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99화 (99/150)

#99화.

남은 이틀의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성역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시련은 끝이 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눈 덮인 공간이 한순간 녹아내리며 이제는 엄청난 더위가 몰려왔다.

한동안 추위에 적응한 몸은 갑작스러운 더위를 이겨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역시··· 팔찌에다 마나를··· 아니, 갑옷 안이 더 더울 거야.”

피부를 찢는 듯한 추위 다음으로는 찌는 듯한 더위.

주변을 살피고, 더위의 정체를 깨달았다.

“용암과, 태양.”

아래는 용암이 깔려 있고, 위로는 태양이 미친 듯이 컸다.

이 둘이 더위의 원인이겠지.

“이번에도 똑같겠지.”

방금 전까지 겪었던 상황과 온도만 다를 뿐 같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식량과 쉴 곳을 마련해야겠어.”

추위 속에선 눈으로 집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곳에선 집을 만들어낼 방법이 없었다.

“용암으로 집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인데···.”

드문드문 땅이 불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원래라면 나는 서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발에 마나를 둘러서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신발의 밑창은 녹아버렸다.

“이번에 쉴 곳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우선 식량을 찾아내야겠어.”

이렇게 더운 곳에선 집을 만들어도 편히 잘 수도 없을테니 말이다.

소드마스터인 데다 백 번, 아니 백 한 번의 죽음을 견딘 내 정신력이라면 일주일간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

“일단 사냥감이 있긴 하겠지?”

일단은 전에 했던 것처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

설사조? 빙사조?

하여튼 전에 보았던 푸른 새와 같은 새를 이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푸른 새와 다른 점은 붉은 색이라는 것.

불사조가 실제로 있다면 분명 저렇게 생겼을테지.

다만.

“불사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불타고 있는 게 아니라 붉은 깃털을 가진 것이니까.”

푸른 새와 동일한 방법으로 붉은 새를 잡아냈다.

우선 나는 붉은 새의 고기를 맛보았다.

“쓰네.”

탄 맛에 가까운 맛이었다.

아니, 탄 게 확실할 것이다.

하지만 이게 새의 본연의 맛은 아닐 것이다.

“역시 나는 요리에 재능이 없는 건가···.”

새고기를 근처 용암에 담갔다.

그리고 먹은 결과가 탄 맛이었다.

하지만 이 고기보다 더 중요한 걸 손에 넣었다.

바로 붉은 새의 깃털로 뒤덮인 가죽이었다.

“열에 강하군.”

열을 튕겨내는 성질을 가진 것인지 가죽을 덮는 것만으로 더위가 한결 가셨다.

“그나저나 이런 녀석을 또 발견해야할텐데···.”

충분한 양의 고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 새 한 마리면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은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 환경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야, 더우니까.”

보관이 불가능했다.

이런 곳에선 금방 부패해 버리거나 열기에 타버릴 것이다.

“잠깐만···?”

문득 스치는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왜, 포기하려고 했지.”

이런 환경에서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는가.

나는 요리를 못한다.

하지만 이 방법이라면 요리를 못하는 나라도 가능한 방법이었다.

“육포!”

모험가 시절에 질리도록 먹었던 간편식 육포.

이 새고기를 육포로 만드는 방법이었다.

육포를 만들어 보는 것은 처음해보는 일이지만, 몇 번 실패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야, 고기는 넘쳐나니까!”

나는 붉은 새를 육포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

간이 조금 밍밍하다는 것 빼고는 완벽한 육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붉은 새의 가죽과 뼈를 이용해 집을 만들어냈다.

뜨거운 바닥은 가죽을 까는 것으로 열기를 막아낼 수 있었다.

“이제 곧 끝인가.”

솔직히 더위보다 추위의 상황이 더 어려웠다.

이렇게 이번 시련은 끝이라 생각했다.

“춥고, 더웠으니 이제 더 이상할 게 없겠지.”

