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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111화 (111/150)

#111화.

검을 들어 그 기운을 통째로 위로 흘려버렸다.

그 기운은 하늘 위로 올라가며 서서히 사라졌다.

나는 검성을 바라보았다.

약간은 허무해보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더 하시겠습니까?”

검성의 뒤통수를 한 번 정도 때릴까도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악수였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떻게 스승의 뒤통수를 때릴 수 있겠는가.

‘혹시라도 나중에 대련하게 되면 그때를 노려야지.’

그렇게 나는 생각했다.

검성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됐네···.”

나는 관중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내가 벌인 일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 누가보더라도 검성을 압도했다.

게다가 검성의 최대 공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기운을 가볍게 흘려버렸다.

대륙 어디에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었다.

아니, 벨레스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벙쪄 있던 왕이 정신을 다잡고선 말했다.

“제자의 승리로구나···.”

제법 많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여기서 선언하겠다. 수하르 칼데르트는 로토 왕국의 두 번째 검성으로 임명한다!”

어라?

두 번째 검성?

나는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이미 로토 왕국에는 검성이 있습니다만, 두 번째 검성이라니요!”

왕국은 하나의 검성만이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던가.

“어느 나라든 검성을 무한대로 둘 수 있다. 다만 인재가 나오지 않을 뿐이지.”

내가 잘못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제국만이 여러 검성을 둘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왕국 역사를 통틀어 검성이 두 명이었던 적이 없어서 벌어진 착각이었다.

나는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혹시라도 나 때문에 검성님이 검성님이 아니게 되면 곤란하니까···.’

어차피 검성이라는 것은 명예직에 가까우니 받아도 상관없는 호칭이었다.

묶이지만 않으면 된다.

‘난 여유롭게 살아갈 거니까.’

왕은 선언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환호했다.

로토 왕국에 두 번째 검성이 탄생했다.

“그리고 수하르 칼데르트는 따로 나를 찾아오거라! 약속은 지켜져야지.”

그리고 모두가 자리를 떠났다.

관중석을 훑자 데이브 형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나는 데이브 형에게 입 모양으로 말을 전했다.

‘난 거짓말한 적 없다. 봤지?’

하지만 데이브 형은 얼이 빠져있어 내 말은 전해지지 않았다.

뭐, 상관없었다.

나는 주저앉아있는 검성에게 다가갔다.

“이게 소드마스터 이상의 경지입니다.”

“대단···하구나··· 혹시 그 경지에 대한 명칭이 따로 있느냐?”

“반신의 경지라고 불립니다.”

검성의 표정은 복잡해보였다.

“반신의 경지··· 혹시 그 경지는 나도 도달할 수···는 없겠군.”

검성도 나이가 있다.

게다가 검성은 소드마스터의 끝을 보았다.

하지만 끝을 보았음에도 그 이상의 경지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반신의 경지로 가는 벽은 높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높아서 존재하지 않는 경지처럼 느낄 수밖에 없는 게 반신의 경지였다.

“가능합니다.”

“가능하다니··· 나도 반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단 말이더냐?”

방향만 맞춰진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두 가지의 기운을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자연력이라는 기운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검성이 특별한 능력, 즉 자연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가능한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 묻죠. 신을 믿습니까?”

차마 마기를 받아들이면 가능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진 않았다.

강한 힘을 얻는다고 한들 태양 아래 설 수 없으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내가 제안할 수 있는 방법은 신성력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왜 갑자기 신을 믿냐고 묻는 거냐? 그 힘은 신이 내려준 게냐?”

“아니요, 제가 열심히 단련해서 얻은 힘이죠.”

솔직히 신의 도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닐 터였다.

성역의 시련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고, 검에 대한 이해도 성장한 덕에 오른 경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신보다는 내 영향이 컸다.

결국 시련을 치룬 것은 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신을 믿냐고 묻는 거지?”

“반신의 경지는 두 가지의 기운을 지녀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두 가지의 기운?”

