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60화 (60/150)

#60화.

카락과의 경기는 싱겁게 끝이 났다.

대검전사인 카락은 소드익스퍼트 최상급이지만, 검의 실력은 좋지 않았다.

타고난 신체능력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검사였다.

그런 검사는 내겐 이길 수 없다.

‘그야, 내 마나호흡법은 신체능력을 비약적으로 올려주기도 하니까.’

퇴마검의 주인이 남겼을 거라 생각되는 이 마나호흡법은 성능이 매우 뛰어났다.

상처회복력을 올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신체 능력을 뛰어나게 올려준다.

마나를 돌리는 방법에 따라 힘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물론 긴 시간 동안 유지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힘대힘의 싸움이 되어버린다면.’

승자는 더 강한 힘을 가진 자의 승리다.

힘싸움에 밀린 카락은 내 상대가 되지 못했다.

카락은 내 힘에 밀려 경기장 밖으로 튕겨져 날아가버렸다.

“이건 좀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흘러가버렸군요. 콜로세움에서 챔피언 다음으로 힘이 세다고 알려진 카락이 힘싸움에서 밀리다니요!”

“카시아스!”

“믿고 있었다구!”

사회자가 말하고, 관중들은 열띤 환호성을 보냈다.

“어쨌거나, 승자는 카시아스입니다!”

사회자가 내 승리를 알렸고 나는 콜로세움을 떠났다.

여관으로 가던 길에 우연치 않게 토너를 만났다.

“어, 토너!”

토너가 고개를 돌려 나를 확인했다. 나라는 것을 확인한 토너가 경계하기 시작했다.

“야, 내가 뭐 허구한 날 때리는 줄 아냐. 그냥 불러본 거야.”

안심한 듯 경계를 푸는 토너.

높은 언성으로 토너가 말했다.

“왜 부른 거야!”

짜증내는 것 같은 토너의 말에 내가 표정을 찌푸렸다. 그러자 토너는 재빠르게 말을 다시 했다.

“왜 부른 거예요?”

나는 만족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토너를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네가 거기에 있었으니까.”

“아··· 예.”

내게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토너는 더 이상 내게 싸움을 걸어오지 않게 되었다.

그러기에 조금 심심한 감이 있었다.

진짜로 아무 짓도 안하는 애를 때릴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흠··· 토너.”

나를 피해서 다른 곳으로 가려던 토너의 발걸음이 멈췄다.

“왜요···?”

“너 대련 좋아하냐?”

그러자 토너가 머리를 힘차게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나와 하는 대련이라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아니, 아니. 나랑 말고.”

가로젓던 머리를 멈추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토너였다.

“나랑 하는 대련 말고, 그냥 대련.”

“그야··· 뭐··· 좋아하죠.”

하긴 검사치고 대련 싫어하는 사람은 못 봤다. 천재라면 오히려 더욱 그랬다.

대련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실력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

“그럼, 내 제자랑 대련해볼 생각 있어?”

“제자라면··· 그 이상한 검을 쓰던 놈이요?”

페트릭의 무기가 곡검이니 곡검을 처음 봤다면 이상한 검일 수도 있겠다.

“이상한 검이 아니라 곡검이라는 거야.”

“경지가 어떻게 되는데요?”

“너랑 비슷해. 어때 해볼 생각이 들어?”

잠시 고민하던 토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제자 정도면··· 제가 이기겠죠.”

이렇게 보니 이 녀석은 대련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꽤나 힘들걸···?”

“흥, 전 천재인걸요.”

“나한테 매번 지는데?”

“······.”

이내 토너는 휙 하고 돌아서 가버렸다.

토너를 보내고, 나는 여관으로 갔다.

그리고 여관 입구에서 에피니아를 발견했다.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에피니아가 품속에 책을 꺼냈다. 내가 악마에 대한 단서라고 말한 책이었다.

“네 말이 맞았어.”

“진짜요?”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네.”

에피니아와 함께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에피니아는 내게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건 소환진이 맞아. 악마를 소환하는 마법진이지.”

“그럴 거라 저도 생각했었어요.”

떡하니 마법진 같은 게 그려져 있었으니까.

“네가 준 마도구의 효과는 완벽했어. 안 읽히는 부분이 없었어.”

