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세 번째 시련이 끝이 난 후의 성역은 전보다 신성력이 풍부해졌다.
“그런데 쉽지가 않군.”
마계처럼 숨이 막힐 정도의 기운이 아니면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았다.
그저 신성력을 느낄 수 있을 뿐, 어떤 방법으로든 신성력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제 슬슬 훈련도 끝을 내야하나.”
네 번째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련을 빨리 끝내는 게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야···.
“시련을 끝내면 성역에 신성력이 더 풍부해질테니까.”
허공에 뜬 숫자를 확인했다.
[2:34:22]
네 번째 시련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첫 번째 시련은 내 정의를 묻는 듯했다.
두 번째 시련은 내 정신력과 더불어 내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느꼈다.
세 번째 시련은 내게 부족했던 경험을 얻게 해주었다.
“하지만···.”
네 번째 시련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런데 지금껏 겪은 시련을 생각해본다면 한 가지의 답이 도출되었다.
“전부 내게 필요한 것들이긴 했어.”
영문 모를 첫 번째 시련을 제외하면 두, 세 번째 시련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심지어 보상이라고 준 것들조차 내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네 번째 시련은···.”
내가 지금 어떤 점이 필요한지 생각해보았다.
난 지금 신성력을 다룰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얻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도 만약··· 이와 관련된 시련을 준다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한순간 떠올린 것이지만 왠지 그런 류의 시련을 줄 것만 같았다.
“마나운용과 관련된 시련이겠구나!”
확실하진 않지만 마나를 컨트롤하는 능력이라면 신성력에도 통용된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마나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게 신성력이니 말이다.
물론 두 능력을 동시에 얻은 이들이 없기에 비슷하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좋아, 마나와 관련된 시련을 줄 거 같으니 그에 대한 대비를 해두어야겠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조금이라도 마나 운용 능력을 키워야지.
***
살갗이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 속에 나는 내 경솔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마나 운용 능력은 개뿔!”
네 번째 시련은 환경이었다. 정확히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시련의 시작과 동시에 성역이 설산으로 바뀌며 눈보라마저 치기 시작했다.
그 탓에 나는 극심한 추위를 타고 있었다.
“추워··· 이러다가 죽겠구나···.”
추워서 그런지 짜증이 절로 났다.
“진짜 미치겠구나···.”
추워서 움직이지도 못하겠다.
소드마스터가 된다면 계절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개소리다.
소드마스터도 추운 건 춥고, 더운 건 더웠다.
그저 단련된 몸이기에 남들보다 잘 버티는 것뿐이었다.
“이런 추위 속에서···.”
나는 허공의 숫자를 확인했다.
[167:40:32]
“일주일이라니···.”
카운트가 줄어드는 것으로 보아 저 시간이 0으로 되는 순간이 시련의 끝일 것이다.
벌써 설산의 환경으로 바뀐 지 20분이나 지났지만 내가 해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앞으로 걸으며 이 시련을 빨리 끝낼 단서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없다는 듯 아무것도 없었다.
“젠장···!”
더 이상 이 추위 속에서 맨몸으로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팔찌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순간 내 시야가 좁아졌다.
팔찌가 전신갑옷으로 변한 것이었다.
“전보다 훨씬 괜찮군.”
피부를 찢는 듯한 눈보라를 피할 수 있게 되니 한결 나았다.
“주위를···.”
말을 하던 찰나에 나는 곧바로 팔찌에 불어넣던 마나를 끊어냈다.
전신갑옷이 팔찌로 바뀌며 다시 피부를 찢는 듯한 눈보라와 마주하게 되었다.
“경솔했어··· 큰일날 뻔했구나.”
내가 다급히 전신갑옷 벗은 데엔 이유가 있었다.
마법이 쓰인 것 같은 전신갑옷이라도 만들어진 재료는 철과 비슷한 무엇이었다.
그리고 철은···.
“매우 차갑지.”
갑옷 안에서 냉기가 느껴지는 순간 그것을 깨닫고 나는 곧바로 벗었다.
