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86화 (86/150)

#86화.

에피니아와 여행을 다니는 동안 내 안에 무언가가 변해갔다.

흐릿했던 게 선명해졌달까.

“내가 왜 이러지?”

점점 에피니아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은 이미 나는 에피니아를 좋아하는 건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확실하진 않았다.

그렇지 않을까 하는 그저 흐릿한 생각뿐이었다.

‘그때부터려나···.’

어차피 후계를 포기했을 거라는 에피니아의 말.

그 말을 한 직후부터 에피니아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었을까.

이런 상념은 에피니아가 내게 말을 걸며 그만두었다.

“수하르, 아직 여행할 곳이 많이 남았어, 서두르자.”

“아, 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한 생각이 들었다.

‘에피니아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

수하르가 눈치 못 채게 에피니아는 눈가에 짙은 화장을 했다.

다크서클 때문이었다.

수하르와 여행을 시작한 순간부터 제대로 된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매일 밤마다 두근거려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자꾸 그때가 생각나는 거야!”

수하르가 책의 악마를 데려왔을 때의 수하르, 산적들에게 위기를 처했을 때 나타난 수하르의 등.

자꾸만 자신을 구해주었던 수하르의 모습이 에피니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에피니아 본인 스스로도 왜 이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수하르를 좋아하는 거겠지. 이성으로···.”

그렇기에 이번 여행을 계획한 것이었다.

솔직히 홧김에 한 말에 가까웠다.

미케네르 제국의 황녀라고는 하나, 미케네르 제국의 관광지를 모두 다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이 안 다녔다.

“저주 때문에 바빴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이 더더욱 새롭게 다가왔다.

“메케네르 제국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많았다니.”

지금까진 책으로 본 게 다였다.

그렇기에 책이 아닌 직접 가서 보는 건 차원이 다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어떻게 보면 지금 에피니아가 하고 있는 것은.

“연인들이나 하는 행동이지.”

자신이 내뱉은 말에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워하는 에피니아였다.

에피니아에게는 첫사랑이었다.

어렸을 때엔 약혼 이야기도 나오고는 했지만, 에피니아가 저주에 걸린 순간부터 약혼 이야기는 전혀 나오질 않았다.

애당초 사랑에 빠질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저주가 해주되어서려나···.”

저주가 해주되는 순간 마음에 여유가 생겼기에 사랑에 빠져든 것일까.

아니면 저주는 사랑이라는 감정마저도 잡아먹었던 것이었을까.

“이크, 수하르가 기다리겠다.”

에피니아는 급하게 화장을 마치고, 수하르가 기다리고 있을 장소로 서둘러 움직였다.

***

미케네르 제국의 여행은 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솔직히 미케네르 제국엔 콜로세움 말고는 볼 게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포라스트를 다녀왔기에 더더욱 기대가 없었다.

최고의 경치라고 불리우는 포라스트 마을.

그곳을 이미 경험해본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여행을 다니면서 싹 바뀌게 되었다.

‘포라스트 마을만큼은 아니지만 좋네.’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진 곳이 많았다.

경관을 보는 게 질리면 도시를 찾았다.

여행 중에 갔던 미케네르 제국의 도시는 전부 좋았다.

“조르던 자유도시와 비견될 만한 도시가 이렇게 많았군요.”

역시 제국이었다.

에피니아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건 그렇지. 제국인데!”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여행의 결이 전부 같은 느낌이네요.”

굳이 뽑자면 이게 불만이었다.

자연경관을 감상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이것도 하루 이틀이라면 즐거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똑같은 일상이 나흘째다.

솔직히 말해서 질리기 시작했다.

“음··· 막 콜로세움같이 특색 있는 곳이 제국에는 없을까요?”

“그런 곳이라면···.”

잠시 고민하던 에피니아가 손뼉을 치면서까지 화색을 보였다.

“맞다! 그곳이 있었구나.”

“그곳이요?”

“응, 제국에서 되게 유명한 곳인데 왜 그곳을 생각 못했지.”

제국에서 유명하다면.

콜로세움, 그리고···.