나 같은 경우는 세 가지의 기운이었지만.

“마기와 신성력 중 한 가지를 받아들이셔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

“하지만 마기로 반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경우는 태양 아래에 설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은 신성력밖에 없죠.”

검성은 내 말을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성력이란 건 어쨌건 신을 믿어야 나오는 힘이니까 물었던 것입니다.”

나 역시 몇 번이고, 신성력을 이용해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것은 아마 내가 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과 신을 믿는 것은 다른 것이니까.’

난 신에게 기대는 삶이 싫었기에 신을 믿지 않았다.

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말이다.

검성이 고민에 빠져들었다.

“흐음···.”

“······.”

나는 조용히 검성의 답을 기다렸다.

“난 이걸로 만족해야겠네. 굳이 타인의 손을 빌려 절대적인 경지에 도달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말이야.”

“하긴 남은 날은 손녀랑 보내셔야죠. 괜히 수련으로 소홀히 대하는 것보다는 낫긴 하겠죠.”

순식간 검성의 주먹이 내 뒤통수를 노리며 휘둘러졌다.

하지만 나는 간단하게 피해냈다.

허공만 스친 검성은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곧바로 내게 화를 냈다.

“예끼, 남은 날이라니. 아직 앞날이 창창한 사람한테 말이야.”

“예엡, 죄송합니다.”

나는 검성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자, 돌아가시죠.”

“끌끌, 이제는 네 녀석 뒤통수가 멀게만 느껴지는구나.”

“나중에 저랑 대련 한 번 하시죠.”

“됐다, 어차피 못 이길 거 남은 날은 건강만 챙기면서 살아야겠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아직 난 검성의 뒤통수를 단 한 번도 못 때려봤다.

“에이, 저랑 대련해야 실력이 늘죠.”

“됐다, 난 더 이상 성장할 게 없다.”

“로토 왕국을 위해 성장하셔야죠! 혹시라도 다른 나라가 침략이라도 하면 검성님이 나셔야하지 않겠습니까!”

난 훗날의 대련을 위해 열변을 늘어뜨려 놓았지만 검성은 내 모든 열변을 무시했다.

“내가 굳이? 이제 네가 있는 나까지 싸울 필요는 없지 않느냐.”

너무나도 확고한 검성의 말에 나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관중들 시선은 신경 끄고 때릴 걸···.’

제 아무리 검성의 뒤통수에 대한 원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이유 없이는 때릴 수 없다.

때릴 기회는 오직 대련뿐이었다.

하지만 이젠 검성은 나와 대련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잘 가라··· 내 원한···.’

어쩔 수 없이 나는 쌓인 원한을 깔끔하게 보내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

알현실엔 왕과 호위들,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레티아 2왕녀가 있었다.

“잘 보았다. 검성이 그리 쉽게 당하다니, 소드마스터 그 이상의 경지가 맞긴 맞나보구나.”

“말씀드렸던 것들은 전부 사실입니다.”

“그래, 믿어주겠다.”

드디어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제게 군대를!”

“그건 다른 이야기구나.”

어라?

“그게 무슨?”

“이 대련의 승리 시에 난 수하르 자네의 말을 믿어주겠다고만 했지, 군사를 내주겠다고 한 적은 없네.”

그러고 보니···

뭐, 상관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미 짐작한 바였다.

본래의 목적은 하나였다.

“왕실의 시련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왕실의 시련을 통해 군사를 얻는다면 되는 일이다.

“오호··· 아직 젊은 거 같은데 왕가의 시련을 알고 있다니.”

사실 회귀 전에도 오랜 기간 몰랐었다.

내가 왕실의 시련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실의 시련이 벌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좋다, 왕실의 시련을 내려주마.”

“감사드립니다.”

나는 기대하며 왕실의 시련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왕실의 시련은 정해진 것이 없으니까··· 내 실력을 본 이상 최대한 어려워 보이는 것을 선택하겠지.’

왕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나?”

