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한동안 거리를 방황하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여관에는 에피니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긴 어쩐 일로 오셨나요?”
“리치가 있을 거라 생각되는 던전을 찾아냈어.”
리치의 라이프베슬이 마족소환진에 필요했다는 걸 떠올려냈다.
“잘됐네요. 그렇다면···?”
“응, 너도 같이 갈 생각 있니?”
분명 신성제국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나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에피아 신성제국에서 도움을 취소했나요?”
“아니, 그냥 혹시 몰라서.”
잠시 고민해보았다.
리치라···.
“리치를 한 번 보고 싶기는 하네요.”
“그래? 다행이다. 맞다, 의뢰에 추가비용을 얹어줄 거야.”
한마디로 돈이 더 들아올 거란 이야기였다.
“그런 걸 바라고 한 게 아니었는데.”
“그럼, 싫어?”
“싫긴요. 정말 좋아요.”
에피니아는 내게 출발일을 알려주었다.
출발은 이틀 뒤였다.
“생각보다 서두르시네요.”
악마와 한 게임이 끝나려면 아직까지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제 마족소환진을 찾아냈고, 해석도 가능하다.
거의 다 찾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에피니아는 서두르고 있었다.
“이제 끝이 보인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거 같아.”
에피니아의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서두르다가 실수하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해야한다.
“좀 더 차분히 꼼꼼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그래야겠지.”
“그런데 리치의 던전은 어디에 있나요?”
일단 리치의 장소를 알아야한다.
너무 멀면 가기 힘들다. 그렇다면 가지 못한다고 다시 말해야겠지.
난 검투사도 겸직하고 있으니 경기가 기다리고 있다.
“미케네르 제국과 로토 왕국의 국경선 인근이야.”
그렇다면 길지는 않겠다.
왕복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다.
“그렇다면 에피아 신성제국의 사람들은 언제 도착하나요?”
“이미 도착했을걸?”
이미 도착했다고?
분명 이틀 뒤에 출발한다고 그랬었지 않았었나.
그런 내 의문은 에피니아의 이어지는 말에 해결될 수 있었다.
“리치의 던전을 에피아 신성제국의 조사대가 알아왔거든.”
그렇다면 신성제국의 사람들이 이미 도착해있는 게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지금쯤 한창 준비를 하고 있을테지.
“그런데 에피니아, 신성제국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면 어쩌죠?”
“에이, 안 그러겠지?”
신성제국엔 사제와 성기사가 있다.
이 두 직종을 보통의 왕국이나 제국과 비교하자면 마법사와 기사다.
다른 점은 하나.
신성력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내가 리치의 던전에 가고 싶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리치가 어떤 존재인지 궁금했고, 신성력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궁금했다.
만약 신성제국의 사람들이 먼저 들어간다면.
‘이 두 가지를 못 보니까.’
그래도 설마 먼저 들어가진 않을 거라 생각이 된다.
왜냐하면 에피니아를 그곳으로 불렀으니 말이다.
“그럼, 이틀 뒤에 출발하는 거 맞죠?”
“응. 솔직히 준비할 것도 별로 없어서 내일 출발해도 되긴 하는데.”
그렇다면 나야 좋다.
“저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그럼, 될 수 있으면 내일 출발하는 방향으로 할게.”
“네.”
“이제 준비해야하니까, 이만 갈게.”
여관을 떠나려는 에피니아를 입구까지 배웅해주고 여관의 훈련장에 들어갔다.
‘훈련장에는 검을 손질할 수 있는 도구가 있으니까.’
퇴마검을 손질해줄 생각으로 훈련장을 갔다.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의외의 상황을 발견했다.
아니, 의외는 아닐 수도 있겠다.
언젠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했었다.
‘페트릭과 토너···.’
그 두 명이 대련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한 수로 보였다.
토너에게 페트릭이 외쳤다.
“전력을 다하는 게 좋을 겁니다.”
“내가 할 말이야.”
토너와 페트릭이 교차를 하는 순간 승부가 정해졌다.
