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폴테인이 말한 방법은 이랬다.
“파스타르와 경기 전에 파스타르와 이벤트 경기을 한 판 하는 거죠.”
“네?”
“양측이 무기 없이 맨몸으로 겨루는 겁니다.”
나도 검사고, 파스타르도 검사다.
검사가 맨몸으로 겨룬다는 것은 확실히 이벤트성이 강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요.”
거구의 파스타르를 생각해보았다.
신체적으로 내가 불리한 게 당연하다.
하지만 내겐 신체를 강화하는 방법이 존재한다.
충분히 승패를 알 수 없다.
게다가 양측 모두 소드마스터.
맨몸으로 싸워본 적이 없어서 제법 흥미로웠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파스타르도 동의해야 가능한 게 아닌가요?”
파스타르가 동의할까 생각해보았다.
“그건 괜찮을 겁니다.”
“왜죠?”
“파스타르 님은 무기 없이 싸우는 걸 좋아하시거든요.”
무기 없이 싸우는 걸 좋아한다고?
“사실 오우거와 맨몸으로 싸우는 것도 전부 파스타르 님이 원해서 만들어진 거거든요.”
“그게 정말인가요?”
“네, 원래 파스타르 님이 챔피언이 되기 전엔 몬스터와 맨몸으로 싸우는 건 존재하지 않았어요.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건 있어도 말이죠.”
파스타르를 생각해보았다.
거구에 방어구는 입지 않는다.
매 경기마다 상체를 드러낸 채 경기에 임하는 사람이다.
“확실히 맨몸 경기를 좋아할 거 같긴 하네요.”
파스타르와 맨몸 경기는 매우 어울렸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할까요?”
“네.”
합의가 끝난 후 나는 훈련장을 향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맨몸으로 몬스터를 상대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이번 상대는 오우거다.
“음···.”
잠시 고민을 해보았다.
신체를 강화하면 파스타르와 충분히 비견될 정도로 신체능력이 올라간다.
그렇다는 건 나 역시 충분히 오우거를 상대할 수 있다는 소리다.
걱정되는 건 힘 조절이었다.
“주먹을 휘두르면 비기가 나올까?”
지금까지 주먹으로만 싸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소드마스터의 경지와 비견될 주먹의 경지는 없다.
애당초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비효율적이니까.
“한번 해보자.”
검을 들었을 때처럼 주먹에 의지를 담았다.
동시에 주먹을 내질렀다.
콰쾅.
저번에 내가 반파시킨 벽 옆에 다시 구멍이 뚫렸다.
“어··· 진짜 나가네?”
하지만 파스타르가 오우거를 상대했을 때는 이런 걸 본 적이 없었다.
비기가 나간 주먹에서 통증이 몰려왔다.
“피부가 벗겨졌나···.”
주먹이 붉었다.
이래서 파스타르도 주먹으로 비기를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파괴력은 검으로 쓴 비기와 비견될 정도였다.
“소드마스터도 좋은 검을 찾는 이유가 있구나.”
검으로 쓸 때 오던 반동이 주먹으로 온 게 주먹의 상처다.
다른 이들보다 튼튼한 피부를 가졌는데도 피부가 온전치 않았다.
그만큼 검에게도 부담이 가는 게 비기라는 소리다.
“게다가 소드마스터는 한 번의 휘두름이 비기가 될 수 있으니까.”
비기를 쉴 틈 없이 써대는 소드마스터의 검은 그만큼의 부담이 있다는 소리였다.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겠네.”
내가 사용하고 있는 퇴마검은 과거 장인이 만든 검이었다.
그 장인의 솜씨가 대단한 것은 퇴마검이 만들어질 때 쓰였던 돈을 생각하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희귀금속까지 쓰였다.
“그나저나 맨몸이라···.”
정 안될 때 손해를 감수하고 주먹으로 비기를 쓰면 된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하기 싫다.
나도 파스타르처럼 비기를 쓰지 않고 이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오우거를 상대할 만한 맨몸격투술이라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뭐, 말은 쉽지만 단기간에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기에 단 하나의 동작을 연습했다.
