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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69화 (69/150)

#69화.

다음에 펼쳐진 상황은 내게 조금 안타깝게 다가왔다.

카시아스의 아버지가 죽은 뒤의 일이었다.

카시아스는 자신의 아버지의 시신이 안치된 곳에 앉아있었다.

“꽤 시간이 흐른거 같지만, 마음 한켠이 나아지질 않네요.”

카시아스의 감정이 내게도 느껴졌다.

허무함. 그리고 후회.

나 역시도 느꼈던 그 감정.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런 감정이 들었지.’

회귀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후회를 했었다.

모든 가족을 잃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었다.

그들은 내가 서자란 이유로 차별하지 않았다는걸.

“생전 당신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질 못해서 죄송합니다.”

카시아스의 기억이 내게로 몰려왔다.

한량.

일하기는 싫어하고, 놀기만 좋아하는 그런 한량이 카시아스였다.

카시아스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카시아스는 정신을 차렸다.

‘나 역시도 그랬을까···.’

내가 회귀 전의 행동을 회상했다.

후계자 경합에서 밀리아 누님의 계략에 혼자 살아남아버렸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한 거라고는 후계자 수업을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 역시 못난 아들이었구나.’

누군가가 카시아스에게 다가왔다.

카시아스의 눈으로 본 누군가는 내가 봤었던 인물이었다.

‘올터니.’

분명 카시아스와 이야기를 나누던 금빛기사단의 단장이었다.

전과 다르게 늙은 게 보였다.

“올터니···.”

“가주님··· 날이 늦었습니다. 이제 돌아가셔야합니다.”

카시아스는 라이크 가문의 가주가 되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후계자를 정했다.

“올터니, 어째서 내가 가주가 된 걸까.”

“그야 당연한 일이지요.”

“내겐 잘난 형도 있는걸.”

“카스트님은 가진 능력이 없으십니다.”

이곳 귀족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능력이었다.

마나를 쓰지 않고, 뽐낼 수 있는 능력.

지금 후계자 경합을 통해 우수한 자식이 가주가 된다.

“아버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카시아스의 표정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표정이 짐작 갔다.

한없이 우울하고, 어두워 보이는 표정이었을 테지.

“······.”

올터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게 점점 카시아스의 과거가 떠올랐다.

올터니도 알고 있고, 카시아스도 알고 있다.

카시아스의 아버지는 카시아스의 행동을 탐탁치 않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식이라는 이유로 사랑을 주었다.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었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어.”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겁니다.”

올터니의 말에 카시아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카시아스의 기분과 다르게 맑은 하늘.

“가주님··· 그리고 황가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서신···?”

카시아스가 의아하다는 듯 올터니를 쳐다보았다.

“황가에서 서신이라니··· 그런 게 올 일이 있나?”

그리고 내게 현재의 상황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현재 대륙에 존재하는 나라는 하나였다.

제국.

단 하나의 제국이 대륙통일을 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황가의 서신을 받을 일이 없었다.

“소집령은 아닐테고.”

전쟁할 대상이 없다.

“황가의 파티에 변방의 나를 초대할 리도 없고.”

황가에서는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한다.

변방의 카시아스에게 관심은 없을 터였다.

“게다가 탄생제도 멀었고.”

황가에게 선물을 바치는 날도 아직 멀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카시아스가 서신을 뜯었다.

내가 보기엔 고대문자로 적혀있다.

하지만 의미가 이해가 갔다.

‘이거 때문에 마계로 간 거였구나.’

서신에는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모든 귀족은 이 전쟁에 참여하는 건 의무라고 적혀있었다.

“이제는 전설 속의 존재와 싸우려고 하는구나.”

내게 새로운 기억이 들어왔다.

내 시대와 달랐다.

내 시대엔 마족은 전설 속에 존재지만, 실제로 존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달랐다.

그저 전설.

사실 확인이 불가한 전설이었다.

“오랜 평화 때문에 황가가 미쳐가는구나.”

