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95화 (95/150)

#95화.

100번째의 죽음은 영웅으로서의 죽음. 그리고 세 번째 시련.

지금까지와의 시련과 다르다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다.

이전에는 어쩔 수 없는 죽음이었다.

제약이 걸린 탓에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다르구나.”

제약이라는 게 없다는 걸 단번에 깨달았다.

이번의 나는 본래의 경지인데다 신체도 어디 손상된 곳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병사들.

전쟁상황으로 보였다.

나는 수많은 병사들을 이끄는 장군인 듯하였다.

“수하르 장군님, 저기에 적이 나타났습니다.”

한 병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수하르라면 본래의 이름이 아닌가.

동명이인이라는 것인가?

“적의 숫자가 어떻게 되지?”

“저희 병사가 오천, 상대가 만입니다.”

만 명이라.

충분히 가능했다.

이곳의 나는 원래의 내 경지다.

“그나저나···.”

수하르란 이름이 거슬렸다.

“이봐, 내 가문명이 뭐지?”

“예? 갑자기 그것은 왜···.”

“됐고, 말해보거라.”

“칼데르트가이시지 않습니까. 수하르 칼데르트 공작님.”

어?

가문명마저 같았다.

다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백작이 아니라 공작이라는 점이었다.

‘설마?’

나는 바닥에 있는 돌을 염동력을 이용해 띄어보려했다.

죽음을 초원한 정신력이라는 시련 중에 단 한 번도 염동력이 발동된 적은 없었다.

아무렇지 않아야할 돌이었다.

하지만 돌이 서서히 떠올랐다.

“허허···.”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진짜 나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황으로보아 원래의 나와는 달랐다.

“우리는 어디와 전쟁 중이지?”

“어디라니요?”

“우리의 적이 누구란 말이냐!”

혹시나 하는 물음이었지만, 역시나였다.

“그야, 벨레스라는 악마죠.”

이건 어쩌면 미래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반신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죽음이란 말인가.

내가 병사에게 물었다.

“승산은 있다고 생각하느냐?”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병사의 말을 허락했다.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벌써 대륙의 중추인 두 제국인 멸망했습니다.”

뭐라고?

두 제국이 멸망했다고?

하긴··· 제국이라도 반신의 경지를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제 로토 왕국으로 차례가 되었습니다. 두 제국도 막지 못한 것을 저희 왕국이 어떻게 막겠습니까.”

“그런가···.”

“벌써 로토 왕국의 수많은 귀족들이 도망쳤습니다. 패배는 이미 정해진 것이겠지요.”

정해진 패배.

정해진 죽음.

역시 이번에도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런데 왜 여기엔 오천의 병사가 있는 거지.”

드물게 실력 있는 기사도 눈에 들어왔다.

“그야, 모두 수하르 님만을 믿고 이 자리에 온 것이죠.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온 부류도 있고요.”

그런가.

나를 믿고 모인 이들이었나.

내가 제아무리 소드마스터라도 반신의 경지를 이길 수 있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모두가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수하르 님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저희에게 승산이 있다고 말하셨지요.”

“내가?”

승산이 있다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혹시 이때의 나는 반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일까?

하지만 내 몸에서 느낄 수 있는 경지는 소드마스터의 경지였다.

단연컨대 반신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보고 승산이 있다고 말한거지?’

갑자기 내 가슴 부근에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기운을 뿜어내는 것을 꺼냈다.

무언가가 종이에 감싸져있었다.

나는 종이를 벗겨 무언가를 확인했다.

“이건···?”

목걸이였다.

그것도 신성한 기운을 품은 목걸이였다.

목걸이를 감싼 종이는 편지였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마를 봉인할 수 있는 목걸이입니다, 다만 소드마스터 이상의 존재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보란 듯이 나보고 쓰라는 듯한 말.

로토 왕국의 소드마스터는 두 명일 터.

케론 사르키드와 수하르 칼데르트.

소드마스터는 검성과 나뿐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검성은 없었다.

‘내가 쓰라는 소리구나.’

게다가 편지의 막 줄에는 이 목걸이의 부작용이 적혀있었다.

