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파스타르와의 이벤트 경기가 끝난 뒤 남은 것은 파스타르와의 경기뿐이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나와 파스타르의 경기를 기대하고 있을 터였다.
여관에 쉬고 있던 내게 메시아가 말을 걸었다.
“축하드립니다.”
“아니야··· 이번 경기는 내가 진 거나 다름없는 거야.”
처음 정했던 것과 다르게 염동력을 사용했다.
게다가 검이 아닌 주먹이었다.
제대로 된 승패는 이제 파스타르와의 경기에서 정해질 예정이다.
‘만약 이번에도 염동력을 써버리면 어떡하지.’
파스타르와 맨몸과의 싸움 때는 나도 모르게 나왔다.
그만큼 파스타르가 선사하는 위압감은 대단했다.
하지만 검만큼은 검만큼으로만 이기고 말 것이다.
지더라도 검으로만 상대하다 질 것이다.
“그렇다는 건 역시 훈련밖에 없겠지.”
파스타르가 어떻게 싸우는지는 기억하고 있다.
솔직히 파스타르가 콜로세움에서 한 경기에서 제대로 싸운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소드마스터가 되고 나서 깨달은 점이니까.’
소드마스터다운 위용을 보여주는 파스타르였다.
적어도 그 당시 내가 보기엔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대충에 가까웠던 것이었다.
그만큼 소드마스터의 대단한 경지였다.
“나보다 적어도 칠 년.”
어림잡아 칠년 전에 소드마스터가 된 파스타르다.
그만큼 소드마스터란 경지를 이해하고 있다.
그런 사람을 내가 검만으로 이길 수 있을까.
“역시 무리에 가깝겠지.”
요행을 바랄 수 없는 일이다.
애당초 검을 든 파스타르라면 염동력을 쓰더라도 이길 수 있을까 싶다.
그 만큼 검을 들었냐, 안 들었냐의 차이는 컸다.
“그래도 해볼 수 있는 만큼 해야지.”
여기서 나는 한 가지 결심했다.
“한 수 배운다는 생각이 아닌 진심으로 이길 생각으로 임하자.”
곧바로 나는 훈련장을 향했다.
***
파스타르는 자신의 집에서 전에 있었던 경기를 회상했다.
“매우 신기한 힘이야.”
파스타르는 그 힘을 쓰기 전의 수하르와 쓴 후의 수하르를 비교해보았다.
“나를 묶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신체능력을 올릴 수까지 있다니. 정말 좋은 힘이군.”
파스타르는 다음에 있을 수하르와의 경기를 생각했다.
“과연, 내가 검을 들었을 때 그 힘을 쓴다면···.”
파스타르는 생각을 마쳤다.
결과는 모른다였다.
“다음 경기도 그런 능력을 써준다면 재미있겠는데.”
파스타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드디어 검투사가 된 보람을 느끼는군.”
검투사가 된 이후로 처음 겪는 패배.
오랜만의 패배는 파스타르를 고양시켰다.
파스타르는 항상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줬던 자신의 스승을 떠올렸다.
“이번에도 지면 용서 안 할 겁니다,스승님.”
파스타르의 스승은 건달이었던 파스타르를 제자로 들이기 위해 한 말이 있었다.
-내게 배운다면 앞으로 너에게 패배는 없을 것이다.
다소 파격적이며, 오만하게 느껴지는 말.
그 말에 파스타르는 제자가 되기로 하였다.
“스승님, 이번에는 맨몸으로 싸운 거라 진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검을 들었을 때는 지면 안 됩니다.”
맨몸으로 한 싸움은 졌지만, 검의 패배는 용납하지 않을 파스타르였다.
***
콜로세움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었다.
아마 콜로세움이 만석이 되었기에 콜로세움 밖에서 소리라도 구경하려는 인파겠지.
나는 그들 사이를 비집고, 콜로세움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 대기실에서 들어가서 정신을 집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했다.”
오로지 검만을 단련했다.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
“이번엔 실수로 능력을 쓰지도 않을 거다.”
오직 검만.
검으로만 승부를 볼 생각이다.
똑똑.
“들어오셔도 됩니다.”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에피니아가 들어왔다.
나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에피니아가 이렇게 대기실까지 오는 경우는 없었다.