에피니아의 목 부근을 보았다. 내가 준 목걸이, 즉 마도구가 걸려있었다.

“그건 다행이네요. 그런데···.”

다만 내가 한 가지 걱정하고 있던 게 있었다.

“혹시 희생양이 필요하나요?”

사람의 영혼 같은걸 바쳐야 한다면 곤란해질 터였다.

“그건··· 약간 있긴 있는데 내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순간 내 표정이 굳어졌다.

에피니아의 상황은 이해한다.

그런다고 하더라도 희생양을 삼는 그런 짓은 용납할 수가 없다.

“그런 무서운 표정은 하지 마. 딱히 선량한 사람을 희생한다는 게 아니야.”

“그렇다면···?”

“죄인, 정확히는 죄의 질이 나쁜 사형수들을 이용할 거야. 어차피 사람의 영혼은 얼마 필요하지도 않으니까 몇 명밖에 안 필요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에피니아와 사형수.

생명에 무게를 둘 수는 없겠지만, 사형수들은 죄를 짓는 것으로 생명의 무게가 많이 가벼워졌다.

“그 정도면 뭐···.”

나도 수긍할 수 있는 범위다.

“말했었지만, 영혼은 한두 명이면 충분해. 문제는 재료인데···.”

“재료요?”

영혼 말고 더 필요한 재료가 있는 것인가.

“희귀한 재료뿐이라서 구하는 데에 오래 걸릴 거 같아.”

“그렇군요. 다 구하는데 어느 정도 걸릴 거 같나요?”

“아마··· 4, 5개월? 아니다. 반년은 잡아야겠어.”

그렇게나 오래 걸리는 것인가.

미케네르 제국의 1황녀인데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재료라니.

“도대체 어떤 재료가 필요한 거예요?”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리치의 심장인 라이프베슬.”

리치라면 뼈밖에 남지 않은 흑마법사가 아닌가.

게다가 리치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매우 희귀하다.

스켈레톤이라는 오래된 인간의 뼈로 생긴 몬스터가 있다. 스켈레톤이 던전에 들어갔을 때 아주 낮은 확률로 리치가 된다고 알고 있다.

“리치면··· 소드마스터를 대동해야겠네요.”

리치는 마법을 주로 쓴다. 그런 리치는 소드익스퍼트 최상급과 비교된다.

“아니, 괜찮아. 신성제국에 내가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잖아.”

아, 그렇다면 오히려 쉬울 수도 있겠다.

리치는 언데드. 언데드는 신성력에 매우 취약하니 말이다.

“그건 운이 좋았네요.”

“그러게 말이야.”

재료를 구하고, 악마를 소환하는 데까지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는 것은 충분히 챔피언과의 경기를 할 수 있다.

“저도 준비를 해야겠네요.”

목표는 챔피언을 상대하기 전에 소드마스터가 되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높게 솟아있던 벽이 이제 끝이 보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배고프네요.”

콜로세움에서 경기를 끝내고 오는데 밥도 못 먹었다.

“그래? 그럼, 밥이나 같이 먹자.”

“네···? 그래도 돼요? 바쁜신 거 아니었나요.”

“괜찮아.”

나는 에피니아의 안내에 따라 에피니아가 소개하는 맛집에 도착했다.

“여기가 엄청 맛있어.”

“여기가···.”

가게의 외관만으로도 비싼 가게라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온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곤란한 상황이다.

“내가 살 테니까, 많이 먹어.”

가뭄에 단비 같은 에피니아의 말.

나는 몸을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뭘, 그런 걸로 그러니. 자, 들어가자.”

가게로 들어가자 예약이 가득 차 있다며 거절을 당했다.

하지만 에피니아가 어떤 패를 보여주자 곧바로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종업원이 안내해준 자리에 앉고, 내가 에피니아에게 물었다.

“방금 뭘 보여주신 거예요?”

혹시 황녀라는 신분패?

그건 아닐 거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내가 황실에서 지내지 못한 이유가 남녀의 문제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신분패를 꺼낼 리가 없다.

“내가 너한테 줬던 패랑 같은 거야. 아니, 그보다 더 윗줄이라고 해야하나?”

에피니아가 내게 준 패라면 황실에서 신분을 증명해주는 패가 아닌가.

