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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82화 (82/150)

#82화.

“미케네르 제국의 마차는 왜···?”

“첩보가 들어왔다. 미케네르 제국의 황녀가 타고 온다더군.”

역시 내가 아는 사람이다.

제국의 황녀라면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에피니아 미케네르.

“제국의 황녀 말입니까? 아무래도 그건 좀···.”

레크도 황녀는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단주는 개의치 않아했다.

“싫다, 그런 건가?”

“아이고, 아닙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국의 황녀라면··· 호위도 있고···.”

레크가 하고자 하는 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제국의 황녀를 지키는 호위라면 산적들이 떼로 몰려가도 이길 수 없다.

“다른 부두목들은 승낙했는데도?”

“그래도···.”

“뭐, 다른 부두목들도 처음에는 자네 같은 반응을 보였긴 하지.”

“네?”

“내가 언제 자네들만 있다고 했나? 자네들뿐만 아니라 다른 자도 섭외해놨지.”

“그게 누구십니까?”

“알려줄 수 없다. 하지만 황녀의 호위라도 쉽게 이길 상대다.”

황녀의 호위가 누구라고 생각하기에 그러는 걸까.

아니 그보다 이들이 어째서 에피니아를 노리는 걸까.

‘확실한건 회귀 전에 일어났을 일은 아니었다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분명 큰 사건으로 번졌을 게 분명했다.

애당초 회귀 전의 에피니아라면 이맘쯤엔 자신의 저주에 대한 연구에 바빴을 것이다.

잠깐만.

‘에피니아가 그전에 신성제국에 온 것을 모를 일은 없을테고.’

왜 지금일까.

설마···.

‘에피니아가 저주가 걸리게 된게 조직의 짓이였다면?’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소리 같았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째서 황실 도서관 안에 악마가 나타났을까.

왜 그전에 에피니아가 신성제국에 갈 때 이런 습격을 계획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악마가 연관되어 있잖아.’

부활의 악마는 분명 이 조직에서 소환했다.

실패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 번 마족을 소환했다는 것은 이전에도 소환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너무 막연하군.’

책의 악마, 부크에게서 얻은 책이 정상적이었다면 이 비밀을 모두 파헤쳤을텐데.

아쉬운 일이다.

하여튼 에피니아를 습격한다면.

‘그전에 두목의 위치를 알아내야겠군.’

애당초 계획을 실행 못하게 만들어버리면 된다.

***

밤이 찾아왔다.

상단주는 계획을 전달만 하고 떠났다.

계획은 일주일 뒤.

시간은 많다.

이 산을 쥐 잡듯이 뒤져서 두목의 산채를 발견하면 되는 일이다.

‘일주일간 잠자기는 글렀군.’

한 가지 다행이라는 점은 이 산채의 산적들은 한 번 골아떨어지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

에피니아는 여행의 채비를 마쳤다.

에피니아의 곁에 있던 불만스러운 메시아가 말했다.

“황녀님, 꼭 에피아 신성제국에 가셔야겠습니까?”

“몇 번이고, 말했잖아. 나를 도와준 곳인데 감사인사는 전하러 가야지.”

메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업무하기 싫어서 도망치는 거는 아니고요?”

잠깐 에피니아의 행동이 멈추었다.

에피니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메시아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 무슨 소리야. 누가 업무하기 싫어서 감사인사를 하러가니.”

“흐음···.”

“그나저나 메시아는 요즘 어때?”

이제는 메시아가 잠시 멈추었다.

“예···?”

“알면서··· 페트릭 말이야.”

음흉한 미소를 짓는 에피니아였다.

“갑자기 그이가 왜 나옵니까!”

“우와, 그이래. 메시아가 그이래.”

메시아가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에피니아는 쉬지 않고, 메시아를 놀려댔다.

“황녀님은요!”

“어···?”

“황녀님 나이도 어느덧 스물이십니다. 이제 슬슬 결혼하셔야죠.”

에피니아에겐 약혼자는 없었다.

“나한테 약혼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결혼이야.”

“과연··· 마음에 두고 계신 분도 없을까요?”

메시아의 말에 에피니아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자신을 불행한 운명에서 구해준 사람.