그렇다는 것은 시련의 끝을 의미했다.

“설마 이번엔 물속이라든가 그런 건 아니겠지?”

불길한 마음이 엄습했지만, 아무래도 물속만큼은 아닐 것 같았다.

시련이라는 것도 극복해낼 수 있어야 시련이니 말이다.

[00:00:30]

마침 시련이 끝나는 시간도 다가왔다.

나는 성역으로 돌아가자마자 해야할 일을 생각했다.

처음으로는 씻고, 그 다음으로는 성역이 준비해주는 음식을 왕창 먹을 것이다.

“이젠 붉은 새 육포도 이젠 질려서 더 이상 못 먹겠어.”

[00:00:00]

시련이 끝났다.

나는 두 팔을 벌리며 기뻐했다.

주변의 환경이 점차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기뻐했다.

그리고 주변의 변화가 끝나는 순간 나는 좌절했다.

[719:59:58]

아직 시련이 끝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시련은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시련이었다.

“허허, 미치겠네.”

잠깐 좌절을 끝내고, 나는 곧바로 주변 환경의 탐색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극한의 환경일테니 빠른 시일 내로 안식처를 구해야만 했다.

***

주변을 둘러보아도 극한이라고 볼 수 있는 요소는 없었다.

“뭐지? 실수로 이상한 시련을 준 건가?”

이곳은 극한이라고 보기엔 힘든 환경이었다.

주변을 둘러본 결과 섬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마실 물이 있는 계곡도, 계곡 주변엔 먹을 수 있는 과일도 넘쳐났다.

“게다가 동물도 순한 동물들밖에 없네.”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공격성이 없다 싶은 동물들만 있었다.

고기와 과일, 물.

모든 것이 완벽한 장소였다.

“이곳에서 한 달이라···.”

꽤나 쉬울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밤이 된 후에야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

주변의 나무를 베며, 집을 만들어가던 중이었다.

“날이 저버렸군.”

날이 저버렸으니 더 이상의 작업은 무리였다.

어두웠기도 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밤에는 최대한 힘을 보충해야했다.

그렇게 나는 미완성의 집에서 잠을 청했다.

잠에 곤히 빠져 있던 나를 무언인가가 습격을 당했다.

“읏”

잠을 자던 나를 깨운 것은 주변을 정찰했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평범한 고블린이었다.

다만 고블린의 무장 상태는 평범하지 않았다.

고블린들의 갑옷이나 무기가 고블린이 가질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척보아도 매우 좋은 품질의 장비들이었다.

“너희 고블린이 맞냐?”

“케륵! 케르륵!”

“케케륵륵!”

수십마리의 고블린이 제각각 검과 창을 들고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확실히 깨달았다.

“너희는 평범한 고블린은 아니구나.”

고블린들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본능에 따라 휘두르는 것이 아닌 체계가 잡힌 검술, 창술이었다.

게다가 체계가 잡힌 합공을 내게 퍼부었다.

“정말 신기하네.”

나는 마나를 끌어올렸다.

검에 약간의 마나만 두른 뒤에 고블린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좋은 무기나 방어구를 착용했어도 고블린은 고블린이었다.

마나를 두르면 쉽게 베어낼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 판단은 틀렸다.

“고블린이 마나까지 사용할 줄이야!”

고블린들의 무기들도 푸른 빛이 감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 마나를 사용할 때나 나오는 반응이었다.

“쉽게 생각했거늘.”

전보다 강하게 마나를 끌어올렸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있어야하기 때문에 최대한 힘을 비축할 생각이었지만, 그럴 때가 아닌 듯했다.

내가 고블린들에게 달려들었다.

고블린이 마나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난 소드마스터다.

저 고블린들은 그저 소드익스퍼트 초급 정도에 불과했기에 단숨에 도륙을 내버렸다.

“후우···.”

고블린들의 사체를 뒤로한 채 주변을 살폈다.

