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에피아 신성제국의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한 일은 조사였다.
조사에 따라 에피아 신성제국의 근처 산 입구로 갔다.
“분명 이 근처 산에···.”
흉악한 산적이 산다고 했었다.
하지만 워낙 신출귀몰한 탓에 신성제국에서도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도 뭐···.”
나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겠다.
“조사에 따르면 분명히···.”
산중턱에 굴을 파놓았다고 하였다.
그 굴의 위치를 단정할 수 없는 게 문제였다.
토벌을 하려고 해도 굴을 무너뜨려 꼬리를 자르기에 골치 아픈 녀석들이었다.
“그래도 나랑은 상관없지.”
내 계획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이제이.
적을 적으로 물리치는 것이다.
산적으로 위장한 뒤에 에피아 신성제국의 수도에서 상단으로 활동 중인 이들을 공격한다.
상단을 궤멸시킨 후에 산적들마저 소탕하면 끝.
“아주 좋은 계획이지.”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인근 마을에서 도망 나왔다고 하면 되는데···.”
하르가 문제였다.
은빛늑대.
그것도 돌연변이종.
“애완견이라고 하면 믿을려나?”
절대 안 믿을 것 같다.
사냥꾼이라도 은빛늑대를 키우진 않는다.
“하르야!”
내 지척에 있던 하르가 짖었다.
“잠깐 어디 갔다올테니 이 산에서 좀 지내고 있을래?”
솔직히 하르 정도의 강함이라면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만약 이 산에 오우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르라면 충분히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이 산에서 좀 지내고 있어라. 금방 데리러 올게.”
하르는 내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보면 몬스터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몬스터치고는 지능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그럼 난 간다.”
라고 말했지만, 하르가 먼저 떠나버렸다.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기에 약간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일단은 복장 체크부터.”
내가 입은 옷은 영락없는 평민의 복장이었다.
“다시 한번 상기시키자.”
내가 할 변명을 말이다.
어울리는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평민치고는 잘생긴 얼굴.
평민이 이렇게 태어났다면, 귀부인이나 부유한 상인의 애인이 되기에 적합했다.
“마을의 난봉꾼.”
잘생긴 얼굴을 바탕으로 마을의 여자를 꼬시고 다녔다.
그러다가 임자가 있는 여자를 건드려서 큰일이 났다.
“그래서 도망쳤고, 이 산으로 오게 되었다.”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변명거리였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다면 이런 사람을 그곳에서 받아줄지는 모르겠다.
믿져야 본전이다.
“한번 해보고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뭐.”
나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적이 될 각오로 말이다.
***
“막내야!”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운 좋게 산적들은 나를 환영해줬다.
다만 조금 힘든 점이 하나 있었다.
“뭐, 또 다른 이야기는 없냐?”
산채의 이야기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산채엔 이성이 없었다.
대다수의 사람이 남자뿐이었다.
그렇기에 산적들은 내게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음··· 남은 이야기라면 아직 많죠!”
매일같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게 장난 아니게 힘들었다.
불륜의 이야기.
마을처녀의 이야기.
“지금 해드릴까요?”
“아니, 됐다. 저녁의 재미로 남겨두어야지.”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난 산채에 완전히 적응했다.
그리고 내 앞에서 나를 막내라 지칭하는 녀석을 쳐다보았다.
대다수의 산적은 털이 많았다.
그런 산적들 사이에 유일하게 털이 적은 사람.
산채의 부두목 레크였다.
“그나저나 무료하구나.”
“그러게요.”
보름 동안 레크와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레크는 나를 마치 친동생처럼 여겼다.
마냥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레크의 무용담은 착한 사람과는 거리가 영 먼 것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이야기했던가. 내가 열 명을 동시에 죽인 것을 말이야?”
“예, 들었죠.”
매번 반복하는 이야기.
매번 들었음에도 불쾌한 내용이었다.
손발을 묶은 사람들을 나란히 세운다.
그리고 무기를 던져 관통시켜 죽인다는 참혹한 이야기.
