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오드가 발견한 책은 유적의 제작자가 적은 일기였다.
하지만 이 일기에는 별다른 내용이 적혀있지 않았다.
박해 받던 존재가 결국 반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내용이 끝일 뿐, 가장 중요한 반신의 경지에 오르게 된 방법은 없었다.
“반신의 경지에 대한 단서는 없는 걸까요?”
나는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오드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잘 찾아보면 나올 겁니다.”
오드의 말에 힘을 입어 계속해서 찾았다.
책상에 있던 마지막 책을 읽은 오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도 아니란 말입니까···.”
어째서 이 유적의 제작자는 이런 유적을 만들어낸 것일까.
그보다 어째서 이 유적에 반신의 경지에 대한 단서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후회라는 감정이 들었다.
‘아니··· 조금 알 거 같긴 해.’
반신의 경지에 대해 알 것만 같았다.
다만 위험한 방법이었기에 가능하다는 확실한 증거를 얻고 싶었다.
‘카시아스의 유적에 있던 몬스터들과 이곳의 푸른빛 오우거.’
두 개는 같은 기운을 풍겼다.
어째서 같은 기운을 풍겼을까.
카시아스와 이 유적의 주인은 동시대의 사람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도 같은 기운을 풍겼다.
생각해보면 간단했다.
‘카시아스도 반신의 경지에 올랐으니까.’
마법사를 불렀던 카시아스의 기억 때문에 그 몬스터들은 마법사가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던 것이다.
반신의 경지에 오른 카시아스가 만들어낸 몬스터였던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마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반신의 경지에 대한 조건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 그렇다고 치면 반신의 경지를 얻는 대신 태양 아래에서 살 수가 없지.’
그것은 아주 큰 단점이었다.
난 고난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았다.
회귀한 이상 휴식을 원했고, 훗날을 위해 현재를 열심히 살아왔다.
하지만 훗날을 위해 포기했던 현재를 포기했지만, 벨레스라는 존재 때문에 훗날이 위험해졌다.
‘진짜 싫네.’
손해 보는 느낌이 강했다.
나 말고 누군가가 벨레스를 쓰러트려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벨레스의 계획을 나는 회귀한 후에서야 알게 되었으니까.’
두 번의 삶을 살게 돼서야 벨레스의 존재를 눈치챘다.
벨레스의 계획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게 분명했다.
‘오드를 제외하면 말이지.’
마기를 받아들여야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치가 떨리게 싫었다.
그 께름칙한 기운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기엔 죽어도 싫었다.
“어? 수하르, 여기 뭐가 있어요!”
다급해보이는 오드의 말.
오드 쪽을 바라보니 어느새 침대에 있었다.
오드는 침대 밑에 손을 넣고 있는 상태였다.
“책이네요!”
침대 밑에 책이 있다는 오드의 말.
솔직히 기대는 되지 않았다.
침대 밑이라면 부끄러운 책이라도 숨겨둔 게 아닐까라 생각했다.
침대의 밑에 팔을 뺀 오드의 손엔 한 권의 책이 들려있었다.
“이건···?”
책을 펼쳐서 확인하는 오드.
시시각각 오드의 표정이 바뀌어갔다.
“이 책이었어요!”
“네?”
“이 책에 반신에 대한 경지가 담겨있었어요.”
정말인가?
침대 밑에서 발견된 책에 반신의 경지가 담겨있단 말인가.
그런데 오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흐음··· 이건···.”
“왜 그러시나요?”
“반신의 경지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두 가지?
그렇다는 것은 분명 하나는 마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선 첫 번째 방법으로는 수백 년을 산다는 가정하에 열심히 수련하면 된다고 합니다.”
“······.”
첫 번째 방법은 패스다.
만약 시간마저 멈춘 공간에서 수련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수명이 정해진 인간으로 태어난 내가 할 수 없다.
그렇다는 것은 두 번째 방법이다.
하지만 대충 예상이 갔다.
“두 번째 방법은···.”
“마기를 받아들이는 건가요?”
