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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123화 (123/150)

#123화

나는 콜로세움에서 검투가 되었을 적에 여관에서 쉬게 되었다.

곰곰이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경솔했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에피니아에게 고백했다.

솔직히 말해 그럴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복받쳐 자연스레 나와버렸다.

‘그런데 멍청하게··· 못 들은 걸로 해달라니···.’

당황한 나는 에피니아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해버렸다.

바로 못 들은 걸로 해달라고 말이다.

제대로 된 고백을 하고 싶었다.

오늘처럼 급박한 상황이 아닌, 여유로운 상황에서 제대로 다시 하고 싶었다.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은 느낄 수 있었다.

‘에피니아도 싫지는 않은 것 같았으니까.’

다시 제대로 말해보고 싶다고 덧붙인 내 말에 에피니아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와 에피니아는 왔던 길을 돌아갔다.

황실 내부에선 갑작스런 에피니아의 실종과 더불어 한 시녀가 사라졌다는 것이 소란이 되었다.

다행히도 에피니아가 황실에 도착하고는 그 소란은 잠잠해졌다.

‘미케네르 제국의 황제··· 에피니아의 아버님···.’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황제의 위엄을 제대로 갖춘 사람이었다.

나를 따로 불러 나에게 감사를 표하는 황제였다.

그때의 나는 사례는 괜찮다고, 구구절절 말했지만 전혀 들어주질 않았다.

그래서 받은 사례로 돈과 명예를 얻게 되었다.

‘이제 그럼··· 나 이중국적자가 된 건가?’

정확히는 타국의 귀족에게 제국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작위를 황제가 내게 내려주었다.

제국의 명예 백작.

언제든지 망명할 수 있는 권한과, 망명과 동시에 영지까지 부여받을 수 있었다.

굳이 망령하지 않으면 영지를 얻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백작만큼의 권한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귀족 작위 같은 건 필요 없는데.’

물론 어딘가에 정착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어딘가에 정착을 하더라도 귀족이 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례를 받은 나는 다시 에피니아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했다.

‘결전의 날은 내일이다.’

오늘 밤이 지나고, 다음날 에피니아와 함께 거리를 걷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는 이 날 에피니아에게 내 마음을 전할 생각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이 찾아오고, 약속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하필 나는 잠을 못 잔 상태였다.

정확히는 잠이 오지 않았다.

다행히도 반신의 경지인 내가 하루 정도 날 샌다고, 몸에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라 다행일 뿐이었다.

“얼른 준비하고 나가야지.”

나는 서둘러 준비하고 에피니아를 마중 나갔다.

“수하르, 여기야!”

에피니아가 황실로 통하는 샛길로 조용히 빠져나왔다.

나는 에피니아에게 다가가며 손을 내밀었다.

“황녀님, 어서 가시죠!”

“갑자기 무슨 낯부끄럽게 황녀님이야. 하여튼 그래요. 어서 가는 게 좋겠군요.”

에피니아의 얼굴은 완전히 가려져 있었다.

내가 검투사 생활을 했었을 적보다 더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그야, 당연하겠지.’

그때의 에피니아는 외부활동을 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에 가볍게 얼굴을 가린 것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부활동을 하고 있다.

당연히 제국민들에게 얼굴이 알려진 상태였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황족들보다 얼굴이 더 많이 알려진 상태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베일에 싸였던 1황녀가 드러났으니 사람들의 관심도 더 많았겠지.’

나는 걱정스럽다는 말투로 에피니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앞은 보여요? 제대로 걸을 수 있겠어요?”

“무슨 말이··· 제대로 보인다구. 황실 제품은 매우 뛰어나니까.”

오.

앞이 안 보일 것만 같았는데.

그것 참 다행이었다.

나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편안해진 탓이었다.

‘만나기 전까지 되게 긴장했었는데 에피니아가 변함없어서 다행이네.’

나와 에피니아가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나는 에피니아에게 할 고백할 계획을 점검했다.

