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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97화 (97/150)

#97화.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구십 번째에 다다르고는 검은 사람의 검술마저 나를 순간 뛰어넘었다.

덕분에 구십 번째 검은 사람은 한 체로도 힘들었다.

‘그렇게 힘든 상대를 아홉 체까지 상대했지.’

전신갑주를 입은 한 체와 아홉 체를 선택하라면 나는 무조건 후자를 선택할 것이었다.

‘그만큼 아홉 체가 있는 것보다 전신갑주를 입은 한 체가 상대하기 더 까다로우니까.’

마나를 사용할 수 없기에 전신갑주를 입은 사람을 뚫기 쉽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빈틈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 덤벼봐라!”

궁상맞게 앞서서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일단은 싸운다.

그러다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적이 움직였다.

“후우···.”

오로지 내 검과 상대에만 집중했다.

느릿하게 다가오는 적.

‘전신갑주 때문에 느린 건가?’

하지만 이런 생각이 얼마가지 않았다.

갑작스레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드는 적이었다.

나는 급하게 검을 들어 전신갑주의 적을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이내 몸을 트는 것은 회피했다.

‘막았으면 안 됐어.’

막는 순간 그대로 밀려났을 것이다.

나를 지나친 적은 다시 내게 방향을 틀었다.

전신갑주의 머리, 정확히는 눈 부근에서 붉은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살벌하군.”

다시 내게 다가오는 상대.

이번엔 내가 먼저 달려들었다.

전신갑주의 강도를 알아보기 위해 가슴 부근을 노렸다.

“오호? 마냥 방심하지는 않는다는 건가?”

전신갑주를 입었지만 적은 내 검을 막았다.

하지만 아홉 체나 동시에 상대할 정도로 전신갑주의 검술은 눈에 익었다.

억지로 빈틈을 만들어낸 뒤에 가슴 부근에 검을 휘둘렀다.

깡.

쇠와 쇠가 강하게 부딪힐 때 나는 쾌청한 소리였다.

내려친 내 손이 저릴 정도로 힘을 실었지만, 아무런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단단하기 그지없군.”

앞서 구십 번째로 상대한 적은 전신갑주까지는 아닌 갑옷이었다.

구십 번째의 적이 착용한 갑옷은 내 공격에 약간의 흠집 정도는 났었다.

하지만 이번엔 갑옷의 강도 자체가 달랐다.

“어떻게 해야하지···?”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모를까, 전혀 보이지 않았다.

관절 부근마저도 갑옷으로 덮여 있었다.

“그래도 강도는 다를 거야.”

나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주로 관절 부근을 노렸다.

깡. 깡.

하지만 유연해 보이는 관절 부근도 강도는 마찬가지로 보였다.

“본래의 약점이라면 보통은 관절일텐데···.”

정확히는 관절과 목.

그곳만큼은 갑옷이 덮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대는 덮여있다.

“곤란하군, 갑옷을 뚫어내는 방법도 안 되겠어.”

정답을 찾아내야할 차례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안광이 비쳤었지.”

붉은 안광.

분명 보였다.

그 말은 눈 쪽은 비어있다는 이야기일 터.

“한번 시도해봐야겠어.”

곧바로 적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잠깐의 경합을 통해 적 또한 내 공격을 모두 막아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내 공격을 무시한 채로 공격을 감행했다.

방어 따윈 버린 적의 공격에 나는 급히 검을 방향을 틀어 적의 공격을 막아냈다.

“크윽, 시도하는 것조차 힘들겠어.”

이제야 이번에 상대했던 적들의 검술을 깨달았다.

앞선 검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검술보다 공격에 치우쳐진 검술이었다.

그렇기에 빈틈이 더 많이 보여 상대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전신갑주를 상대하면서 깨달았다.

방어를 할 필요가 없던 것이었다.

“일단은 계속 시도를 해봐야겠어.”

나는 다시 적에게 달려들었다.

주도권을 뺏기면 힘들어지는 것은 나였으니 쉼 없이 선공을 퍼부어야만 했다.

***

몇 차례의 경합 끝에 드디어 안광이 빛나는 곳에 빈틈이 생겨났다.