[시전자는 죽는다.]

죽음.

왠지 이번 죽음이 어떤 죽음을 말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희생 혹은 영웅.’

자신을 희생해 대륙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죽음.

“지금까지와는 다르군.”

지금까지의 시련은 무의미한 죽음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타의적인 죽음이 많았고, 자의적인 죽음은 없었다.

“뭐가 다르다는 말씀이십니까?”

옆에 있던 병사가 내 혼잣말을 들었다.

나는 그 병사에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확실히 승산은 확실히 있네.”

그 말에 병사의 표정이 밝아졌다.

***

저 멀리서 벨레스를 중심으로 적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인간의 형태는 필요없다는 건가?”

이전에 보았던 벨레스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벨레스는 달랐다.

“마치 마족이 빙의된 인간의 모습이 저럴 거 같군. 아니, 악마와 인간의 혼혈인 게 더 어울리나?”

인간의 형태에 뿔과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눈은 흰자위가 있을 부분이 검게 물들어있고, 검은자위가 있어야할 부분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괴물이군.”

벨레스만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벨레스가 부리는 부하들 또한 어중간한 모습으로 벨레스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나는 벨레스를 향해 외쳤다.

“이봐, 대장전으로 승부 보는 건 어떤가!”

벨레스가 이것을 허락해줄지는 모르겠다.

만약 허락해준다면 일이 쉬워지겠지.

“크하하하, 오랜만이군. 다행이도 네놈은 도망치지 않았어. 그래, 좋다. 그 상으로 대장전을 해주마!”

일이 잘 풀린다.

나는 벨레스를 향해 앞으로 걸어 나갔다.

벨레스 또한 나를 향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주위에는 벨레스와 나뿐이었다.

“그런데 네놈이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

솔직히 말해서 이길 수 없을 거 같다.

아니, 이길 수 없다.

이건 확신이었다.

반신의 경지와 소드마스터의 차이는 그만큼 컸다.

‘다만 목걸이를 사용한다면···.’

나는 죽겠지만, 벨레스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사용하기 싫었다.

“내 전력을 한번 부딪혀봐야지.”

가상의 벨레스라도 충분히 강할 것이다.

실제로 벨레스가 나중에 저렇게 인간의 모습이 아니게 될 가능성도 있다.

먼저 경험해봐야 되지 않겠는가.

나는 퇴마검을 뽑았다.

“오호··· 언제 봐도 께름칙한 검이로군.”

“보여주마.”

내 전력을 벨레스에게 퍼부었다.

길지 않은 시간 만에 나와 벨레스의 승부가 끝이 났다.

***

나는 피를 토했다.

입 안에서 쇠의 맛이 감돌았다.

“더럽게 세군.”

내 전력은 벨레스에게 간단히 막혔다.

게다가 벨레스의 마기로 뒤덮인 손과 내 퇴마검이 부딪힐 때마다 내 힘은 약해져만 갔다.

짧은 시간 만에 승부는 결착 났다.

뭐라 할 것도 없이 확실한 내 패배.

“재미없군. 전혀 성장하지를 않았어. 그래도 뭐, 인간들 중에선 네가 제일 셌다.”

“칭찬인가···.”

“칭찬이지.”

강자의 여유라고 해야할지.

벨레스는 내 코앞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 나를 죽일 수 있음에도 죽이지 않았다.

“그때 죽여도 상관없었군. 재밌는 상대가 되어 나타날 줄 알았더만.”

“···마치 일부러 놓아줬다는 말투 같군.”

“맞지. 일부러 나는 너를 놓아줬다.”

지금의 가상공간이 실제 미래라고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궁금해졌다.

나 또한 의아했기 때문이다.

벨레스 정도의 실력자가 나를 놓칠 리가 없었다.

“왜지? 왜 나를 놓아준 거지?”

“내가 어떤 악마인지 기억은 하고 있나?”

모략의 악마, 벨페레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략의 악마는 약한 악마지.”

“웃기는 소리!”

그는 내가 경험한 그 어떤 악마보다 강했다.

그런데 약한 악마라는 말은 막말에 불가했다.