둘이 들고 있는 목단도와 목곡검이 동시에 부서진 것이었다.
“후··· 무승부네요.”
“그러게.”
둘의 수준이 엇비슷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저 정도면 아예 동률이라고 본다.
“이봐, 페트릭!”
내가 페트릭에게 다가갔다.
페트릭은 나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스승님, 안녕하십니까!”
“응, 그런데 토너랑 대련?”
“네.”
토너는 내가 불편한지 나를 발견하자마자 짐을 챙기고 떠나버렸다.
“저 녀석도 참··· 그나저나 무승부?”
“네.”
조금 분해보이는 듯한 페트릭의 표정.
“그런데 왜 갑자기 둘이 대련을 한 거야?”
“저번에 둘이서 카락을 쓰러뜨렸지 않습니까.”
그랬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간단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왜 문제가 생기는 거지?
도대체 무슨 문제일까.
“누가 더 기여했나입니다.”
그야···.
곰곰이 생각해보니, 간소한 차이고 뭐고, 둘 다 큰 기여를 했다.
“마무리는 제가 했지만···.”
“토너가 빈틈을 많이 공략했었지.”
“네, 맞습니다. 그런데 둘 중 누가 더 기여했나라는 언쟁에서 누가 더 강하냐는 언쟁으로 번져버렸습니다.”
‘오호.’
“그래서 결과는 무승부였다라는 거네.”
“네··· 솔직히 제가 좀 더 유리한 상황이 많았죠.”
무승부면 충분히 잘했는데 어째서 페트릭은 분해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데 제가··· 나이가 더 많으니 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싶었지만,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페트릭의 말이 사실이기도 했다.
토너가 페트릭과 같은 나이였다면 페트릭이 분명히 졌다.
그만큼 토너는 천재였다.
“아직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지. 격차를 못 벌리겠으면 따라잡히지만 마.”
“네!”
페트릭도 훈련장을 떠났다.
나는 훈련장 구석에 구비된 손질도구를 사용해 퇴마검을 손질했다.
퇴마검을 손질하며 생각에 잠겼다.
‘퇴마검을 쓴 지도 오래되었네.’
처음엔 비겁한 무기라고 생각했었다.
‘그야, 휘두르는데 이상한 실 같은 게 나오니까.’
하지만 비겁한 무기가 아니었다.
실에는 용도가 있던 것이었다.
‘이 퇴마검의 주인은 분명···.’
소드마스터였을 것이다.
그것도 소드마스터 완숙에 다다랐겠지.
‘소드마스터보다 윗단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다면 퇴마검의 주인은 분명 소드마스터를 뛰어넘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남긴 마나호흡법만 봐도 충분했다.
‘이렇게 뛰어난 마나호흡법은 소드마스터라도 만들기 어렵겠지.’
퇴마검의 손질을 끝내고, 나는 여관의 방으로 돌아갔다.
내일은 리치의 던전으로 출발해야하니 잠을 자둬야한다.
* * *
리치의 던전으로 가는 길.
마차 안에서 내가 에피니아에게 물었다.
“이번엔 메시아가 안 따라오네요?”
“그야, 아미스가 있으니까.”
나는 곁눈질로 아미스를 보았다.
중년의 시녀. 분명 시녀장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아미스 시녀장님 맞으시죠?”
“예, 맞습니다. 카시아스님, 아니 수하르님에 대해서는 메시아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런가요.”
조금 딱딱하게 대하는 아미스였다.
그런데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그런데 직위가 직위신데 이곳까지 따라오시는 게 맞나요?”
시녀장, 그것도 황실의 시녀장이다.
황녀를 뒤따라 다닐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리치의 던전이니까, 제가 왔습니다.”
리치의 던전이랑 시녀장이 오는 거랑 무슨 상관일까.
“수하르, 아미스는 신성제국에서 고위사제였어.”
고위사제였다고?
그러고 보니 아미스는 은연중 고귀함을 풍기는 듯했다.
“옛날의 일이죠.”
