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114화 (114/150)

#114화.

다행히도 두 번째 날은 그 아홉 명이 끝이었다.

더 이상 오지 않은 걸로 보아 생각보다 드래곤 레어를 노리는 녀석들은 잔챙이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그냥 솔직하게 드래곤 레어에 좋은 물건 하나도 없다라고 말해도 믿진 않을 것 같고.’

오히려 이렇게 말하면 호기심 때문에 더 찾아올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번째 날이 끝이 나고 세 번째 날이 찾아왔다.

이번 적은 아침 일찍부터 이곳을 찾아왔다.

‘소드익스퍼트 최상급 하나와 소드익스퍼트 하급 하나.’

평범하지 않은 조합이었다.

둘인 걸로 보아 스승과 제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정답에 가까웠다.

직접 마주한 이들은 노인과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여길 찾아오실 분은 아닌 거 같은데···.”

둘다 선인에 가까웠다.

이런 드래곤 레어의 물건을 노릴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노인이 말했다.

“가르침을 받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가르침이요?”

설마 했던 경우가 벌어졌다.

드래곤 레어가 아닌 나를 목적으로 하는 방문.

“소드익스퍼트 상급을 단칼에 쓰러트리셨다고 들었습니다.”

“······.”

“침묵은 긍정이시겠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 최상급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알고 있다.

“그런데 최상급 경지인 저도 상급을 단칼에, 그것도 주변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잡는 건 불가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상급 두 명이 최상급을 쓰러트리는 모습까지 보았다.

그렇기에 최상급이라도 상급을 단칼에 쓰러트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당신께서는 소드마스터라고 감히 추측해보고 있습니다.”

그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한 상태다.

하지만 이들에게 반신의 경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저와 대련 한 판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들은 악인이 아니었다.

그저 내게 배움을 원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뭐··· 한번쯤이야.’

악인도 아닌데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저런 선인들의 실력이 전보다 상승한다면 대륙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혹시라도 벨레스 조직 녀석들을 쓰러트려줄 수도 있는 일이고.’

나는 저 노인에게 가르침을 주기로 했다.

쫓아내는 게 목적이 아니기에 힘 조절을 해주기로 하였다.

“참고로 이 일은 비밀로 부탁드립니다.”

한순간 당황하는 노인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모습에 나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설마 가르침 받으러 간다고 이미 떠든 거 아니야?’

나는 잡생각을 버리고, 노인과 검을 섞었다.

최상급의 끝자락에 선 노인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충분히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그때까지 수명이 남아있는 게 관건이지만.’

뭐, 그래도 이 노인은 소드마스터가 궁극적인 목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수단에 불과하달까.

자신의 제자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노인과의 대련을 끝내고, 나는 노인의 제자로 추정되는 소년에게 물었다.

“너도 나와 대련을 하겠니?”

그러자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전 스승님의 가르침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실력은 저보다 월등히 뛰어납니다. 제게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않겠죠.”

오호.

제법 똘똘한 소년이었다.

보통의 소년이었으면 단칼에 내 제안을 승낙했을텐데.

아마 스승인 노인이 잘 가르친 것이겠지.

방금 한 소년이 한 말대로 내 가르침이 지금의 소년에게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노인이라면 모를까.

“나와의 대련을 마다하다니! 그럼, 선물을 줄 수 밖에 없겠군.”

나는 주변의 자연력을 한곳에 모았다.

그리고 소년에게 자연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이로써 소년이 가지고 있는 마나는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었다.

소년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제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야, 자연력이니까.’

자연력은 기운을 증폭시켜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자연력은 요정족이 아니면 느끼는 것조차 쉽지 않다.

훗날 저 소년이 성장하면 할수록 자연력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것이다.

그와 동시에 마나는 더 큰 힘을 발휘하겠지.

“그 힘을 정의로운 데 써주렴.”

내가 소년의 힘을 강화해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제법 똘똘하기도 하지만 이 아이의 성향은 완전한 선이었다.

그런 소년에게 힘을 준다면 훗날 성장했을 때에 정의로운 삶을 사는 데에 큰 도움을 될 터였다.

‘내가 못하는 일을 네가 해다오.’