이 산채에서 가장 높은 기록을 했다는 자랑이었다.
“이건 그 잘난 기사양반들도 못하는 일이지.”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더 이상 이곳에 있기 싫었다.
아니, 있기 싫은 정도가 아니었다.
그냥 싸그리 엎어버리고,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 두목의 얼굴도 못 봤으니까.’
이 산채는 부두목이 운영하는 산채다.
네 명의 부두목과 한 명의 두목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총 다섯 개의 산채가 존재했다.
이곳을 제외한 산채의 위치를 파악했다.
하지만 하나.
단 하나.
두목의 산채만큼은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형님, 도대체 두목의 산채는 어딨는 겁니까?”
레크의 표정이 굳어졌다.
“알려고 하지 마라.”
“네? 왜요?”
도대체 왜 이렇게 숨기는지.
“두목의 산채는 부두목들만 알고 있어야한다. 만약 부두목이 아닌 자가 알게 된다면 그자는 죽어야한다.”
“······.”
골치 아픈 일이었다.
내 계획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니, 무슨 산적이 이렇게 체계적이야.’
막내로 시작해 하극상을 일으켜 단숨에 두목이 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직위라는 게 강하다고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산적 경력이 높아야만 높은 직위를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살생을 즐기는 산적들이지만 식구는 소중하게 대했다.
‘역겹군.’
그 점은 매우 역겹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되는 내가 한 계획은 무리가 있다.
두목이 되어 에피아 신성제국에 있는 조직의 지부를 박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됐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산적이라도 먼저 소탕해두는 것뿐.’
이들의 만행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들은 이상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넋이라도 달래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형님, 오늘따라 뭔가 다른 거 같습니다.”
왁자지껄한 산채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정갈하지만 바삐 움직이는 산적들.
마치 손님맞이를 하는 듯했다.
“우리 막내의 눈썰미가 제법이구나. 하긴 너는 처음 볼테지.”
“누가 오나요?”
“우리 산적단의 돈줄이자 후원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이 오신다.”
“후원자···요?”
이런 산적단에 후원을 하는 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두목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지. 아니 두터운 사이가 맞으려나?”
“네?”
“잘 모르겠지만, 우리 두목이랑 그 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 같더군.”
이건 제법 좋은 정보였다.
“그래서 그 손님이 누군가요?”
“음··· 촌놈인 네가 알지는 모르겠다만, 노스 상단이라고 아냐?”
노스 상단.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경직했다.
“제가 아는 그 노스 상단입니까?”
“뭐, 노스 상단이 두 개가 아니라면 맞겠지.”
에피아 신성제국에서 상단으로 위장한 조직의 지부였다.
그런데 도대체 이 산적단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보다.
“노스 상단은 매우 선한 상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노스 상단은 겉으로는 선을 지칭하는 상단이었다.
어려운 자들을 위해 많은 것을 베푼 상단이었다.
“그거 다 착각이다.”
“착각이라니요···?”
“저 상단이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됐는데 신성제국 안에서 왜 손꼽히는 상단이 되는 줄 아냐?”
“그거야 저는 모르죠.”
“그게 다 우리 덕분이지.”
레크는 자신의 무용담을 이야기할 때처럼 자랑스럽다는 듯 이야기했다.
노스 상단이면 산길을 열어주고, 다른 상단은 최대한 방해한다.
산적단은 다른 상단의 물품을 갈취해서 노스 상단에게 넘긴다.
“진짜 쓰레기 같은 짓이네요.”
나도 모르게 진지하게 말해버렸다.
하지만 레크는 그마저도 신경 쓰지 않았다.
“크하하하, 막내가 말 한번 잘하는구나. 그래, 쓰레기 짓이지. 하지만 우리는 산적이다. 쓰레기 짓을 해야 먹고 살지.”
그나저나 분명히 레크가 말했었다.
노스 상단이 산적단의 두목과 친분이 있다고.
그렇다는 것은.
‘산적단의 두목 또한 조직원이라는 소리인가.’
어차피 산적단 또한 처리를 해야만 하는 상대였다.