그런데 그보다 윗줄이라고?

“제가 받은 것보다 윗줄이면···.”

“황실의 은혜패지.”

“은혜패요?”

에피니아가 은혜패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은혜패는 황실에게 큰 도움을 준 이들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황실이 직접 은혜를 갚아야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패라고 한다.

“황실이 직접 은혜를 갚아야한다니. 얼마나 큰일을 해야 받는 걸까요?”

“왜, 탐나니?”

“별로 탐나진 않네요.”

내 솔직한 대답에 에피니아가 미소를 지었다.

“너도 받을 수 있어.”

“네?”

“내 목숨을 구해주면 말이지. 아니, 생각해보니 이미 날 한 번 구해줬으니 줘야하나?”

“됐어요. 그건 의뢰가 끝나면 보상으로 받을게요.”

“그럼, 보상은 은혜패로 되는 건가?”

어··· 말이 그렇게 되나.

그건 좀 그렇다.

이런 내 생각을 에피니아 읽어버렸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이야. 은혜패는 보상에 추가로 얹어줄게.”

“네, 감사합니다.”

잠시 기다리자 요리가 나왔다.

에피니아가 소개한 맛집인 만큼 음식의 맛은 뛰어났다.

두둑이 배를 채우고 밖으로 나왔다.

“진짜 잘 먹었습니다.”

“별말씀을. 다음엔 네가 사.”

“이런데 같은 곳은 모르지만··· 맡겨두세요!”

황녀가 쉽게 접하지 못했을 법한 음식이면 되겠지.

에피니아와 작별인사를 마치고 다시 여관으로 돌아갔다.

여관에 도착하니 조금 소란스러움을 느꼈다.

“카시아스! 당장 나와라!”

누군가가 여관 안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다급히 여관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한 장면을 목격했다.

“카시아스 님은 외출 중이십니다.”

“닥치고, 카시아스를 불러오라고!”

나를 애타게 찾는 이는 오늘 경기를 치른 카락이었다.

게다가 메시아가 자신보다 세 배는 될 법한 카락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락이 메시아를 밀치려는 순간이었다.

“정말 무례하군.”

페트릭과 토너가 동시에 말한 것이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나온 둘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내 카락에게 시선을 옮겼다.

카락은 토너와 페트릭을 차례대로 훑었다.

“네놈들은 뭐냐?”

“당신이 애타게 찾는 사람의 제자다.”

“난 네놈이 너무 시끄러워서.”

재밌는 상황이 펼쳐졌다.

아니, 그보다 카락은 왜 날 찾아온 거지.

카락이 토너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호··· 네놈은 꺼지고.”

카락이 페트릭에게 다가갔다.

“네가 그놈의 제자?”

“놈놈 거리는 게 거슬리는군. 당신은 예의를 못 배웠나보군.”

“우습구나. 난 카시아스에게 재대결을 신청하러 왔다.”

재대결이라니?

내가 알기론 재경기는 불가하다. 적어도 양측이 협의한다면 되겠지만.

나는 재경기 따윈 생각하지 않고 있다.

“재대결이라···.”

말끝을 흐리는 페트릭.

“좋군, 그 재대결 나와하는 건 어떤가?”

페트릭이 입에서 나온 말은 제법 기개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판단하기론 페트릭이 카락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러던 순간 재밌는 상황이 펼쳐졌다.

“어따 대고 꺼지라고 하는 거냐!”

폭발할 듯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거리던 토너가 카락에게 달려든 것이었다.

최상급답게 카락은 달려드는 토너를 도로 날려버렸다.

“교육이 필요하겠군.”

카락에 등에 맨 대검을 뽑았다.

토너에게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저것은 심하다. 왠지 피바다가 될 것 같다.

벽에 부딪힌 토너가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말했다.

“나는 교육 따윈 질색이다.”

토너의 손엔 어느새 두 자루의 단도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토너의 옆엔 페트릭이 곡검을 들고 서 있었다.

‘이 정도면···.’

토너와 페트릭이 카락을 상대한다고 생각해보았다.

상급 두 명이 최상급 한 명을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 상급이 천재라면 다를지도 모른다.

‘한번 실력 좀 봐볼까?’

꽤나 기대되는 구도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