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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87화 (87/150)

#87화.

내가 사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지?”

사내가 어이없다는 코웃음을 쳤다.

“그건 내가 해야할 말 같군. 그 검과 그 힘은 네 것이 아니다. 도대체 어디서 그것들을 얻었지?”

말 한마디마다 끈적한 기운의 마기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눈앞에 있는 사내의 경지를 추측했다.

‘소드마스터 이상의 경지가 분명해.’

현재의 나는 이길 수 없는 존재였다.

그렇다고 도망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런 존재를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것도 최근에 꿈까지 나왔다.

“어떻게 마족이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거지?”

“오호··· 어떻게 내 정체를 눈치챈 거지?”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다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그야, 인간 중에선 이런 존재를 본 적이 없으니까.

게다가 마기마저 풀풀 풍기고 다니는데 모를 수가 있나.

마치 자신이 마족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지독한 냄새라··· 잘 씻고 다니는데, 이상한 일이군.”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해야할지 고민해보았다.

전면승부는 불가하다.

이곳에 파스타르와 검성이 동시에 나타나더라도 이길 수 있을지 미지수에 가까웠다.

그만큼 저 사내가 풍기는 위압감은 엄청났다.

“뭐, 상관없다. 자기소개를 하도록 하지. 모략의 악마, 벨페레스라고 한다. 이곳에선 벨레스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

모략의 악마, 벨페레스.

카시아스의 기억 속에 있던, 카시아스가 상대하고, 카시아스에게 패배를 안겨준 악마였다.

하지만 그 기억 속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기억 속의 악마의 모습 온데간데없고, 인간이 한 명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인간의 육체로 지낼 수 있는 거지? 그 정도 힘을 가진 채 말이야.”

악마가 인간에 빙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악마가 인간에 빙의한 경우 악마는 본인의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

“제법 악마에 대한 지식이 많나보구나. 이게 온전한 힘이 아니니까 그렇지.”

거짓말이 분명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벨페레스의 힘은 카시아스의 기억 때보다 더 강했다.

그런데도 온전한 힘이 아니라는 것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난 소개를 마쳤는데 너에 대한 소개는 아직이군.”

“······.”

솔직하게 내 정체를 말해야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이 악마에게 단 하나의 개인정보도 말해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략의 악마가 아닌가.

만약 내 정보를 약간이라도 건네주었다간 우리 가문에 어떤 모략질을 할지 모르는 일이다.

“카시아스 라이크.”

“······!”

살짝 놀란 모습을 보이는 벨레스.

“오랜만이군.”

나는 마치 카시아스가 된 양 말하기 시작했다.

카시아스처럼 구는 것은 쉬웠다.

그야 카시아스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네놈의 모략 때문에 부하들이 죽었다. 네놈의 모략 때문에 내가 죽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살아났지.”

“으음··· 도무지 믿기질 않는군. 하지만 그 힘은··· 진짜인가.”

어느 정도 먹힌 모양이었다.

“과거로 되돌아가는 힘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환생도 가능하다니. 인간은 참 재밌군.”

“과거로 되돌아가는 힘?”

과거로 되돌아가는 힘이라면, 회귀다.

그리고 난 회귀한 상태였다.

벨레스는 인간이 과거로 되돌아가는 힘을 지녔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역시 나는 타인의 의해 회귀한 것일까.

“그것도 모르는 것이냐? 정말로 카시아스가 맞나? 수상하기 그지없군.”

이게 무슨 소리인가.

과거로 돌아가는 힘을 카시아스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나저나 실망이 크군.”

“실망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다시 환생했다면 나를 생각해서 좀 더 힘을 길러야하지 않았겠나.”

나는 침묵으로 답했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의 경지로는 옛날의 벨레스를 이길 수 없었다.

“흥··· 내가 힘을 숨겼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난 한번 허세를 부려보았다.

“크하하하하1”

갑자기 미친 듯이 웃는 벨레스.

