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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103화 (103/150)

#103화.

“분명 성기사라고 했었지.”

성기사는 종교를 따른다.

인간의 영혼은 물론이고, 동물의 영혼마저도 고귀하게 여긴다.

그런 성기사가 어떻게 영혼의 소멸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피해가 확실한 상황에서 모두를 구해낼 수 없다는 판단을 했었겠지.

‘으음··· 이종족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무엇을 선택할지 이미 정했다.

“1번을 하겠어.”

이렇게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오히려 이종족들에겐 더 지옥일 수 있다.

뭐,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면 내겐 시련을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내 선택과 동시에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앞의 블랙드래곤이 흐물거리며 녹아내리더니 동그란 알처럼 바뀌었다.

자연스레 내 시선은 허공을 향했다.

[23:59:55]

나는 곧바로 깨달았다.

다시 전투가 시작될 시간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그때까지 다시 정비를 마치고, 더 강해진 블랙드래곤을 상대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보다 먼저 이종족들에게 현 상황을 설명하는 게 우선이겠지.

내게 다가온 킬리안이 물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킬리안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모든 종족들을 모아줘. 할 이야기가 있어.”

***

오랜 역사를 가진 에피아 신성제국엔 영웅이 존재했다.

성기사 바란.

그는 영웅이었다.

에피아 신성제국을 위협하는 적들과 최전선에서 맞서 싸웠다.

그리고 매번 승리를 쟁취했다.

“바란! 바란!”

에피아 신성제국은 황제보다 주교가 더 힘이 강했다.

하지만 그 주교보다 더 강한 힘을, 바란은 가지게 되었다.

바로 제국민들의 지지.

제국민들은 바란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며 우상화를 시작한 것이었다.

추가로 공을 세운 바란에겐 성역에 출입이 허가되었다.

“유의미한 결과가 남길 바라네.”

성역을 지키는 안내인이 바란을 격려했다.

솔직히 성역을 들어가기 전의 바란은 성역의 출입이 불가할 것이라 생각했다.

‘내 손에 묻힌 피가··· 내가 보낸 영혼의 수를 셀 수 없지.’

성기사의 숙명.

영혼을 고귀하게 여기면서도 영혼을 빼앗는 사신과도 같은 숙명.

“이럴 수가···!”

바란이 성역의 입구에 다가섰을 때, 열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성역의 문이 서서히 열렸다.

바란은 무릎을 꿇은 채로 눈물을 흘렸다.

‘내게도 아직 자격이 남아있단 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바란은 굳은 다짐을 결심하고, 성역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란은 다짐은 단 하나였다.

‘성역이 내려주는 시련을 모두 극복하고, 비교할 수 없는 강자가 돼야만 한다.’

국력이 낮은 에피아 신성제국을 위해서였다.

자신이 강해진다면 주변국들의 침입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주변국들의 침입이 완전히 끊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곳이 성역···.’

성역은 바란이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바란은 성역에서 차근차근 시련을 극복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번째 시련이 다가왔다.

“춥고, 덥고, 그 다음은 뭐가 나오는 거지?”

극한의 추위와 극한의 더위를 경험한 바란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이 펼쳐졌다.

밤마다 몬스터가 나오는 환경이었다.

바란은 잘 시간도 줄여가며 몬스터를 사냥했다.

“인···간?”

다시 몬스터가 나타날 시간에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다.

바란이 발견한 것은 드워프였다.

드워프와 바란이 마주보았다.

“네놈도 몬스터인가···? 그렇다기엔···.”

바란은 키가 작고 근육질의 몸인 드워프를 보고 처음엔 고블린 아종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것이 달랐다.

피부색마저 초록빛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능이 제법 높게 보였다.

한동안의 대치가 이어지고, 드워프의 입이 열렸다.

“@$%@!”

언어!

바란은 눈앞의 존재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어를 사용하다면···! 설마!’

바란의 머릿속에 이종족이라는 세 글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눈앞의 존재를 이종족이라고 생각하니 하나의 종족이 절로 생각났다.

“드워프!”

“@[email protected]$%.”