미래를 알려주는 책에선 알아내지 못한 게 맹점이었다.
‘곤란하네.’
그렇다는 것은 분명 내가 파악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들 모두를 내가 처리하는 것은 무리에 가까운 일이었다.
‘뭐가 됐건 머리를 쳐야겠네.’
아무리 거대한 조직이라도 머리가 사라진다면 주춤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렇게 은밀한 조직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왜, 노스 상단의 사람이 이곳으로 옵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아니, 보통은 두목이 있는 산채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용건이 있다면 두목한테 가야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그것은···!”
“그것은요?”
“나도 모른다.”
“네?”
“사실은··· 아니다.”
말을 하려다가 마는 레크.
나로서는 답답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추궁할 수는 없었다.
기다리던 손님이 찾아왔으니 말이었다.
“레크 부두목! 노스 상단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그래? 마중 나가봐야겠군.”
그 말에 나는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열 명을 관통시킨 레크는 거대한 도끼를 사용한다.
그만큼 덩치가 컸다.
덩치가 큰 만큼 움직이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보통 같으면 부하를 시켜 마중을 나갈텐데 직접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의외이십니다···?”
“나도 어쩔 수 없다, 두목이 극진히 대접하라고 했었으니까.”
육중한 몸을 움직이는 레크.
나는 레크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노스 상단의 사람을 마주했다.
동시에 내 안에 살의가 들끓었다.
‘어라? 왜 이러지?’
저 노스 상단의 사람을 보니 살의가 치솟았다.
아무래도 저 노스 상단의 사람은 조직의 사람임이 분명했다.
특별한 힘을 가졌으니 말이다.
‘이거··· 꽤나 유용하겠는데?’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게 되어버렸다.
저 사람이 능력을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 말이다.
살의가 들끓으면 가졌고, 안 끓으면 가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저 노스 상단은 사람은 매우 거만한 자세로 레크를 마주했다.
‘음··· 관계가 아무래도 노스 상단이 우위에 있는 건가?’
레크가 말했다.
“오랜만이십니다. 부두목 레크입니다. 기억하시는지요?”
“기억하고 있다. 어서 안으로 안내나 해라.”
레크는 상단의 사람을 안내했다.
나는 레크의 옆에서 넌지시 물었다.
“저 사람이 누구시길래, 레크 부두목이 쩔쩔매는 겁니까?”
“노스 상단의 상단주님이시다.”
노스 상단의 상단주?
흔한 상인과 다르게 마른 모습에 상단주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저 사람이 상단주라.
‘여기서 죽일까?’
아니, 그건 안 된다.
너무 이른 선택이다.
‘아직 두목의 위치도 모르는데.’
저 상단주와 두목의 인연은 전부터 있었다고 하였다.
두목 또한 조직의 일원일 확률이 컸다.
그렇기에 두 명 동시에 잡아야 했다.
“여기 앉으시죠.”
레크는 자신이 자주 앉던 상석에 상단주를 앉혔다.
“방금 전까지 다른 부두목이 운영하는 세 곳을 다녀왔다만···.”
“그러시군요.”
“영··· 아니란 말이지.”
하얗게 질린 레크.
“무엇이 말입니까?”
“요즘 들어 너무 사리는 게 아닌가?”
“그거야 요즘 에피아 신성제국의 병사들이 저희를 찾겠다고 눈에 불을 키고···.”
“시끄럽다. 그거야 산적의 일이 아닌가. 계속 이런 식이면 자네들 두목에게 말 좀 해야겠어.”
“아이고, 제발 그것만은!”
도대체 두목이 어떤 사람이길래 레크가 저렇게 겁을 먹는 것일까.
“뭐, 그건 됐고. 아주 중요한 일이 생겼어.”
“네···?”
“조만간에 미케네르 제국의 마차가 이곳을 지날 것이야.”
“미케네르 제국 말입니까?”
“그 마차를 습격하게.”
미케네르 제국의 마차를 습격이라고?
왠지 모르게 아는 사람이 타고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