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67화 (67/150)

#67화.

사회자가 나와 제크람을 소개했다.

제크람의 소개가 진행될 때 관중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대개 더럽고, 치사한 녀석이라는 욕과 함께 말이다.

다만 제크람은 그런 야유에도 웃으며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불만이면 내려와서 나와 대련을 해보는 건 어때!”

잠시 침묵, 다시 야유가 퍼부어졌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제크람은 두 손을 펼치고, 어깨를 달싹였다.

천연덕스러운 제크람의 모습이 내게는 마냥 웃겼다.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건가?’

그럼에도 방심은 금물이다.

일단은 이미 펼쳐진 결과로 제크람은 비열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길게 갈 필요는 없겠지.’

수작부릴 틈도 없이 바로 끝내는 게 좋겠다.

실험해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

‘에피니아가 알려준 대로라면···.’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신체능력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기술이다.

내가 가진 마나호흡법과도 비슷했다.

‘마나를 더 강하게 뿜는다.’

거칠게 흐르는 마나가 근육까지 활성화해주는 것이었다.

“으윽···.”

아직 길게 유지는 못하겠다.

고통이라기보단 위화감에 못 버틸 거 같았다.

하지만 확실히 전신의 근육이 활성화되었다.

사회자가 경기 시작 알리는 순간, 나는 곧장 제크람에게 달려들었다.

‘빨라!’

처음 써보았다.

속도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크윽!”

나도 모르게 침음이 흘러나왔다.

곧장 제크람에게 검을 휘둘렀다.

제크람은 내 이런 속도를 예상 못했는지 급하게 단검을 들어 막으려 했다.

하지만 늦었다.

“크아악!”

어중간한 상태의 단검으로 내 검을 막은 제크람이 경기장의 벽으로 날아가버렸다.

경기장의 벽에 박힌 제크람.

의식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어··· 승자···.”

당황한 티가 역력한 사회자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제크람이 아무리 치사하고, 더러워도 실력만큼은 확실했다.

내가 압도적으로 이긴 적이 처음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번 상대는 랭킹 4위이다.

“카시아스입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관중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사회자가 하나의 말을 덧붙였다.

“카시아스라면 정말로 챔피언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몇몇 관중들이 사회자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관중들의 환호성을 뒤로하고 빠르게 경기장을 나왔다.

평소 같으면 환호성을 더 즐겼을 것이다.

“온몸에 힘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긴장을 풀면 쓰러질 거 같았다.

“게다가 좀 아프네.”

근육통이 왔다고 해야할까.

대기실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쓰러졌다.

***

대기실에서 깨어난 나는 곧바로 여관으로 향했다.

할 일도 없었기에 느긋하게 걸었다.

여관에 도착할 때쯤에 하르가 여관 밖에서 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토너?”

그런데 하르 옆에 있는 게 페트릭이 아닌 토너였다.

둘이 대련을 하는 사이란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하르를 맡길 정도로 친해진 것인가.

“아···.”

토너가 멋쩍은 듯 나를 바라보았다.

전과 다르게 날이 서 있는 듯한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실례가 많았습니다.”

갑자기 공손해진 토너의 모습이 영 적응이 되질 않았다.

뭐 때문에 이렇게 변한 걸까.

“페트릭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응···?”

“악마를 물리치셨다지요.”

아마 루기 마을에서 이야기일 테지.

그런데 그게 토너가 이렇게 바뀌게 될 계기가 될 수 있는가.

“사실 전···.”

토너의 이야기는 이랬다.

천재라고 가문에서 많이 띄어줬지만, 실속은 없었다.

그저 칭찬뿐이 천재.

“그래서 전 영웅을 동경했습니다.”

동화나 전기 속에 나오는 영웅.

격이 다른 천재.

가문을 나와, 세상을 구하는 그런 영웅.

“특히 영웅들이 마족과 싸움을 할 때를 가장 동경했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변한 건가.

내가 마족, 악마를 처치했으니까.

“앞으로 행동거지를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 그래··· 영웅을 동경한다면 착해져야지.”