아직까지도 흉흉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 고블린들이 끝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한번 확인해봐야겠어.”

주변에 있는 나무 중 가장 높게 솟은 나무를 탔다.

단숨에 꼭대기에 도착하고, 그 꼭대기에서 힘을 실어 뛰어올랐다.

전부는 아니지만 섬의 전체적인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호··· 그런 것인가.”

섬 곳곳에서 고블린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마치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한 것처럼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착지를 하며 생각했다.

“아마도 밤에만 나타는 것인가.”

그렇다면 혹시 아침이 되면 사라지지 않을까란 생각을 가졌다.

그래도 일단 주변에 있는 고블린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뭐 고블린밖에 없으니까 다행이군.”

혹시라도 오우거가 그것도 마나를 사용하는 오우거라면 쉽지 않은 상대가 될 것이 뻔했다.

그나저나 이번 극한 환경은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가능해졌다.

“편히 쉴 수 없는, 적이 가득한 환경이라는 건가.”

그래도 뭐 상관없다.

이런 경험은 예전에 한 번 해본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한 경험이 아니지만.

카시아스의 기억을 통해 마계에서 쉬지 못할 정도의 전투를 치러보았다.

고블린 정도라면 별로 힘들지도 않는다.

“일단 아침이 될 때까지 주변 정리를 해야겠군.”

나는 가까이에 있는 고블린부터 차근차근 정리해가기 시작했다.

***

내 예상은 또 빗나갔다.

“진짜 이번 시련에서는 어떻게 맞춘 게 하나도 없냐.”

마나와 관련된 시련이 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틀렸다.

극한의 추위가 시련이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극한의 더위가 찾아왔다.

극한의 더위가 진짜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극한이 찾아왔다.

밤에 나타난 고블린들이 아침엔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또 틀렸다.

“낮이 됐는데도 아직까지 있다니.”

아침이 되고 고블린들이 추가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여전히 있었다.

아무래도 다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섬 크기가 그렇게 큰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남은 고블린들이 소탕하는 데에 긴 시간은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자, 자, 얼른 끝내고 쉬자!”

얼른 정리하고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남은 고블린의 토벌을 시작했다.

***

남은 고블린들을 정리한 후엔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710:32:21] - [0] - [강화 고블린]

허공에 떠있는 숫자가 추가되었다.

아무래도 남은 몬스터의 수와 몬스터의 명칭이 분명했다.

“그런데 강화 고블린이라···.”

아직 남은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강화된 고블린이라면 마지막에 이르러선 무엇이 나올지 모르겠다.

“설마··· 전설 속에나 나오는 몬스터들이 나오나?”

현시대엔 발견된 적이 없는 고대에서나 존재하는 몬스터들이 있었다. 그런 몬스터는 전설 취급을 받았다.

그것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은 그 몬스터를 소재로 한 장비들이 남아있었다.

“대표적인 게 있다면···.”

극한의 추위와 더위에서 보았던 푸른 새와 붉은 새의 모티브라고 할 수 있는 불사조, 거대한 거북이의 현상을 띈 터틀리스 등등 여러 전설 속 몬스터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몬스터들 중 단연코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몬스터가 존재했다.

“에이션트 드래곤.”

에이션트 드래곤은 성체가 된 드래곤을 말했다.

그 강함은 소드마스터라도 상대조차 못했다고 하였다.

“설마··· 아니겠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어떻게 전설 속의 존재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솔직히 에이션트 드래곤을 제외한 다른 전설 속의 몬스터들은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리라 믿고 있다.

하지만 에이션트 드래곤은 아니었다.

“아니, 아직 나타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걱정을 하는 거야.”

너무 두려웠던 탓일까.

괜한 걱정을 하고 있게 돼버렸다.

“이번 시련은 예측할 때마다 틀렸으니까, 이번에도 틀릴 거야! 암, 그래야지.”

그렇게 자기위안을 하니 왠지 모르게 안심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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