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레아가 으슥한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따라갔다.
솔직히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이미 위치는 알고 있으니까.’
미리 준비해둔 복면을 썼다.
눈과 코만 뚫린 검은 복면.
‘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그냥 얼굴을 가리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어.’
이렇게 단순한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니.
내 스스로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
칼데르트 영지의 빈민가 지하.
레아와 의문의 사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약을 영양제라고 속이면 된다는 거죠?”
“그래.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하면 내게 기회는 없다.”
레아는 속으로 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작전대로 밀리아의 방에 목걸이를 두었다.
그리고 밀리아는 보기 좋게 그 목걸이를 마음에 들어 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계획은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년이 짜증내던 것도 참아왔다.’
훗날 레아 본인이 얻을 작위를 생각하며 말이다.
하지만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빌어먹을 막내 때문에 말이다.
‘그 녀석이 마족을 쓰러트릴 줄 낸들 알았겠나.’
칼데르트 가문의 막내이자 서자인 수하르.
수하르가 밀리아의 폭주를 막았다.
게다가 그 목걸이의 비밀 또한 알고 있었다.
‘워낙 음침한 녀석이었으니까, 신경 쓰지 않았는데.’
본인이 서자란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 수하르는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것은 계획의 일부였다.
계획대로였다면.
‘밀리아가 나머지 형제를 죽이고, 막내가 백작위를 물려받는 것인데.’
갑자기 후계자 자리를 포기했다.
그렇기에 차선책으로 칼데르트의 이남, 알트를 백작으로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계획은 계속 틀어졌다.
장남의 암살도 실패했다.
‘젠장, 그 녀석이 후계자 경합을 포기하지만 않았어도···.’
레아가 생각하기로 모든 원흉은 수하르였다.
계획대로 흘러갔다면 수하르가 백작이 된다.
하지만 핏줄 자체가 절반은 평민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수하르가 죽어도 가신들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만 되었다면 칼데르트가는 우리의 손아귀에 들어왔을 텐데.’
그리고 레아 자신도 귀족이 되는 것이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떠올렸다.
애매하기 그지없는 능력.
‘물건에 매혹과도 같은 효과를 부여하는 능력.’
이런 능력을 가졌기에 이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잠시 상념에 잠겨있던 레아를 깨우는 소리.
밖이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이죠?”
“나도 모르겠군.”
의문의 사내가 밖을 확인하려 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문이 부서지면서 의문의 사내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의문의 사내의 허벅지엔 단검이 박혀있었다.
그리고 부서진 문에서 나오는 한 사람.
“이런 곳이 있었구나?”
복면으로 정체를 숨긴 수하르였다.
***
빈민가 지하는 생각보다 넓었다.
그리고 은밀했다.
계략을 꾸미기엔 최적의 장소.
바깥부터 정리를 해가며 결국 레아가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문 밖에서 문으로 걸어오는 인기척을 느꼈다.
주위에 널린 단검을 염동력으로 날렸다.
단검에 관통된 문이 부서지면서 사내의 허벅지에 박혔다.
그리고 경악에 찬 표정의 레아를 발견했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이런 곳에서 작당을 벌이고 있었다.
그 사실을 회귀 전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제법 스스로를 영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나 보다.
‘아니면 그 약이 내 정신을 흐리게 만들었거나.’
레아가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며 내게 겨누었다.
실소가 절로 나왔다.
“그걸로 뭐하게?”
나는 염동력을 이용해 레아의 단검을 뺏었다.
레아의 표정은 볼만했다.
마치.
‘능력을 가졌는데 어째서···?’
라는 표정이었다.
“동포가 어째서 우리를 방해하는 거지!”
방해하는 이유라···.
“너희가 내 심기를 건드려서?”
내 가족을 파멸로 이끌었다.
아직 이뤄지지 않은 일이지만, 이뤄진 일이었다.
레아에 대한 배경은 잘 알고 있다.
길거리 고아인 레아를 테시아르 어머니께서 거두었다.
그리고 시녀로 키웠다.