“어··· 알고는 있습니다.”

사실은 상대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드래곤이 웬말인가.

내 기억으로는 이 시대에 드래곤은 없었다.

회귀 전의 삶에서도 드래곤을 본 적이 없다.

있는 거라곤 드래곤으로 만들어진 장비나, 드래곤의···.

‘잠깐만! 그러고 보니,,,’

왕이 말했다.

“최근에 드래곤의 레어로 짐작되는 곳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 있는가?”

드래곤의 레어!

드래곤의 집이자 보물창고를 드래곤의 레어라고 칭했다.

그러고 보니 회귀 전에도 로토 왕국의 외곽에서 드래곤의 레어가 발견된 적이 있었다.

물론 보잘것없는 물건들만 발견되었기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처음 듣습니다.”

“자네에게 내릴 시련은 드래곤 레어를 찾아내게.”

보아하니 아직 정확한 위치는 발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잠깐!”

뭐지?

왕실의 시련은 보통 하나일 터였다.

그렇다는 것은 더 내게 할 말이 없어야 정상이었다.

“단 조건이 하나 있네.”

아, 너무 쉽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내 딸인 레티아를 데려가게!”

어···?

“그게 무슨···.”

“내 딸이 세상구경을 하고 싶다는데 위험해서 허락을 해줄 수 있어야 말이지.”

그렇다면 호위를 대동시키면서 하면 되잖아.

어째서 굳이 내 시련에 낀단 말인가.

“그런데 딱 마침 우리 로토 왕국의 두 번째 검성이 시련을 받으러 여행을 간다네.”

“시련은 여행이 아니라···.”

왕은 내 말을 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시련에 내 딸을 동행시키기로 했지. 뭐, 싫다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이 시련은 없던 걸로 하겠네.”

왕, 치사하다.

솔직히 말해서 왕의 목적은 알고 있다.

나는 젊은데다 검성을 이길 정도의 실력자다.

그런 실력자를 가만히 둘 수가 있겠는가.

어떻게든 왕실의 편으로 만들고 싶어할 것이다.

‘보아하니 레티아 2왕녀와 혼약시키려는 모양이네.’

레티아 2왕녀의 미모는 왕국 내부에서도 유명했다.

왕실의 꽃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나는 이미 마음이 정해졌다.

그렇기에 동행시켜도 상관없었다.

‘내 마음은 변치 않을테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왕의 조건을 승낙했다.

“알겠습니다.”

“크흠, 다만 걱정이 되는구나.”

아니, 또 뭐가 걱정이 된다는 말인가.

“내 딸이 워낙 이뻐서 말이야.”

나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왕의 말에 동의해주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아무래도 시련에 동행시키는 것은··· 좀,”

하지만 내 말은 안중에도 없는지 자신의 말만을 이어가는 왕이었다.

“혹시라도 내 딸이 혼전순결을 하지 못할까봐 겁이 나네.”

그 말은 결국 내가 공주를 건드릴 거란 소리나 다름없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흐음··· 걱정되니··· 그렇지! 그러면 되겠구나.”

만약 여기서 약혼제의를 한다면 난 단번에 거절할 생각이었다.

“만약 내 딸이 혼전순결을 못하게 된다면 자네가 똑바로 책임지도록 하게.”

“네···? 아, 예, 알겠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결국 유혹을 버텨내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솔직히 아무리 레티아 2왕녀의 미모가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건 에피니아도 마찬가지였다.

에피니아와 같이 여행을 다녔을 때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 자네만 믿겠네. 사위··· 아니, 수하르. 신혼여행··· 아니, 시련은 준비 되는대로 부르겠네.”

자꾸 이상한 말이 들린 것 같지만, 나는 못들은 척을 하기로 했다.

차마 왕에게 꼬투리를 잡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순간 나는 보았다.

레티아가 내게 끈적한 눈길을 보내오는 것을 말이다.

‘이번 시련··· 꽤나 머리아프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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