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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122화 (122/150)

#122화

에피니아가 한창 방안에 있을 때였다.

한 시녀가 문을 두드렸다.

“에피니아 님, 저 미레아입니다.”

미레아는 기존 에피니아의 전속시녀인 메시아의 후임이었다.

휴가 중인 메시아를 대신해 현재 에피니아의 전속시녀를 맡고 있었다.

“응, 들어와.”

미레아는 에피니아에게 다가가서 속삭였다.

“에피니아 님을 찾으신 분이 있습니다.”

“뭐···?”

“지금 당장 만나고 싶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할까요?”

에피니아의 머릿속에 수하르가 스쳐지나갔다.

에피니아가 창밖을 확인해보니 날이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 이 시간에?”

“네···.”

“혹시 나를 찾는 사람의 이름을 아니?”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금발의 머리셨습니다.”

금발이라는 소리에 에피니아는 수하르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바로 가자!”

“네, 알겠습니다. 바로 나갈 채비를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미레아는 에피니아의 옆에서 에피니아을 도와 나갈 채비를 마쳤다.

“자, 바로 가자.”

“네, 알겠습니다.”

미레아는 약속한 장소로 에피니아를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에피니아가 서서히 고꾸라졌다.

의식을 잃은 것이었다.

에피니아가 의식을 잃기 전에 본 것은 미레아가 처음 보는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미레아···.”

* * *

나는 비거너한테 들은 말대로 미레아라는 시녀가 에피니아를 유인하기로 한 장소로 뛰어갔다.

하지만 한발 늦은 것인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존재했다.

나는 최대한의 힘으로 기운을 주변에 퍼트려 탐색했다.

그리고 꽤나 떨어진 거리에 급히 움직이는 마차를 확인했다.

그 마차에는 에피니아의 기운도 느껴졌다.

“한발 늦었구나···!”

나는 급하게 그 마차를 따라갔다.

꽤나 거리가 벌어진 탓에 쉽게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나는 최대한 뛰었다.

* * *

마차 안에서 정신을 차린 에피니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차 안에서 미레아와 처음 보는 사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은 묶여있는 채로 말이다.

에피니아가 속으로 생각했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

에피니아는 최상급의 경지를 이룬 검사였다.

웬만한 기사들도 에피니아의 적수가 되진 못한다.

에피니아가 마나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마나는 에피니아의 말을 듣지 않았다.

미레아가 에피니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소용없을 겁니다.”

미레아가 미소를 지었다.

“마나를 봉하는 약을 먹였으니깐 말이죠. 다만 약효가 드는 데에 시간이 걸려서 많이 걱정했습니다.”

에피니아가 입을 달싹이며 뭐라 말해보려고 했지만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시간을 잘 맞춰야 했습니다만, 다행히도 딱 맞아 떨어졌네요.”

미소를 짓는 미레아의 모습은 매우 음흉해보였다.

겨우 에피니아의 입에서 말이 나왔다.

“어, 어째서 이런 짓을···?”

“그야, 명령 때문이죠.”

“명··· 령?”

에피니아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에피니아의 전속시녀니 에피니아의 명령이나 시녀장의 명령을 듣는 것이 보통이었다.

시녀장인 아미스가 이런 짓을 벌일 이유는 없으니 이것은 분명 제3자가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도대체··· 누가?”

“그건··· 말해드릴 수는 없죠. 다만 제가 한 가지 알려드릴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러자 미레아 옆에 있던 사내가 미레아를 다그쳤다.

“그만···!”

“에··· 하지만 어차피 이미 운명은 정해졌잖아요. 제발 말하게 해주세요! 저 황녀가 절망하는 표정을 보고 싶단 말이에요!”

잠시 고민하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미레아의 입에선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저 불안한 에피니아였다.

사내의 허락이 떨어지자 미레아는 해맑은 미소로 지은 채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마음을 잃은 채로 2황자의 곁에서 지내게 될 거예요. 아마도 평생을 말이죠!”