문득 한 장소가 떠올랐다.

“설마 테오자이아 유적지인가요?”

“응, 맞아!”

테오자이아 유적지라면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유적은 여러 형식의 유적이 존재했다.

골렘 같은 기계인형이 가드로 있는 유적이나 미지의 힘으로 몬스터를 가드로 세운 유적.

보통 이런 유적에는 유적을 만든 이의 소중한 보물이 존재했다.

하지만 다른 형식의 유적도 존재했다.

‘보통 다른 형식의 유적은 관광지로 많이 통하지.’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과거의 별장이었다.

그곳의 공통점은 유적을 지키는 것 따윈 없었다.

게다가 테오자이아 유적지라면 유적을 원래 상태로 복구하는 데까지 성공한 곳이었다.

“재미있겠네요!”

“그치. 그런데 내가 왜 생각을 못했을까.”

뭐, 생각을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테오자이아 유적지가 제국의 수도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보통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테오자이아 유적지로 가죠! 안내는 맡길게요.”

“응. 맡겨만 둬!”

나와 에피니아는 여행지를 테오자이아 유적지로 정하고, 곧바로 출발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유적지에 늑대를 데려가도 되었었나?’

뭐 상관없겠지.

***

크나큰 야망으로 모인 조직, 노블리스.

현재의 귀족들을 전부 없애버리겠다는 뜻이 담겨있는 조직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수뇌부는 수하르로 인해 곤란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노블리스 조직에 2인자가 소리쳤다.

“도대체 누가 그런 것인지 왜 밝혀내지 못하는 것이냐!”

2인자의 호통에 조직의 간부들은 고개를 숙인 채 들지 못했다.

2인자는 자신이 받은 보고서를 던지며 말했다.

“그리고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보고서에는 단 한 사람의 소행이라는 결론이 적혀있었다.

분노하는 2인자에게 변명하듯 한 조직원이 말했다.

“그렇지만, 궤멸된 조직의 지부를 확인한 결과 모두 같은 방식으로 당했습니다. 한 사람이 그런 것이라고밖에···.”

2인자가 화를 삼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조직이 단 한 사람한테 궤멸당했다는 말이냔 말이다!”

지부에 따르겠지만 2인자는 확신하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이 소드마스터라도 지부를 궤멸시킬 수는 없다고 단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체라면 움직임이 포착되었을텐데 그런 움직임은 전혀 없었습니다.”

“후···.”

막막할 따름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인지 2인자가 생각해보았다.

“블랙 용병 한스··· 아니, 카시아스. 그 녀석은 지금 뭐하고 있지?”

무언가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루기 마을에서부터였다.

붉은 머리의 오트리스가 죽음을 당한 그곳.

부활의 악마가 소환된 그곳이었다.

그곳에서 한스 라이크라는 자가 계획을 무산시켰다고 들었다.

“응징을 하려고 했것만···.”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졌다.

위치를 특정할 수 없었기에 곤란하던 찰나에 이름을 바꾸고 검투사를 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아낸 상태였다.

“분명 그 녀석이 틀림없어.”

그때 곧바로 응징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또 사라져버렸다.

정보상을 통해 그 녀석의 정보라도 알아내려고 했지만,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정보가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황실에서 묶은 것이었다.

“그래, 이제야 확신이 드는구나.”

한스 라이크.

분명 그자가 이 모든 일이 원흉이라고 2인자는 확신했다.

도대체 그자는 어떻게 지부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던 것일까.

답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배신자가 있군. 조만간 숙청을 해야겠어.’

2인자가 말했다.

“다음으로 습격당할 장소가 어디라고 생각하지?”

“시간 순서대로면 에피아 신성제국의 포라스트 지부의 다음으로 아마 에피아 신성제국의 포라스트 근처인 페페로 도시에 있는 지부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가··· 당장 그곳 지부에 연락을 취해서 함정을 파고 기다리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배신자를 어떻게 솎아낼지 2인자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역시 보스에게 찾아가야겠지.”

2인자에게 보스는 모르는 게 없는 절대자였다.