“그건··· 제가 동경하는 건 강함뿐이라···. 그래도 남한테 피해는 안 끼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페트릭에게 감화라도 된 것인가.

토너는 약간 페트릭처럼 바뀌어있었다.

뭐 좋은 변화니 불만은 없었다.

“오랜만에 하르랑 놀아주시겠습니까?”

하르를 바라보았다.

덩치는 꽤 커졌지만 여전히 귀엽다.

요즘 바빠서 인지 하르와 놀아주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

“그래, 좋지.”

토너에게서 하르의 목줄을 건네받았다.

“그런데 웬 목줄이야?”

“원래 착용하던 게 아니었습니까?”

본래 나는 방목주위다.

하르가 딱히 사람을 공격하는 것도 아니니까.

뒤에서 페트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르의 덩치가 커지면서 주위사람이 겁을 먹더군요. 그래서 목줄을 채웠습니다.”

그런 건가.

“그럼, 나는 하르를 데리고 마을 한 바퀴나 돌아볼게.”

“넵.”

나는 하르가 목줄을 당기는 대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페트릭과 토너가 여관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들렸던 이야기로는 아무래도 대련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하르야, 좀 천천히 가자.”

하르가 신이 난 모양인지 강한 힘으로 나를 끌어갔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하르에게 끌려갔다.

***

며칠 동안 에피니아가 매일같이 여관을 찾아왔다.

내 훈련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평소랑 다르게 많이 기뻐보였다.

“수하르, 드디어 완성했어!”

“설마···? 소환마법진요?”

“응!”

드디어 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마법진을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었다.

“너무 급하게 만든 건 아닐까요?”

내 생각과 다르게 너무 일렀다.

소환마법진이라는 게 이렇게 일찍 만들어지는 것인가.

서둘렀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에피니아는 자신만만해 하고 있었다.

“전문가도 초빙해서 다 같이 연구했으니까, 문제는 없을 거야!”

“그 성능 실험 같은 건 하셨죠?”

마법진이 제대로 만들었는지 실험하는 행위는 중요하다.

잘못된 마법진이 폭발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응, 마법진에 새겨진 회로는 전부 멀쩡해.”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이제 신성제국의 사람들이 도착하면 바로 소환마법진을 발동할 거야.”

안전은 중요하다.

악마를 소환하는데 그 악마가 순순히 에피니아의 승리를 선언할 것 같진 않았다.

그것을 에피니아도 깨닫고 있기에 빈틈없이 가려는 모양이다.

“파스타르 경이랑, 신성제국의 기사단과 사제단, 그리고 너. 이렇게 해서 소환할 생각이야.”

솔직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신성제국의 기사단과 사제단이 중요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들은 리치의 던전에서 악마를 상대할 때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차라리 그때 리치의 던전 안에 아미스가 왔더라면 큰 도움이 됐을 것이었다.

내 이런 생각을 눈치챈 것인지 에피니아가 말을 덧붙였다.

“신성제국의 기사단과 사제단은 중요해. 특히 이들은 준비된 싸움에 강해.”

“준비된 싸움이요?”

“이번엔 성물도 가지고 오니까, 악마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거야.”

그렇군.

한 가지 호기심이 들었다.

“그런데 악마가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악마가 순순하지 않을 때의 전력이었다.

당연히 순순하게 당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궁금했다.

악마가 순순히 항복하고, 패배를 시인한다면 에피니아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그래도 악마를 물리쳐야지.”

에피니아의 눈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에 패배를 시인하더라도 너를 습격하고, 리치의 던전에 수작을 부렸어. 그리고 지금까지 나에게 준 고통들···.”

에피니아는 확고했다.

그 모습에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패배를 시인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는 악마를 상대로 마음이 약해지는 경우가 생겨서는 안 되니까.

“다행이네요.”

“오랜 악연을 끊을 때가 온 거야.”

“그런데 신성제국의 사람들은 언제 도착한대요?”

“길면 보름. 짧으면 일주일.”

“얼마 안 남았네요.”

