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모두가 떠난 후에 이들이 있던 장소는 끝부터 시작하여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은 공간만 남았을 때 허공에 글자가 떠올랐다.
[네 번째 시련 끝났습니다.]
[송환합니다.]
아무래도 이번엔 선물같은 건 주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이미 선물을 받아버렸다.
‘자연력, 정령력, 보강된 퇴마검, 그리고 승리의 부적.’
많이도 받았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니 눈에 익은 장소로 바뀌었다.
“오랜만의 성역이군.”
성역이었다.
전보다 확연히 신성력이 풍부해져있었다.
하지만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이거 괜히 신성력 때문에 자연력을 못 느끼는 거 아니야?”
그래도 일단은 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자연력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장소를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뭐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지.”
오랜만의 성역이었다.
내가 해야할 일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과 위협 없는 수면을 즐겨야했다.
수련은 그 이후의 일이다.
“자, 그럼 돌아가보실까.”
나는 성역에 있는 집의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오늘만 쉬고, 수련을 시작하자.”
나는 식탁에 앉아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
자연력을 느끼기 쉬울 장소를 생각했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지금까지 다녔던 관광지를 떠올려봐야겠어.”
떠올리는 대로 장소가 바뀌는 성역에서는 내가 원하는 장소로 바꿀 수 있다.
“그나저나··· 이곳에서 자연력을 느끼는 게 가당키나 할까?”
네 번째 시련을 마친 후엔 성역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이 더욱 풍부했다.
이 풍부해진 신성력은 자연력을 느끼는 데에 방해만 될 것 같았다.
“일단 해보는 게 좋겠지.”
수련을 할 시간은 충분했다.
다섯 번째 시련이 시작되는 시간도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729:09:43]
허공에 뜬 숫자가 729였다.
이것은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날짜였다.
마지막의 숫자가 초단위가 아닌 분단위로 바뀌어있었다.
“2년···.”
다섯 번째 시련이 시작되기까지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나 남았다.
“일단은 한번 장소를 옮겨봐야겠어.”
지금껏 내가 다닌 관광지는 대부분이 자연경관이 훌륭했다.
그 말인즉 자연력 또한 풍부할 것이다.
나는 옛 기억을 더듬어갔다.
“역시··· 처음은···.”
회귀 전의 가신인 제이콥을 돕기 위해 갔던 곳인 체키 마을이 좋겠지.
회귀 후에 처음으로 떠난 여행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칼데르트령의 체키 마을에 있는 호수를 생각해보자.”
옛 기억을 떠올렸다.
눈을 감았다 뜨니 주변의 풍경이 바뀌어있었다.
기억 그대로의 체키 마을 인근의 호수였다.
심지어 호수 중앙에 떠있는 나룻배마저 똑같았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음! 상쾌하군.”
공기가 달랐다.
익숙하게 느껴지는 고향의 향기.
나는 단번에 호수 중앙으로 뛰었다.
그리고 가뿐하게 나룻배에 착지했다.
“제법 그립네.”
예전에는 이 배를 타기 위해 기사 데일이 고생했었다.
데일이 헤엄쳐서 배를 내게 가져왔으니 말이다.
“잔잔하니 기분이 좋아지네···.”
나룻배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절로 눈이 감겨오려 했다.
“아니지, 내가 이럴 때가 아니었어.”
나는 자세를 취한 후에 자연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도 자연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에효···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구나.”
나는 다시 드러누웠다.
“내가 상상한 장소지만 역시 좋네.”
긴장이 절로 풀렸다.
그리고 순간 나는 작은 기운을 포착해낼 수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탓에 잠시 배가 흔들렸다.
“어라? 방금 그 기운은···?”
잘못 느낀 게 아니라면 분명 방금 느꼈던 기운은 자연력이었다.
“설마?”
나는 다시금 긴장을 풀고, 드러누웠다.
나도 모르게 잠을 잠 뻔도 하였지만 계속 이 상태를 유지했다.
그리고 이윽고, 작고 미세한 기운을 감지했다.
이번엔 놀라지 않고, 그 기운을 건드려보았다.
“자연력이 확실해!”
드디어 깨달았다.
자연력이라는 것은 집중한다고 감지할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오히려 집중하지 않고, 긴장을 풀며 편한 자세로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기운이었다.
나는 냉큼 그 자연력이라는 기운을 받아들였다.
자연력이 몸속에 빨려 들어오자 왠지 모르게 몸에 활력이 감돌았다.
“어라?”
몸속으로 들어온 자연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합쳐졌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염동력이 강화된 것인가?”
본능적으로 염동력을 사용했다.
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강인하게 발동되었다.
“오호··· 몸속으로 들어온 자연력은 정령력과 합쳐지는 것이었나.”
게다가 좀 더 정령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는 것은···.”
계속해서 자연력을 받아들인다면 정령력은 더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모호하게만 다가왔던 정령력이 뚜렷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정령력을 기운으로써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 이 두 가지 기운을 다루며 반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생각을 마친 나는 계속해서 자연력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자 더 이상 자연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음··· 이 장소에 있는 건 끝인 건가?”
뭐 상관없다.
지금까지 내가 여행을 떠난 곳은 많았다.
장소를 바꾸어간다면 충분한 자연력을 모으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다음 장소는 파우스트령에 있는 페브리스 마을인가.”
아카데미에 다녔을 적에 에피니아와 만났던 장소였다.
그때의 에피니아는 에아 키르턴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지.
“에피니아라···.”
다시금 에피니아를 떠올리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같이 여행을 떠나기로 했지만, 내가 벨레스와 만난 탓에 그 여행의 끝은 무산되었다.
