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74화 (74/150)

#74화.

파스타르와의 이벤트 경기는 이주일 뒤의 일이다.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맨몸격투에 익숙해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파스타르를 제대로 상대하기 전에 한 번의 패배도 당하기 싫었다.

“아미스, 이제 슬슬 익숙해지는 거 같은데 좀 더 난이도를 올려도 될 거 같습니다.”

아미스의 훈련방식은 제법 익숙했다.

검성이 생각나는 훈련이었다.

그저 대련만 할 뿐인 훈련.

물론 아미스의 훈련은 검성에 비교하면 천사와 다름없었다.

“성장이 제법 빠르시군요.”

아미스의 공격을 피하고 빈틈에 내가 공격하는 반복.

그러나 아미스는 나를 위해 많은 것을 봐주고 있었고, 그를 나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행동의 반복으로 내 자세는 점점 맨몸격투술에 가까워져갔다.

마지막의 대련을 끝내고 아미스가 말했다.

“이주 뒤면 파스타르와 맨몸격투라···.”

“역시 힘들까요?”

파스타르가 나보다 맨몸으로 싸우는 것이 익숙해보였다.

그것은 오우거를 상대했을 때 보았으니 말이다.

“파스타르는 사실 뒷골목 출신입니다.”

“뒷골목 출신요?”

“말하자면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기 전엔 그저 뒷골목에 흔하게 널린 건달일 뿐이었죠.”

파스타르가 건달출신이었다니.

“건달이 싸우시는 걸 본 적 있습니까?”

아미스의 말에 넘버완이 떠올랐다.

건달이라기엔 착실한 녀석.

넘버완과 첫만남에선 칼을 꺼내들었다.

아마 위협용이었을테지.

“건달을 상대해본 적은 있습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주먹을 씁니다.”

“주먹이요···?”

제가 봤던 건달은 칼을 썼습니다만.

“아, 물론 칼을 쓰는 건달이 존재하긴 하지만 보통은 주먹이 먼저입니다.”

“그렇군요.”

“파스타르 또한 주먹질 좀 하던 건달이었죠.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아십니까?”

“저보다는 맨몸으로 싸우는 게 익숙하단 소리군요.”

아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배운 이후론 검을 주로 쓰지만, 주먹을 쓸 때도 많아 경험으로는 파스타르가 더 맨몸싸움에 익숙할 겁니다.”

파스타르가 나보다 맨몸싸움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지기 싫었다.

이기지 못하더라도 절대 지진 않을 생각이다.

“그런데 파스타르와 수하르 님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음···.”

역시 가장 큰 차이는 체급이겠지.

신체강화를 하더라도 파스타르가 더 크다.

“당신에게 맨몸으로 싸우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스승이 있다는 점입니다.”

내 생각과 다른 말.

“그것도 차이긴 하네요. 그런데 그게 왜···.”

스승의 유무에 단서가 있는 것일까.

“파스타르의 맨몸 싸움은 뒷골목에나 널린 것. 반면 제가 가르치고 있는 것은 제대로 된 격투술입니다.”

“그게 크게 상관이 있을까요?”

아미스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빈틈을 드러낸 곳은 전부 급소입니다.”

그 점은 나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뒷골목에 건달은 그런 급소 같은 건 모르죠. 그냥 주먹을 휘두를 뿐입니다.”

그런 건가.

하지만 파스타르는 소드마스터다.

“파스타르도 급소를 알고 있지 않을까요? 명색에 소드마스터인데.”

“검과 주먹의 급소는 많이 다릅니다. 물론 같은 부분도 있겠지만요.”

크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두루뭉술하게 다가왔다.

그런 내 심정을 눈치챈 것인지 아미스가 덧붙여 설명해주었다.

“음··· 검으로 턱을 노리신 적이 있습니까?”

턱이라···.

굳이 노린 적이 없다.

노린다면 다른 부위를 노리겠지.

“딱히 없는 거 같네요.”

“하지만 주먹으로 가격할 때는 턱을 노리죠.”

