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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110화 (110/150)

#110화.

나는 고개 숙여 왕의 말을 받들었다.

“확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다만 승리하지 못할시 자네는 목을 내놓아야할 것이야.”

“그저 지켜봐주십쇼.”

이후 왕은 알현실을 떠났고, 다른 귀족들 또한 자리를 떠났다.

나에게 데이브 형이 다가왔다.

“너, 미친 거야?”

“어쩔 수 없었어. 이 일만큼은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안되니까.”

“아니, 네가 검성님을 어떻게 이기려고!”

“걱정 마.”

담담한 내 모습에 데이브 형은 한숨을 계속해서 내쉬었다.

“아직 젊은데 벌써 목숨을···.”

“아니, 형. 나 아직 안 죽었어. 그리고 내가 폐하에게 전한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야.”

“아, 생각해보니 그 이야기가 중요하구나. 벨레스는 또 뭐고, 대륙의 멸망은 또 뭐야.”

나는 차근차근 데이브 형에게 벨레스란 존재를 설명했다.

설명이 계속될수록 데이브 형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게 사실이야? 대륙을 멸망시키려는 조직이 있고, 그 조직은 대장이 벨레스라는 악마라고.”

“응. 하나도 빠짐없이 사실이야. 형도 알잖아. 레아.”

“아···!”

밀리아 누님의 전속시녀였던 레아를 언급하자 데이브 형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건 그렇다 쳐도 검성님은 어떻게 이기게? 아, 그렇지. 네가 따로 검성님이랑 입을 맞춰뒀구나!”

“아닌데?”

“어?”

“말했잖아, 왕께 전해드린 이야기는 전부 사실이라고. 내가 검성님 이겨.”

못미덥다는 눈치로 나를 바라보는 데이브 형.

검에 대해서 잘 모르는 데이브 형에게 지금의 경지를 보여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냥, 일단 봐. 내가 소드마스터 이상의 경지니까.”

“그런데 소드마스터 이상의 경지는 도대체 뭐야?”

“음··· 짧게 말해 반신의 경지.”

“···에휴, 어쨌든 한번 믿어볼게.”

데이브 형은 여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다행히도 이 일을 넘어가 주었다.

조만간 할 검성과의 대련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크흐, 어떻게 복수를 한번 해볼까.’

제자 된 도리로 나는 검성의 뒤통수를 딱 한 대만 때리는 걸로 만족할 예정이었다.

***

생각 외로 왕이 이 일이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대련의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순식간에 대련의 무대가 만들어졌고, 남은 것은 검성이 도착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검성 또한 빠른 시일에 도착하였다.

대련이 시작되기 전에 왕은 나와 검성을 따로 불렀다.

“검성이여.”

“예, 폐하.”

“이, 수하르 칼데르트라는 자가 정말로 자네의 제자가 맞는가?”

“예, 맞습니다.”

왕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가지 묻지.”

“무엇이든 물어보셔도 됩니다.”

“검성, 자네보다 자네의 제자가 더 강하다는 게 사실이더냐?”

어, 내 앞에서 그걸 물어본다고?

내가 아무리 그렇게 말했다고 하더라도 어느 스승이 자신의 제자보다 약하다는 것을 제자의 눈앞에서 인정하겠는가.

인정하더라도 자존심의 문제였다.

그 증거로 검성이 나를 보며 불길한 미소를 지었다.

“폐하, 혹시 제 제자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그렇다!”

“어허··· 제 제자가 한참 전에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긴 했으나 못 본 사이에 저를 뛰어넘었다니··· 재밌군요. 한번 겨뤄봐야 알 것 같습니다.”

검성의 말에 왕은 놀라고 있었다.

“어허··· 소드마스터라··· 대단하군. 그렇다면 검성 자네가 질 수도 있겠어.”

“하하, 전 로토 왕국의 검성입니다. 제아무리 제자라도 질 수야 없죠.”

“허허, 그래 자네만 믿겠네.”

그리고 왕은 내게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니 자네의 목을 거두는 것은 내가 조금 심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갑자기 왕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 이유는 왕의 이어지는 말에 알 수가 있었다.

