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카시아스는 선발대 겸 별동대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퇴마검의 새로운 실이 카시아스에게는 날개가 되었다.
그렇기에 점점 마족들 사이에서도 카시아스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하, 역시 자네를 선택한 건 잘한 행동이었군.”
“그보다 신기하군요.”
카시아스의 의문은 내게도 전해졌다.
“마족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길래, 성물에 취약한 것일까요?”
신의 축복이 깃든 물건.
전설에 따라 마족 출정대도 성물을 챙겼다.
그리고 그 선택이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 길이 되었다.
“음··· 전설대로라면 신에게 도전한 어리석은 지성체일 뿐이지.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닐 것이다.”
“그건··· 그렇네요.”
그나저나 총사령관이 이렇게 따로 카시아스를 불렀다는 것은 새로운 임무를 내려주려는 게 분명했다.
“작전서라네. 한번 보게.”
총사령관이 건넨 작전이 적힌 종이.
카시아스는 작전서를 받아 읽었다.
‘이건··· 불가능이다!’
카시아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자네와 자네의 부하들은 영웅이 되는 걸세.”
카시아스는 영웅이라는 말에 흔들리고 말았다.
‘영웅이 되는 것이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카시아스는 이 작전을 승낙하기로 했다.
“이 커다란 저택에는 분명 고위 악마가 있을 것이야. 하위 개체들과 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을테지.”
“그렇겠죠.”
최근에 발견한 커다란 저택.
그곳을 공격하자는 게 총사령관의 작전이었다.
그 작전에서 카시아스에게 온 임무는 조금 무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자네의 역할이 크네.”
“네, 알고 있습니다.”
작전의 성공유무가 카시아스에게 달렸다.
카시아스와 부하들은 우회하여 고위 악마를 직접 상대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는 무리에 가까웠지만, 카시아스는 결국 승낙했다.
그리고 작전의 당일.
“대장은 살아주세요···.”
피를 흘리는 부하의 모습을 끝으로 카시아스는 도망쳤다.
***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카시아스는 고위 악마에게 패배했다.
게다가 후방에서 오던 보급도 오질 않기 시작했다.
고립된 상황이었다.
“카시아스··· 자네가 성공만 했다면···.”
“······.”
“무슨 낯짝으로 도망쳐나온 것인지··· 나 원참···.”
모두가 카시아스를 비난했다.
그간의 성과를 생각해 처벌은 면했지만, 카시아스는 패배자가 되어버렸다.
모든 게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카시아스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야 고위 악마가 이를 예상했다는 듯이 함정을 파놓았으니까.’
하지만 카시아스는 아무 말도 못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분명 누군가 배신자가 존재하는 것이었기에.
시간은 흐르고, 카시아스는 자신의 실수를 만해하기 위해 다시 중요한 임무에 출동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역시··· 배신자가 존재했구나···.”
총사령관의 보좌관이 배신자였다.
비릿한 웃음을 짓는 보좌관.
“배신자라니··· 나는 본래부터 악마의 종이었거늘.”
보좌관이 가슴을 드러냈다.
보좌관의 가슴에는 악마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나의 주인께서는 네놈이 가장 거슬렸다고 하더군.”
“······.”
“하지만 관대하신 나의 주인께서 너를 용서하시기로 했다.”
카시아스는 당황했다.
곧바로 저 보좌관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챘다.
“악마의 종이 되라는 것이라면 난 거절하겠다.”
“아쉽구나!”
카시아스는 미친 듯이 싸웠다.
하위 악마와 마수가 카시아스를 노렸지만, 카시아스는 계속해서 싸웠다.
그리고 몸에 힘이 빠지고 있을 때 카시아스는 한 가지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은 보좌관도 눈치챘다.
“오호, 그곳에 떨어지겠다는 건가?”
“······.”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
보좌관의 눈빛이 바뀌었다.
무언가 들린 듯이.
“그곳은 심연의 구멍이다. 네놈은 거기에 떨어져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악마의 종놈에 죽는 것보단 나은 선택이겠지.”
하고 카시아스는 구덩이 몸을 던졌다.