“차라리 벗는 게 낫지.”
나는 일단 눈으로 덮인 주위를 치웠다.
일단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땅이 있다는 소리였다.
무릎까지 쌓인 눈을 치우니 땅이 드러났다.
“땅이 맞나···?”
땅이라기보단 시간이 지난 눈이 납작해지며 얼어버린 것 같았다.
“일단은 집이다!”
집을 만들 재료는 충분했다.
주위에 널리고, 널린 게 재료였다.
바로 눈.
눈을 이용해 집을 만들었다.
“제법 괜찮군.”
집을 만들어 눈보라를 피할 수 있게 되니 초조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제법 쉬운 시련이구나.”
시련 중에 있어 허기를 느끼지 않을 테니 이곳에서 버티기만 하면 될 터였다.
“그래도 일주일이란 시간을 이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쉽지 않을테지.”
그래도 괜찮았다.
이것보다 힘들게 느껴지는 시련을 이겨냈으니 말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군···.”
긴장이 놓이니 소변이 마려워졌다.
숨구멍이라고 뚫어놓은 곳에다가 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네.”
집의 한편을 조그맣게 부수고 밖으로 나가서 볼일을 처리했다.
처리하던 중 나는 온몸이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잠깐만···.”
시련에 있어서 지금까지 허기는 물론이고, 변의 또한 느낀 적이 없었다.
“설마?”
순간 내 배에서 크나큰 소리가 울렸다.
꼬르르르륵.
배가 밥을 달라며 요동을 치는 것이었다.
“이런 곳에서 먹을 것 마저 조달해야한단 말인가!”
이번 시련도 쉽게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것을 곧바로 느꼈다.
***
황실에 도착한 에피니아가 우선적으로 부른 사람은 수하르의 제자인 페트릭이었다.
다행히도 페트릭은 미케네르 제국의 수도에 정착할 생각인지 수도에 집까지 구해놓은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에피니아의 부름에 페트릭은 황실로 입실했다.
“부르셨습니까!”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숙인 페트릭. 그의 옆엔 메시아가 서 있었다.
에피니아의 옆에 있던 하르가 페트릭을 확인하고는 달려들었다.
“왈!”
“어? 하르야! 황녀님, 어째서 하르가 여기에···.”
고개를 들려던 페트릭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이만 일어나도 됩니다.”
고개를 드는 페트릭.
“황녀님, 어째서 하르가 이곳에 있는 겁니까? 그렇다면 저를 부르신 이유가···.”
에피니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하르를 부탁드릴게요. 제가 잠시 맡아둘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곤란하다는 듯 웃는 에피니아였다.
이해한다는 듯 페트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르가 아무리 얌전하고 귀여워도 몬스터. 아무래도 황실 내부에서 몬스터를 키울 수는 없긴 하겠죠.”
에피니아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하아···.”
페트릭이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가끔씩 하르를 보러 오십쇼! 하르 녀석도 좋아할 겁니다.”
페트릭이 동의를 구하는 듯 하르의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하르였다.
무안해진 페트릭이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 모습에 에피니아가 미소를 지었다.
“하하, 괜찮습니다. 페트릭의 집을 찾아간다니, 메시아와의 달콤한 시간을 방해하는 것만 같아서 내키지 않네요.”
에피니아의 말에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숙이는 메시아였다.
멋쩍게 웃는 페트릭.
“그런데 하르가 황녀님께 있다는 것은··· 제 스승님과 만나셨습니까?”
“네··· 그런데 소리 소문 없이 떠나버렸죠··· 제게 하르만 남기고서 말이죠···.”
에피니아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페트릭이 급하게 말을 돌렸다.
“아, 제 스승님이 원래 신출귀몰하시죠. 절대 황녀님이 싫어서 도망친 것은 아닐 겁니다!”
“설마 페트릭이 보기엔 수하르가 저를 싫어서 떠난 것처럼 보인다는 건가요?”
분노한 듯 보이는 에피니아의 모습에 페트릭이 납작 엎드렸다.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고!”
