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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102화 (102/150)

#102화.

시간이 점차 지나며, 결전의 시간이 찾아왔다.

허공이 갈라지면서 께름칙한 기운이 풍겨오기 시작했다.

“저건··· 눈?”

거대한 눈이 우리 연합군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 블랙드래곤의 눈일테지.

나를 제외한 연합군은 익숙한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봐, 수하르 정신 차려.”

블랙드래곤의 시선에 정신이 팔린 나를 킬리안이 깨웠다.

“어? 어···.”

“어때, 엄청나지? 우린 이런 녀석을 주기적으로 상대했단 말이지.”

듣고 나니 연합군 모두가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뭐, 너도 저런 거 셀 수 없이 상대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런 경험은 사양하고 싶네···.”

저런 괴물을 어떡하면 이길 수 있을까란 생각이 잠시 머릿속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내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야, 당연했다.

연합군의 표정은 절망이 아니었다.

내 존재 덕인지 ‘이길 수 있다’라는 희망을 가진 얼굴이었다.

“하긴 나보다 실력이 없는 배신자도 이 시련을 끝내기 전까지는 갔으니까.”

나 역시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연합군을 향해 외쳤다.

“다들 전투 준비!”

갈라진 허공에서 블랙드래곤의 머리부터 천천히 내려왔다.

나는 퇴마검에 최대한의 마나를 꾹꾹 눌러 담았다.

전보다 확실히 마나를 담는 게 수월했다.

퇴마검에 꾹꾹 담은 마나를 블랙드래곤의 머리를 향해 날렸다.

“원래 싸움은 선빵필승이지.”

굉장한 기운이 블랙드래곤과 부딪히며 폭발했다.

그리고 내가 날린 마나가 공격의 신호탄이 되어 연합군 모두가 블랙드래곤을 향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일렁이며 시야가 가려졌다.

먼지덩어리에 휩싸인 블랙드래곤이 아래로 떨어졌다.

-크아아아!

땅에 부딪히며 떨어진 블랙드래곤이 포효했다.

블랙드래곤의 분노에 찬 울부짖음이었다.

“많이 화가 났네.”

나는 연합군을 이끄는 대장들을 쳐다보았다.

나와 시선을 맞춘 대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이었다.

“다들 날개를 먼저 노려!”

블랙드래곤을 수없이 상대해본 연합군답게 모두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이곳에서 동떨어진 존재는 나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개별적으로 블랙드래곤의 빈틈을 노려 공격하면 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부탁한다, 수하르!”

드워프의 쿤타가 나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그 순간 나는 팔찌에 마나를 보내며 갑옷을 착용했다.

쿤타의 망치가 내 등을 때리며 나는 블랙드래곤을 향해 날아갔다.

“요놈아, 이번엔 후속타다!”

타점을 극대화하는 내 최대의 공격이었다.

블랙드래곤의 오른쪽 날갯죽지를 노리며 검을 휘둘렀다.

블랙드래곤의 피부와 내 검이 부딪히는 순간 나는 최대한으로 힘을 실어넣었다.

제아무리 단단한 드래곤의 피부라도 이것만큼은 못 막을 거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내 말대로 블랙드래곤의 날갯죽지는 절반가량이 베어졌다.

“칫, 생각보다 얕군.”

단칼에 날개를 베어낼 생각이었지만, 절반가량만 베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블랙드래곤은 더 이상 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곧바로 블랙드래곤에게서 벗어났다.

이전까지 내가 있던 장소에 마법이 떨어졌다.

“내가 안 보였을텐데 대단하군.”

시야에 보이지 않는, 시야의 사각에서 공격한 이의 위치를 정확히 특정했다.

괜히 연합군이 못이긴 상대가 아니었다.

나는 최대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블랙드래곤은 더 이상 제대로 날지 못할 거야. 계속해서 거리를 벌리며 공격해!”

내 말을 들은 연합군은 제대로 거리를 벌리며 블랙드래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모두 마치 한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완벽한 단합이었다.

더불어 내가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건 확실했다.

그야, 블랙드래곤이 쉴 새 없이 내게 마법을 퍼붓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무슨 마킹이라도 한 거야? 왜 이렇게 나만 노리는 거야!”