충격적인 사실에 에피니아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거짓말! 마음을 잃는다니 그런 허황된 말을 믿을 거 같아? 단 한 번도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세뇌 같은 마법은 듣지도 못했어.”

미레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듣질 못하다니요? 동물이나 몬스터를 세뇌하는 마법은 많이 보아왔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사람에게도 그런 마법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어. 애당초 그 마법은···!”

“네, 본인의 종족보다 열등한, 쉽게 말하자면 지성이 딸리는 종들에게나 쓸 수 있는 마법이죠.”

에피니아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미레아가 말한 내용처럼 비슷한 지성을 가진 사람끼리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마법에 일가견이 있는 천재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제가 따르는 분은 그 정도 능력이 있으시거든요. 그분과 사람을 비교하면 사람과 몬스터 정도의 수준이니 당연히 그분이 사람을 세뇌하는 것은 쉬운 일이겠죠.”

에피니아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수하르가 적으로 칭한 벨레스라는 악마를 말이다.

“혹시··· 그자의 정체가 벨레스인 건가···?”

그러자 미레아와 옆에 있는 사내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에 에피니아는 깨달았다.

벨레스가 미레아가 섬기는 그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2황자가 그 사람에게 부탁을 했다는 이야기일텐데.

‘반란군이 이기고 있는 것도 벨레스란 악마가 뒤를 봐주고 있어서 그런 건가!’

모든 것을 알아차린 에피니아는 허탈함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벨레스의 강함은 로토 왕국에서 이미 들었다.

그 말대로라면 미케네르 제국에서 에피니아를 구하러 오더라도 벨레스를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미레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미케네르 제국에서 반란군에 도움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에피니아가 세뇌당한 줄도 모르고 말이다.

자신의 무력함에 좌절하게 된 에피니아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분한 에피니아였다.

그저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에피니아에게 마치 지옥과도 같았다.

‘마치··· 옛날같이···.’

책의 악마인 크부와의 게임으로 시한부와 다름없이 인생을 살았던 때가 생각나는 에피니아였다.

화가 나고 분해도 에피니아가 크부에게 할 수 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며 문득 한 사람을 떠올린 에피니아였다.

‘수하르···.’

크부에게서 구해준 일생일대의 은인인 수하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수하르.

지금의 상황에서 에피니아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수하르를 향한 감정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라질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게 확실한 상황이었다.

수하르의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차기 시작한 에피니아가 낮게 중얼거렸다.

“구해줘··· 수하르···.”

그 낮은 중얼거림을 들은 미레아가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네? 구해달라고요? 재밌네요. 지금 상황에서 어떤 누가 당신을 구할 수 있을까요!”

미레아의 조롱에 에피니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에피니아는 거친 흔들림이 느끼며 미레아의 비명 소리와 함께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었다.

누군가 자신을 안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서서히 감았던 눈을 뜬 에피니아는 지금의 상황이 꿈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 그토록 바라고 있던 사람이 눈앞에서 자신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피니아를 안은 수하르가 다정한 말투로 에피니아에게 말했다.

“구하러 왔어요.”

* * *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력으로 마차를 따라잡았다.

그 마차에는 역시 에피니아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내 청력이 어떤 말을 들었다.

바로 나를 향해 구해달라는 에피니아의 말.

‘네, 알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마차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곧바로 에피니아를 안고, 마차를 벗어났다.

품 안의 에피니아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을 떨고 있는 게 느껴졌다.

서서히 눈을 뜨는 에피니아.

나는 에피니아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심사숙고 끝에 답을 냈다.

“구하러 왔어요.”

그러자 에피니아가 울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이 펑펑 울기 시작한 에피니아였다.

나는 에피니아를 바닥에 내려놓아주고, 머리를 쓰담아 주며 에피니아를 달래는 데에 힘을 썼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인지 에피니아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에피니아의 얼굴을 확인했다.

눈가가 붉었다.

그런데 볼 또한 붉었다.