“가주님··· 그런 말씀은 마시지요. 요즘 대륙에 이상한 분위기가 감돕니다. 괜히 반역자라는 오명을 쓰실 수 있습니다.”

카시아스가 올터니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올터니도 많이 바뀌었네.”

“전 별로 바뀐 게 없습니다.”

“아니, 바뀌었어. 옛날에는 날 쉽게 대하고 그랬는데.”

“그야 이제는 카시아스님은 한 가문의 가주시지 않습니까. 그에 따른 예를 지켜야죠.”

카시아스가 일어났다.

“한번 가봐야겠네.”

“무엇을···?”

“미쳐버린 황가가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지 말이야.”

그리고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

황제가 단상 위에 올랐다.

늙어버린 황제.

카시아스에게는 아직까지도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노인으로 보일 뿐이었다.

“다들 모였군.”

힘없는 황제의 목소리.

예전에는 달랐던 것 같다.

“우선 한마디 하지. 나를 미친놈으로 봤을 거야. 전설 속에나 나오는 마족들이 사는 마계를 침공하자니. 저길 보거라!”

황제는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카시아스의 시선도 옮겨졌다.

그리고 나는 황제가 가리킨 것이 무엇인지 바로 깨달았다.

‘저건 소환마법진?’

하지만 약간 달랐다.

그렇다는 건···.

“드디어, 개발해냈다. 마계로 가는 마법진을. 이제 짐은 대륙뿐만이 아니라 마계마저도 통일해낼 것이다!”

마법진이 웅장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그 구멍 안은 마계였다.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게 카시아스를 통해 느껴진다···.’

저곳은 마계가 확실했다.

“우리의 목표는 바로 저곳이다.”

그리고 곧바로 마계로 가는 입구가 닫혔다.

카시아스가 낮게 읊조렸다.

“사실이었다니···.”

카시아스도 저 곳이 마계라는 걸 단박에 깨달았다.

그야, 당연했다.

마나와 다른 마기.

불길한 기운이 계속해서 저곳에서 넘어왔으니.

“출정일은 내일이다. 마지막 휴식을 즐기도록.”

카시아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많은 사람들.

대다수의 사람이 당황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야, 대다수의 사람이 거짓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황제가 떠나고, 남은 이들은 소속이 정해졌다.

“돌격조라···.”

카시아스의 능력은 염동력.

공격에 유용하기에 돌격조가 되었다.

카시아스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약간 흐려진 날씨.

“아버지는 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건가···.”

하지만 카시아스의 마음속에는 굳은 다짐이 느껴졌다.

“아버지···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저는 떠나겠습니다.”

***

마계 출정 당일, 몇몇의 사람은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황제가 용서치 않았다.

용서 없는 참수형.

평화에 젖어있던 이들에게는 공포에 가까웠다.

“저기 통성명이나 합시다.”

카시아스의 옆에 있던 사람이 카시아스에게 말을 걸었다.

카시아스는 무시했다.

“나는 모디언 카사디아라고 합니다.”

카시아스가 모디언을 곁눈질로 살짝 쳐다보았다.

순박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어째 이런 경험이 많은 거 같습니다? 이렇게 차분하신 걸보니. 아니, 그럴 리가 없나?”

말이 많은 남자였다.

마계로 넘어가기 전까지 그의 입은 쉬질 않았다.

그리고 마계로 넘어간 순간, 드디어 그의 입이 멈췄다.

“이게··· 무슨···.”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마기가 가득 차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카시아스 또한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지만, 참아냈다.

‘이곳이 마계라는 곳인가···?’

척박한 땅이었다.

분명 나도 마계로 넘어왔지만, 구역질이 나올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외부만 이런 건가?’

내가 있던 곳은 책의 악마인 크부의 은신처라 생각되는 내부였다.

악마 또한 이런 곳에서 살기엔 쉽지 않을 테지.

맨 앞에 선, 마계 출정의 총사령관이 외쳤다.

“다들 정신 차리도록!”

이어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적이 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총사령관이 검을 뽑으며 말했다.

