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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83화 (83/150)

#83화.

에피니아가 신성제국으로 오는 당일.

앞쪽에 은신하고 있던 산적들이 수신호를 보내왔다.

마차가 도착했다는 수신호였다.

‘이번엔 에피니아가 확실한가보군.’

앞서 여러 마차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지금의 마차는 반응 자체가 달랐다.

수신호를 보내는 이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 멀리 보이는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

‘저자가 호위를 상대할 자인가?’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조금씩 살의가 들끓는 걸로 보아 어떤 능력을 가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자도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체형으로 보아 아이 같아 보였다.

옆과 마찬가지로 살의가 들끓었기 때문에 능력을 가진 게 틀림없었다.

‘아이?’

그렇게 쉽게 일이 풀릴 거라는 생각은 없다.

마차가 인근에 도착하는 순간, 선발대가 마차를 멈춰 세웠다.

“가진 거 다 내놔!”

저렇게 가증스러울 수가.

마치 평범한 산적인 척하고 있다.

마차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

“이 마차에 타고 계신 분이 누구신지 알고는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냐!”

말 한 번도 안 섞어본 에피니아의 호위기사였다.

솔직히 먼 발치에서 보기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말을 섞어보진 못했다.

그가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도 한몫 단단히 했을테지.

‘나를 핑계로 에피니아가 황실 밖으로 도망쳤으니까.’

하지만 그것에 있어서 난 좀 억울했다.

내가 도망치라고 강요한 적은 없었다.

에피니아의 호위기사는 산적들에게 포위당한 상태로도 당당했다.

멀찍이 있던 로브의 사람이 에피니아의 호위기사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알고 있다면?”

뒤에 있던 로브의 사람이 로브를 벗으며 움직였다.

로브의 사람이 로브를 쓰고 있던 이유가 밝혀졌다.

로브의 사람의 얼굴엔 흉측한 화상자국이 있었다.

“뭣이···?”

“그 마차에 타신 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다고 말했었다.”

당황하는 에피니아의 호위기사였다.

급히 마차 안에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차에 두 사람이 마저 내렸다.

에피니아와 아미스였다.

아미스를 본 순간 안도감이 절로 들었다.

‘아미스라면 상대가 누구라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테지.’

게다가 에피니아도 상급의 실력자다.

이런 산적들한테 당할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에피니아 일행이 버텨줄 동안 후미를 맡을 필요가 있다.

정확히는 산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노스 상단주.

‘이런 곳에 오지 않은 걸 본다면 전투관련 능력은 아닐테지.’

빠르게 잡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겠다.

나는 다른 이들이 눈치 못 채게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노스 상단주가 있는 산채로 걸음을 옮겼다.

생각보다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애당초 먼 곳이 아니었다.

‘저거 완전 몹쓸 것이네.’

노스 상단주는 아주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노스 상단주가 잠깐 당황하다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벌써 끝난 것이냐?”

“응.”

“그런데 황녀는 어디··· 뭐?”

“벌써 끝났어.”

“말이 짧구나?”

“네가 끝났다고.”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었다.

염동력을 이용해 곧바로 노스 상단주의 목을 꺾었다.

그리고 다시 에피니아 일행이 있을 장소로 이동했다.

‘응···?’

충격적인 모습을 보고 말았다.

에피니아의 호위기사가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아미스가 힘겹게 두 사람을 상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머지 산적들은 에피니아가 상대하고 있었다.

‘저건 좀 새로운 능력이네.’

지금까지 봐온 능력이 많았지만 하찮은 능력이 더욱 많았다.

얼굴에 화상 흉터가 가득한 사내의 능력은 결이 달랐다.

‘마법사?’

1서클 마법에 속하는 파이어를 난사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파이어가 아니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불을 자유롭게 조종하고 있었다.

‘일단은 도우러 가야겠지.’

저대로 가면 아미스도 곧 쓰러질 것 같았다.

***

에피니아는 끊임없이 검을 휘둘렀다.

최근 들어 검을 수행하지 않았던 것 때문인지 에피니아의 몸은 많이 둔해졌다.

그럼에도 가볍게 산적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많아도 너무 많았다.

최대한 죽이지 않는 방향으로 검을 휘두르는 에피니아였지만, 아무래도 이정도 수는 무리에 가까웠다.