“에피니아가 하르도 데리고 있어줄텐데. 아니, 페트릭이 데리고 있으려나?”
아마 내가 성역을 빠져나올 쯤엔 시간이 꽤 흐를지도 모른다.
그렇다는 것은 밖은 많이 바뀌어있을 테지.
한 가지를 기도하자면 이미 밖이 벨레스의 손아귀에 넘어가지만 않으면 좋겠다.
“적어도 1년···.”
이렇게 작은 자연력을 충분히 모으는 것은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좋겠어.”
나는 다시금 자연력을 모으는 것에 집중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페브리스 마을의 거리를 걸으며 자연력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일 때마다 에피니아와 함께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 최대한 빨리···.”
왠지 모르게 내 머릿속은 에피니아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감정이 떠올랐다.
‘보고 싶네.’
***
나는 문득 허공에 뜬 시간을 확인했다.
[365:11:34]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 시간 동안 내가 받아들인 자연력은 엄청났다.
전부 정령력과 합쳐지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결심했다.
“슬슬 시작해야겠어.”
모호하게만 느껴지던 정령력은 자연력과 합쳐지며 확실하게 기운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몸 안에 두 가지의 기운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마나와 정령력.
마나는 소드마스터급의 마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정령력도 이번에 소드마스터급의 마나를 가지게 되었다.
정확히는 비교하자면 이었지만.
“이젠 이 두 가지 기운을 어떻게든 합쳐내야겠지.”
전에 내가 느낀 벨레스의 기운을 떠올렸다.
두 가지의 기운을 동시에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그때 느꼈을 때엔 마기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마기와는 약간 다른 기운이었다.
그것은 두 가지 기운이 합쳐졌기에 그랬을 터였다.
“일단 몇 번 시도해봐야겠어.”
나는 두 가지의 기운을 합치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제법 고통스러웠지만, 참을 만했다.
그리고 두 가지의 기운이 만나는 그 순간, 폭발했다.
“커헉!”
극심한 고통에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엔 멀쩡한 상태 그대로였다.
“설마!”
나는 곧바로 몸을 살펴보았다.
곧바로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나.”
두 가지 기운은 여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였다.
잠시 그 폭발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주변의 참상을 확인했다.
“허어··· 정말로 폭발했기 했나보군.”
주변에 피가 흩뿌려져있었다.
확실히 몸 안 쪽에서 폭발한 모양이었다.
“음··· 그런데 왜지?”
내 몸은 멀쩡했다.
이것도 세 번째 시련 때처럼 상처를 입어도 곧바로 치유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곳은 성역이었다.
성역에서 상처가 치료되었던 적이···.
“상처를 입었던 적이 없어서 모르겠···.”
한순간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네 번째 시련 이후 이곳은 많이 바뀌었다.
신성력이 풍부해진 장소로 바뀌었다.
그리고 신성력을 대표하는 마법 하나를 떠올렸다.
“치유 마법!”
내가 알기론 신성력을 그냥 뿜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치유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는 것은 방금 내가 나은 이유가 이곳의 풍부한 신성력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굳이 무리하지 않을 필요가 없었다.
상처를 자동으로 치유해주니 즉사 정도의 치명상만 아니면 알아서 치유될 것이다.
“좀 더 과격하게 가도 되겠어.”
그깟 고통쯤이야 반신의 경지를 위해서라면 충분히 버텨낼 수 있다.
“그럼, 다시 시작해보자고.”
***
한 일화가 있었다.
한 마법사가 쫓기는 상황이었다.
그 마법사는 길을 가로막은 기사를 향해 외쳤다.
“왜, 나를 막는 것이오.”
“난 그저 내려진 명을 따를 뿐.”
마법사는 기사를 향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법을 쏟아냈다.
하지만 지친 마법사의 마법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펼쳐졌다.
마나 폭주.
그 탓에 주변을 초토화 시켜버린 것이었다.
마법사 본인도 큰 상처를 입었다.
“아니? 이건!”
쓰러져있는 사람이 무려 두 명이나 있었다.
알고 보니 마법사를 노리던 적이 한 명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암살자도 숨어서 마법사를 노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주변을 초토화시킨 마법 탓에 기사뿐만이 아닌 암살자도 목숨을 잃게 된 것이었다.
내가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데엔 이유가 있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하나···.”
몇 번이고 신체를 폭발시켰다.
그리고 금방 신체는 복구되었다.
그러한 반복은 내 신체를 새롭게 탈바꿈해주었다.
오랫동안 신성력을 통해 회복된 덕에 생명력과 몸의 견고함이 남달라졌다.
“게다가···.”
아미스가 알려주었던 신체변형술을 사용해보았다.
전과 다르게 내 신체는 마나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의도치 않았는데 좋은 결과가 나타난 것이었다.
마치 내가 방금 말했던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나는 허공의 숫자를 확인했다.
[180:19:32]
벌써 반년이란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더 월등해진 신체를 이용해 두 가지의 기운을 합치는 것을 시도했다.
확실히 전보다 더 수월하게 기운이 융합되기 시작했다.
신체가 바뀌어가며 내 스스로도 내 신체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된 덕도 있을 터였다.
“정말로 반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겠어.”
막연했던 목표가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느꼈다.
***
“끄으으아아악!”
최대한 고통을 참으려했지만, 절로 비명소리가 튀어나왔다.
몸이 붕괴되며 수복되어가는 것을 반복했다.
미칠 듯한 고통 속에서도 내 입가엔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드디어 됐구나!”
두 가지 기운이 합쳐졌다.
이 몸의 반응도 합쳐진 두 기운을 버틸 수 있는 몸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이었다.
드디어 반신의 경지에 도달했다.
내가 반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은 성역에서 남은 시간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