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내 물음에 장로 엘프인 드키니스가 답해주었다.
“잘 알고 있지.”
“어떤 법이 있습니까?”
이미 알고 있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다.
마기를 받아들이는 것, 신성력을 받아들이는 것.
이 두 가지였다.
제발 새로운 방법이 있다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검을 수련하는 것과 마법을 수련하는 것이 보통이지.”
어라?
이런 방법이···.
옆에 있던 장로 드워프가 드키니스를 째려보며 이야기했다.
“멍청한 장수종 같은니. 그런 건 엘프같이 수명이 긴 녀석들이나 하는 법이지.”
아, 장수종.
솔직히 반신의 경지까지 답이 나오지 않지만, 장수종으로 알려진 엘프라면 긴 시간 동안 수련이 가능해서 할 수 있는 일일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반신의 경지에 도달한 자가 있긴 하냐!”
“우리의 선조분들 중 한 분이 계시지.”
“몇천 년 전 사람을 이야기하는 건 우습군.”
결국 드키니스가 말한 방법은 엘프만이, 그것도 재능 있는 엘프만 가능한 일인 듯했다.
“그럼,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어느 정도의 자격을 갖춘 후에 두 가지의 기운을 받아들이면 된다.”
이미 알고 있는 방법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역시 단서를 더 얻는 것은 무리인 듯했다.
이종족엔 눈에 띄는 강자가 많은 관계로 반신에 대한 단서가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 생각해보니, 반신의 경지가 이들에게도 없는 것을 보아 도달하기 쉬운 경지는 아닌 듯하였다.
“그런가요. 일단 저는 그 두 가지 기운 중 하나를 마기나 신성력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이종족들 모두가 나를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왜 저러는 건지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왜 그렇게들 저를 쳐다보십니까?”
“아니··· 자네 방금 뭐라고 했는가?”
“네?”
“분명 마기라고 하지 않았는가?”
마기나 신성력이라고 했다.
그런 마기를 받아들여 반신의 경지에 오르려는 것은 이상한 행동인가?
잠시 생각해보니 확실히 마기를 받아들이는 것은 타인이 봤을 때 이상한 일이기도 하겠다.
“아, 마기보다는 신성력을 통해 반신의 경지에 오를 생각입니다.”
“아니··· 마기가 뭐냐는 소리네.”
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말 그대로라네. 마기가 무엇이지? 어떤 기운을 말하는 거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운은 마나와 신성력, 정령력, 자연력이라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걸까?
난 정령력과 자연력을 처음 듣는다.
예전에는 기운조차 달랐다는 것인가.
“저··· 이해가 안 됩니다만. 일단 마기는 마계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기운을 말하는 겁니다.”
“마계?”
“어? 혹시 마계도 모르십니까?”
이들이 마계를 모른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시 마족의 존재를 알고 계십니까?”
“마족은 또 무엇인고?”
어라?
설마.
“여러분의 시대엔 마계도 마족도, 마기도 없었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새로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전설 속에 나오는 이들의 이야기에선 마족과 비슷한 이들이 등장했다.
마족과 싸우는 영웅들로 묘사된 적이 많았었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것일까.
‘잠깐만··· 설마?’
이들이 모르는 기운은 마기다.
이들이 알고 있지만 내가 처음 듣는 기운은 정령력과 자연력 이 두 가지였다.
“그렇다는 것은 자연력과 정령력이 변질된 게 마기일 수도 있겠군요.”
“으음··· 직접 그 기운을 느껴보지 못하면 뭐라 말해줄 수 없겠군.”
그럼, 마족이라는 종은 블랙드래곤 사건 이후 살아남은 종족이었을까.
그렇다는 것은 마계는 다른 세계였단 말이었나.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복잡한 세계사는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잊는 셈치고, 기억 깊숙한 곳으로 던져버렸다.
“하여튼 두 가지 기운을 받아들여 반신의 경지에 도달할 생각입니다.”