‘은혜도 모르는 년.’
자신이 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키워준, 구원의 손길을 보낸 칼데르트가를 배신했다.
이는 큰 죄다.
실제로 레아 때문에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죽었다.
“넌 죽여야 속이 편하겠다.”
원한은 원한을 낳는다.
이런 말은 전혀 믿지 않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을 뿐이다.
“잠깐!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냐!”
“응.”
노블리스.
옛 영광을 되찾겠다고, 귀족과 왕족, 황족을 죽이려는 반란범.
“날 죽이면 우리 조직이 널 용서치 않을텐데.”
“상관없어.”
나를 용서하기 전에 박멸시킬 생각이니까.
나는 뒤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을 느꼈다.
허벅지에 단검을 박아놓은 사내였다.
사내로부터 마나와는 다른 기운을 쏟아낸 사내.
나는 그 기운을 염동력으로 빨아들였다.
“이상한 짓 하려고 하지 마.”
그 기운이 몸에 닿는 순간 방금 일어난 일이 사내의 시점으로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무래도 이 사내의 능력은 기억을 보내는 능력인 듯했다.
‘이건 어쩔 수 없군.’
그대로 사내의 목을 베어냈다.
나를 제외하면 이 능력을 알아차릴 방법이 없기엔 이런 능력을 가진 자는 죽여야했다.
“다음은 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레아였다.
“젠장, 인생 한 번 펴보나 했는데.”
끝까지 반성을 보이지 않는 레아.
나는 레아의 목을 베어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멀리서 빈민가를 살펴보았다.
‘드디어 데이브 형이 도착했네.’
데이브 형에게 말을 해놓았다.
이들에 대해서 설명도 끝내놓았다.
조직은 사람들은 보잘것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을 살려놓았다.
‘아마 이들의 죄는 반역죄가 되겠지.’
칼데르트가에 해를 끼치려고 했던 증거자료를 그대로 남겨놓았다.
자료가 없더라도 데이브 형에게 위조라도 하라고 말했었다.
조금 숙연한 일이지만, 그만큼 귀족의 말은 법과도 같았으니.
‘이제 집에 돌아가야겠네.’
이제는 그리운 가족을 만날 차례였다.
***
오랜만에 집에 온 나를 모두가 반겨주었다.
다만 나에 대한 환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뭣이라! 반역이라고!”
식사 중에 데이브 형이 가지고 온 정보 때문이었다.
그 일로 인해 백작가는 한없이 바빠졌다.
내가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데이브 형이 찾아왔다.
“어떻게 레아에 대해서 알아낸 거야?”
“음··· 내가 용병을 했다는 것은 말해줬잖아.”
“그렇지.”
“그런데 마족과 연관되어 있는 조직을 발견했어.”
정확히는 마족을 소환하려는 조직이 있었지.
“그 조직에 대한 자료를 얻었는데···.”
그 자료에서 칼데르트가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자료엔 레아가 한 일도 적혀 있었다고 말이다.
“그거 참 대단한 우연이네. 그런데 그 정도 확증이면 내게 말해줘도 됐을텐데.”
그랬다.
분명 나는 확실한 게 아니라고 데이브 형에게 말했었지.
“확실하진 않았어. 레아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거든. 그저 칼데르트가에 한 행동밖에 말이야.”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변명이 된 것 같다.
“아, 맞다. 이걸 잊었네.”
“뭘?”
“축하한다. 소드마스터가 된 거.”
“아··· 고마워.”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내 신분을 데이브 형에게 알려주었다.
데이브 형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겠지.
데이브 형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래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어떤 게 궁금한데?”
궁금할 게 있나?
“콜로세움에서 챔피언과 경기했나?”
그러고 보니 아직 데이브 형까지 내 경기 결과가 도착하지 않았겠다.
경기가 끝나고 얼마 안돼서 돌아왔으니 말이다.
“음··· 했지.”
“아, 그렇구나···.”
나를 안타깝게 쳐다보는 데이브 형.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소드마스터가 되었다고 해도 선배를 이기기엔 역부족이겠지.”