전체적으로 보니 강자 위주로 마법 공격을 받고 있었는데, 그중에도 내가 가장 많은 공격을 받고 있었다.

“이봐, 미드리아!”

원거리에서 마법을 영창중인 미드리아을 발견했다.

미드리아는 드래곤의 마법이 내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곧바로 파악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고 비웃은 미드리아였다.

살짝 화가 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브레스 공격은 언제 쯤 하는 거야?”

브레스는 드래곤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력이 강하고, 범위마저 넓은 공격이었다.

잘못하면 연합군이 전멸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처법 또한 존재하기에 언제 발동하는지만 알면 된다.

“아마 최후의 순간이겠지.”

정확하게 미드리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브레스는 위기에 처한 드래곤의 최후의 수단이다.

그렇기에 죽기 직전에나 쓰는 기술이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 죽기 직전의 순간을 예측할 수가 없다.

드래곤과 트롤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트롤의 미친 듯한 생명력을 드래곤 또한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수명은 눈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지.’

생명이 꺼져갈 때는 눈의 빛도 잃어간다.

나는 블랙드래곤의 눈을 주시했다.

물론 가만히 주시하고만 있는 게 아니라 블랙드래곤이 쓰는 마법을 피하며 말이다.

“어라?”

솔직히 믿진 않았지만, 눈의 색이 약간 변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블랙드래곤의 움직임도 변했다.

그 변화를 나만이 눈치챈 것은 아니었다.

연합군들 또한 변화를 눈치채고 한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상대가 강력한 힘을 퍼붓는다면 똑같은 힘으로 되받아치면 되는 법이다.

“브레스가 온다! 다들 집중해!”

연합군들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힘을 끌어모았다.

나 역시 그들 사이에 섞여 퇴마검에 최대한의 마나를 담았다.

한곳에 마나가 집중된 탓인지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표정을 찡그린 킬리안이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신호에 맞춰 한 번에 날려야 한다!”

처음과 같이 또 내가 신호가 되는 것이었다.

킬리안의 의도대로 나는 블랙드래곤이 숨을 들이켜는 순간을 노렸다.

“지금이다!”

나는 강력한 힘이 담긴 마나덩어리를, 벌어진 블랙드래곤의 입을 향해 발사했다.

그와 동시에 뒤따르는 수많은 공격들.

내 공격을 시작으로 단번에 블랙드래곤을 타격했다.

공격의 영향으로 블랙드래곤은 먼지에 휩싸였다.

“제법 대미지를 입었을테지.”

브레스가 나오던 와중에 받은 공격이었기에 더 큰 대미지를 주었다고 생각했다.

정령족의 킹덤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그 순간 나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킹덤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을 뻔했다.

“······!”

먼지가 걷히고 여전히 숨을 들이켜고 있는 블랙드래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날린 공격의 타이밍이 잘못된 것일까.

죄책감 탓에 절로 목소리가 떨렸다.

“젠장, 타이밍이 엇나갔나?”

요정족의 피아가 말했다.

“아니, 타이밍은 정확했어.”

그렇다면 왜!

왜 아직 블랙드래곤이 살아있단 말인가.

피아는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전에도 이런 방식으로 이길 뻔했는데··· 뭐가 잘못된 거지···.”

내 탓이란 말인가.

하지만 피아의 말대로라면 전과 같은 양상으로 흘러갔단 소리가 아닌가.

결과도 같아야한다.

아니, 오히려 결과는 더 좋아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더 이상 생각할 시간 따윈 없어.’

이렇게 한곳에 모인 채로 좌절하고 있으면 안 된다.

곧 블랙드래곤의 브레스가 들이닥칠 것이다.

산개라도 해야한다.

“모두들 흩어져!”

곧장 나는 블랙드래곤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연합군들은 시큰둥했다.

“뭐해! 빨리 흩어지라고!”

“뭐···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벌써 전의가 상실한 상태였다.

이들이 왜 이러는지는 알 것 같았다.

인간인 나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무리라고 판단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전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뭐해, 수하르의 말이 들리지 않는 거야? 어서 피해라고!”

하프드래곤족의 킬리안부터 시작해서.