“흐음··· 그런데 자네는 충분히 강하지 않나.”
“제 적이 반신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이종족 모두가 놀랐다.
그야, 반신의 경지는 저들에게도 전설 속의 경지로 치부되는 모양이니 말이다.
“오호··· 그렇다면 반신의 경지가 자네에게 절실하겠구나.”
“네, 그 말대로입니다.”
반신의 경지가 너무 되고 싶다.
“으음··· 드워프인 내가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자네에게 도움을 줄만한 이가 있네.”
도움을 줄만한 이?
“요정족과 정령족이라네.”
요정족과 정령족이라면.
“혹시 자연력과 정령력이 바로 그들이 사용하는 기운입니까?”
“그렇다네.”
그렇다는 것은 내게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이야기였다.
지금껏 반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마기와 신성력, 두 기운을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늘어났다.
솔직히 마기는 불길한 기운에다 태양 아래에 설 수 없단 단점이 존재했다.
그렇다고 신성력을 선택하기엔 난 종교를 믿지 않았다.
종교를 믿지 않는 자가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신성력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가 그것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보게, 피아와 킹덤! 잠시 이곳으로 와보게.”
요정족의 피아와 정령족의 킹덤.
이 둘은 각 종족의 강자였다.
확실히 그들에게 배운다면 내게 더 도움이 될 것이었다.
피아와 킹덤이 나와 장로 드워프에게 다가왔다.
킹덤이 내게 말했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난 도움을 줄 수 없다.”
어째서.
어찌됐건 같이 블랙드래곤과 싸운 동료가 아닌가.
정령력을 다루는 것을 알려줄 수 있지 않는가.
이런 내 생각과 다르게 나는 곧바로 수긍했다.
“아··· 네.”
“너무 실망 말게. 정령력이라는 것 자체가 이곳엔 없는 기운이라네.”
“예···?”
킹덤은 내게 정령력에 대해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정령력은 정령족만이 가질 수 있는 기운이었다.
태생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기운으로, 힘의 한계가 뚜렷한 게 특징이라고 한다.
“나와 같이 왕의 자질을 가진 이들만이 한계 없는 힘을 부여받지.”
정령력은 주로 사대속성이라고 여겨지는 불, 물, 바람, 땅의 기운을 가진다.
정령족 한 명에 한 기운만 스며든다고 하였다.
“어라? 그런데 킹덤은···?”
“그렇지, 나는 사대속성을 모두 쓸 수 있지.”
그 이유는 킹덤이 왕들의 왕이라는 자질을 타고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음··· 일단 단 하나는 확실하게 알겠군요.”
“응?”
“저는 정령력을 쓸 수 없다는 것 말이에요.”
순간 한 생각이 스쳤다.
“혹시 저도 조상 중에 정령족의 피가 섞여서 정령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음? 뭐···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혹시 알아봐주실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하프 정령족은 약간 사대속성이 발현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네.”
극히 일부?
“보통은 다른 신기한 능력을 타고난다네.”
이야기를 듣던 중에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설마 하는 마음에 염동력을 발휘해 퇴마검을 허공에서 돌려보았다.
내 염동력이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 킹덤.
“허허, 자네 조상 중에 정령족의 핏줄이 섞인 게 틀림없구나!”
“이게 정령력이라고요?”
개인만이 가질 수 있는 힘.
태어났을 때부터 한계가 뚜렷한 힘.
이 두 점이 정령력과 염동력이 비슷했기에 한번 해본 것이었다.
“어허··· 드물게 나타나는 특별한 힘의 정체가 정령력이었다니···.”
이번에 새로운 사실을 너무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아 머리가 아팠다.
“그나저나 자네한테는 이 힘 말고도 다른 게 느껴진다만···.”
“네? 그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생각해보니 내 힘은 염동력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힘은 정확히 핏줄의 여자만이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내가 쓸 수는 없지만 내 피에 잠재워져 있을테지.
‘회귀하는 능력···!’
