이 책 고대문자네요.”

딱히 페트릭에게 알려준 적이 없던 터라 책의 정체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이리 줘봐.”

책의 상태를 확인했다.

처음 발견했을 때와 같은 상태였다.

“음···.”

고대문자를 읽을 수는 없지만, 발견했을 때와 다르게 한 장씩 넘기며 확인했다.

그리고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마치 마법진과 같은 모양. 마법진의 중앙에는 익숙한 문양이 보였다.

‘에피니아의 낙인과 모양이 같다!’

아무래도 정답인 모양이다.

악마는 제각각 문양을 가진다고 들었다. 그것은 악마의 신분을 보장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건 혹시···.’

소환마법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기론 악마를 소환할 때는 소환마법진 가운데에 부르고 싶은 악마의 문양을 그리면 된다.

만약 이게 소환마법진이라면.

‘악마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악마를 불러내는 거구나.’

생각을 정리를 마치고, 메시아를 불렀다.

“메시아, 지금 당장 에피···.”

생각해보니 이 의뢰는 비밀이었다.

아무리 페트릭이라도 비밀은 지켜야겠지.

잠시 페트릭보고 나가있으라 말했다.

그리고 메시아에게 이어 말했다.

“에피니아에게 연락해줘. 의뢰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고.”

“네, 알겠습니다.”

무표정을 유지하던 메시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메시아가 떠나고, 나는 책을 좀 더 살펴보았다.

“으음···.”

악마를 소환하는 마법진이라.

루기 마을에서의 방식으로 소환하는 거면 어쩌지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겠지.’

해석이 불가하지만, 그런 내용은 아닐 것이라 짐작했다.

‘애당초 루기 마을에선 마법진 같은 건 없었어.’

마법사의 존재도 없었다.

마법진은 마법사의 존재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루기 마을에선 방식이 제사에 더 가까운 거 같았다.

‘쓸데없는 걱정이길 바라야지.’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에 에피니아가 도착했다.

나는 에피니아에게 책에 그려진 마법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악마에 문양과 일치하다는 것을 확인한 에피니아도 많이 기뻐했다.

“한시라도 빨리 해석할 수 있는 마도구가 필요하겠네.”

“그렇겠네요.”

콜로세움의 경기도 잡히는 간격이 길어졌다.

충분히 칼데르트가를 다녀와도 될 법했다.

마도구를 가져오는데 미룰 필요도 없다고 느껴졌다.

“이제 칼데르트가를 방문할까 해요.”

“고마워!”

에피니아가 내 손을 잡으며 감사를 표했다.

“널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야!”

하긴 나를 만나서 살아나게 되었으니, 진짜로 운이 좋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내색을 비치는 건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뭘요. 그럼, 바로 짐 싸고 출발할게요.”

“그래, 나도 짐 싸는데 시간이 걸릴테니까. 이만 가볼게.”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잠시만요!”

내가 말리기도 전에 에피니아는 내 방을 나갔다.

에피니아가 나간 직후 페트릭이 방에 들어왔다.

“엄청 예쁜 사람이네요?”

“어···?”

생각해보니 에피니아는 급하게 나가느라 얼굴을 가리는 천도 두고 갔다.

“그런데 누구예요?”

“어··· 음···.”

어떻게 말해야할지 곤란했다.

미케네르 제국의 1황녀는 대외적인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비밀의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에피니아가 1황녀라고 밝히기 곤란했다.

“아, 내 아카데미 선배. 에아 키르턴.”

생각해보니 에피니아에게도 가명이 있었다.

괜한 고민이었다.

“그런데 왜 여길 찾아왔대요?”

“그건···.”

약간의 진실을 섞는 편이 오히려 속이기 쉬울 거라 판단했다.

“저 사람이 의뢰주야.”

“그런가요? 젊은 사람 같은데 가문에 돈이 많나보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페트릭의 말에 수긍했다.

‘그야, 황녀인데 돈은 넘쳐나겠지.’

일단 페트릭에게 말해두었다.

“칼데르트가로 잠깐 돌아갈 생각인데 따라올래?”

내가 제국으로 페트릭을 불렀기에 이곳에 두고 가는 것은 영 마음에 거슬렸다.

“음··· 네! 그럼, 언제 출발하실 건가요?”

“내일···?”

갑자기 페트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약간 곤란하다는 눈치였다.

“왜? 너무 빠른가?”

“하루만 더 늦게 가도 상관없을까요?”

“제국에 누구 만날 사람이도 있는 거야?”

내가 말하고도 한 사람이 떠올랐다.

“파야?”

“어? 그분을 어떻게 아세요?”

페트릭이 놀란 채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솔직하게 페트릭에게 말해주었다.

“최근에 콜로세움에서 경기를 했어.”

“진짜요? 누가 이겼어요?”

나는 내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물론 내가 이겼지.”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페트릭이 진심으로 기뻐했다.

약간의 의문이 들 정도였다.

“혹시 파야랑 사이가 나빴니?”

“아니요. 단순하게 오드가 파야보다 약했거든요. 그것 때문에 약간···.”

아, 대리만족의 느낌이었나.

근데 본인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오드가 파야보다 약하더라도 너랑은 상관없지 않나?”

“그게··· 아나 때문에···.”

페트릭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니까, 너랑 아나가 사이가 나빠지게 된 계기가 오드가 파야한테 져서 그런 거라고?”

“네··· 말하기 부끄럽지만, 어렸을 때의 일이라···.”

파야는 아나의 스승, 오드는 페트릭의 스승.

그 둘의 실력은 경지가 더 높았던 파야의 승이라고 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스승이 승리했다는 것을 아나가 페트릭에게 자랑해버린 게 문제였다.

“그럼, 지금까지 아나와 서먹하게 지낸 이유가 그런 이유였던거야?”

“뭐, 그런 것도 있고 제가 좀 어렸을 때는 어두웠기도 하고요.”

비화를 알게 되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알았어, 그럼 이틀 뒤에 출발할 테니까. 파야를 보고와.”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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