“마음에 들진 않지만, 내가 보장하지 저 인간은 전에 있던 인간보다 강해. 달라진 게 있다면 분명 저 블랙드래곤일 거야.”

나를 미워하는 엘프족의 미드리아까지.

종족을 이끄는 대장들이 자신들의 종족을 다독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달리며 외쳤다.

“내가 하나 장담하지. 너희들에게 승리의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음번을 노리지 말고, 어떻게든 이번을 노려라!”

내가 어떻게 장담할 수 있냐고.

그건 간단한 사실이었다.

네 번째 시련이 실패로 돌아가면 나는 성역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렇다는 것은 반신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반신의 경지도 못 이룬 내가 벨레스를 이기는 것은 꿈도 못 꾸는 일이다.

‘참고로 나는 자신을 희생하는 목걸이 따윈 쓸 생각이 전혀 없지.’

이런 불쾌한 물건은 곧바로 버려버리고 싶을 정도니까.

결국 내가 벨레스에게 패배하는 것은 인간의 패배다.

훗날 벨레스가 대륙을 정복한 뒤에 성역이 남아있을 거란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더 이상 성역을 방문하는 이들은 없을테지.

그 말인즉 더 이상 이 시련을 도전할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이종족들 스스로는 블랙드래곤은 못 쓰러트려.’

이게 이종족들에겐 마지막 기회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다행히도 내 진심 어린 외침이 통했는지 모든 이들이 다시금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나는 블랙드래곤의 주둥이에 도착했다.

“이것도 막아봐!”

블랙드래곤의 주둥이 마나덩어리를 난사했다.

그러는 순간 께름칙한 기운을 주둥이에서 느꼈다.

‘이건···?’

주둥이의 안쪽에서 약간의 마기가 섞여 나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왔던 인간은 성기사라고 들었었다.

더 강한 위력임에도 끝내지 못한 이유.

그것은 아무래도 신성력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난 아직도 신성력을 쓸 줄 모르는데···.’

곤란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살았던 퇴마검의 본래용도를 떠올렸다.

아니, 정확히는 퇴마검의 한 요소를 떠올렸다.

‘퇴마검의 실···!’

신성력이 없는 내게 마족과의 싸움에서 많은 도움을 줬던 도구였다.

방법을 찾아냈으니,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염동력을 이용해 퇴마검에 실을 감았다.

최대한의 마나를 담은 뒤에 블랙드래곤의 주둥이 안쪽으로 검째로 날려버렸다.

‘제발···!’

내가 날린 퇴마검이 블랙드래곤의 깊숙이 있던 불길한 마기를 건드렸다.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이 멈추었다.

눈을 굴려 주변을 확인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일어난 일을 내가 이해할 방도가 없었다.

눈을 굴리던 중에 허공의 글자를 확인했다.

[네 번째 시련]

아무래도 이렇게 시간이 멈춘 것도 시련을 알려주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네 번째 시련의 끝은 블랙드래곤을 쓰러트리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설마, 먼저 왔던 기사가 배신했던 데엔 이유가 있던 것일까.

이런 내 의문은 허공의 글자가 다시 떠오르며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1번 강화된 블랙드래곤을 쓰러뜨리기]

[2번 포기하기]

2번은 어이없는 선택지였다.

누가 2번을 선택하겠는가.

설마··· 그 전 인간이 2번을 선택했단 말인가!

‘이런 겁쟁이 같으···?’

이런 내 생각은 추가된 설명을 통해 바뀌게 되었다.

[1번을 선택할 경우 승리 시 영혼의 굴레에서 이종족들이 벗어나며 시련이 성공 처리됩니다.]

역시, 이종족들이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블랙드래곤을 쓰러뜨려야했다.

[2번을 선택할 경우 시련은 실패되고, 이종족들의 영혼의 굴레는 지속됩니다.]

당연히 1번을 선택해야 하는 게 정상일테지.

하지만.

[다만 1번을 선택 시 강화된 블랙드래곤에게 이종족들이 죽임을 당할 경우 이종족의 영혼은 소멸하게 됩니다.]

영혼의 소멸.

드디어 이해가 갔다.

이전의 인간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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