“다들 전투 준비를 하도록!”

다시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

빠르게 시간이 흘렀지만, 모든 기억이 내게 저장되었다.

목적지도 없이 계속해서 전진했다.

수많은 이가 죽었다.

말이 많던 모디언도 죽었다.

총사령관도 죽었다.

다음 총사령관으로 전의 부사령관이 임명되었다.

“······.”

카시아스의 마음은 절망에 가까웠다.

많은 싸움이 있었다.

적들 중엔 마수도 있고, 악마도 있었다.

실제로 만난 악마는 전설이 축소되었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강적이었다.

처음으로 악마가 나타났을 때 절반의 병력이 죽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보급이 온다는 것은 다행이군.”

추가 병력과 보급품은 꾸준히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물론이고, 카시아스도 단언하고 있었다.

이 출정은 패배로 끝이 날거라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카시아스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이봐, 총사령관님이 부르신다.”

“알겠습니다.”

카시아스는 총사령관을 찾아갔다.

그리고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총사령관이 말했다.

“이대로 가면 아무런 성과도 없이 패배다.”

“······.”

카시아스 또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발대를 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대장 자리에 자네를 앉힐 생각이네.”

“왜 저입니까?”

“강하니까.”

카시아스는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듯 카시아스 또한 마기로 인해 정신이 피폐해지며 점점 괴팍해져갔다.

그렇기에 카시아스는 생각했다.

자신은 대장에 자리에 앉을 수 없다고.

“점점 제가 아니게 되어갑니다. 이곳의 마나 때문이겠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갑니다. 제게 부하가 생긴다면 제 폭력이 부하에게 향할 수도 있습니다.”

카시아스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곳에 와서 빠르게 강해지고 있는 이들은 다 미쳐가는 중이라고.

“그건 걱정 말게. 자네가 대장의 자리를 맡는다면 줄 선물이 있으니.”

“그게 무엇인가요?”

“자네와 어울리는 도구··· 아니, 무기라고 할 수 있겠군.”

카시아스는 고민했다.

선발대의 대장을 맡아야할지 말아야할지.

하지만 그 선택은 총사령관의 이어지는 말에 단번에 정할 수 있었다.

“자네가 임무만 충실히 수행해준다면 전역시켜주도록 하지.”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던 카시아스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말이었다.

“하겠습니다.”

“좋은 선택이군. 그리고 곧 자네에게 선물을 보내겠네.”

이후 카시아스에게 총사령관으로부터 선물이 도착했다.

그 선물은 실이었다.

선물에는 편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성스러운 기운을 품은 실이라고···?”

카시아스는 실을 쥐어보았다.

마음이 점점 차분해져갔다.

“좋은 물건이군.”

카시아스가 퇴마검의 실을 교체했다.

나는 그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의 퇴마검은 실이 그저 평범한, 단단할 뿐인 실이었던 거였다.

하지만 그 실로 카시아스는 수많은 적을 쓰러뜨렸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군.’

이 실은 카시아스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카시아스는 이제 총사령관에게 직접 명령을 받기 시작했다.

보통은 정찰임무였다.

그다음으로는 별동대의 임무였다.

그렇게 점점 카시아스는 마계에서의 싸움에 성장해져가기 시작했다.

***

수하르가 마계로 떠난 직후 에피니아도 따라가려고 했다.

그런 에피니아를 아미스가 붙잡으며 말렸다.

“안 되십니다!”

“나를 위해서 수하르가 저곳으로 갔어. 그런데 나는 그냥 구경만 하라는 거야? 난 그렇게 못해!”

“그를 믿으시죠. 그는 강합니다.”

최선을 다해 에피니아를 달래는 아미스였지만, 에피니아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더 지체해서는 안 돼! 빨리 가봐야 해!”

수하르가 넘어간 직후 마수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수가 다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설마···!”

에피니아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파스타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녀님, 제가 마수를 막고 있겠습니다.”

마계에서 넘어오는 마수를 파스타르가 막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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