***
카시아스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온몸이 망가졌다.
몸이 수복되어 가긴 했지만, 그 대가로 퇴마검을 쥘 수 없게 되었다.
“마기가 몸에 가득하구나···.”
몸이 점점 흉측하게 변해갔다.
퇴마검을 드는 것마저 힘들었다.
그럼에도 카시아스는 생각했다.
이곳을 어떻게 탈출해야하는지.
어떻게 돌아갈 수 있는지.
“미쳐버리겠구나.”
끝없는 어둠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았다.
카시아스는 미치지 않기 위해 검을 들었다.
손이 타들어갈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검술과 마나호흡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대단한 정신력이야···.’
카시아스는 잘못된 호흡법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신체가 마기로 수복된 순간, 다시 마나호흡법을 발전시켰다.
점차 마나호흡법은 완벽해져갔다.
신체능력을 올려주고, 자연치유력도 올라갔다.
“후···.”
카시아스는 전보다 더 강해졌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시 올라갈 수는 없겠군···.”
높아도 너무 높았다.
이곳을 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던 순간 한 녀석 카시아스에게 다가갔다.
“누구냐!”
흉측한 몰골의 노인.
기분 나쁜 시선의 정체는 노인이었다.
“자네라면···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네!”
노인이 카시아스에게 다가갔다.
그런 노인을 카시아스가 제제했다.
“당신의 정체는 뭐지?”
“자네의 선배라고만 말해두지.”
노인은 자신의 손에 든 보석을 던졌다.
카시아스는 그 보석을 베어냈다.
그리고 환한 빛이 보석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한동안 카시아스는 눈을 뜨지 못했다.
‘어··· 뭐지··· 기분이··· 좋다?’
카시아스를 통해 산뜻하다는 기분이 느껴졌다.
눈을 뜬 카시아스는 한 동굴에 있었다.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마계가 아니구나···.”
돌아온 것이었다.
카시아스는 동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나갈 수 없었다.
“끄아아악!”
나가려던 순간, 몸이 불타는 고통을 느꼈다.
마계에 익숙해진 몸은 태양 앞에 몸을 드러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
정체불명의 노인이 카시아스를 이곳으로 보낸 것에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카시아스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한다 해도 동굴을 넓히는 게 끝이었다.
***
동굴은 점점 발전되어갔다.
지하 4층까지 파내었다.
각 층마다 자신이 지낼 공간을 만들어냈다.
죽지도 않고, 무료한 삶을 보내던 중에 손님이 찾아왔다.
상처 입은 청년이었다.
“어떻게 여기에 온 것이지···?”
카시아스는 청년이 가진 물건으로 치료를 해주었다.
정신을 차린 청년은 카시아스에게 감사를 표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청년의 물음에 카시아스는 고민에 빠졌다.
솔직하게 자신에 대해서 말해도 되는 것인지.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카시아스 라이크.”
“라이크···요?”
“그래, 카시아스 가문의 라이크라고 한다.”
청년은 의아하다는 듯 카시아스를 쳐다보았다.
“제가 라이크 가문의 사람을 아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라이크 가문을 안다고?”
하지만 청년이 알고 있는 라이크 가문은 카시아스가 가주로 있던 라이크 가문이 아니었다.
몇십 년이나 지나 있던 것이었다.
평민들이 반란을 저질렀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귀족은 몰살당했다고 했다.
살아남은 귀족은 특별한 능력을 물려받지 못한 귀족뿐.
그 마저도 새롭게 귀족자리에 오른 평민들에게 박해받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황제는 누구인가?”
“어느 제국의 황제를 말하시는 거죠?”
카시아스는 또다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제국이 여러 나라로 나뉘어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마계 출정대는···.”
“네···? 아··· 그 실패한 정책이요?”
“실패하다니···?”
“강한 능력을 가진 귀족들이 전부 마계로 넘어가서 평민들의 반란이 성공한 거였잖아요.”
카시아스는 절망했다.
“그럼··· 여긴 어디지?”
“모로 왕국 수도에 있는 뒷산이죠.”
“모로 왕국···.”
카시아스가 들어도 모르는 지명이었다.