“하하, 농담이에요. 그나저나···.”
에피니아는 수하르를 떠올렸다.
“수하르가 언제 다시 이곳을 찾을 건지 페트릭에게도 연락이 안 온 거죠?”
“네.”
아쉬워하는 에피니아였다.
***
나는 이곳에서 죽음을 느끼고 있었다.
미칠 듯한 허기와, 찢어질 듯한 추위.
“미치겠구나!”
요즘 들어 이유 없이 웃음이 나올 때도 있었다.
허기와 추위로 미쳐가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도 4일이나 남았어···.”
3일의 시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를 채우기 위해 사냥을 하고 싶어도, 사냥감이 없는 게 문제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추위와 허기가 하나씩 찾아온다면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둘은 동시는 위험하다.
추위는 내가 막을 수 없지만, 허기는 사냥감을 찾는 것으로 막아낼 수 있다.
“더 이상 한곳에 안착해있는 건 무리겠어.”
어떻게 되든 간에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었다.
눈보라를 막을 집 같은 건 쉽게 만들 수 있으니 일단은 움직여야 한다.
“시련인 만큼 설마 죽게 두진 않겠지.”
허기가 느껴지는 만큼 사냥할 먹잇감이 존재한다는 소리일테니 말이다.
***
또 이틀이 지났다.
지난 이틀간도 사냥감을 찾지 못해서 허기를 달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디어 사냥감이라고 할만한 게 튀어나왔다.
“끼요옷!”
다소 우습게 느껴지는 울음소리.
하지만 생김새는 그것과 정반대였다.
거대한 푸른 새. 마치 신화 속에서 나오는 불사조와 비슷해보였다.
“아니지, 불사조는 불타는 새잖아. 저건 설사조? 빙사조?”
이름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
우선은 저것을 사냥해야만 한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었다.
“너도 나를 먹고 싶어하는구나!”
저 푸른 새도 내게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냥감이 도망친다는 걱정은 배제할 수 있었다.
“자자, 어서 내려와라!”
공중에 떠 있는 새가 나를 공격할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푸른 새.
화가 절로 났다.
“가능할까?”
눈앞에 먹을 것을 앞두니 참을성이 사라졌다.
더 이상은 기다리기 싫었다.
“믿져야 본전이지.”
상대가 공격할 생각이 없다면 내가 먼저 공격하면 되는 법이다.
나는 염동력을 이용해 푸른 새를 아래로 당겼다.
제법 반발력이 느껴졌지만 서서히 내려지는 푸른 새.
“아직이야. 저항하지 말고, 얼른 오라고!”
아직 사정거리 밖이었다.
계속해서 온힘을 다해 푸른 새를 아래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진 순간이었다.
“바로 지금!”
푸른 새를 향해 튀어 올라 검으로 목을 쳐냈다.
꽤 힘을 실었기에 단번에 잘라지는 푸른 새의 목.
목을 잃은 몸이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후··· 맛있겠구나.”
푸른 새의 잘린 단면을 보니 육질이 좋아보였다.
“갓 잡은 고기는 생으로 먹어도 맛있으니까!”
애당초 이곳에서 불을 지필 방법도 없었으니 나는 푸른 새의 하얀 살점을 검으로 살짝 벤 뒤에 먹었다.
“오오오오···.!”
푸른 새의 약간의 차가웠다.
하지만 그 차가움과 더불어 단맛이 느껴졌다.
육질도 탱탱함 그 자체였다.
“이거면 버틸 수 있겠어!”
푸른 새가 덩치가 있던 만큼 고기는 충분했다.
나는 앞으로 남은 이틀 간 먹을 고기를 채취한 후에 그 근처에 집을 만들었다.
집 안에서 나는 푸른 새의 살점을 씹으며 누웠다.
“이제 남은 이틀간은 이 안쪽에 박혀있으면 되겠다.”
꽤나 추위에 익숙해진 것인지 이제는 그다지 춥다는 생각이 나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