“어? 여긴 웬일이에요?”
“어쩌면 챔피언이 바뀔 수도 있는 경기인데 와야지.”
“하하.”
그랬으면 좋겠다.
“뭐, 그런 것도 있지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었거든.”
“감사합니다.”
제국에 왔을 때 우연하게 본 콜로세움의 경기.
콜로세움에 싸우던 이들을 보았다.
검투사들은 어째선지 신나보였다.
나는 그게 궁금해서 콜로세움을 자주 보러갔던 것 같다.
‘그곳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있던 사람이 파스타르였지.’
파스타르는 항상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웃음이 궁금해서 항상 콜로세움을 찾았다.
하지만 결국 모르고 끝났다.
‘근데 이제는 알것만 같아.’
파스타르가 웃었던 이유.
검투사들이 신나보였던 이유.
‘그야 당연한 일이었어.’
자신의 실력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이곳이었다.
자신의 강함을 뽐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자신의 명성을 올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자신의 부를 축적시킬 수 있는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강자를 위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어.’
경기가 시작되기 전엔 흥분되기까지 한다.
다른 이들과 힘을 겨루는 것이 재미있다.
“저··· 챔피언이 꼭 될게요.”
“기대할게.”
이루기 힘든 목적.
원래 이 말을 꺼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길 생각으로 임하다고는 하나 말할 수 없었다.
무조건 이길 자신 없었기에.
하지만 방금 결심했다.
“절대로 이길 거예요.”
어중간한 각오로는 파스타르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만 가지기로 정했다.
***
파스타르의 대기실.
파스타르 혼자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후···.”
파스타르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평상시 같으면 경기 전에 훈련은 없었다.
도전자와 수준 차이가 많이 났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벤트 경기라고는 하나 검투사인생 첫 패배를 겪었다.
한마디로 파스타르도 긴장하고 있다.
훈련을 하게 될 정도로 말이다.
“과연, 내 기대에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지가 궁금하군.”
파스타르는 자신을 상대로 수하르가 어느 정도까지 버틸지 궁금했다.
***
경기장을 걸어갔다.
먼저 경기장에 있는 파스타르.
챔피언으로의 위용은 경기장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검성과도 같은 위압감.
‘하지만 이런 위압감은 익숙하지.’
많이 누그러뜨려진 위압감이지만 나는 이미 소드마스터와의 대련을 수없이 했다.
내가 소드마스터가 된 상황에서 저런 위압감에 당할게 아니었다.
“이번엔 오직 검만으로만 상대할 겁니다.”
“나는 그 힘을 써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만 알아줬으면 좋겠군. 아니, 오히려 그 힘을 써줬으면 좋겠네. 그래야 재미있지 않겠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만약 제가 힘을 쓰게 된다면 바로 기권을 할 겁니다. 그리고 착각하시고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착각?”
“힘을 쓰지 않아도 재미는 있으실 겁니다. 아니, 오히려 저번처럼 표정을 구겨지실지도 모르겠군요.”
파스타르가 헛기침을 했다.
항상 웃는 표정을 짓던 파스타르였기에 저번 경기에서 지었던 표정은 흑역사와도 같을 것이다.
“뭐, 기대하겠네.”
“네.”
사회자가 관중들을 향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경기장을 확인했다.
‘다르군.’
지금껏 싸웠던 경기장과 달랐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저번 경기가 인상 깊었나보군.’
맨손이라고는 하나 소드마스터끼리의 대련.
그 대련은 소드마스터끼리 싸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었다.
파스타르와 내가 격돌한 마지막 주먹.
그 주먹이 공중에서 수직으로 충돌했기에 피해는 적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콜로세움 안에 있던 모두가 느꼈을 터였다.
‘안전을 위해 경기장의 벽을 제대로 세웠구나.’
나는 이번 경기로 파스타르를 이기고, 콜로세움의 챔피언이 될 것이다.
그다음엔.
‘검성님을 도와주러 가야지.’
집으로 가서 레아를 비롯한 노블리스 조직을 소탕하는 것은 그 후의 일이다.
“···그럼, 이제 바로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생각을 마치고, 파스타르를 바라보았다.