“어떻게 그걸···?”
“대충 짐작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라니?
다른 방법이 남았다는 소리인가?
“신성력을 받아들이는 거죠.”
“네?”
“두 번째 방법은 두 가지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두 가지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게 반신의 경지에 대한 단서라고?
“신성력을 받아들여도 상관없단 말입니까?”
“예··· 그런데 여기서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한 가지 문제?
“아니, 두 가지 문제라고 봐야겠군요.”
“두 가지 문제라고요?”
“마기를 받아들이는 경우의 단점입니다.”
“태양 아래에 설 수 없죠.”
고개를 끄덕이는 오드.
“그리고 이 유적의 주인이 그랬죠. 마기를 받아들이고, 태양 아래에 설 수 없게 되었죠.”
그럼, 다른 문제라면.
“신성력을 받아들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라···.”
그 누구도 신성력을 선택하지 않은 모양이다.
애당초 반신의 경지라는 게 흔한 경우는 아니긴 했다.
“일단 마기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장점이 적혀있네요.”
오드가 마기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장점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정리하자면 이랬다.
첫째, 마기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쉽게 강해진다.
둘째, 반신의 경지에 쉽게 오를 수 있다.
이렇게 들어보니 장점으로 따지면 마기가 훨씬 수월했다.
하지만 태양 아래에 다닐 수 없는 저주를 받는 것이 너무 큰 단점이었다.
“일단은 확실한 거겠죠?”
마기를 받아들이면 확실하게 반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신성력을 받아들이는 것은 확실하지가 않았다.
그야, 그 누구도 신성력을 통해 반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없다고 말하니까.
“그럼··· 제가 선택을 해야겠군요.”
“마기냐, 신성력이냐입니다.”
나는 곧바로 마기는 배제했다.
마기를 선택하기엔 너무나도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신성력을 통한 방법을 선택했다.
“저는 신성력을 통해 반신의 경지에 오르겠습니다.”
“저도 그게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하나의 큰 문제에 직면했다.
“오드는 신성력을 배워보셨나요?”
오드가 고개를 흔들며 내 말을 부정했다.
나 역시 신성력을 배운 적이 없었다.
신성력을 어떻게 얻는지도 모른다.
“아미스에게 들어둘 걸 그랬나···?”
하지만 애당초 마나와 신성력을 같이 쓸 수 있다고 들어본 적이 없었다.
카시아스가 마기를 받아들였을 당시의 기억을 되새김질해보았다.
‘마기가 넘쳐나는 곳, 단련, 마지막으로 부정한 마음?’
그 당시의 카시아스는 복수심에 불타있었다.
확실한건 아니지만 마음가짐 또한 큰 영향을 미칠 거란 생각이었다.
이것을 토대로 내가 내린 결론이 있었다.
“신성력이 풍부한 곳에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단련하면 반신의 경지에 오른다.”
“네?”
내 말에 오드가 반문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죠.”
“아마··· 이게 반신의 경지에 오르는 방법일 것 같습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오드였다.
하지만 가진 단서로 알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음···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하면 그건 또 문제네요.”
“그렇긴 하죠···.”
마기가 풍부한 곳은 찾기 쉽다.
직접 가보기까지 했다.
바로 마계.
그렇다면 신성력이 풍부한 곳은 신계일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오드에게 물었다.
“혹시 신계를 가는 법을 아십니까?”
“······.”
역시 오드도 모른다.
애당초 신계라는 곳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답이 없네요.”
그냥 눈감고, 마기를 받아들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러던 찰나에 오드가 말을 꺼냈다.
“왠지··· 저 알거 같습니다.”
“네?”
“신성력이 풍부한 곳 말입니다.”
다행히도 오드가 그 장소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안도했던 마음이 한순간 무너졌다.
또 문제다.
이제는 짜증날 지경이었다.
“에피아 신성제국에 성역이라는 장소가 있습니다.”
“성역이요?”
생각해보니 성역화라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었다.
