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80화 (80/150)

#80화.

한숨을 내쉰 사르키드 공작이 내게 물었다.

“아버지를 대신에 설명 좀 부탁하네.”

“그··· 잠깐 대련을 했습니다. 아니, 그보다 인사가 먼저겠네요. 수하르 칼데르트라고 합니다.”

잠시 고뇌하던 사르키드 공작이 박수를 치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칼데르트가의 막내로군. 듣자하니 아버지의 제자였다고 들었긴 했지. 그런데···.”

사르키드 공작이 대련했던 곳을 둘러보았다.

“음··· 실례일 수도 있겠네만, 자네 경지가 어떻게 되는가?”

사르키드 공작의 손을 떨리고 있었다.

하긴 나처럼 젊은 나이에 소드마스터가 되었다는 것은 대륙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아니, 거의 없다시피 하는 일이겠지.

사르키드 공작은 소드익스퍼트 최상급으로 보였다.

“소드마스터입니다.”

딱히 숨길 이유도 없기에 솔직하게 말했다.

경악하는 사르키드 공작.

사르키드 공작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혹시··· 자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혹시 나를 섭외라도 하려는 것인가.

“결혼은 했나?”

“예?”

난데없는 소리에 당황하고 말았다.

***

창밖을 구경하던 엘리스 사르키드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자신의 할아버지인 케론 사르키드와 다른 이가 대련하고 있던 것을 봤던 것이었다.

“우와···.”

할아버지를 최고로만 생각했던 엘리스였다.

하지만 상대도 할아버지와 비등비등했다.

적어도 엘리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어, 아빠다.”

잠시 후 나타난 아버지가 그에게 얘기하더니 함께 저택 내부로 들어갔다.

“그렇다는 건 아빠의 집무실로 갔겠지.”

엘리스는 다급하게 집무실로 뛰어갔다.

자신의 할아버지와 비등한 실력을 가진 검사의 얼굴을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그러니까, 자네의 나이가···.”

“열여덟입니다.”

“그래, 열여덟. 나이도 적한 게 내 딸이랑 약혼을 하는 게 어떤가.”

분명 사르키드 공작의 딸이라면 정원에서 보았다.

귀엽게 생긴 아이였다.

문제가 있다면.

“에이, 나이차이가 대수인가.”

대수라고 생각된다.

나이 차이만큼 나이를 먹었다면 말이다.

문제는 딸의 나이가 아홉 살이다.

“단연코 거절하겠습니다.”

귀족들 사이에선 어려서부터 혼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나는 그러기 싫었다.

게다가.

‘만약이라도, 내가 사르키드 공작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데릴사위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슬하에 자식이 딸 하나밖에 없는 사르키드 공작이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다음대의 사르키드 공작이 된다.

‘백작도 그렇게 업무가 많았는데, 공작은···.’

절대로 이뤄져서는 안 되는 만남이다.

이건 지옥으로의 초대장이었다.

“내 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건가···.”

말꼬리를 흐리는 사르키드 공작.

그 모습에 절로 땀이 흘렀다.

‘아씨, 뭐 어떡하라는 거야.’

야반도주라도 해야하나.

혹시라도 가문에 기별이라도 넣으면 큰일이다.

최대한 승낙할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말했다.

“혹시 나중에 답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사르키드 공작.

그래도 승낙할 듯한 분위기를 풍긴 덕인지 사르키드 공작이 승낙해주었다.

“길어도 삼 일. 그 안에 결정해주길 바란다. 사위!”

이미 정한 듯한 호칭.

문이 열리며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정원에서 보았던 귀여운 양갈래 머리의 꼬마.

사르키드 공작이 웃으며 껴안으려고 했지만, 꼬마에게 밀쳐졌다.

“안녕하세요. 엘리스 사르키드라고 합니다.”

거부당한 게 무안한지 사르키드 공작은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

“그래, 반가워.”

옆에 있던 사르키드 공작이 웃으며 말했다.

“엘리스, 네 약혼자가 될 분이다.”

아니, 한다고 한 적 없는데.

엘리스가 시선을 내리며 약간 붉어졌다.

