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84화 (84/150)

#84화.

내가 노스 상단의 지부를 멸한 뒤 노스 상단의 악행이 에피아 신성제국의 황실에게도 알려졌다.

그로인해 노스 상단은 현재 범법단체가 되어 탄압을 받는 중이었다.

황실에서 에피니아를 만나고, 훗날을 기약했다.

“신성제국에서 일이 끝나면 미케네르 제국을 다시 찾을 것 같네요.”

미케네르 제국은 굳이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곳에도 지부는 있지만, 에피니아가 있기에 이미 탄압을 시작했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다시 찾기로 약속했다.

‘볼일은 없지만, 미케네르 제국도 관광지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많으니까.’

그리고, 현재.

“······.”

에피아 신성제국의 최대 관광지, 포라스트 도착했다.

도착한 뒤에 본 풍경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하르 또한 멍하니 풍경을 보기만 하였다.

“확실히 엄청나네···.”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은 몇 번 가보았다.

하지만 이곳, 포라스트의 조화는 색달랐다.

많은 양의 석상이 자연과 더불어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오길 잘했네.”

사실 이 경관을 보기 전까지는 약간의 후회도 했었다.

포라스트의 물가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후회는 경관을 보니 싹 달아났다.

“그나저나 이런 아름다운 공간에도···.”

조직의 지부가 숨어있었다.

도대체 조직의 규모가 얼마나 크기에 대륙 곳곳에 숨어있는 것일까.

솔직히 이 정도면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활동해도 될 정도라 생각되었다.

“뭐, 조직의 규모가 크더라도 그 조직의 목적이 불순하니까.”

음지에서 활동하는 것이겠지.

“하여튼 하르야, 이곳에선 날 잘 따라다녀야한다.”

‘컹!’ 하고 짖는 하르.

내 말을 잘 알아들은 모양이다.

이곳에 하르를 혼자 두기엔 위험했다.

강한 몬스터가 즐비한 것도 아니지만, 이 경관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동분서주 움직이고 있다.

한마디로 몬스터는 이 근처에 접근도 못한다는 소리다.

만약 하르가 혼자 따로 다니다간 토벌당할 수 있단 소리였다.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으면···.”

이제 관광할 시간이다.

***

칼데르트 영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로토 왕국의 검성, 케론 사르키드와 함께 사르키드 공작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르키드 영애도 함께였다.

이들이 함께 칼데르트가를 찾아올 이유가 없었기에 칼데르트 백작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검성님, 갑자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내가 몇 번째 말하는 거냐. 그냥 형님이라고 하라니까.”

그 말에 칼데르트 백작은 곤란한지 웃었다.

공작이 같은 자리에 있기에 그의 아버지인 검성에게 말을 편하게 할 순 없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사르키드 공작의 말에 칼데르트 백작은 목을 다듬으며 말했다.

“크흠, 형님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그게 말이지···.”

검성이 못마땅하다는 듯 사르키드 공작을 바라보았다.

칼데르트 백작은 그제 서야 깨달았다.

자신에게 용무가 있는 것은 검성이 아니라 사르키드 공작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약혼을 진행할까 합니다.”

“약혼이라면···.”

칼데르트 백작이 사르키드 영애를 힐끗 쳐다보았다.

많이 쳐보아도 열 살 언저리로 보이는 소녀.

“아무래도 좀··· 데이브의 나이가···.”

“아니, 수하르를 말하는 겁니다.”

“예?”

느닷없이 튀어나온 막내의 이름에 칼데르트 백작은 침을 삼켰다.

“수하르 칼데르트와 내 딸 엘리스를 약혼시키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칼데르트 백작에겐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백작위를 물려받는 것은 자신의 아들 데이브다.

수하르와 엘리스는 속히 말해서 급이 맞지 않았다.

‘아, 생각해보니 사르키드 공작은 딸이 한 명밖에 없었지.’

그렇다는 것은 남편은 웬만하면 데릴사위가 편할 것이다.

칼데르트 백작은 어째서 수하르인지를 생각해보았다.

‘그야, 검성님과 친분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아카데미에서의 친분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약혼을 진행시키는 것도 이상했다.