게다가 아미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보였다.

‘데인트, 그렇게 방심하지 말라고 했는데.’

에피니아의 호위기사 데인트.

그는 어이없게 당해버렸다.

눈앞에 화상 흉터의 사내가 1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비웃었다.

게다가 화상 흉터의 사내의 공격은 데인트 옆으로 빗나가기까지 했다.

하지만 파이어 마법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이더니 그대로 데인트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예상치 못한 일격에 데인트는 계속해서 후속타를 허용하고, 기절까지 해버렸다.

“아미스, 괜찮아?”

에피니아가 아미스를 보았지만, 여간 힘들어 보이는 게 아니었다.

신체강화로 강인해진 아미스의 공격을 어린아이 정도 체구의 사내가 막아내고, 화상흉터의 사내가 아미스의 빈틈을 노리며 공격했다.

“미치겠네.”

에피니아의 체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누가 좀 도와줘!’

간절한 마음으로 에피니아가 빌었다.

그리고 순간 수하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에피니아, 도우러왔어요.”

순간 들린 수하르의 목소리.

환청을 들었다고 에피니아가 생각했다.

하지만 에피니아의 눈앞에 익숙한 등이 보이자 깨달았다.

환청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

에피니아의 앞에 섰다.

몇몇 산적들이 나를 알아보았다.

“거기에 왜 있는 거야!”

“설마···.”

몇몇 산적들은 내가 레크를 처리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미안하지만 너희한테 쓸 시간 따윈 없다.”

염동력을 이용해 주위에 있는 산적들의 다리를 꺾어 전투불능의 상태로 만들었다.

내가 염동력을 쓰는 순간, 아미스가 상대하고 있던 이들이 표정이 굳어졌다.

그것을 확인한 내가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주었다.

“너희 조직만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능력의 격차를 알아차린 것인지 아미스를 상대하다 말고 도망을 치려고 하는 둘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용납할 내가 아니었다.

곧바로 염동력을 이용해 끌어당겼다.

“어딜 가려고!”

화상흉터의 사내의 주변에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불꽃이 생겨났다.

내게로 쏟아지는 불꽃.

‘어떻게 보면 나랑 비슷한 능력이네?’

멀리서 확인한 결과, 화상 흉터 사내의 능력은 나와 매우 비슷했다.

하지만 화상 흉터의 사내가 가진 능력은 내 하위호환이었다.

그의 염동력은 불꽃만 반응했다.

그리고 저 왜소한 체구의 사내.

‘얼굴을 확인 못했다면 아이로 착각했을 거 같군. 아마 저 녀석이 산적의 두목이 맞겠지?’

아미스의 신체강화를 막아낼 만한 괴력을 가졌다.

분명 산적 두목이 괴력을 가졌다고 하였다.

레크의 표현력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왜소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의 체구를 가졌다고 하면 될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런 건 나한테 안 통해.”

코앞까지 날아온 불꽃을 간단히 없애버렸다.

당황한 표정인지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진 화상 흉터의 사내.

나는 검으로 아이 체구의 사내를 가리켰다.

“일단은 너부터야.”

곧바로 비기를 날렸다.

아이 체구의 사내는 팔을 교차한 채로 내 비기를 막았다.

아니, 막았다기보단 맞았다.

맞고 날아가다 나무에 부딪혔다.

“너만 남았네?”

화상 흉터의 사내가 뒷걸음질 쳤다.

아이 체구의 사내는 충분히 포획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화상흉터의 사내는 달랐다.

‘포획을 하더라도, 능력을 막을 방도가 없으니까.’

작은 촛불을 이용해 탈출할 가능성도 있다.

죽여야한다.

화상 흉터의 사내에게 퇴마검을 던졌다.

“커억···.”

퇴마검이 심장 부근에 꽂히면서 화상 흉터의 사내의 고꾸라졌다.

상황이 정리되었다.

몇몇 산적들이 도망치려고 간을 보고 있었다.

“너희 도망치는 순간 죽는 거야.”

그러자 얌전히 기다리는 산적들.

나는 고개를 돌려 에피니아를 바라보았다.

많이 당황한 듯한 에피니아.

“수하르··· 네가 왜 여깄어?”