“그럼, 전 이만.”

부끄러운지 도망쳐버렸다.

“하하, 엘리스는 자네가 맘에 드나 보군.”

내 어깨를 두드리는 사르키드 공작.

나는 그런 공작을 원한 서린 눈길로 쳐다보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

그날 저녁, 나는 도망치기로 했다.

야반도주다.

서서히 인기척을 최대한 줄이며 사르키드가의 저택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수하르, 야밤에 뭘 하는 게냐.”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검성이었다.

‘하긴, 검성님이 아니면 나를 못 알아차리겠지.’

나는 검성에게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자꾸 사르키드 공작께서 저를 딸과 결혼시키려고 합니다.”

“뭣이!”

잠시 생각해보니 검성마저 찬성하면 곤란했다.

“그 녀석이 내 손녀를 놈팽이 놈에게 보내려고 그런다는 말이지!”

놈팽이라니 말이 심하다.

한순간 검성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런데 야반도주를 할 정도로 내 손녀가 싫다는 건가?”

“그게··· 손녀가 싫은 게 아니라···.”

공작 같은 게 되기 싫었다.

결혼하면 거의 기정사실로 공작이 되어버린다.

물론 손녀가 너무 어린 것도 문제였다.

“갑자기 기분이 나쁘군.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는 게냐?”

난데없는 검성의 물음에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 물음에 한 사람이 곧바로 튀어나올 줄은 나도 몰랐기에 나는 경직되어버렸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보군.”

아무래도 그런 거 같다.

“어서 썩 꺼지거라. 만약에 네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까이고, 내 손녀를 눈독 들이는 순간···.”

“저, 그런 놈 아닙니다.”

“그럼, 됐다. 어서 가거라. 우리 가문을 도왔지만, 이렇게 급하게 내쫓을 수밖에 없는 게 미안하구나.”

나는 급하게 도망쳤다.

***

급하게 잡은 여관에서 잠을 잤다.

급하게 잡은 탓인지 여관의 시설은 매우 나빴다.

그저 잠만 잘 수 있는 공간과 다를 게 없었다.

“일단은 조르던 자유도시겠지.”

혼자서 하는 여행은 적적할 것만 같다.

페트릭이라도 데리고 가면 더 낫겠지만, 페트릭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메시아라는 연인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으니까, 제국에 있겠지.’

만약의 일이지만, 메시아와 페트릭이 결혼하게 된다면 페트릭은 제국에서 지낼 것이 분명했다.

“하르랑 둘이서만 다녀야겠지.”

어디를 먼저 갈지 고민이 되었다.

다행히도 조르던 자유도시에 지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철수했다.

“그게 다 그 멍청한 녀석 때문이었지만.”

조르던 자유도시에도 당연 지부가 존재했다.

그런데 부활의 악마를 소환했지만, 설득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같은 곳에서 두 번의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 실패로 조르던 자유도시 근처 지부는 철수했다.

“음···.”

조직은 대륙 곳곳에 존재했다.

어디를 가든지 전부 있다.

그렇기에 더욱 고민이 되었다.

“역시··· 신성제국이 좋으려나.”

조직은 악마를 이용하려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렇다는 것은 악마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에피아 신성제국이 조직의 가장 큰 적일 수도 있겠다.

“적의 가장 큰 적은 내 가장 큰 아군이 될 거야.”

그런 생각으로 우선 에피아 신성제국의 지부를 공략하는 게 우선이다.

게다가 에피아 신성제국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지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신성제국의 관광지를 방문한 사람이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그곳은 신이 만들어놓은 안배다.”

그런 곳을 안 갈 수야 없다.

조르던 자유도시에서 에피아 신성제국으로 우선 떠나기로 했다.

***

조르던 자유도시에 들러 하르를 데리고, 신성제국으로 여행하기 시작했다.

신성제국으로의 여행을 하는 틈틈이 요리를 했다.

맛을 보는 것은 하르와 나였다.

이번엔 좀 도전적인 요리를 해서 하르에게 건네주었다.

냄새를 맡던 하르가 내가 만든 요리를 한 입 했다.

그리고 그대로 뱉었다.