흔히 말하는 정권지르기.
명치를 노리는 곧은 주먹.
‘이걸 발전시키는 거야.’
파스타르보다 더 화려하게 오우거를 질식시키는 걸로 끝낼 생각은 아니다.
***
콜로세움.
입에 재갈이 물린 오우거가 있었다.
옆에는 건장한 사내들이 오우거를 구속하고 있었다.
“종이 다른 건가?”
전에 보았던 오우거들과는 달랐다.
머리가 하나 더 커보였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지금껏 수련한 한 방이 있다.
사회자가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곧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네.”
그리고 오우거의 옆에서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하는 게 보였다.
콜로세움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오우거가 마법으로 잠들었다.
옆에서 오우거를 구속하던 사내들이 오우거의 구속구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경기장을 떠나는 사내들.
사회자가 손가락을 펼친 채 머리 위로 손을 들었다.
한 손가락씩 접어가고, 주먹이 쥐어지는 순간.
“경기 시작합니다!”
관중들의 침묵이 깨지며 커다란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잠들었던 오우거가 깨어나며 나를 보았다.
약간은 피곤해 보이는 듯한 오우거.
그럼에도 몬스터의 위용은 잃지 않았다.
‘확실히 오우거들 사이에서도 꽤나 힘을 썼던 녀석처럼 보이네.’
오우거가 고개를 흔들며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다.
오우거가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심호흡을 시작했다.
이 경기를 위해 연습한 단 하나의 동작을 위해서였다.
‘내가 맨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공격.’
신체를 강화했다.
직진으로 달려드는 오우거를 겨냥하고 주먹을 내지른다.
내 주먹과 오우거의 명치가 부딪히는 순간.
“바로 지금!”
신체 강화를 극한으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약간의 마나를 담았다.
쾅!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오우거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우와아아아!”
관중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사회자 또한 내 승리를 축하했다.
게다가 내 주먹은 오우거의 상태와 다르게 멀쩡했다.
단 한 방으로 경기가 끝난 것이다.
나는 대기실로 돌아가 오늘의 경기를 회상했다.
‘이 기술을 익히는데 꽤나 힘들었지.’
이런 기술을 앞으로 쓸지는 모르겠다.
효율이 안 좋다.
검을 잃어버렸을 때는 파괴력이 있는 좋은 기술일지도 몰라도, 검이 있는 상태엔 전혀 아니다.
‘이 기술의 중점은 타이밍이지.’
신체를 극한으로 강화하면 힘이나 피부의 강도가 올랐다.
하지만 속도가 느려지며 오히려 제대로 된 힘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최대한의 이득을 만들기 위해 한순간에 집중했다.
‘오우거와 내 주먹이 부딪히는 바로 그 순간!’
속도를 유지한 채 힘과 피부강도를 높였다.
그리고 약간의 마나를 담아 마치 비기와도 같은 파괴력을 뽐냈다.
‘하지만 파스타르와의 이벤트 경기엔 못 쓰겠지.’
이 기술은 순전히 오우거라서 가능했던 기술이었다.
단순한 오우거였기에 타이밍을 맞추기 쉬웠다.
만약 인간이라면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웠을 것이다.
‘역시 파스타르와의 경기는···.’
전문적이 맨몸격투를 배워야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선생님으로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미스.’
아미스가 직접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어떻게 싸우는지는 들을 수 있었다.
‘커다란 망치를 이용해 싸우지만, 기본적으로 권갑을 착용하고 주먹으로 싸운다고 그랬지.’
웬만한 상대는 맨몸으로 상대하는 게 망치를 사용하는 것보다 편하다고 그랬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바쁜 아미스에게 배울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에피니아한테 한 번 물어봐야지.’
생각을 마치고 나는 여관으로 돌아갔다.
메시아에게 내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
다행히도 허락이 떨어졌다.
아미스에게 맨몸격투술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훈련장에서 아미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아미스가 왔다.
“맨몸격투술을 배우고 싶다고 들었습니다.”
“네.”
“흠··· 솔직히 맨몸격투술을 배워두면 좋지만 검사에겐 시간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은 동의한다.