“우리 왕국에 두 번째로 탄생한 소드마스터의 목을 어찌 쉽게 거둘 수 있겠는가.”

“······.”

나는 뭐라고 답해야할지 몰라 그저 침묵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진다면 왕실의 개가 되게.”

“···예?”

“아, 어감이 조금 나빴구만. 뭐, 별거 아니다. 그저 왕실의 말만 잘 들어달란 소리니.”

오호라.

소드마스터라 죽이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벌충을 없애기에도 애매하다 이거군.

“전 상관없습니다. 제가 이길 겁니다.”

“스승의 앞에서 승리를 장담하다니 기개가 있구만.”

나는 곁눈질로 검성을 보았다.

검성과 시선이 마주쳤다.

검성의 눈을 승부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제법 화가 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더 나았다.

괜히 서로를 배려한다고 했다가는 조작 승부처럼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련 기대해보겠네. 검성, 자네의 제자 목은 제대로 남겨주길 바라네.”

“제 손으로 어찌 제자의 목을 거두겠습니까.”

아무래도 왕은 검성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후 검성과 나는 그 자리에서 나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법 기개가 있구나.”

“검성님, 그런 게 아니오라···.”

검성이 미소를 지었다.

안에서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으나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아무리 악독하다고 하더라도 제자를 왕실의 개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지.”

“네?”

“내가 일부러 져줄테니 소원 한 개만 들어주거라.”

일부러 져준다니 검성이?

이건 분명 함정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게다가 일부러 안 져주더라도 난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근데 한 가지 궁금해졌다.

“됐습니다. 제대로나 해주시죠. 그런데 도대체 무슨 소원을 저에게 바라시는 겁니까?”

그 순간 검성이 바라고 있을 소원 한 가지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설마··· 에이션트 스네이크로 담근 뱀술?’

그 뱀술 때문에 검성이 내게 승부조작까지 제안하다니 역시 명주다.

하지만 이런 내 예상은 빗나갔다.

“그게··· 내 손녀 녀석이···.”

“예? 손녀요?”

검성의 손녀라면···.

엘리스 사르키드밖에 없다.

“엘리스를 말하는 건가요?”

“크흠··· 내가 손녀에게 약한 것은 알고 있지?”

“예.”

그거야 물론 알고 있다.

손녀 때문에 노블리스 조직에 휘둘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손녀가 아직도 자네를 잊지 못하고 있네. 자네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야.”

“그렇다면···.”

소원으로 할려고 했던 것은···.

“손녀분과 저의 혼약을 강요하시려고 한 모양이네요.”

“크흠··· 그래도 왕실의 개보단 낫지 않은가.”

검성님과 혈연관계로 맺어지다니 순간 왕실의 개가 낫다고 말하려고 한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이 말은 괜한 말이었다.

“하하,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좋아하는 사람 있습니다.”

“오호··· 그렇다면 혼약이라도 약속한 건가?”

“그건···.”

현재 몇 년째 만나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내 손녀에게도 기회는 있다는 소리겠구만. 그렇다면 자네가 이번에 나한테 지면 왕실의 개가 아니라 내 손녀를 한 번 만나보게.”

“그건 왕께서 정하신 것을 바꿀 생각입니까?”

“하하, 왕께선 내 부탁을 무조건 들어줘야하는 이유가 있으니 상관없다.”

허허, 어쩌다 보니 내 미래가 달려버린 대련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뭐 내겐 질 자신이 없으니 상관없었다.

“방금 전에 말했다시피 전 질 자신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오호, 그렇다면 대련 때 확실해지겠군. 내 제자가 소드마스터 이상의 경지에 도달했는지 아닌지가 말이야.”

역시 검성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다.

검성조차 알 수 없었던 이상의 경지.

반신의 경지에 대해서 어디한번 검성에게 보여줘야겠다.

“들으셨군요. 긴장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제자가 허풍쟁이가 되었는지 전설이 되었는지는 겨뤄봐야 아는 법이겠지.”

하며 검성은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오랜기간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있었던 검성은 분명 소드마스터 끝자락에 도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 너머의 경지가 있다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을 터.

‘끝자락에 있던 가림막을 제가 한번 치워드리겠습니다.’