이유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아이처럼 울었던 자신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저기···.”

에피니아가 어떤 말을 말할려고 했지만, 나는 그런 에피니아의 말을 막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눈앞에 있었다.

“지부장··· 맞지?”

비거너가 말해준 에피니아 납치 계획의 책임자인 남자가 바로 지부장이었다.

나와 에피니아를 멀리서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남자가 바로 지부장 코아크였다.

“왜 말이 없어? 코아크가 아니란 말인가?”

아마도 확실할 것이다.

제법 신중한 남자라 상황을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의 대치 중에 부서진 마차 더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으윽··· 이게 웬 날벼락이야.”

한 여자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저 여자에 대해선 아는 게 적었다.

옆에 있던 에피니아가 낮게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미레아···.”

아마 저 여자의 이름일 테지.

그렇다는 것은 에피니아를 유인한 시녀가 바로 저 미레아라 불린 시녀가 틀림없었다.

“에피니아,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금방 처리할게요.”

미레아가 주변을 한 번 살피더니 나와 에피니아를 보고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이씨, 이게 뭔 일이야. 이봐요, 코아크. 당신 계획대로만 하면 잘 풀린다면서요.”

“···나도 영문을 모르겠군.”

코아크는 여전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먼저 움직인 것은 미레아였다.

“얼른 해치우고, 계획대로 해야죠. 도대체 코아크는 뭐하고 있는 거예요!”

미레아가 내게 달려들었다.

미레아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내게 달려들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니 미레아의 손이 자신의 허벅지로 향했다.

곧바로 미레아의 손으로부터 작은 단검이 나갔다.

“뒤져!”

나는 가볍게 단검을 쳐내고, 내게 지척에 다다른 미레아를 발로 차버렸다.

정확히 코아크를 향해 찼기에 미레아는 코아크 쪽을 향해 날아갔다.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던 코아크였지만, 미레아가 날아가고 있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미레아와 코아크가 부딪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게 뭐야?”

코아크가 한순간 흐릿해지며 미레아가 그대로 통과되었다.

코아크는 나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순식간에 코아크와의 거리를 좁혔다.

“오? 안 도망치는 거야?”

코아크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지은 채였다.

나는 곧바로 코아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또다시 코아크가 흐려지며 내 주먹을 통과하는 듯 했지만, 그대로 내 주먹에 나가떨어졌다.

코아크는 날아가던 중에 나무에 부딪히고,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어떻게 나를 공격한 거지!”

“어···?”

솔직히 말해서 나도 모른다.

“내 두 발이 땅에 닿아있으면 나는 허상이 된다. 절대로 공격하지 못하는 게 정상일 터!”

만약 그 능력이 정령력처럼 실제 본인이 가진 능력이면 내게도 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능력은 분명 벨레스가 준 능력이겠지.

이제는 벨레스의 능력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뭐, 그런 것으로 나는 납득했다.

“시끄럽고, 이거나 먹어.”

나는 자연력을 미레아와 코아크에게 불어넣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처럼 미레아와 코아크가 순식간에 검은 무언가로 녹아내렸다.

이들의 끝을 확인한 후에 나는 에피니아에게 다가갔다.

제법 움직임이 가능해진 것인지 에피니아는 스스로 나무에 기대어 일어난 상태였다.

“정말로 늦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나는 나를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에피니아를 만나는 것에 미리 겁을 먹어버리고, 미케네르 제국 내의 지부 청소라는 변명으로 느긋하게 왔다.

더 늦장을 피웠으면 에피니아를 구할 수 없었다.

에피니아가 말했다.

“고마워··· 수하르··· 나를 구해준 게 너라서 다행이야.”

“에피니아···.”

에피니아의 얼굴을 보자 왠지 모를 감정이 내 가슴을 채웠다.

아니, 왠지 모를 감정이 아니다.

내가 분명히 알아차린 감정이다.

내 입이 자연스레 열리며 에피니아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하고 싶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사랑합니다, 에피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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