맨몸격투술이라고 하면 검이 없을 때나 쓸만한 수였다.
그런데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검사는 검을 놓고 다니지는 않는다.
상대에게 검을 날려질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이미 패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검사가 검이 아닌 맨몸격투로 자신의 검을 날린 검사를 이길 수는 없겠지.’
애당초 수준 차이가 난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검이 있어도 못 이기는 상대를 어떻게 맨손으로 이길 수 있을까.
맨몸격투술의 가장 단점은 유용하지가 않다.
무기를 든 상대를 어떻게 맨몸으로 상대할 수 있을까.
리치부터 차이가 나기에 맨몸격투술은 대다수가 배우지 않는다.
하지만 아미스는 배웠다.
“저는 신성력을 바탕으로 싸우니 맨몸격투술은 제법 유용하죠.”
신성력이 가진 큰 장점 중 하나다.
치유마법을 가지고 다시는 것이다.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절로 치유된다.
신성력을 이용한 신체강화를 하면 그 치유력은 급상승한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저는 솔직히 맨몸격투술을 배우는 걸 반대하는 입장입니다만···.”
“그래도 전 배우고 싶습니다.”
파스타르와의 이벤트 경기.
이벤트 경기라는 이유로 파스타르에게 지는 게 싫다.
할 수 있는 모든 걸을 해볼 생각이다.
져도 상관없는 경기라고 하여도 말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안 가르쳐드릴 수가 없군요.”
“그런데 바쁘실텐데 괜찮으신가요?”
아미스가 미소를 지었다.
“카시아스, 아니 수하르님은 저희 황가에서 은혜를 갚아야할 분입니다.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아··· 감사합니다!”
아미스가 내게 넌지시 물어왔다.
“그런데 이번에 오우거랑 경기하셨을 때···.”
“네.”
“그 기술··· 에피니아 님에게 배우신겁니까?”
“아니요.”
에피니아에게 배운 것은 신체를 강화하는 것뿐이었다.
“혹시 문제 있을까요?”
이후 신체에 가해진 문제는 없었다.
“아, 몸에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닌데 기존에 있던 기술이었거든요.”
“네? 진짜요?”
아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으로 신체강화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맨몸격투술에 포함되는 기술이고요.”
좋은 소식이었다.
그 말인즉 내가 배울 게 하나 줄어들었다는 소리니까.
“그런데 어떻게 훈련이 진행될까요?”
맨몸격투술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어떤 방법으로 진행되는 걸까.
“이런 말씀드리기는 죄송스럽지만, 맨몸격투술이라고 불릴만한 건 아닙니다.”
“불릴만하지 않다고요?”
“사실 그냥 맨몸으로 싸우는 법이라 딱히 정해진 자세 같은게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 변해가는 거죠.”
사람에 따라 변해간다라···.
되게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런 격투술은 어떻게 가르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아미스의 덩치가 점점 커졌다.
“우와···.”
나는 할 수 없는 영역의 신체강화.
나보다 작던 아미스가 나보다 커졌다.
“그저 대련할 뿐이죠. 대련을 하면서 조언을 해드리는 게 훈련방식입니다.”
“그렇군요.”
아미스가 자세를 취했다.
엉성하게나마 나 또한 아미스의 자세를 따라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남을 따라하는 게 아닌 자신에게 맞는 자세를 찾아야합니다.”
하고 아미스는 말을 마치자마자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덩치와 다르게 빠른 주먹.
애당초 빠르게 휘두르던 주먹이 한순간 더 빨라졌다.
아슬아슬하게 주먹을 피한 나는 아미스와 거리를 벌렸다.
‘이건···?’
내가 오우거를 상대했을 때의 방식이었다.
“신체를 강화한 상태로는 이런 폭발력을 이용해 맨몸으로 싸우는 겁니다.”
“괜찮으신가요?”
이 방식의 단점은 내가 잘 알고 있다.
상대방이 맞지 않을 시엔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탈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아미스는 멀쩡해보였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하지만 않는다면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 말에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방금 그것이 전력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조금 진지해져야겠는데···?’
잘못 맞으면 큰일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