드워프는 바란을 향해 손을 까닥이며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그 뜻을 알아들은 바란은 드워프를 따라 드워프가 있는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언어가 통할 수 있게 해주는 마도구 덕에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바란은 장로 드워프를 통해 이들의 상황을 듣게 되었다.

“아직 미흡한 실력이지만, 제가 꼭 도와드리겠습니다!”

“끌끌, 고맙네! 자네만 믿겠어.”

바란은 네 번째 시련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번 시련은 이들을 해방시켜주는 것이구나!’

바란은 의무감으로 불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모든 종족이 나타났다.

이들의 이끄는 역할은 바란이 맡게 되었다.

“으음··· 여러분은 전략은 나쁘진 않습니다만. 저를 믿어주시죠.”

전쟁의 경험이 잦은 바란은 통솔하는 것 또한 훌륭했다.

그렇기에 아주 새롭게 편대를 이루고, 블랙드래곤과 싸울 준비를 마쳤다.

블랙드래곤과의 싸움 전날.

“미드리아··· 어째서···.”

바란과 미드리아가 구석진 곳에서 만났다.

바란은 미드리아에게 첫눈에 반했다.

미드리아는 그런 바란이 영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미드리아는 바란을 거부했다.

‘바란은 미래를 살아가야하고, 나는 미래를 끊어내야하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종족우월주의가 강한 엘프지만, 인간인 바란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바란 또한 그런 미드리아의 마음을 이미 알아차린 상태였다.

“미드리아, 당신이 나를 밀어내는 이유는 나도 알고 있어.”

“······.”

“하지만 난 당신을 사랑해. 블랙드래곤을 쓰러뜨린 이후부턴 못 만나겠지만 내 마음을 숨기긴 싫어.”

“······.”

미드리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괜히 여기서 바란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블랙드래곤을 쓰러뜨리기 위한 투지가 저버릴까 두려웠다.

“난 사랑한 당신을 꼭 해방해주겠어.”

“전···!”

미드리아가 답을 하려는 순간 바란이 이를 저지했다.

“아무 대답하지 말아줘. 그저 난 사랑한 이가 고통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니까.”

“고마워요.”

“혹시 모르잖아, 굴레가 끝나고 다시 환생해서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될지.”

바란과 미드리아는 구석진 곳을 떠나 각각 자신들의 숙소로 이동했다.

블랙드래곤과 싸우기 위해서는 체력을 최대한 비축해야만 했다.

그리고 결전의 당일.

블랙드래곤이 나타났다.

그 위압감에 바란은 한순간 겁을 먹었다.

하지만 투지를 불태우는 이종족들을 본 순간, 용기가 생겼다.

“전투의 시작이다!”

바란의 외침에 블랙드래곤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몇 번의 고생 끝에 블랙드래곤은 최후의 순간까지 매몰렸다.

그리고 블랙드래곤이 브레스를 모으기 시작했다.

바란과 이종족들은 전투 전에 정해두었던 계획을 시작했다.

브레스를 모으는 블랙드래곤을 공격하는 것.

그것도 최대한의 힘으로 말이다.

“다들 준비해라!”

모두가 개인이 쓸 수 있는 최고의 힘을 끌어모았다.

바란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위에 대한 신경은 전혀 쓰지 않고, 힘을 모았다.

“컥!”

바란의 뒤에서 한 여자의 단말마가 울렸다.

바란은 곁눈질로 뒤를 확인했다.

“미드리아!”

블랙드래곤이 심어둔 마법이 바란을 노렸다.

하지만 그것을 눈치챈 미드리아가 몸을 던져 막아낸 것이었다.

쓰러진 미드리아를 확인한 바란이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바란··· 제발 이 굴레를 네 손으로 끝내줘···.”

바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드래곤의 입 안을 노리며 바란은 자신의 창을 던졌다.

이어지는 이종족들의 강한 힘이 단긴 공격들.

그리고 시간이 멈추었다.

“이게··· 무슨?”

바란은 당황했다.

분명 블랙드래곤은 쓰러져야만 했다.

하지만 블랙드래곤은 살아있었다.

정확히는 시련이 말해주고 있었다.