난 정의로운 삶보다는 한적한 삶을 원하니까.

정의는 남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다.

벨레스와 관련된 일이 제외하고 말이다.

***

세 번째 날에만 벌써 다섯 번에 걸쳐 손님이 찾아왔다.

첫 번째 손님은 노인과 소년, 두세 번째는 그저 평범한 구경꾼.

네 번째 손님은 악인이었기에 처벌했다.

그리고 이번에 찾아온 다섯 번째 사람은 익숙한 사람이었다.

“파스타르···!”

“오랜만이군, 카시아스.”

왜 콜로세움 챔피언이 이곳에 있단 말인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내가 파스타르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이곳에 있는 겁니까?”

그리고 그 순간 뒤에서 놀란 듯한 목소리로 레티아 왕녀가 소리쳤다.

“미, 미, 미케네르 제국에 콜로세움 챔피언 파스타르···! 그리고 유일하게 그를 이겼던 도전자 카시아스라고요!”

아···.

들켜버렸다.

레티아 왕녀는 나와 거리를 둔 채 여전히 놀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 그···.”

나는 원망을 담아 파스타르를 노려보았다.

파스타르는 멋쩍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실수했나보군. 그보다 그 안에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 여자 제법 실력이 뛰어난 모양이구나.”

레티아 왕녀는 제법 실력이 있긴 있다.

하지만 소드마스터에게 기척이 안 들킬 정도의 실력자는 아니다.

내가 기척을 숨겨준 것이다.

“하하··· 그보다 이곳엔 왜 오신 겁니까.”

“내가 요즘 떠돌이 생활을 하는데 드래곤 레어에 관한 소문을 들어버려서 말이지.”

파스타르가 떠돌이 생활?

“콜로세움은 어쩌고요.”

내가 떠난 이상 파스타르가 콜로세움의 챔피언일 터였다.

“자네가 없는 콜로세움에서 다시 챔피언이 되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 나 때문이구나.

원래 파스타르는 오랜 기간 챔피언 자리를 유지했다.

그런데 나한테 졌다고 곧바로 은퇴라니.

재미없는 농담이었다.

‘아니, 오히려 잘된 건가?’

파스타르가 있는 콜로세움에서는 우승은 어차피 파스타르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파스타르가 없는 이상 챔피언 자리는 자주 뒤바뀔 것이다.

“그래서 드래곤 레어를 찾으러 왔는데 우연히도 제가 있었다는 이야기겠네요.”

“뭐, 드래곤 레어를 지키는 수호자가 소드마스터란 소문도 약간 들어서 찾아왔지.”

허어···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그렇다면 어디···.”

갑자기 파스타르가 전투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하며 그런 파스타르를 말렸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왜 곧바로 전투태세를 취하십니까!”

“난 이곳에 싸우고 싶어서 왔네만?”

옆에 있던 레티아 왕녀가 소리쳤다.

“제아무리 콜로세움 챔피언이었던 자도 이분에겐 안 됩니다! 게다가 이미 한 번 지셨잖아요! 그리고 이 분은 소드마스터 이상의 경지랍니다!”

자랑스럽게 내 이야기를 하는 레티아 왕녀.

그 모습에 나는 화가 절로 났다.

나는 파스타르의 얼굴을 살폈다.

입이 찢어질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파스타르였다.

아마 소드마스터 이상의 경지에 꽂힌 모양이다.

“오호, 그게 정말인가! 소드마스터 이상의 경지라니!”

“그게··· 후··· 사실입니다.”

“더 이상 못 참겠구나, 지금 당장 나와 대련을 해다오. 아니, 해주십시오!”

파스타르는 아직도 소드마스터 완숙에 다다르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 경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게 당연했다.

만약 소드마스터 완숙에 다다른 자가 있었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말도 안 돼. 그 이상의 경지 따윈 없어. 있다면 소드마스터 완숙에서 완벽이지!’

하지만 파스타르는 소드마스터 완숙의 경지조차 도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저렇게 쉽게 믿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알겠습니다.”

“후후, 기대되는군. 자리를 옮기는 게 좋지 않은가?”

“괜찮습니다.”