‘모로 왕국이라··· 분명 로토 왕국 전에 있던 나라였지.’
카시아스는 도대체 왜 이곳에 온 것인지 의아했다.
밖은 나갈 수 없고, 세상은 바뀌었다.
“그런가···.”
카시아스는 스스로 해답을 찾아냈다.
정확히는 원망의 대상을 만들어냈다.
마족이다.
마족이 있어서 문제였다.
카시아스는 마족에게 복수하기로 정했다.
“자네··· 혹시 마법을 쓸 줄 아는가···?”
“음··· 저는 쓸 줄 모르는데 제법 유명한 마법사와 연줄이 있긴 합니다.”
“그 마법사 좀 불러줄 수 있나?”
“괜찮긴 한데··· 돈이 꽤 필요할 거예요.”
카시아스가 품 안에 주머니를 꺼냈다.
“이 세상에 없는 보석이다. 오직 나만이 가지고 있을테지.”
나는 그 보석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메드락···!’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탓에 내가 놓쳐버린 것 중 하나였다.
카시아스는 가문으로 돌아갈 때를 대비해 귀해 보이는 보석을 모으고 있던 것이었다.
청년은 그 보석을 받아 들고, 동굴을 떠났다.
“내 힘을 후인에게 넘기는 걸로 복수하고 말겠다.”
그렇게 기억이 끝이 났다.
허무함만이 남았다.
‘카시아스···.’
불쌍한 남자였다.
인정받기 위해 떠났지만, 결말이 나빴다.
게다가 엉뚱하게 분노를 하고 있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맞았다.
언젠가 마족은 인간에게 복수할 것이었고, 실제로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보다 모든 기억이 끝난 거 같은데···.’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공간이다.
점차 밝게 빛나는 곳을 발견했다.
나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손에는 퇴마검을 쥔 채로 말이다.
***
책의 악마 크부는 책을 펼쳤다.
책의 두께는 매우 얇았다.
“강제 계약을 위해 책의 절반 넘게 바쳤다. 네놈은 찰나의 순간에서 깨어나질 못할 것이다.”
크부의 계약내용은 이랬다.
찰나의 순간을 버티면 크부는 에피니아를 만나러 가야만 했다.
수하르가 버티지 못한다면 수하르의 육체와 영혼은 크부에게 종속된다.
한마디로 종이 된다는 것이었다.
“아직인가···.”
슬슬 계약이 끝이 나야 정상이었다.
크부는 불길한 생각에 잠겼다.
“설마···.”
크부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어떤 존재라도 이 게임을 이겨내지 못했다.
고위 악마라도 이 게임을 버티지 못했다.
크부에겐 확신이 있었다.
“어···.”
하지만 크부의 확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누워있는 수하르의 검지가 움직인 것이다.
“이럴 수가···.”
이윽고 수하르가 일어났다.
그리고 수하르는 크부를 향해 검을 겨누며 말했다.
“자··· 이제 가보실까!”
***
아직도 어지럽다.
짧은 순간에 많은 기억들이 몰려왔다.
“뭐해··· 안 움직이고.”
내 말에 크부가 천천히 움직였다.
크부의 앞에 구체가 생겨난 것이다.
저것이 분명 에피니아가 있는 곳으로 가는 통로일 테지.
“이럴 수 없다. 어떻게··· 이 게임을 이겨낸 것이지?”
“뭐··· 그냥?”
크부는 통로로 몸을 던졌다.
나 역시 뒤따라 통로로 몸을 던졌다.
통로의 끝.
한 인물과 눈을 마주쳤다.
‘파스타르.’
파스타르가 마수와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크부의 등장으로 마수가 전부 멈추었다.
나는 크부의 목을 잡아냈다.
그리고 크부를 땅에 처박았다.
마법진이 지워지면서 통로가 닫혔다.
“······.”
그 안에 있던 누구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무릎을 꿇은 채 경직되어 있는 에피니아를 발견했다.
눈가를 보니 붉다.
울었던 모양이다.
나는 에피니아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다녀왔어요.”
잠시 멍하게 있던 에피니아.
에피니아도 내게 밝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어서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