게다가 검성은 이 약혼에 대해서 탐탁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칼데르트 백작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뿐이었다.

“수하르의 생각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제 서야 웃는 검성이었다.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깨달은 칼데르트 백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소중한 손녀를 그런 놈팽이 놈에게 넘길 수 없지.”

“아버지!”

사르키드 공작이 갑자기 호통쳤다.

그런 모습에 검성은 당황했다.

전까지만 해도 수하르를 놈팽이라 지칭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던 사르키드 공작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 내가 실례를 했구만, 칼데르트 백작.”

아무리 검성이라도 부모의 앞에서 자신을 욕하는 것은 실례였다.

검성의 빠른 사과를 칼데르트 백작은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제 아들이 놈팽이라니, 혹시 검성님··· 케론 형님께 배울 때 무언가 실수를 저질렀습니까?”

“아니, 그녀석의 재능은 매우 뛰어났지. 그런 문제가 아닐세.”

“그렇다면···.”

“전에 약속했던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더군.”

약속이라는 말에 칼데르트 백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검성이 저렇게 화낼 정도의 약속이라면 도대체 무엇일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에이션트 스네이크 술.”

짧은 순간에 집무실 안의 모두가 경직되었다.

에이션트 스네이크 술.

쉽게 구할 수 없는 술이었다.

억만금을 주더라도 팔지 않는다는 그런 술이었다.

“제 아들이 큰 실수를 했습니다. 하지만 에이션트 스네이크의 술을 수하르가 어떻게 구하겠습니까···.”

칼데르트 백작은 수하르가 이미 에이션트 스네이크를 잡았고, 그것으로 술을 담그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원흉이라고 하면 데이브가 말하는 것을 깜빡했었기 때문이다.

“잉? 자네는 몰랐었나보군. 자네 아들은 이미 에이션트 스네이크를 잡고, 술을 담그고 있었다네.”

“예?”

“전에 한번 맛봤을 때 맛이 아주 좋았지.”

칼데르트 백작은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귀한 게 있다면 부모를 먼저 챙겨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하하··· 그런가요.”

“이제 슬슬 다 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술을 안 가져오니, 내가 화를 낼 수밖에 없지.”

오묘한 분위기를 파악한 사르키드 공작이 화제를 바꾸었다.

“약혼건을 어떻게든 안 되겠습니까?”

“아··· 방금 말했다시피 수하르의 결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옆에 있는 검성이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아들 녀석아, 이제 네놈의 꼼수도 끝났구나.”

칼데르트 백작이 검성에게 의문을 표했다.

“그게 무슨?”

“이미 수하르가 한 차례 거절을 했기에 가문간의 약속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음흉한 계획을 저 잘나신 사르키드 공작님이 세웠지.”

“아···.”

가문간의 약속이라면 수하르가 계속 거절을 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었다.

사르키드 공작의 얼굴이 붉어진 걸 확인한 칼데르트 백작은 검성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하르가 거절했다면 저도 어쩔 수가 없겠습니다.”

이렇게 사르키드 공작의 계략은 한 차례 실패로 돌아갔다.

다만 이번 일로 칼데르트 백작은 수하르에게 서운한 점이 하나 생겨버렸다.

‘에이션트 스네이크 술··· 나도 잘 먹을 수 있는데···.’

***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조금 아쉽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흘러갔다.

한평생 이러고 있고 싶을 정도였다.

하르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여관으로 돌아가야지.”

바가지요금의 여관이지만, 충분히 지낼 수 있을 만한 곳이었다.

단점이 하나 있다면 하르를 마구간에 재워야한다는 점이었지만.

“하르, 내가 경고하는데 절대 다른 말들을 잡아먹으면 안 된다!”

고개를 끄덕이는 하르.

애당초 여관에서는 하르를 데리고 있는 나를 받지 않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다른 여관엔 빈방이 없었기에 내가 조건을 세웠다.

나는 여관에서 자고, 하르는 마구간에서 재우기로.

그리고 하르가 마구간에서 지내는데 말에게 상처를 입힌다면 두 배의 가격으로 말을 매입하겠다고 말이다.

“하여튼··· 걱정된단 말이지.”