아무래도 내가 파스타르에게 패배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내가 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야···.”
데이브 형은 내가 돌아온 이유가 패배하고, 더 이상 콜로세움에 못 있게 되어서라고 생각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내가 이겼어.”
“뭐?”
“내가 콜로세움의 챔피언이야.”
“진짜로···?”
“뭐 그런 걸 거짓말하겠어.”
도무지 믿질 못하겠다는 데이브 형.
“그럼, 여긴 왜 온 거야?”
“형이 나한테 편지를 보냈잖아. 레아가 수상한 곳으로 갔었다고.”
“그건··· 그런데. 그럼, 콜로세움은?”
“퇴직했어.”
“뭐?”
일단 데이브 형에게 내 목적을 말해야겠다.
“집에서 좀만 요양하다가 여행을 해보려고.”
“여행?”
“응, 여행.”
대륙에 널리 조직의 지부를 없애겠다는 빌미로 하는 대륙여행.
정착할 곳을 찾고 싶었다.
“갑자기 웬 여행?”
“으음··· 그냥?”
칼데르트가에 남아있는 것도 나쁘진 않은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엔 칼데르트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착할 곳을 찾으려는 여행에 가까웠다.
조직의 지부를 없애는 것은 겸사겸사고.
“뭐, 네가 하고 싶다면야 말리지는 않겠지만.”
“고마워.”
“그런데 아버지랑 어머니가 좀 많이 서운해하실 거야.”
그건··· 나도 알고 있다.
가출한지 얼마 안 돼서 이젠 여행을 떠난다니.
걱정을 안 할래야 할 수밖에 없으실 거다.
제 아무리 내가 소드마스터라고 하여도 말이다.
“어떻게든 안심시켜드려야지.”
언제까지 부모의 그늘 밑에 있는 아들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다만 유년시절을 너무 삐딱하게 보낸 탓에 얼마 안 되는 시간밖에 가족과 교류하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뭐, 앞으로 많이 찾아뵈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
칼데르트가에 온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진짜 내일은 떠나자.”
본래의 목적은 일주일만 쉬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 편했다.
밥이 알아서 나오고, 누워서 잠만 자도 모든 게 해결되었다.
그게 너무 편했다.
“검성님을 찾아뵙기도 해야하니까.”
칼데르트가와 마찬가지로 사르키드가도 위험에 처할 예정이었다.
뭐, 여유가 있기에 움직이지 않은 것이지만.
“하아··· 참 싫다.”
노블리스라는 조직.
만약에 나를 귀찮게 하는 이 조직이 없었다면.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뭐, 그런 생각을 가져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다.
이제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내일.
바로 내일 나는 사르키드를 찾아갈 것이다.
“검성님을 도와드리고···.”
복수의 때가 찾아왔다.
사르키드를 위험에서 구해낸 다음 당당하게 검성에게 대련을 요구할 것이다.
지금까지 맞아왔던 뒤통수의 원한을 씻을 때가 찾아왔다.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겠네.”
물론 검성을 상대할 때엔 내 전력을 보여줄 것이다.
숨기지 않고 염동력을 써댈 것이다.
“히히, 두고 봅시다.”
원한과 은혜는 잊지 않고, 두 배로.
검성의 뒤통수를 칠 생각을 하니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희열이 올라왔다.
“너무 심한가?”
나이도 꽤 먹었는데 뒤통수를 때리는 것은 조금 심할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에이,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검성인데.”
검성의 몸이라고 하면 웬만한 사람들보다 튼튼할 테니 말이다.
“그럼, 진짜로 내일 출발하자.”
사르키드 영지를 시작으로 여행을 시작할 때가 진짜로 찾아왔다.
“물론 사르키드 영지를 간 다음엔 조르던 자유도시도 들려야지.”
오랜 시간 못 본 나의 애완몬스터, 하르를 데려가야하니 말이다.
“그런데 하르가 날 잊지 않았겠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뒤로한 채 나는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