토너가 떠올랐다.

분명 나도 토너를 상대할 때 턱을 노렸다.

“그렇네요. 그런데 그런 알기 쉬운 곳은 파스타르도 알고 있을텐데.”

“제가 빈틈으로 턱만 보여드리지 않았습니다.”

“아···.”

아미스는 내게 여러 곳의 빈틈을 보였다.

그 말인즉 주먹으로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곳이란 소리였다.

“앞으로 당신이 하실 일은 하나뿐입니다. 급소를 공격해서 치명상을 입히는 거죠.”

“과연··· 그 방법이라면···.”

내가 파스타르를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분명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두고 보시죠, 파스타르.’

파스타르와의 맨몸 경기를 이기고, 챔피언의 자리를 건 경기마저도 이겨내고 말 것이다.

***

파스타르와의 이벤트 경기가 일주일 남은 시점에서 나는 에피니아를 찾아갔다.

“에피니아, 그 책 아직 있나요?”

“응, 그런데 많이 이상해···.”

책이 이상하다는 게 무슨 말일까.

그런 의문은 책을 받고나서 곧바로 깨달았다.

“책이 옅어지고 있네요?”

책이 투명해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라지고 있는 중이겠지.

“왜 이런 건가요?”

“나도 잘 모르겠어. 악마가 아닌 인간에 손엔 오래 못 있는 책이었다든가 그런 게 아닐까?”

책이 사라진다고 생각해보았다.

‘별문제 없겠는데?’

회귀 전의 노블리스란 조직이 어떤 곳에서 활동했는지 모조리 기억해두었다.

그 책을 통해 알고 싶은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단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검성님···.’

아카데미에 들어갔을 당시를 떠올렸다.

검성은 나의 아버지인 칼데르트가의 가주와 친분이 있었다.

이렇게 나를 따로 가르칠 정도의 친분이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실 적에 검성은 찾아오질 않았다.

그게 마음 한켠에 남았었다.

‘내가 가주가 된 이후로 사석에서 뵌 적도 없고.’

검성이 있던 곳은 항상 전쟁터였다.

검성의 성향을 생각해본다면 전쟁터는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직접 본 검성은 거칠음 속에 친절함이 있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전쟁터에 살다시피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말이다.

‘어디 한번···.’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어째서 전쟁터로 향했는지.

어째서 아버지의 장례식 때마저 오지 않았는지.

‘······!’

책을 펼치니 검성에 대한 정보가 적히기 시작했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내 나이는 열일곱.

회귀 전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스무 살 적의 일.

‘이런 일이···.’

아버지의 장례식 때 검성이 찾아오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검성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살았던 이유도 검성의 뜻이 아니었다.

어째서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노블리스의 마수가 로토왕국을 좀 먹고 있었구나.’

내가 확인할 수 있던 것은 로토왕국와 대륙 곳곳에 있는 노블리스의 본거지였다.

그 안에 담긴 사연이나 사건은 모른다.

하지만 그중 하나의 사건은 검성이 틀림없다.

‘모든 일을 끝내고, 바로 가봐야겠어.’

검성은 자신의 자식인 사르키드 가문의 가주를 볼모로 잡힌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 일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란 것만 다행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

파스타르와 이벤트 경기날이 찾아왔다.

콜로세움은 여느 때와 다르게 관중석에 빈곳을 찾기 어려웠다.

‘압도적으로 파스타르의 팬이 많군.’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새롭게 도전하는 나를 응원하는 인원들도 있지만, 파스타르의 인기를 따라 잡을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파스타르의 한 팬이 외치는 게 귀에 들려왔다.

“불변의 챔피언! 힘내라!”

불변의 챔피언.

지금은 몇 사람밖에 말하지 않지만, 훗날 파스타르는 그렇게 불렸다.

‘그야 당연히 챔피언이 계속해서 바뀐 적이 없으니까.’

파스타르를 이기는 자는 앞으로 나오지 않는다.