금방 끝낼 생각이니 말이다.

“그래도 저 여인이··· 아니, 괜찮겠군. 내가 기척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의 실력자니 말이야.”

그건 오해지만, 주변에 피해 없이 곧바로 끝내야겠다.

“선공은 양보해주게!”

파스타르가 나에게 곧장 다가왔다.

나는 한순간에 나에게 달려드는 파스타르의 뒤를 잡고 뒷목을 내려쳤다.

커헉, 하는 소리와 함께 파스타르는 달리던 자세 그대로 기절했다.

땅바닥과 입을 맞춘 파스타르를 내가 굴 안으로 옮겨놓았다.

“다시 깨어나면 꽤나 시끄럽겠구나···.”

나는 원망의 눈길을 레티아 왕녀에게 쏟아냈다.

하지만 레티아 왕녀는 내가 이겼다는 것에만 기뻐하며 내 원망의 눈길을 무시했다.

***

파스타르는 깨어난 뒤에도 한동안 얼빠진 상태였다.

“······.”

“파스타르? 파스타르?”

“히히, 어때요. 이게 영웅이라는 겁니다.”

자꾸 부끄럽게 레티아 왕녀를 나를 영웅으로 칭한다.

나는 레티아 왕녀보고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볼을 부풀리며 싫어하던 레티아 왕녀였지만, 다행히도 내 간곡한 부탁 끝에 밖으로 나가주었다.

나는 정신 못 차리는 파스타르에게 말했다.

“이게 소드마스터 이상의 경지입니다.”

드디어 파스타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단번에 지다니··· 마치 내가 소드익스퍼트 상급이라도 된 느낌이구나···.”

“하하.”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격차가 많이 벌어져버렸군.”

내가 뭐라고 해줄 말이 없었다.

“혹시 그 이상한 힘 덕분인가?”

파스타르는 내가 가진 염동력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어느 정도 맞긴 하겠지만, 정확히는 틀렸다.

“아닙니다.”

내가 반신의 경지에 된 것은 내 노력 덕분이다.

내게 이런 이상한 힘이 없었더라도 난 왠지 반신의 경지를 이루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후··· 뭐 그런 건 상관없겠지. 나는 나대로 노력할 뿐이니.”

“좋은 생각이십니다.”

정신을 차린 파스타르는 몇 번의 이야기 후에 내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이제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음··· 또 떠돌아다녀야지. 나는 이걸 검사수행길이라 부르고 있네.”

“그런가요···. 뭐, 잘 알겠습니다.”

파스타르가 갑자기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나저나 자네···.”

사뭇 진지한 파스타르의 표정에 몸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바람은 나쁘다고. 지금의 상황을 황녀님이 아시면 많이 서운해하실 거야.”

“크흠··· 저분과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그보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내가 에피니아에게 가진 마음을 어떻게 눈치챈 것일까.

“하루가 멀다 하고, 너를 찾아갔던 황녀님인데 모르면 이상한거지.”

“그건··· 저주 때문에!”

“그런 걸로 하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파스타르가 떠나고 잠시 후에 레티아 왕녀가 나를 찾아왔다.

“왜 그러십니까?”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보이는 레티아 왕녀였다.

“돌아가는 길에 카시아스에 대한 이야기도 제게 꼭 해주세요.”

아, 내가 카시아스였었을 적의 이야기인가.

“네··· 뭐, 기분이 내키면요.”

그리고 다시 날이 지나고 세 번째 날이 다가왔다.

세 번째 날도 네 번째 날도 별다른 사람이 찾아오지 않았다.

다만 왠지 모르게 내게 가르침을 받고 싶어하는 이들이 찾아왔다.

나는 내게 가르침을 받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고 찾아오신 거죠.”

“그··· 소년을 데리고 다니는 노인이 이곳에 올라오기 전에 가르침을 받으러 간다고 떠들어댔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아무 말도 안 하니 뭔가 의심스러워서···.”

노인이 당황하던 얼굴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 때문이었구나.’

나는 한숨을 내쉬며 굴 앞에 팻말을 세워두었다.

[가르침을 받고 자 하시는 분들의 출입도 금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