“아니, 아니. 실제 나는 약한 악마다. 네놈은 모략을 왜 짜는지 알고 있나?”

모략이라면 지식을 이용해 남을 함정에 빠뜨리는 일일 터였다.

그렇다는 것은···.

“승리하기 위해서겠지.”

이기기 위해서 모략을 짜는 거란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말이 틀렸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 벨레스였다.

“약하기 때문에 모략을 짜는 것이지. 강하다면 굳이 그렇게 머리 아프게 지식을 이용할 필요가 없지. 정면돌파를 해야하니 말이야.”

그건··· 맞는 말이군.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군. 어째서 그게 네가 약한 악마란 소리지?”

벨레스가 미소를 지었다.

“방금 말했다시피 모략은 약한 자가 쓰는 것이거든.”

“······?”

“그렇기에 나는 약한 악마다.”

궤변이었다.

모략은 약한 자들이 꾸미는 일.

그렇기에 모략의 악마인 자신은 약하다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게 나를 놓아준 것과 무슨 상관이지.”

“하하, 나 또한 내 말이 궤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최상의 상태가 아니지. 약함과 강함은 상대적이다.”

지금 이게 최상의 상태가 아니란 말인가.

이렇게나 강한데.

“모략의 악마는 모략을 쓸 때가 가장 강하지. 그 말은 모략이 없을 때의 나는 있을 때의 나보다 약하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는 약하다. 힘 차이도 있지만 내가 모략을 세우는 큰 이유가 있지.”

“큰 이유?”

“모략을 세우는 순간, 내게 찾아오는 그 쾌감은 미칠 정도란 말이다.”

“하지만 네놈은 카시아스를 상대로 모략을 꾸몄다. 약자에게도 모략을 세웠던 것이지!”

강자가 약자에게 모략을 꾸몄다.

벨레스의 말대로라면 벨레스는 카시아스를 상대로 모략을 꾸미지 말았어야만 했다.

“물론 약자에게 모략을 꾸밀 수는 있지. 하지만 그때 찾아오는 쾌감은 감질 맛이 날 정도로 약하지. 그렇기에 나는 그 이후로 약자에게 모략을 꾸미지 않았다.”

자꾸 영문 모를 말을 뱉어내는 벨레스에게 짜증이 솟구쳤다.

“아니, 이상한 소리는 그만 좀 하고 어째서 나를 놓아준 것이냐!”

“그야, 네 놈이 강해져서 돌아오기를 바랬지.”

“뭣?”

“네놈이 강해져야 내가 모략을 세웠을 때의 쾌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런 이유에서였다고?

아니지, 아니야.

여긴 가상의 공간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실제로 나를 놓아준 게 저런 이유는 아니겠지.

‘이제 슬슬 끝내야겠군.’

나는 벨레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것참 실망이겠구나. 강해질 줄 알았던 내가 네놈보다 약하니.”

“그러게 말이다. 살려준 보람이 없군.”

“하지만 네놈은 나를 살려준 것을 후회해야할 것이다.”

“후회···? 크하하하하.”

벨레스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 꼴로 후회? 재밌군.”

현재 내 꼴은 확실히 좋지만은 않았다.

피를 토했던 탓에 몸 곳곳에 피가 묻어있다.

바닥도 몇 번 굴렀기에 먼지투성이였다.

한마디 패자의 모습.

“더 재밌는 걸 보여주도록 하지.”

나는 품속에 목걸이 꺼냈다.

벨레스는 멍하니 그 목걸이를 쳐다보았다.

“그게 뭐지?”

“네놈에게 복수할 내 유일한 무기지.”

목걸이가 점차 빛나기 시작했다.

내 안의 마나가 점차 사라지며, 빛은 강해졌다.

온몸이 불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고통은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끄아아악, 이게 무슨!”

벨레스가 점점 목걸이에 빨려 들어갔다.

나는 점차 의식을 잃어갔다.

벨레스가 완전히 목걸이에 빨려 들어간 순간 나는 조소를 지었다.

‘꼴좋군, 벨레스.’

그러게 나는 100번, 아니 101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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