말귀를 잘 알아듣는 녀석이지만, 밥을 너무 먹는다.

식탐이 많은 것인지 자신의 덩치보다 더 먹는 것처럼 보였다.

저 식탐에 비결엔 분명 머리에 난 칼날같이 생긴 뿔에 담겨있을 거라 짐작되지만.

“일단은 이곳에 숨은 지부부터 처리해야겠지.”

나는 한시가 바쁜 사람이다.

차근차근 지부를 무너뜨리고 있지만, 이들이 눈치채고 숨어버리면 큰일이다.

다행히도 이들이 점조직의 형식이 다행일 뿐이었다.

조직원끼리도 다른 지부의 존재를 자세히 알지 못하니 노스 상단의 일은 이곳의 지부엔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몇 개의 지부까지 처리할 수 있으려나···.”

이들이 눈치채기 전에 빠르게 처리하는 게 관건이었다.

***

포라스트에 있는 지부는 가볍게 처리했다.

딱히 까다롭게 느껴지는 능력도 없었다.

지부의 처리 후엔 포라스트를 다스리는 영주에게 이곳의 처리를 맡겼다.

“빨리 끝나서 다행이네.”

곧바로 여관으로 향했다.

여관에서 잠을 청하기 전에 마구간에 들렀다.

“하르야, 얌전히 있지?”

하르는 몸을 둘둘 말고선 잠에 든 상태였다.

주변의 말들 또한 문제없이 있었다.

“다행이네.”

식탐이 많은 녀석이지만 잘 참아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저 향이 강한 조미료에 맛 들려서 안 먹은 걸 수도 있겠다.

“나도 이제 자야겠다.”

나는 여관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

쾅쾅.

누군가 강하게 방의 문을 두드렸다.

그 소리에 나는 뒤척이며 일어났다.

“빨리 나와주세요!”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

언뜻 짜증이 섞여있었다.

나는 표정을 찌푸리며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어보니 어제 본 여관 주인이었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실례십니까!”

솔직히 나도 약간 짜증이 난 상태였기에 목소리에 절로 날이 섰다.

“어제 하셨던 말과 다르지 않습니까!”

“네? 어제 했던 말이라면?”

분명 하르를 마구간에 재우겠다고 했었다.

“제가 기르는 늑대라면 마구간에 재웠는데요.”

“그거 말고, 그 늑대가 말을 해치지 않는다는 말이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설마 하르가 말을 해쳤다는 말인가.

믿기지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분명 어제 밤까지만 해도 말들은 멀쩡했다.

“그렇다면 직접 한번 보시죠.”

여관 주인을 따라간 마구간에는 약간의 사람이 모여있었다.

여관 주인이 쓰러진 말을 가리켰다.

“저기 말에 난 상처가 안 보이십니까!”

말의 옆구리 쪽에 상처가 나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묘했다.

아무리 생각하더라도 늑대가 낸 상처라기보단 칼이 낸 상처였다.

‘아··· 하르는 뿔이 칼날이었지.’

역시 하르가 낸 상처일까.

하지만 여전히 이상했다.

말은 옆구리에 상처가 났지만, 살아있다.

만약 하르가 진짜로 공격했다면 말은 죽어있어야 정상이 아닌가.

혹은 하르의 배 속에 있거나.

“아무리 봐도 저건 칼에 당한 상처로밖에 안 보이는데?”

“당신이 가져온 늑대의 머리에 뿔이 달려 있잖아요! 게다가 한둘이 아닙니다.”

여관 주인이 여러 마리의 말을 가리켰다.

여관 주인이 가리킨 말들의 공통점은 옆구리에 상처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팔짱을 낀, 거만한 자세를 취한 여관 주인이 말했다.

“어제 말했던 대로 보상해주시죠.”

보상?

‘생각해보니 하르가 말을 죽이면 말을 두 배의 가격으로 산다고 했지.’

수상함이 극에 달했다.

“하르야, 네가 저 말들한테 상처를 입힌 거야?”

고개를 젓는 하르.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건 돈을 벌려는 여관 주인의 수작이 분명했다.

‘재밌네.’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할지 생각에 잠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