이젠 내게 남은 경기도 별로 없었다.

랭킹 3위와 2위.

그리고 두 번의 이벤트 경기.

소환마법진을 발동하기 전까지 최소 일주일.

그 전에 랭킹 3위와의 경기가 있다.

“기쁜 소식은 여기까지고, 이제 훈련을 해야지!”

마나로 신체를 강화시키는 방법.

처음에는 한 번의 성공으로도 쓰러질 듯한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 뒤에 오는 극심한 근육통.

“이제 슬슬 이 훈련도 끝나가네요.”

반복된 훈련으로 내 몸은 성장했다.

비가 온 뒤 땅이 개는 듯.

내 몸도 극심한 근육통 뒤엔 그것을 버틸 수 있는 육체로 변해갔다.

이제는 사용하더라도 쓰러질 정도의 근육통이 찾아오지 않는다.

그저 노곤한 기분이 드는 게 끝이었다.

“그러게. 조금 아쉽네.”

에피니아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게요. 저도 아쉽네요.”

서로 멋쩍게 웃음만 흘리다가 훈련을 시작했다.

***

랭킹 3위와의 경기 또한 쉽게 이길 수 있었다.

“확실히 전보다 강해졌어.”

랭킹 3위는 모리스란 사람이었다.

모리스는 나와 같은 검을 사용했다.

하지만 검이 특이했다.

마치 톱처럼 양날이 삐죽했다.

“공격을 흘리긴 힘들었지만···.”

간단하게 이겼다.

강화된 내 신체를 모리스는 따라오질 못했다.

랭킹 2위가 소드마스터라도 되지 않는 이상 패배할 리가 없을 듯했다.

그리고 이제 곧 신성제국의 사람들이 도착한다.

나와 메시아가 이들의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하긴 많이 바쁠테지.”

모든 준비를 다 끝냈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의 점검이 중요했다.

그리고 에피니아는 점검 중에 있었다.

보통 검사는 마법진에 대해 모른다.

하지만 에피니아는 달랐다.

마법사는 아니지만, 이론만큼은 뛰어난 에피니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기 저 고상해 보이는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신성제국의 사람들이겠지?”

메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백의 갑옷.

줄지어 오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그들 중에는 선발대의 리더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신성제국의 분들이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신성제국의 정화기사단의 단장, 판테인이라고 합니다.”

“안내를 맡게 된 카시아스라고 합니다.”

판테인이 내가 건넨 손을 붙잡았다.

옅은 탄식을 내뱉은 판테인.

“악마를 물리치셨다는···.”

“운이 좋았습니다. 마침 악마가 약해진 상태였거든요.”

곁눈질로 선발대의 리더를 보았다.

자리로 보아 정화기사단의 부단장 정도로 보였다.

선발대의 리더가 말했다.

“제가 보고드렸습니다.”

뭐, 상관은 없다.

약속대로 염동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가시죠.”

“알겠습니다.”

나와 메시아가 정화기사단과 사제들을 이끌고, 약속의 장소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황실의 내부에서 악마를 소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도시의 바깥에 임시 교회를 지었다.

나는 그곳으로 이들을 안내했다.

“바로 저기입니다.”

조용해 보이는 외딴 교회.

새 건물과는 다르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기에 오히려 위화감이 드는 건물이다.

저 밑에 에피니아와 마법진 연구가들이 점검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제법 의리하게 지었군요.”

교회 건물에 대한 판테인의 감상이었다.

나 역시 동의했다.

그래서 에피니아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에피니아의 말 그대로 판테인에게 들려주었다.

“교회의 밑이라면 악마도 약해질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도 의리하게 지었구요.”

“훗, 신빙성이 있는 말 같기도 하네요.”

나는 이들을 이끌고 교회의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간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생각과 다르게 마법진은 매우 거대했다.

판테인 일행도 똑같이 생각했는지 많이 놀란 상태였다.

“어, 왔어? 이제 곧 점검이 끝날 거야.”

나를 발견한 에피니아의 말이었다.

에피니아 옆에는 아미스가 자리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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