‘왜 갑자기 수하르의 얼굴이 떠오르는 거야.’

에피니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메시아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어떤 분이 떠오르셨나봐요?”

“무··· 무슨!”

“도대체 어떤 분이 떠오르셨을까요?”

에피니아가 짜증을 내며 메시아를 쫓아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내 신분에 결혼이라면··· 그야 소드마스터가 아니면 안 돼!’

수하르는 소드마스터다.

‘그리고 신분도 귀족 신분이여야하고!’

수하르는 귀족이다.

‘마지막은 얼굴도 중요하지.’

수하르는 잘생겼다.

모든 것을 생각해보아도 수하르의 얼굴밖에 떠오르지 않는 에피니아였다.

‘아니야, 이건 너무 속물적이야. 역시 착하고, 나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해줄 사람이여야해.’

그럼에도 수하르의 얼굴이 떠오르는 에피니아였다.

에피니아는 고개를 저었다.

“메시아 때문에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잖아. 게다가··· 수하르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는데···.”

붉어진 얼굴로 에피니아는 여행의 채비를 이어서 준비하기 시작했다.

***

에피니아가 신성제국에 도착할 날이 다가옴에도 나는 두목의 산채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 도대체 이 산에 있는 건 맞아?’

레크가 거짓말이라도 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 산을 쥐 잡듯이 뒤져보았지만 흔적마저도 찾질 못했다.

“레크 부두목!”

“왜 그러냐?”

“아닙니다.”

두목의 산채가 어디냐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나저나 산채는 여전히 바빴다.

모두가 자신의 무기를 손질하기 바뻤다.

다들 공을 세울 생각에 안달이었다.

그것은 레크 부두목이 호언장담했던 말 때문이었다.

“우리 산채가 공을 세우면 며칠 동안 축제를 할 거다! 그리고 개개인으로 공을 세운 사람에게 큰 선물을 줄 것이고.”

나는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산적들은 흥에 겨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볼수록 짜증이 났다.

‘벌써부터 계획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걸 보니 실패하겠구만.’

물론 내가 실패시킬 것이기도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게 하더라도 문제였다.

‘내 정체를 들킬 수밖에 없겠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곳 산채의 사람은 많다.

네 곳이 합해진다면 더더욱 많을 것이다.

한 사람 정도야란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지금 레크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나를 항상 옆에다 두고 있으니···.’

아무래도 몰래 행동하는 건 불가했다.

역시 두목의 산채를 찾아내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쩔 수 없나···.’

산적놀이는 그만할 때가 찾아온 것 같다.

마침 하르도 산속의 삶을 질린 듯했다.

‘오늘 밤이다.’

오늘 밤에 레크를 협박하여 두목의 산채를 알아내야겠다.

산적의 부두목이 협박에 굴하지 않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

산채의 경비를 제외하면 모두가 잠들었다.

나는 몰래 레크의 처소에 잠입했다.

레크는 코까지 골며 잠들어있었다.

‘내일이 에피니아가 오는 날인데 긴장을 전혀 안 하고 있네.’

참으로 태평한 사람이었다.

나는 레크의 뺨을 치며 레크를 깨웠다.

당황하며 일어나는 레크.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난 레크가 나를 확인하고선 인상을 구겼다.

“이놈이···!”

나는 곧바로 레크의 입을 막았다.

레크가 움직이려고 발버둥 쳤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염동력으로 완전히 묶어놨기 때문이다.

“이봐, 레크.”

레크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소드마스터의 살기를 잠깐 보여주며 말했다.

“두목의 산채가 어디야?”

그러자 레크에게서 지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내 살기에 레크가 지린 것이었다.

“욱, 산채의 부두목이 이런 일에 지리다니. 품위 없군.”

뭐 산적이 무슨 품위를 가지고 있겠는가.

나는 레크를 노려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계속 말 안 할 거야?”

하는데 레크가 읍읍거렸다.

그제 서야 내 실수를 알아차렸다.

“미안하네, 입을 막고 있었구나. 소리라도 지르기만 해봐.”

레크는 여전히 겁에 질린 상태였다.

“그··· 저··· 그···.”

계속해서 말을 더듬는 레크였다.