“강화된 블랙드래곤을 상대해야만 한다고?”

솔직히 당황은 했지만 좌절하진 않았다.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바란은 멈추었다.

“영혼의 소멸이라고···?”

그렇다는 것은 이미 죽은 이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블랙드래곤을 상대하는 데에 이미 큰 피해를 입었다.

사망자도 존재했다.

게다가···.

“미드리아···.”

바란이 사랑한 미드리아는 이미 죽었다.

바란이 주저하며 물었다.

“만약 포기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시련은 말해주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죽었던 이들은 다시 살아나며, 처음부터 다시 이종족들끼리만이 블랙드래곤을 상대해야할 것이라고 말이다.

바란은 멈춰 버린 시간 속에서 며칠을 고민했다.

그리고 선택했다.

“나는··· 시련을 포기하겠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자신은 내게 없다···.’

말할 수 없었다.

차라리 바란은 자신이 악역이 되어 미워할 대상이 되기로 결심했다.

포기해버린 시련은 처음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바란은 자신의 창을 쥐었다.

쓰러져있는 블랙드래곤을 향해 다가가는 이종족들.

그들의 뒤를 노리며 한 명씩, 순서대로 강자부터 죽였다.

‘크흑··· 부디 나만을 원망해주길···.’

짧은 기간이었지만 깊은 정을 쌓았던 이종족들이었다.

그들에 대해 바란은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상대하기 더 쉬웠다.

그랬기에 더 마음이 아파왔다.

마지막 이종족마저 쓰러뜨리고 바란은 무릎 꿇은 채 오열했다.

“젠장!”

블랙드래곤을 상대하느라 힘이 빠진 이종족들을 죽였다.

게다가 포기를 선언한 순간 바란의 힘은 처음 상태로 되돌아갔다.

마치 바란의 선택을 응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서서히 공간이 무너지며 바란은 성역에서 쫓겨났다.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둠만이 깔린 길만이 바란을 반겼다.

***

나는 모인 이종족들에게 설명했다.

“제 이야기는 이게 끝입니다.”

앞으로 강화된 블랙드래곤을 상대해야한다는 것과, 죽음은 영혼의 소멸이라는 것을 말이다.

추가로 앞선 인간 또한 이 두 가지를 선택해야만 했을 것이라고 말해두었다.

그러자 의외의 인물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미드리아였다.

“어···? 왜 우는 거야?”

나를 제외한 모든 이종족들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무언가 알고 있는 눈치였다.

킬리안이 조용히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앞선 인간과 미드리아는 마음의 교류를 한 상태였다.”

“마음의 교류···?”

“서로 사랑했단 말이지.”

그런데 왜 미드리아가 운다는 말인가.

“그 결전의 때에 미드리아는 죽었기 때문이지. 아니, 미드리아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죽었지.”

“······.”

지금과 달랐다.

모든 마법이 내게 집중된 덕에 이종족들에게 사상자는 없었다.

나는 다시금 그들에게 물었다.

“내가 선택한 것에 혹시 불만이 있습니까?”

혹시나 하는 물음이었다.

모든 이종족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굴레가 지속될 바엔 차라리 소멸당하는 게 나아.”

“그래, 맞지.”

“오히려 난 수하르 당신이 불만 있을 거 같은데?”

내가?

드워프 코쿤은 내가 불만이 있을 거라 말했지만 나는 솔직히 그 의미를 몰랐다.

“그야, 자네는 포기하면 목숨을 연명할 수 있을텐데 괜히 이번 선택으로 소멸당할 가능성이 생긴 게 아닌가.”

아···.

생각해보니 나도 여기서 죽으면 영혼이 소멸당한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이미 알아차렸다고 한들 난 강화된 블랙드래곤과의 싸움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야, 당연했다.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면 반신의 경지에 도달은 꿈도 못 꾸니까요.”

“반신의 경지!”

이종족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생각해보니 이들에게 반신의 경지를 노리고 있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내가 이종족들에게 물었다.

“혹시 반신의 경지에 대해 알고 있으십니까?”

이종족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수긍했다.

그들의 반응에 나는 입을 쩍 벌리며 놀라움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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