고위사제였던 아미스가 왜 미케네르 황실에서 시녀장을 하고 있는 걸까.
“고위사제셨으면 신성제국에서 제법 높은 위치셨을텐데.”
“그게···.”
아미스의 눈치를 살피는 에피니아였다.
아미스는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에피니아의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우리 어머니와 친분이 깊으셨어. 그래서 어머니를 따라서 제국에 온 거지.”
에피니아의 어머니라고 하면··· 제1 황후셨지.
이 세상을 떠났지만 신성제국 출신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렇군요.”
그런데 내가 알기론 제1황후께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던 걸로 기억한다.
“뭐,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어머니의 혈육인 나를 위해 아미스는 남았지.”
감동적인 이야기다.
“내 어머니라고 할 수 있지.”
“좋은 이야기네요.”
하지만 옆에서 듣던 아미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말괄량이로 자랄 줄 알았다면, 그냥 떠날 걸 그랬네요.”
“에이, 또 왜 그래.”
“저번에도! 에휴···.”
아미스와 에피니아의 모습은 모녀지간이 영락없었다.
“하하, 사이가 좋으신 모습을 보니 보기가 좋네요.”
질투가 날 지경이다.
이 둘의 모습을 보니 가문에 계실 테시아르 어머니가 떠올랐다.
‘많이 서운하셨겠지.’
이번에 칼데르트가에 잠깐 복귀했을 당시 편지를 쓰고 갔다.
다만 편지만 쓰고 얼굴을 못 보고 갔으니 많이 서운해하시고 계시겠지.
‘다음번에 간다면 테시아르 어머니의 얼굴만큼은 꼭 보고 가야지.’
어느새 마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작은 마을이었다.
“이곳에 리치가 있나요?”
아무리 봐도 사람이 사는 마을이었다.
“에이, 이런 곳에 리치는 없지. 마을의 지하야.”
지하라고?
“그럼, 이곳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예요?”
던전이 마을의 지하에 있었다면 이 마을 사람들은 분명···.
“아,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마을 사람들은 전부 멀쩡해. 지하라고 말하지만, 땅속에 묻혀있거든.”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은 멀쩡하고, 지금은 대피시킨 상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런데 조금 마을이 소란스러워 보인다.
누군가 마차의 문을 두드렸다.
얼굴을 가리는 천을 쓴 에피니아가 마차의 창을 내렸다.
“1황녀님이 맞습니까?”
갑옷을 입은 기사였다. 성기사일테지.
“네.”
“지금 사실···.”
성기사가 전해준 말은 충격적이었다.
“말도 안 돼요.”
에피니아가 부정했다. 도저히 믿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내 걱정대로 신성제국이 먼저 던전에 들어갔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고립된 상태라는 거잖아.’
출중한 실력을 가진 선발대가 먼저 출발했다.
그리고 후발대가 출발하려는데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스켈레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충 확인해본 결과 던전은 대규모 던전이었다.
그렇기에 선발대에 보급을 해줘야하는데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이가 없네.’
스켈레톤이 많으면 얼마나 많다고.
성기사를 따라 던전의 입구가 있는 곳으로 나와 에피니아 일행이 이동했다.
던전 입구는 난장판이었다.
‘진짜 많네···.’
계속해서 입구에서 스켈레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수는 몇 백으로 추정되었다.
수십의 성기사와 사제가 막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돌파하는 데엔 무리가 있어보였다.
“신성제국에 도움을 요청해봤지만··· 응원이 올 때까지는 꽤 걸릴 거 같습니다. 그때까지 선발대가 무사할지는···.”
하지만 한 가지 다행인 게 있다. 바로 내가 있다.
“그럼, 제가 선두로 돌파하겠습니다.”
내가 한 말에 그제 서야 성기사는 옆에 있는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성기사가 에피니아에게 물었다.
“저기 이분은 누구십니까?”
성기사의 물음은 아미스가 해결해주었다.
“카시아스님입니다. 블랙 용병이자 제국의 콜로세움에서 랭킹 5위에 자리하고 있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