“그거 참 재밌는 말이군.”

“뭐가 재밌는다는 거지?”

“미안하지만 내게는 너의 경지가 다 보인다.”

“거짓말!”

어느 정도 경지를 짐작할 수는 있어도, 상대가 힘을 숨긴지는 모르는 법이다.

“나만큼의 힘을 가지게 된다면 너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얄팍한 수나 쓰려 하다니. 내가 겁을 먹었던 카시아스도 다 되었구나.”

웃기는 말이다.

지금의 나도 옛적의 벨레스를 이긴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당연히 그 당시 카시아스가 함정에 빠지지 않았어도 벨레스를 이길 수는 없었겠지.

그만큼 힘의 차이는 뚜렷했다.

그런데도 겁을 먹었다고 조롱하듯 말하는 벨레스였다.

“······.”

어떻게 이 위기를 넘길지 생각해보았다.

냅다 도망치면 살 수 있을까? 도망치는 순간 공격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죽기 살기로 싸운다면.

‘그래도 패배하겠지.’

싸우기도 전에 패배를 직감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다.

어떻게 인간의 육신으로 저 정도 힘을 기를 수 있단 말인가.

저 께름칙한 마기를 인간의 육신으로 받아들인다면 저렇게 강해질 수 있을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마기는 인간의 육신엔 독이다.

마기에 적응한 인간은 햇빛을 보진 못한다.

‘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빛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혹시.

마기를 받아들였을 때의 카시아스처럼 햇빛을 보지 못하는 상황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이해가 갔다.

‘약점이 없었더라면 이미 이 대륙은 저 악마의 손에 멸망했을 수도 있겠지.’

약점을 찾았다는 점 하나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하하하.”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벨레스는 의아해했다.

“미쳐버린 것인가?”

“너···.”

잠깐.

생각해보니 햇빛이 약점이라도 내가 태양을 떠오르게 할 수 있는 능력 따윈 없었다.

결국 지금의 내겐 무용지물에 가까운 약점이었다.

“흠···.”

“역시 미친 것이군. 나는 미친 자와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취미 따윈 없다.”

벨레스가 손을 휘저었다.

가볍게 손을 휘젓는 것 같지만, 벌어진 일은 내가 예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벨레스에게서부터 엄청난 힘이 내게 쏟아졌다.

퇴마검을 휘둘러 가까스로 각도를 비틀었다.

우거진 숲이었던 한 공간이 텅비어버렸다.

“크윽···.”

단 한 번의 공격을 막았을 뿐인데도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다.

“오호, 내 공격을 막을 줄이야. 제법 열심히 했나보군.”

“미쳐버리겠군.”

분명 벨레스는 가볍게 공격했다.

그 결과는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말이다.

도망치는 것도 안 되고, 싸움조차 안 된다.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끝인가···.”

회귀를 하게 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새로운 삶은 내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었고, 틀어진 가족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해주었다.

후회 없는 삶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런 괴물을 남겨두고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 괴물은 언젠가 이곳을 멸망하게 만들 것이다.

‘어라···?’

그런데 대륙을 혼돈으로 몰아가게 만드는 것은 노블리스라는 조직이었다.

설마.

“노블리스?”

“제법 정보수집을 했나보군. 내가 만들어낸 단체다.”

“그럴 리가 없다!”

능력을 가진 자들은 마족과 적대관계여야 정상이다.

그런데 벨레스가 만든 조직이 노블리스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수하들을 본 적 있는 모양이군. 그러고 보니 몇 번 지부를 망하게 만든 녀석이 있다고 들었지.”

“······.”

“그게 바로 너군. 참 죄책감에 시달렸겠어. 네놈과 똑같은 선택받은 핏줄을 베어 넘기느라.”

노블리스가 벨레스를 어째서 따르는 것인가.

게다가 분명 저렇게 마기가 느껴지는데 왜 따르는 것이란 말인가.