콜로세움은 항상 랭킹 2위를 다투는 경기가 되어버리곤 했다.

자라나는 새싹들을 파스타르가 짓밟는 것도 아닌데 그 누구도 파스타르를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역사는 내가 바꿔주마.’

시작은 이벤트 경기다.

이벤트 경기로 파스타르에게 첫 패배를 선사해줄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제대로 된 경기로 파스타르를 꺾을 것이고.

내 정면에 있는 파스타르를 보았다.

파스타르는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건치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방심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내 작은 소망이다.

이기는 것이 목표지만, 그렇다고 시시한 경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파스타르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봐, 그 누가 자네 상대로 방심을 하겠나. 게다가 나는 자네가 악마의 목을 베는 것도 보았거늘.”

파스타르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 힘··· 이번에도 쓸 생각인가?”

그 힘이라고 하면 염동력을 말하는 것이겠지.

솔직히 나는 당황했다.

내가 책의 악마인 크부의 목을 벤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내 힘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었다.

“아니요. 순전히 제 실력으로 가볼 겁니다.”

“흠··· 좋지 않군.”

“네?”

“난 전력을 다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네만.”

지금 파스타르는 분명 내게 그 힘을 써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됩니다. 검만으로 당신을 이겨보는 게 목표라서.”

“뭐, 크게 상관은 안 하겠다만 이번 경기는 이벤트 경기가 아닌가.”

“죄송합니다.”

심드렁해보이는 파스타르.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게도 생각은 있었다.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어떻게 쓰라는 거야.’

내가 힘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 건지.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솔직히 예전이라면 염동력까지 쓰야 어느 정도 상대가 되었을 터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같은 소드마스터.

게다가 이번 이벤트 경기는 맨손.

맨손격투술까지 익혀왔다.

염동력 따위 쓰지 않아도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봐, 사회자. 시간 그만 끌고 바로 시작하지.”

파스타르의 말에 사회자는 경기 시작을 알렸다.

그와 동시에 나와 파스타르는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러실 줄 알았습니다.”

“알았으면 뭘 하게.”

파스타르가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나 또한 주먹을 휘둘렀다.

오우거를 상대했을 때 썼던 기술로 말이다.

내 주먹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은 파스타르.

내지르던 주먹의 궤도를 내 주먹으로 이동했다.

“크윽.”

“윽···.”

서로의 주먹이 부딪혔다.

오우거를 상대했을 때 썼던 것보다 위력은 낮아도 충분히 강한 주먹이었다.

그 주먹을 파스타르는 같은 주먹으로 막아냈다.

“자네··· 주먹이 아주 맵군!”

“혹시··· 조상 중에 몬스터가 있거나 그러십니까?”

나는 신체강화를 통해 피부의 강도가 올라간 상태였다.

하지만 파스타르는 그런 것 없이 멀쩡했다.

인간이 아니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지.”

“갑자기요?”

“나는 건달이었다.”

알고 있습니다만.

“건달시절 나보다 강자를 쓰러트리기 위해 내가 선택한 단련법은 계속해서 바위에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었지.”

“단순 무식하군요.”

“피부가 벗겨지며 더 강한 피부로 재생되었지. 이게 바로 그 결과다.”

확실히 파스타르 주먹의 피부는 거칠어 보이고, 단단해보였다.

게다가 타고난 것인지 주먹이 컸다.

“솔직히 나는 검보다 주먹이 더 좋다네!”

하며 다시금 주먹을 휘두르는 파스타르.

근접한 상태에서 나는 파스타르의 주먹을 피해갔다.

그러며 아미스와 훈련한 대로 급소에 주먹을 휘둘렀다.

내 공격은 성공하고, 파스타르의 공격은 내가 피하는 구도.

그 구도는 분명 내가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파스타르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맷집마저 괴물이시군요.”

내가 파스타르를 발로 차며 그 반동을 이용해 파스타르와 거리를 벌렸다.

“내가 이야기를 하나 더 해주도록 하지.”

난데없이 파스타르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