분명 보스에게 조언을 받는다면 충분히 이 일을 넘길 수 있을 거라 2인자는 생각했다.

“분명··· 미케네르 제국에 있는 테오자이아 유적지에 가신다고 했었는데.”

조직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리는 장소였기에 차분히 기다리기로 2인자는 결정했다.

***

테오자이아 유적지에 도착하기 전날에 나는 불길한 꿈을 꾸었다.

정확히는 내 꿈이 아니었다.

퇴마검의 전 주인 카시아스.

그가 상대했고, 패배했던 악마가 나오는 꿈이었다.

‘아마 그 악마를 상대했을 때의 카시아스는 지금의 나보다는 약했겠지.’

하지만 그 악마에게 너무 간단히 패배했다.

카시아스의 기억 속에 악마는 소드마스터 그 이상의 존재가 분명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꿈을 꾼 거지.”

왠지 모르게 불길했다.

“개꿈이겠지.”

나는 그저 꿈으로 치부하며 이것을 넘겼다.

모처럼의 여행을 이런 꿈 때문에 불길한 기분에 휩싸여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날이 좀 이르긴 한데.”

아침에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일찍 깨어났다.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하르를 데리고 아침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하르야!”

여전히 꿈나라에 빠져있는 하르를 억지로 깨웠다.

약간 투정을 부리는 하르를 데리고 여관을 나왔다.

아직까지 밖은 어두운 새벽이었다.

“이럴 때하는 산책이 좋은 거지. 그치, 하르야?”

못마땅한 듯 하르가 크게 하품했다.

그래도 하르는 나를 따라와주었다.

빠른 속도로 산책을 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산책을 끝내니 날은 어느새 밝아있었다.

이제 씻고 출발할 채비를 하면 될 것이다.

“분명 한 시간 정도의 거리라고 했었지?”

한 시간 거리에 테오자이아 유적지가 기다리고 있다.

얼른 몸을 씻고 여관의 입구에서 에피니아를 기다렸다.

이윽고 에피니아가 내려오고, 함께 테오자이아 유적을 향했다.

***

“우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유적은 옛적의 유산이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촌스러움은 감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테오자이아 유적지는 달랐다.

촌스러움은 전혀 없는 고풍스러운 장소였다.

“확실히 인기 있을 만하네요.”

옛 건물들이 솟아올라 있었다.

건물들을 살피던 중에 몇몇의 건물들은 눈에 익숙했다.

‘어···?’

카시아스의 기억에서 보였던 건물들이었다.

정확히는 그 건물은 아니겠지만, 비슷한 양식의 건물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 건물들은 카시아스의 시대 때에 만들어진 것일까?’

그와 동시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처음의 발견 당시의 모습은 모르겠으나, 완벽하게 구현해냈다는 것이었으니까.

“수하르, 나 잠깐만!”

에피니아는 볼일이 있다면 어딘가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나는 좀 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오한이 들었다.

본능이 미친 듯이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뭐지, 이 께름칙한 느낌은···.’

그 느낌은 절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마기가 뿜는 그 께름칙한 느낌.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한 사내를 발견했다.

한 사내는 나를 향해 끈적한 미소를 지은 뒤에 사라졌다.

나는 급하게 주변 사람을 붙잡으며 말했다.

“이곳에 누군가를 찾는 듯한 여자가 있으면 제게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떠났다고 해주세요. 참고로 제 이름은 수하르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그 사내가 남긴 흔적을 쫓아갔다.

마치 나보고 따라오라는 듯이 흔적을 제대로 남겨놓은 사내였다.

그리고 산에 도착했다.

분명 낮이라 밝아야함에도 어두웠다.

흔적이 끊긴 곳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통 사내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냐!”

내가 소리쳐 불렀음에도 메아리칠 뿐 사내는 나타나지 않았다.

심호흡을 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이질감이 드는 곳을 포착하고 곧바로 그곳으로 비기를 날렸다.

올바르게 날아가던 비기는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 검과 네게서 느껴지는 그 힘··· 오랜만이라고 해야겠군.”

사내는 카시아스와 퇴마검을 아는 존재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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