“왜 그래?”

향도 좋고, 겉보기도 멀쩡했다.

하르는 접시를 내 쪽으로 밀었다.

마치 너도 맛이나 보고 말하라는 듯이 말이다.

“이상하네.”

하며 한 입 먹은 순간, 곧바로 뱉었다.

형용할 수 없는 맛이 느껴졌다.

“에잇, 퉤. 진짜 맛없네.”

이번 요리도 실패로 돌아갔다.

오늘 밥은 또 육포가 되었다.

육포 몇 덩이를 큰 걸로 골라 하르에게 던져주었다.

그제 서야 만족하는 표정으로 육포를 뜯는 하르였다.

“진짜, 몇 번째 실패인지.”

그 전까지는 맛을 보지 않아도, 냄새와 생김새로 눈치챘다.

이번엔 냄새와 생김새가 좋아서 기대했다.

하지만 여전히 꽝이었다.

“역시 난 요리에 재능이 없는 걸까.”

유독 페트릭이 그리워졌다.

맛있는 음식이 그리웠다.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 거야.”

마을을 못 본 지 오래되었다.

이젠 사람이 한 요리를 먹고 싶어졌다.

육포 같은 비상식 말고 말이다.

하르도 같은 생각인지 며칠 전부터 우울해보였다.

“그런데 어떡하지.”

에피아 신성제국에 존재하는 조직의 지부를 생각했다.

이곳의 지부는 다른 지부와 다르게 겉에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꽤나 소란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연줄이 있으니까, 설명하면 믿어주겠지?”

같이 악마를 상대한 정이 있으니 말이다.

하르가 갑자기 뛰쳐나갔다.

“어? 하르야, 어디가?”

그리고 곧바로 맛있는 음식의 냄새가 느껴졌다.

“하르야, 같이 가!”

음식이 있다.

급하게 하르를 뒤따랐다.

먼저 출발한 하르의 흔적을 확인하며 뛰어났다.

그리고 먼 곳에서 소동이 느껴졌다.

“음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르를 발견했나보네.”

겉으로 보면 하르는 은빛늑대의 돌연변이.

바로 몬스터다.

소동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혹시라도 모를 참사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층 속력을 높였다.

그리고 도착한 곳엔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산적?”

하르에게 무기를 세운 수많은 털보들.

복장으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산적이었다.

“혹시 산적이세요?”

하지만 내 말을 듣지 못한 털보들은 겁을 먹은 채 하르와 대치 중에 있었다.

나는 전보다 큰 소리로 외쳤다.

“저기, 산적이신가요!”

“두목, 저기에 사람이 있습니다!”

두목이라.

이 정도면 산적이 확실했다.

하르와 털보들 사이로 들어가며 말했다.

“저기요. 밥 좀 얻어먹읍시다.”

산적이건 상관없다.

밥이 우선이었다.

하르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산적들의 밥에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당신 누구야!”

“그냥, 여행객인데 너무 배고파서 그럽니다.”

배고픈 것은 아니지만, 맛있는 게 고프다.

그리고 저 밥은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밥이다.

“싫다면?”

“그럼··· 어쩔 수 없죠.”

산적들 또한 빼앗기는 쪽에 서볼 필요가 있다.

그러고 보니 산적들은 민가를 습격해 고통을 준다.

이건 그런 산적들에게 주는 벌이다.

“움직이면 다칩니다.”

염동력으로 주변의 돌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산적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던졌다.

산적들은 반응도 못하고 돌에 맞아 기절했다.

“지금이다.”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전부 훔쳐 달아났다.

하르도 내 뒤를 따라왔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진 후에야 자리에 앉아 음식을 섭취했다.

오랜만에 먹는 음식은 맛이 좋았다.

마음 같아선 이 요리를 한 산적을 데리고 다니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산적이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소동 없이 지부를 없애는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다.

“내 계획대로만 된다면.”

일석이조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었다.

“좋았어, 한번 해봐야지.”

밥을 전부 먹고 빠르게 에피아 신성제국으로 갈 필요가 생겼다.

“가자, 에피아 신성제국의 수도로!”

수도에 가자마자 할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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