뭐, 가림막을 치우더라도 나와 같은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진성 검사인 검성은 분명 기뻐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반신의 경지는 검사에겐 예술품과 같이 보일 수 있을테니 말이다.

***

대련의 당일이 찾아왔다.

이 대련을 지켜보는 관객은 부유한 평민 혹은 귀족들뿐이었다.

마치 콜로세움에 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하긴, 검성과의 대련이라니 돈을 벌 수 있는 것이긴 하지. 그것도 제자와 스승간의 대결.’

이렇게 콜로세움 형식으로 대련을 만드는 것은 아마도 로토 왕국 재상의 노림수인 게 분명했다.

하여튼 이 모든 것은 대련을 치를 나와 검성에겐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검성에게 오늘 제대로 된 벽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내 앞에 거리를 둔 채 서 있는 검성을 바라보았다.

“검성님, 처음부터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오호, 제법 건방진 말이구나.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검성과의 대련도 오랜만이었다.

가장 최근에 치렀던 대련이 사르키드령에서였었지.

그때에 나는 검성이 검 실력은 나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염동력과 함께 사용한다면 내가 이길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구나.’

반신의 경지에 오르자 검성의 실력이 감춤 없이 보여졌다.

물론 예전보다 성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검성과 그 당시의 내가 전력을 다해 싸웠으면 내가 졌다.

‘물론, 지금은 다르겠지만.’

나는 검성에게 넌지시 말했다.

“참고로 저는 염동력은 안 쓸 겁니다.”

“뭣이! 나를 너무 우습게···.”

“말씀드렸죠. 저는 소드마스터 그 이상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이 말은 한 치의 거짓이 없습니다. 검성님이 생각하시는 경지와 차원이 다릅니다.”

“······.”

“대련 때 보시지요.”

내 나름의 은혜 갚기를 할 생각이었다.

검성에게 반신의 경지를 제대로 겪게 해주는 것.

이게 나의 검성에 대한 은혜 갚기였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에 왕이 외쳤다.

“대련을 시작하도록 하여라!”

대련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검성과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선공은 양보해드리겠습니다.”

“허허··· 기어코 네가 내 화를 돋우는구나.”

솔직히 도발이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반신의 경지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선 검성은 진심을 다할 필요도 있었다.

순식간에 내게 접근한 검성이 수차례 검을 휘둘러왔다.

그 안에 담긴 힘은 확실히 소드마스터 초입과는 달랐다.

‘소드마스터 완숙의 경지를 넘은 모양이네.’

아마 검성은 소드마스터 완숙의 경지에서 한 단계 뛰어 넘은게 소드마스터 이상의 경지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것은 오해라고 몸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검성의 공격을 제 자리에서 모두 받아냈다.

수차례의 공격 끝에 나와 거리를 벌리는 검성.

검성의 얼굴에는 당황한 감정이 역력했다.

“···이게 소드마스터 이상의 경지라는 게냐.”

“아직 모든 것을 보여드린 게 아닙니다.”

나는 검성을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검성님이 날릴 수 있는 최대한의 공격을 날리세요.”

소드마스터가 가볍게 휘둘러도 비기가 된다.

소드마스터가 비기를 날릴 때처럼 휘두르면 그것은 재앙이 된다.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되어버리기에 재앙이었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같은 소드마스터뿐이었다.

그것도 똑같은 힘 이상으로 휘둘러야만 막을 수 있다.

“괜찮··· 아니, 네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군.”

검성의 주변에 엄청난 기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이곳을 초토화시킬 것만 같은 기운.

아마도 저것이 검성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공격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게는 가볍게만 다가왔다.

‘나를 마주한 벨레스의 기분이 이랬을까···.’

아무리 공격하더라도 차이를 좁힐 수 없다.

솔직히 적의 강대한 기운조차 전혀 내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정말로 지금 살아있는 게 기적이군.’

검성이 내게 소리쳤다.

“지금 바로 공격하도록 하지!”

내가 아무런 대응을 안 하고 있으니 검성이 나를 살짝 걱정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내게 공격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걱정 없습니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성이 쏘아낸 강대한 기운이 나를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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