나는 그곳으로 검을 밀어 넣었다.

하지만 이내 막혔다.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공간엔 투명한 무언가가 막고 있었다.

“젠장··· 그래도!”

희망이 생겼다.

모든 곳이 막혀있는 전신갑주는 상대하기에 곤란했다.

강도마저 뛰어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눈 쪽은 달랐다.

소리부터가 달랐다.

“약간 부서지는 듯한 소리였어.”

그 말인즉 계속해서 도전하다보면 언젠가 뚫릴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조금 짜증나긴 하지만 재밌어.”

마나를 사용할 수만 있다면 전신갑주 째로 베어버리는 건데.

그래도 서서히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몇 번이 걸릴지는 모르겠으나 계속하면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공간에서 지치거나 상처를 입어도 금방 괜찮아지니 몇 번이고 시도가 가능했다.

“그럼, 다시 한번 가보자고!”

나는 전신갑주를 향해 검을 치켜세우며 달려들었다.

***

쨍그랑.

몇 번의 시도 끝에 적의 눈을 보호하던 무엇인가가 깨졌다.

그리고 그 틈 속으로 내 검이 비집고 들어갔다.

“휴우··· 오래도 걸렸군.”

몇 번 두드리면 깨질 거라는 내 생각과 달리 쉽게 깨지지 않았다.

혹여나 내가 내린 답이 틀린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방법밖에 생각나지 않았기에 나는 계속해서 시도했고, 결국 뚫어낼 수 있었다.

“이제 끝이겠지?”

허공에 뜬 숫자를 확인했다.

[100]

변화가 없었다.

혹시 모르니 잠시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도 숫자에는 변화가 없었다.

“끝났나?”

[추가적인 시련을 진행하시겠습니까?]

어?

“지금 나한테 묻는 거야?”

추가적인 시련은 또 무엇일까?

[네, 맞습니다. 추가적인 시련을 진행하시겠습니까?]

“추가적인 시련이라니? 그건 또 뭔데?”

감이 잡히질 않는다.

하지만 내 감은 말하고 있었다.

이 시련은 진행해야만 한다고.

그래야 끝없는 투쟁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적들의 무기가 바뀝니다.]

오호.

그렇다는 것은 검이 아닌 무기를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똑같이 시련이 진행되겠지.

나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추가적인 시련을 진행하겠어.”

[101]

허락을 꺼내자마자 숫자로 바뀌었다.

백일 번째의 적이었다.

전과 같이 검은 사람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엔 창인가.”

창을 든 상대였다.

***

나는 마지막 검은 사람을 베어냈다.

허물없이 쓰러지는 검은 사람.

천 번째의 적을 쓰러트렸다.

[끝없는 투쟁의 시련을 마칩니다.]

천 번째의 적을 상대하고서야 끝이 났다.

검부터 시작해, 창, 도, 채찍, 주먹 등등 여러 무기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들 모두 쉽게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마지막은 쉽지 않았다.

마지막 상대는 마법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보다 마법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짜증나는군.”

마법을 무기의 한 종류로 취급해도 괜찮은 건가.

처음에는 상대하기 쉬웠다.

그야, 낮은 서클의 마법은 상대하기 쉬우니 말이다.

하지만 낮은 서클의 마법도 아홉 체가 동시에 사용하니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오히려 열 번째마다 상대하는 한 체가 더 나았다.

“그래도 이겼으니 됐지.”

포기하려고 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점점 상대할수록 서클이 올라갔다.

구백구십구 번째의 적은 미칠 지경이었다.

블링크라는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마법에 마법의 연사속도 또한 매우 빨랐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 아홉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대규모 마법 같은 건 사용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마법이라···.”

마법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그저 신기한 잡술이라는 생각이었지만 막상 상대해보니 매우 강력했다.

“근접전은 검이 최고라고 생각했었는데.”

마법 또한 사용에 따라 근접전을 유리하게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래도 시련의 배려라고 해야하지···.”

검으로 마법을 베어내거나 튕겨낼 수 있었기에 이길 수 있었다.