내 전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눈빛을 내게 보내고 있는 파스타르.
그 눈빛에 보답하듯이 나 또한 파스타르를 강렬하게 쳐다보았다.
“양측 준비되셨습니까?”
파스타르와 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 시작합니다!”
나는 파스타르를 천천히 살폈다.
먼저 공격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경지의 선배로 선공은 양보하겠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고맙게 받아들일 뿐이다.
“가겠습니다!”
처음부터 전력이다.
길게 싸워봤자 득 될 게 없다.
상대는 경험이 많은 선배다.
초반부터 전력을 다해 빠르게 끝내는 게 오히려 좋을 터.
힘을 담아 검을 휘둘렀다.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휘두르기만 해도 비기가 나온다.
의도를 한다면 더 강한 비기가 나온다.
“순순히 받아주실 거라 저는 믿겠습니다!”
파스타르라면 내 비기를 피하지 않고, 맞받아칠테지.
예상대로 파스타르 또한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내가 쏟아낸 비기를 맞받아쳤다.
쾅!
마나 덩어리로 이루어진 비기가 부딪히며 공중에서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약간의 먼지가 일어난 순간을 노리며 나는 파스타르에게 달려갔다.
“다시 한번 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파스타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역시나 비기가 나왔다.
코앞에서의 비기였다.
하지만 파스타르는 손쉽게 내 비기를 막아냈다.
“오호, 확실히 재미는 있군.”
근접한 상태에서 파스타르가 검을 내게 휘둘렀다.
나 또한 파스타르의 검을 막았다.
코앞에서 공방이 펼쳐졌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 한 번씩 번갈아가며 공격했다.
코앞에서 휘두르는 만큼 비기끼리 부딪히며 터지는 충격파도 크게 와닿았다.
‘단 한 번이라도 실수하며 안 된다.’
가깝기에 단 한 번의 실수가 승부를 좌지우지 했다.
“이제는 좀 힘드실 겁니다.”
신체를 강화하며 속도를 한층 더 올렸다.
내가 두 번 공격하면 파스타르가 한 번 공격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파스타르는 뚫리지 않았다.
‘더 빠르게!’
내가 세 번 공격할 때 파스타르는 한 번.
내가 네 번 공격할 때 파스타르는 한 번.
점점 속도를 올려갔다.
하지만 파스타르는 여유롭게 내 공격을 전부 막아냈다.
“도대체 뭐가 힘들 거라는 건지?”
“크윽···.”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파스타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염동력을 써가며 상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얄미웠다.
“속도만 빨라봤자 소용없다.”
파스타르의 비기가 더 강력해졌다.
분명 내가 공격하는 게 더욱 많을 텐데 밀리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
검을 휘두르는 속도를 늦추더라도 마나를 더 쏟아부었다.
‘아니··· 잠깐··· 이대로면 내가 진다.’
속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밀리는 이유.
그저 파스타르의 공격 하나하나가 나보다 무거운 탓이었다.
아무리 빨라도, 속도를 늦추며 마나를 쏟아부어도 내가 더욱 약했다.
‘어떡해야지···?’
방안을 생각해내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해서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벽에 몰린다.
그 이후는 훤하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것이다.
방법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가능할까···?’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다만 도박에 가까운 수였다.
하나의 기술.
그 기술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만큼 그 기술은 내게 익숙한 기술이었다.
‘신체강화를 이용한 타점의 극대화.’
그걸 검에다가 적용하는 방법이었다.
도박에 가까운 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지는 것보단 낫다.
‘어디 한번 맛 좀 보십쇼!’
마나의 세밀한 컨트롤은 염동력을 통해 익혔다.
비기가 나가는 그 순간.
있는 힘껏 마나를 부풀렸다.
‘이게 주먹이었다면 터졌겠지만 이건 검이다. 게다가 아주 튼튼한 명검.’
퇴마검이라면 이 파괴력을 분명 버텨줄 것이다.
“이건 피할 수 있으면 피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비기가 나가기도 전에 이 기술은 가능하다고 깨달았다.
검을 통해 손에도 전해지는 이 느낌.
이건 확실히 내가 쓸 수 있는 기술 중에 가장 강할 것이다.
엄청난 파괴력을 담은 비기가 파스타르를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