‘일단은 거리를 걸으며 에피니아와 내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그러기 위해선 약간의 유흥이 있는 게 좋을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하고 있던 게 하나 있었다.

‘에피니아는 이곳 토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웬만한 유흥거리를 다 해봤을 것이다.

에피니아의 성격대로라면 몰래 황실을 빠져나와 유흥거리를 자주 즐겼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어떤 게 좋을지 걸으면서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을 에피니아가 걱정스럽다는 듯 보았다.

“괜찮아? 어디 몸 상태라도 안 좋은 거야?”

에피니아를 옆에 두고 너무 깊게 생각했다.

나는 다시 웃으며 에피니아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약간 긴장이 되다보니까.”

“으음··· 그렇구나.”

곁눈질로 에피니아를 살폈다.

얼굴은 가렸지만 귀가 붉다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의 상황이 에피니아에게도 어색한 모양이었다.

‘하긴··· 어쩌면 이건···.’

미리 대놓고 이번에 고백하겠다고 말해버린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내가 언제 고백할지 모르니 에피니아도 긴장 상태인 게 분명했다.

“일단은 계속 걷죠.”

“그래!”

에피니아와 단둘이서 계속해서 걸었다.

제국민들의 활력 속에서 걷기만 한 에피니아와 나였지만, 크게 싫증나거나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기만 했는데도 말이다.

곁눈질로 에피니아를 꾸준히 살폈는데 이렇게 걷는 것만으로도 에피니아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보였다.

“저···.”

계속해서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에피니아에게 묻기로 했다.

“혹시··· 가고 싶은 데가 있으신가요?”

잠시 고민하던 에피니아.

“아니, 없어! 그냥 이렇게 걷기만 해도 좋은걸.”

원래 계획이 있었지만, 되도록 에피니아를 배려할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에피니아도 별다르게 원하는 곳은 없는 듯하였다.

내가 성벽 바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저기 가실래요?”

“저기?”

“네, 수도 바깥에서 좋은 장소를 발견했거든요.”

에피니아가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오호··· 좋은 장소라. 이곳 토박이라고 할 수 있는 내가 모르는 좋은 장소가 있을까?”

“그야··· 저도 모르죠. 그래도 한 번 가보시는 건 어떨가요?”

“으음··· 어떻게 할까···? 그래, 한번 가보지, 뭐!”

에피니아는 곧바로 성벽 바깥으로 방향을 옮겼다.

나는 그런 에피니아를 말렸다.

“잠깐만요!”

“어? 왜?”

물론 성벽 바깥에 있는 내가 선정한 좋은 곳으로 가는 게 내 목적지이긴 하였다.

하지만 그 목적지로 향하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간식거리나 식사거리를 챙겨가야죠.”

에피니아가 손뼉까지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네! 그럼, 뭘 챙겨가는 게 좋을까?”

“솔직히 저는 이곳에 맛집 같은 건 몰라요. 에피니아가 정해주셨으면 해요.”

에피니아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맛집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으음··· 맛있는 집은 내가 알고 있는 게 많지. 어디 보자··· 우선은···.”

제법 진지하게 생각해주는 에피니아였다.

나는 그런 에피니아의 모습이 그저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그래, 정했어! 역시 바깥에서 먹을 수 있는 건 샌드위치지!”

에피니아가 내 손을 잡더니 나를 이끌고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빨리 서둘러야 할 거야. 그 집 샌드위치는 점심쯤이면 다 팔려버리거든.”

아직 이른 아침시간이니 시간은 넉넉할 터였다.

나를 끌고 가는 에피니아의 귀가 눈에 들어왔다.

전에 본 적 없을 만큼 새빨갰다.

‘손 잡고 뛰는 게 부끄러운 모양이네.’

그런 에피니아의 모습에 내 얼굴도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 * *

샌드위치와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고, 수도의 바깥으로 나왔다.

아직 도착하기 전이지만 에피니아가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그런데 이 근처에 좋은 장소가 있었나?”