“그 얼굴을 보니 별로 죄책감을 가지고 있진 않는 모양이군.”

죄책감?

사실 노블리스 조직의 사람, 즉 나와 같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베는 것에 죄책감은 딱히 느끼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죽이고 싶을 정도지.”

왠지 모를 살의가 들끓었으니 말이다.

“역시 불완전하나보군.”

“그게 무슨 소리지?”

“인간의 말로는 소드마스터라고 하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걸까.

“너랑 만났을 당시 나는 소드마스터의 다음 단계를 절반 정도 넘었지.”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노블리스 조직의 이야기가 왜 경지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인가.

지금 벨레스가 하는 말이 죄책감과 불완전이랑 무슨 상관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리고 훗날 나는 온전히 소드마스터의 다음 단계에 올랐지. 이 경지는 단어로 표현하자면··· 반신의 경지.”

반신의 경지라고?

“어중간한 신의 힘을 얻게 된 것이지.”

“어중간한 신의 힘?”

“네놈은 신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갑작스러운 벨레스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신의 힘이란.

“창조?”

“제법 똑똑하군. 그렇지.”

그렇다는 것은?

‘설마 벨레스는?’

믿기 힘든 일이었다.

“어중간한 힘이라도 창조라는 힘을 얻게 되었다.”

그제 서야 불완전하다라는 말이 이해가 갔다.

씨익 하고 미소를 짓는 벨레스.

“네 녀석 말고 다른 능력자가 쉽게 발견될 리가 있나. 내가 보이는 족족 죽여버렸는데.”

그렇다는 것은 내가 노블리스 조직원을 볼 때마다 느끼는 살의는.

“네 수하들의 힘은 마기로 만든 것이군.”

“그것까지 눈치채다니 참으로 죽이기엔 안타까운 일이구나.”

왠지 모르게 상상이 갔다.

나 말고 다른 능력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말이다.

나는 카시아스가 마기를 직접 받아들인 만큼 마기에 예민해졌다.

그렇기에 벨레스의 정체도 눈치챌 수 있던 것이겠지.

‘벨레스의 반응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야.’

그리고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던 노블리스의 조직원을 보면서 살의가 들끓었던 이유는 그들의 힘이 마기로부터 왔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알아차린 것이겠지.

하지만 이것은 나에게만 국한된 일이었다.

만약 같은 능력자라고 생각한 이들이 그 조직에 가입한 순간.

‘벨레스가 죽여버렸겠지.’

나를 제외하면 벨레스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일이니까.

“너를 남겨두고 떠나야한다는 게 그저 분하구나···.”

“하하, 힘의 차이를 느끼고, 삶을 포기한 것인가.”

포기?

난 포기 따윈 하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죽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다.

최대한의 발악은 하고 죽을 생각이다.

“누가 포기한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볼 생각이다.

육체강화도 최대한으로, 염동력도 최대한으로.

마나마저도 최대한으로.

‘같은 소드마스터라도 막을 수 없겠지.’

하지만 상대는 소드마스터 그 이상의 존재.

어디까지 먹힐지는 모른다.

일단은 해봐야아는 일이다.

나는 벨레스를 향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오호, 이 실도 오랜만이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은밀하게 실을 조종했음에도 벨레스는 알아차렸다.

나는 쉬지 않고 벨레스를 공격했지만 벨레스는 여유로웠다.

“솔직히 이 실은 내게도 꽤나 위협적이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듯한 벨레스의 말.

벨레스는 방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뚫을 수가 없었다.

온몸에 격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신체강화의 부작용인가···!’

이렇게까지 신체를 강화한 적이 없었다.

소드마스터도 집중해서 봐야 할 만큼의 움직임이었을 터.

하지만 벨레스는 내 모든 공격을 가볍게 피해냈다.

‘게다가···.’

염동력으로 실을 움직이여보았지만, 벨레스가 뿜는 마기에 계속해서 막혔다.

‘이대로 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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