“아니, 레크 말 좀 똑바로 해봐. 두목의 산채가 어디야?”

레크는 잠시 심호흡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저도 모릅니다.”

“뭐?”

이 녀석이 내 앞에서 거짓말이라도 하는 걸까.

“그러면 신상에 안 좋을텐데?”

“진··· 진짜로 모릅니다!”

아무리 봐도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분명 레크는 말했었다.

산적단의 부두목들만이 두목의 산채를 알고 있다고 말이다.

“전에 내게 했던 이야기가 기억나질 않은 모양이구나.”

곧바로 레크의 입을 막고, 손가락을 꺾었다.

괴로워하는 레크.

다시 손가락을 꺾었다.

눈물까지 흘리는 레크였다.

“이제 말할 생각이 들어?”

레크가 덜덜 떨며 말했다.

“진··· 진짜로 모릅니다. 그저 두목이 그렇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레크의 말이 사실인 듯 했다.

‘곤란하네.’

내 계획이 모조리 틀어졌다.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불편할지는 몰랐다.

“미치겠네.”

“제발··· 제발 살려주십쇼!”

“시끄러워.”

다른 거라도 물어봐야겠다.

“두목은 어떻게 생겼지?”

“저보다 왜소합니다.”

“뭐?”

그렇다는 것은···.

‘무언가를 배운 것인가?’

적어도 산적들의 두목을 하고 있는 것은 힘을 증명했다는 이야기니까.

“혹시 검사냐?”

“아, 아닙니다.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힘이 엄청 쎄십니다.”

“······?”

레크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인가.

덩치는 작은데 힘이 세다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힘이 엄청 쎄십니다.”

힘이 세다라.

‘설마?’

별에 별 능력이 다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두목의 능력이 힘에 관한 게 아닐까.

“이봐, 생김새 같은 걸 더 말해봐.”

“그··· 저··· 그···.”

왜 말을 더듬는 거지.

“모릅니다.”

“뭐?”

“만날 때는 항상 복면을 쓰셨습니다. 그래서 잘 모릅니다.”

“허어, 잘도 그런 사람을 따르고 있었군.”

골치 아프다.

두목의 산채도 모르고, 심지어 두목의 생김새도 모른다고 한다.

“도대체 왜 그런 사람을 따르는 거야?”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야, 돈이 많이 남으니까요?”

그나저나 어떡하지.

‘어떻게 찾지?’

아예 뿌리를 끊지 않으면 안 된다.

“야···.”

“예?”

“쓸모가 다했다.”

“그게 무슨···.”

레크의 목을 염동력으로 꺾어버렸다.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레크의 흰자위가 드러났다.

‘음···.’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상단주만 어떻게 해야겠네.’

두목의 정체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차선책으로 지부만 처리하는 것이다.

‘뭐, 훗날에 만날 수 있겠지’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다.

이번 건 포기하는 게 맞는 선택 같았다.

‘그나저나 살려둘 걸 그랬나?’

레크를 앞세워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험부담이 컸기에 오히려 죽이는 게 옳은 선택이라고 봤다.

‘그렇다면 내일이군.’

내일 계획이 실행되는 그때 계획을 저지하고 곧바로 노스 상단을 습격하는 것이다.

***

노스 상단주는 분노했다.

“뭐라고! 레크 부두목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계획 당일에 사람이 죽었다.

부두목의 직위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것도 암살을 당했다.

“초장부터 기분이 좋지 않군.”

그래도 산적들 사이에선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권력다툼인가.”

다만 그 누구도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다는 게 이상하게 생각될 뿐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길함에 노스 상단주는 계획을 중지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조직에서 직접 내려온 임무다. 절대 실패가 있어서는 안 돼.”

게다가 이번 임무에는 조직의 간부가 협력해준다.

몹쓸 모습을 보이면 절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무조건 강행해야해.”

누군가가 계획을 알아차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노스 상단주는 크나큰 결심을 했다.

“간부님의 협력으로 충분할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 녀석도 불러야겠어.”

조직의 간부는 아니지만 노스 상단주의 오랜 친구였다.

산적의 두목, 포스트.

“적어도 그 녀석도 함께한다면 문제없겠지.”

노스 상단주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 노스 상단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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