“그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에피니아가 다급히 움직였다.

“잠깐만 데인트를 치료해야돼.”

그러고 보니 호위기사가 쓰러져있는 것을 나 또한 목격했었다.

겉보기엔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진 않지만 만에 하나의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치료는 해야겠지.

***

에피니아 일행에게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째서 내가 그곳에 있었는지 말이다.

다행히도 에피니아에겐 전에 조직에 관해 말한 적이 있기에 쉽게 수긍해주었다.

“그럼, 저는 나머지 뒤처리를 하러 가볼게요.”

이곳에 남아있는 적은 보잘 것 없는 산적뿐이다.

노블리스 조직원은 힘이 강할 뿐인 한 사람만이 남아있었다.

힘이 강할 뿐이면 아미스가 혼자서 제압할 수 있을 것이었다.

산적들 또한 대다수의 산적이 전투불능 상태였기에 이곳을 떠나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래, 그런데 그 조직의 지부가 어딘지는 알고 있는 거야?”

“물론이죠.”

그것은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노스 상단의 건물 지하.

“그럼, 그 일을 끝마치고, 에피아 신성제국의 황실로 와.”

“네? 그곳을 제가 갈 수 있을까요?”

“내가 잘 말해둘게.”

“알겠어요.”

나는 노스 상단이 있는 수도로 향했다.

***

단시간에 노스 상단의 지하로 들어가서 모든 적들을 전투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다만 구속하기 어려운 적들은 어쩔 수 없이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소동을 알아차린 에피아 신성제국의 병사들이 노스 상단을 찾아왔다.

나는 그들이 알아차릴 수 있게 이들 행한 악행이 담긴 서류를 남겨놓고 왔다.

“그나저나···.”

모든 일을 마쳤으니 이제 에피아 신성제국으로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무언가 잊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착각이겠지?”

찝찝한 마음을 뒤로한 채 나는 에피아 신성제국의 황실을 찾아갔다.

***

주변의 동물을 사냥하는 데에 지친 하르가 누워서 쉬고 있었다.

하르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이젠 맛있는 걸 먹고 싶어.’

배도 부른 상태였지만 인간이 만든 자극적인 요리는 하르의 입맛에 맞았다.

하지만 하르는 며칠 동안 그런 음식을 먹지 못했다.

간이 심심한 동물만 뜯어먹으니, 이제는 더 이상 이곳에 있기 싫었다.

‘슬슬 올텐데···.’

이번에 산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함부로 접근하면 위험하다는 본능의 경고에 먼 곳에서 지켜봤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하르였다.

주인 또한 그곳에 있었다.

‘아마 일이 다 끝났으니 날 찾으러 와야하는데.’

분명 주인이 말했던 일이 모두 끝마쳤을 것이다.

‘주인, 빨리 날 데리러와줘.’

하르는 약속했던 장소에서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

나는 계속해서 삐져있는 하르를 달래기에 바빴다.

“하르야, 진짜 미안해. 깜빡했어.”

신성제국의 황실은 좋았다.

신성력이 가득한 공간이라 그런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너무 마음이 풀어져서였을까, 하르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에피니아와 밀린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하르를 찾질 않았다.

그게 지금의 상황이었다.

“진짜 하르야, 이번에 진짜 맛있는 거 사줄게.”

하르의 귀가 움직였다.

제법 하르의 마음에 들었던 말이었나보다.

“목돈도 탔으니까, 진짜로 맛있는 거 사줄게.”

포상금을 받아서 자금이 넘쳐난다.

애당초 돈을 많이 저축해두었지만, 이렇게 돈이 생기니 낭비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보다 고작 산적들한테 그렇게나 높은 현상금이 걸려있었다니.”

게다가 에피니아의 증언으로 노스 상단의 악행을 밝혀냈다는 공로로 보상금까지 받았다.

물론 내 정체에 대해선 숨겨달라는 부탁했다.

“다음 목적지는···.”

에피아 신성제국의 유명한 관광지인 포라스트다.

신이 창조했다고 흔히들 표현하는 유명한 관광지였다.

“조금만 참아, 그곳에서 진짜 맛있는 거 사줄테니까.”

본디 유명한 관광지에는 맛집이 있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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