에피니아의 말대로 이 근처엔 내가 생각한 좋은 장소는 없었다.

방향은 맞지만 한참을 가야한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내가 알고 있는 대로라면 대륙에 단 두 명밖에 없는 반신의 경지에 오른 사내였다.

아무리 먼 거리라도 내가 진심을 내며 얼마 걸리지 않은 거리로 바뀌어버린다.

“잠시만요.”

에피니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에피니아를 들어 안았다.

수도 바깥으로 나오고 얼굴을 가리는 천을 벗어서 에피니아의 맨얼굴이 들어난 상태였다.

에피니아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수하르···?”

내게 안긴 상태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내는 에피니아.

나는 그런 에피니아에게 설명보다, 행동을 보여주었다.

“꽉 잡아요!”

에피니아를 안고, 내가 정해둔 장소로 뛰어갔다.

말을 탄 것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말이다.

제법 먼 거리지만, 얼마 채 되지 않아서 도착했다

“도착했어요!”

바람에 날려 에피니아의 머리가 부스스하게 변했다.

에피니아를 땅에 내려주었다.

에피니아는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짜 재밌었어. 돌아갈 때도 이렇게 가는 게 좋겠어!”

하늘을 나는 것과 별다를 게 없이 간 덕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에피니아는 제법 스릴을 즐긴 모양이었다.

“자, 여기가 제가 골라둔 좋은 장소예요.”

높게 솟은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주고 위에서 내리는 폭포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이었다.

듬성듬성 들어오는 햇빛이 반짝거리며 폭포에서 내려 계곡으로 흐르는 물을 비추었다.

마치 계곡물에 비춰 반짝이는 게 상등품의 보석과도 비교될 정도였다.

나는 에피니아의 반응을 살폈다.

에피니아는 멍하니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며 낮게 중얼거렸다.

“예쁘다···.”

“그쵸!”

이곳의 장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경치는 물론이고, 사람이 오지 않는 오지라 조용하며 한적했다.

하지만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사람이 없는 만큼 몬스터가 많았다.

그래도 그 문제는 내가 있기에 해결되었다.

본능에 의존을 많이 하는 몬스터나 사나운 동물들은 내가 기세를 풀면 알아서 피해간다.

“약간 허기진 것 같은데 일단 좀 먹을까요?”

평평한 평지를 찾아 돗자리를 펼쳤다.

그리고 그곳에 에피니아와 단둘이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역시 이런 시간이 좋네.”

다행히도 에피니아는 만족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만이 좋으면 안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저주 때문에 한창 놀 때 한창 바쁘게 살았으니까. 이런 경험이 없다시피 지냈지.”

“그렇겠죠.”

“모든 게 수하르, 너 덕분이야.”

나를 바라보는 에피니아의 눈빛에 나는 내가 숨겨왔던 비밀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말할 필요는 없는 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말해야만 속이 편할 것 같았다.

아니, 내 속이 편해지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숨기는 게 없어져야만 고백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에피니아···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사뭇 진지한 내 표정을 확인한 에피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이야기란 것을 에피니아도 눈치챈 모양이었다.

“사실··· 전··· 회귀했어요.”

“회귀···?”

한순간 에피니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에피니아가 납득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 말을 믿어주신 건가요?”

“크부의 책엔 네 미래가 안 보였고, 내 미래도 달랐으니까. 어쩌면 믿는 게 당연하겠지.”

에피니아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혹시 그럼 너는 나를 구하기 위해서 미래에서 온 거야?”

“그건··· 죄송스럽지만 아니네요.”

회귀했을 당시의 난 에피니아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저 옆 제국의 1황녀일 뿐이라 생각했었으니까.

“그건 좀 서운할지도···?”

“네에···?”

“농담이야. 뭐가 어떻게 됐건 네가 이번 생엔 나를 구해줬다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

해맑게 웃는 에피니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따듯해져가는 감정이 올라왔다.

나는 지금까지 묻혀놓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예요.”

회귀하기 전의 내 삶에 대해 에피니아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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