실제였다면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검사가 마법을 튕겨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보다 시련이 끝났는데 이번엔 뭐 없나?”

전에는 목걸이를 받았다.

내게 희생을 강요하는 듯한 께름칙한 목걸이지만, 비장의 수로 간직하기엔 쓸모가 있었다.

[시련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좋았어.

이번에도 시련의 보상이 주어진다.

무슨 보상을 줄지 잠시 고민해보았다.

‘검···은 필요가 없고···.’

이렇게 생각해보니 바라는 게 별로 없었다.

‘신성력이 담긴 영단이 좋을 거 같은데?’

신성력이 담긴 영단이 있다면 신성력을 받아들이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영단을 기대하며 보상을 기다렸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다르게 보상은 하얀 팔찌였다.

“에이··· 영단이 아니네.”

보석이나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는 내게 자꾸 목걸이와 팔찌를 주니 화가 나려고 했다.

일단은 받은 보상을 착용해보았다.

“디자인은 나쁘지 않네.”

하얀 팔찌에 금색의 선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한 팔찌였다.

그런데 착용한 직후 이상함이 느껴졌다.

“뭔가··· 있구나?”

자꾸 마나를 팔찌에 보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팔찌에 마나를 보냈다.

어느 정도 마나를 보낸 순간.

“어?”

한순간 시야가 좁아졌다.

내 이변에 대해선 곧바로 눈치챘다.

내 몸을 무언가가 덮고 있었다.

“혹시 이건?”

백 번째의 상대들이 입고 있던 전신갑주가 먼저 떠올랐다.

나는 좁은 시야로 내 몸을 훑었다.

흰색의 갑옷이 내 몸을 덮고 있었다.

내 머리엔 전설 속에서나 나오던 갑옷이 떠올랐다.

“평상시엔 장신구의 형태를 띠다가 갑옷으로 변하는 것!”

나는 몸을 움직여보았다.

“가벼워···!”

전신갑주를 입지 않은 듯한 가벼움이었다.

팔찌에 보내던 마나를 한순간 끊어보았다.

그러자 다시 시야가 트였다.

“오호··· 마나를 보내는 것을 멈추면 해체된다라···.”

마나가 크게 닳지도 않으니 이건 제법 유용한 물건이었다.

“용병으로 활동하느라 갑옷 같은 건 생각도 안 해봤는데.”

활동성을 중시한 용병에게 전신갑주는 사치에 불과했다.

그냥 갑옷도 최소한으로 착용하는 용병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갑옷을 착용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제법 좋은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기네.”

나는 다시 팔찌에 마나를 보내 전신갑주를 착용했다.

“혹시 보내는 마나에 따라 강도도 달라질까?”

나는 팔찌에 보내는 마나를 올려보았다.

겉으로는 변한 게 없었다.

한번 움직여보았다.

“엇···?”

전보다 한층 무거워졌다.

움직임도 전보다 수월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보내는 마나에 따라 강도가 달라지는 게 틀림없어.”

이를 실험할 상대는 없었기에 짐작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벌써 세 번째 시련도 끝났네.”

성역으로 돌아간다면 전보다 더 많은 신성력이 공간을 채울 것이다.

예측에 가까웠지만 그래야만 했다.

나는 기대를 하며 성역으로 돌아가는 것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풍경이 내가 알던 성역으로 바뀌었다.

“역시 그랬군.”

전보다 더 많은 신성력이 느껴졌다.

“그렇다는 것은 모든 시련만 끝내면 내가 원하던 훈련환경이 되는 건가.”

내겐 어떻게든 시련을 모두 끝낼 이유가 생겼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되는군.”

시련이 끝나는 순간, 성역에서 나가야된다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다.

“안전하게 시련이 모두 끝나기 전에 반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게 좋겠군.”

다만 신성력이 느껴지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기에 얼마큼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해내야만 한다.

‘이 목걸이는 쓰기 싫으니까.’

겉보기론 신성력이 담겨있는 목걸이였지만, 내게는 그저 흉흉한 목걸이 불가했다.

“그럼··· 곧바로 훈련을 시작해야겠어.”

조금이라도 일찍 신성력을 받아들여야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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