확실히 나는 두 가지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선천적인 능력과 후천적인 능력 두 가지를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제겐 단 한번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이 있습니다.”
“대단하군!”
“다만 이 능력은 여자밖에 못 씁니다.”
그러자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선 고개를 갸웃하는 킹덤이었다.
“잠시 자네의 능력을 확인하겠네.”
“아···? 예.”
순간 킹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 몸을 샅샅이 살피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오호··· 그런 능력이군.”
“네?”
“자네가 가진 능력은 여자일 경우엔 회귀시켜주는 능력이 맞네만.”
“설마···.”
“남자일 경우에는 그 능력이 바뀐다네.”
내게 새로운 능력이 존재한단 말인가.
하지만 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다만 남자의 능력은 회귀한 이후에 발휘되는 모양이네.”
“도대체 어떤 능력이···.”
“운명을 개척하고 주변의 운명을 바꾸는 것을 허락받는 능력이라네.”
응?
운명을 개척하고 바꾸는 능력이 아니라 허락받는 능력?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우리 같은 미물의 존재가 어떻게 운명을 바꿀 수 있겠는가. 과거로 되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제약이 생겨야함이 정상이라네.”
제약이라니.
“한마디로 말하자면 불행을 막아도 더 큰 불행으로 다가오는 법이라네. 그게 운명을 바꾸는 벌이고.”
그런데 나는 운명이랄까, 다른 이들의 삶을 많이 바꿨다.
그것 때문에 더 큰 불행을 맞이한 적은 없었다.
있다면 벨레스와 만난 것뿐이지만, 벨레스는 먼 훗날 어차피 만나야할 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네의 능력은 그런 제약을 없애주는 능력이라네.”
“좋은··· 능력이겠죠?”
“회귀를 했다면 말이지.”
킹덤이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 눈빛의 의미는 진작에 알아차렸다.
‘회귀를 한 적이 있냐는 물음이겠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킹덤은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축하하네. 다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 자네에게 운명을 개척해야하는 일이 조만간 벌어질걸세.”
아니, 이미 벌어지고 있습니다만.
킹덤은 나를 격려하고는 가버렸다.
그리고 요정족의 피아가 다가왔다.
“그럼, 제가 자연력을 알려드릴 차례군요.”
“혹시··· 자연력도 정령족같이 종족만이 갖는 기운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다행이었다.
종족만이 갖는 기운이었다면 포기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정족의 체구는 작았다.
그것도 매우 작았다.
상식적으로 요정족과 인간족, 아니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과의 혼혈이 탄생할 수 없을 듯하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혹시··· 요정족 사이에서 다른 종족과의 혼혈이 있습니까?”
“어머, 혹시 저한테 반하시기라도 한 건가요? 하지만 죄송하게도 요정족은 요정족끼리밖에 사랑을 나누지 않습니다. 애당초 다른 종족과 아이는 절대 가질 수 없고요.”
역시 그랬다.
그래서 일단 난 중요한 것을 물었다.
“도대체 자연력이 뭡니까?”
“자연력이란 요정족만이 사용하는 기운입니다.”
어?
분명 종족만이 가지는 기운이 아니라고 했지 않는가.
“방금 말이 다르다고 생각하셨죠?”
“네···.”
“실제로 다른 종족도 자연력을 느끼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요정족만 사용한단 말인가.
“그 기운이 엄청 작습니다.”
“네?”
“당신이 느끼던 기운들과 다르게 정말로 작습니다. 그렇기에 그나마 요정족이 그 기운을 느끼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내가 사용할 방법이 없단 소리가 아닌가.
이런 내 생각을 눈치 챈 피아가 말을 덧붙였다.
“뭐,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당신의 기감을 키우면 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그거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할까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무리에 가까웠다.
“다행히도 짧은 시간에 가능할 겁니다. 당신의 재능에 따르겠지만요.”
“그런가요··· 일단 한번 해보죠.”
“좋은 생각이네요. 절 따라오세요.”
나는 피아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