분명 책의 악마, 크부를 상대하기 전에 에피아 신성제국의 사람들이 펼쳤던 것이었다.
확실히 성역화를 하니 신성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는 것은 진짜 성역은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신성력을 품고 있을 것이다.
“네, 성역 말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출입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조건이요?”
외가가 에피아 황실인 에피니아에게 부탁하면 되지 않으려나.
“에피아 신성제국에서 공을 세운 자들만 얻을 수 있는 명예신분이 필요합니다.”
명예신분이라··· 잠깐!
“명예신분이 필요하다고요?”
“네··· 하지만 그것을 발급 받기 위해서는 많은 공을 세워야합니다. 성역이라는 곳 자체가 하도 성스러운 곳이라···.”
“그러니까 명예신분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단 말이죠···?”
“네. 하지만 그 명예신분을 제국민이 아닌 타지의 사람이 얻으려면 엄청난 공을 세워야 합니다.”
나는 오드를 바라보며 씨익 하고 웃었다.
내 웃음의 의미를 오드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엉뚱하게 받아들였다.
“그 마음 이해합니다. 실성할 만하죠. 지금의 상황으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죠.”
“만약 제가 그 명예신분을 가지고 있다면요.”
“그렇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허울 좋은··· 설마!”
“그 설마입니다!”
나는 로토 왕국민이자 미케네르 제국의 은혜패를 가졌고, 에피아 신성제국의 명예신분을 가졌다.
그로써 나는 성역에 갈 자격이 있다는 소리였다.
“오오···! 도대체 어떻게 그걸 얻으신 건가요?”
“그야, 에피아 신성제국에게 아주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죠.”
“어떤 도움을 주셨나요?”
나는 오드에게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드에게 전에 말했던 크부가 가진 책을 통해 얻은 정보를 이용해 에피아 신성제국에 있는 노블리스 조직의 노스상단을 궤멸시켰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게다가 그 노스상단의 악행이 만천하에 들어나며 명예신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오호··· 잘하셨군요. 저도 최대한 지부를 파악해보려했지만, 절대 입을 열지 않더군요.”
“그야···.”
마기에 세뇌된 조직원들이다.
쉽게 입을 열진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는 다른 지부를 궤멸시키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게 무슨?”
“노블리스의 수장인 벨레스가 조직에 복귀했을 겁니다. 한동안 여가 생활을 즐긴 것 같지만 이제 당신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벨레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모를 수가 없겠지.
눈앞에서 대놓고 사라졌으니까.
“기존에 있던 지부들을 전부 철수시키고, 새로운 지부를 만들었을 겁니다.”
“더 깊은 곳으로 숨었겠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저희에겐 기회입니다.”
“그렇겠죠.”
나도 더 이상 지부를 궤멸시킬 생각은 없다.
지금은 성장이 필요했다.
벨레스와 비등한 경지에 올라야 벨레스를 막을 수 있다.
태양 아래에 설 수 없는 벨레스.
“참고로 성역에는 태양이 지지 않습니다.”
“벨레스는 절대로 못 오겠군요.”
그 안에서 어떻게든 반신의 경지에 도달해야한다.
그래야만 벨레스를 막을 수 있다.
노블리스 조직은 수장만 잡으면 끝나는 조직이기도 했다.
“제가 강해져서 벨레스를 쓰러트리기만 한다면···.”
노블리스는 알아서 와해될 것이다.
“그럼, 바로 떠나죠.”
“네, 곧바로 여행의 채비를 도우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쇼.”
오드의 말이 이상하다.
마치 같이 가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렸다.
“같이 가시는 게 아닌가요?”
“죄송하지만 명예신분을 가지더라도 단 한 사람만이 성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가 가도 무용지물이라는 소리죠.”
그런 건가.
“그리고 저는 할 일이 있습니다. 남아있는 이들을 단합해야합니다.”
“남아있는 이들이요?”
“노블리스의 조직원과는 다르게 날 때부터 능력을 가진 이들을 최대한 모으겠습니다.”
결의에 찬 오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