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페트릭과 메시아의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다행히도 오드는 늦지 않았다.
오드가 결혼식에 도착하고, 오드를 알아본 페트릭이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의 도가니가 되었다.
게다가 파야가 따로 오드를 불러내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페트릭과 메시아에게 다가갔다.
“이거··· 페트릭은 이게 뭔지 알고 있지?”
나는 페트릭에게 포장된 선물을 건넸다.
페트릭이 잠깐 흔들어보더니 눈이 흔들릴 정도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설마··· 이건···!”
그렇다!
그 귀하다는 에이션트 스네이크로 만든 뱀술이다!
오드와의 재회로 붉어진 페트릭의 눈가와 어울리지 않게 페트릭의 입가는 미소로 뒤덮였다.
“이 귀한 것을···.”
“게다가 이 술은 산모에게도 좋다. 물론 막 마시면 안 된다. 조금만 마셔야한다.”
건강, 그 자체를 말하는 이 뱀술은 산모에게도 아주 도움이 되는 술이었다.
물론 좋다고 많이 마시면 독이 되지만 말이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페트릭이 눈물까지 흘리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반응을 보니 오드와의 재회보다 더 감동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 결혼 생활 잘하고.”
페트릭의 결혼식이 끝이 나고, 축하해준 손님은 모두가 떠났다.
나와 에피니아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고백했던 장소로 에피니아와 함께 다시 갔다.
‘결혼식을 봐버렸더니···.’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에피니아와 결혼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 일은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아직 내겐 할 일이 남아있었다.
‘모든 일은 벨레스를 쓰러트린 다음이겠지.’
에피니아와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벨레스를 쓰러트린 다음의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물론이고, 에피니아도 결혼적령기를 넘겼다.
또래의 다른 귀족들은 이미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평민들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귀족보다 더 빨리 결혼을 하는 게 평민이었다.
‘최대한 늦출 수는 없지.’
게다가 나는 메시아와 페트릭의 결혼식을 바라보는 에피니아의 표정을 보고 말았다.
동경하는 듯한 눈빛을 나는 보고 말았다.
나는 에피니아를 바라보며 품속에 넣어둔 반지함을 꺼냈다.
‘테시아르 어머니가 주신 반지.’
내가 정말로 결혼하고 싶어하는 상대에게 주라고 했던 반지였다.
이 반지의 주인은 당연히 정해져 있다.
에피니아, 그녀 말고는 그 누구도 줄 생각이 없었다.
나는 반지함을 열고, 반지를 꺼냈다.
“에피니아··· 얼마나가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일이 끝나면··· 나랑 결혼해줄래?”
마치 고백했을 때와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
에피니아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하르, 너 말고 다른 사람과의 결혼을 생각하지 못하겠어. 내겐 오직 너뿐일 거야.”
에피니아의 답을 들으며 나는 에피니아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
“아직은··· 아니지만··· 음···.”
뭐라고 말을 꺼내야할지 고민했다.
흔히 연인끼리 하는 커플링을 떠올렸다.
평민들 사이에선 결혼을 약속하는 연인들끼리 미리 반지를 끼운다고 들었다.
귀족과 비교한다면 약혼 정도 되겠다.
“지금은 약혼한 걸로 하자. 결혼은 나중에 하더라도.”
“나도 좋아. 하지만 너무 늦으면 안 돼.”
“최대한 빨리 해볼게.”
에피니아와 약혼을 약속한 날, 나는 에피니아와 함께 황실을 방문했다.
갑작스럽겠지만, 내 마음을 황제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에피니아의 아버지는 미케네르 제국의 황제다.
약혼에 대한 허락을 맡을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장인에게 혼전 인사는 필수고 말이다.
“후··· 긴장되네.”
“별로 긴장하지 마. 이미 아버지께서도 너를 인정하고 있거든.”
“그렇다면 다행인데··· 벌써 인정을···?”
에피니아가 주저하며 말했다.
“그··· 사실은 나테아르덴 제국의 2황자와의 혼담을 아버지께서 추진하셨는데··· 그 이유가···.”
얼굴을 붉히는 에피니아였다.
“내가 너에 대해 주저하고 있으니까, 확실하게 선택하라고 혼담을 받으신 거였거든.”
“그렇구나.”
에피니아의 말 덕분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황제의 알현실에서 에피니아와 함께 황제를 기다렸다.
이내 황제가 나타났다.
황제는 황좌에 앉아서 나와 에피니아를 마주했다.
‘역시 이럴 때는···.’
보통 장인에게 하는 말을 따르기로 했다.
나는 엎드린 채로 외쳤다.
“따님과의··· 에피니아와의 약혼을 허락해주십쇼!”
순간 옆에 있던 에피니아가 당황하고 있었다.
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내 귀에 웃음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였다.
이곳에 있는 사람은 에피니아와 나, 그리고 황제뿐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나는 고개를 들어 황제의 용태를 확인했다.
“내가 살면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군.”
황제는 제법 기뻐하고 있었다.
에피니아도 옆에서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나는 지금의 상황을 판단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들이 웃고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답을 낼 수 없었다.
“수하르, 도대체 방금 그건 뭐야!”
“어···?”
“나와의 약혼을 허락해달라며서 엎드리는 거 말이야.”
어라?
이게 이상한 것인가?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황제가 말했다.
“크하하, 역대 어느 황제도 따님과의 혼약을 허락해달라며 엎드린 사위를 경험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방금 내가 한 행동이 이상한 모양이었다.
나는 당연히 이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이거··· 이상한 건가?”
솔직히 내가 결혼을 해봤어야 이상함을 깨달을 수 있지, 경험이 없으니 영문 모를 뿐이었다.
“응, 이상한 거야. 누가 약혼을 하는데, 그것도 황족과 약혼하는데 그런 말을 해.”
“음··· 하지만··· 난 원래부터 정해진 약혼자도 아닌데.”
원래부터 약혼 관계로 맺어졌다면 이런 인사치례는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게 보통이 아닌가.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라면 황제는 제법 기뻐 보였다.
“이런 말을 내가 듣게 될 줄이야. 기분이 참 신기하구나. 기쁘면서 뭔가··· 짜증이 나는 거 같기도 하고.”
짜증이라는 단어에 나는 한순간 당황했다.
그래도 여전히 웃고 있는 황제를 보니 농담 삼아 말한 듯하였다.
“그래, 에피니아와의 약혼을 허락해달란 말이지··· 좋다, 자네 같은 남자면 내가 허락해주고 말고.”
“아버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흔쾌히 허락이 떨어졌다.
이젠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황제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지.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나?”
“예···? 네!”
갑자기 근엄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한 황제였다.
“자네··· 미케네르 제국을 이끌 생각은 없나?”
“그게 무슨?”
“에피니아와 결혼 후에 황제가 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곁눈질로 에피니아를 살폈다.
에피니아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어있었다.
에피니아도 예상치 못한 질문인 모양이었다.
‘미케네르 제국의 황제라···.’
회귀 전에 나라면 이것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니라 평범한 귀족이라면 무조건 황제라는 직위를 선택할 테지.
하지만 난 아니었다.
‘무슨 영주도 일이 그렇게 많을 텐데 황제면···.’
제국과 왕국의 차이는 분명했다.
그 분명한 차이 속에서 가장 큰 것은 역시 영토가 컸다.
한마디로 땅덩어리가 왕국보단 제국이 더 크다.
그렇다는 것은 그 만큼 일도 많다는 소리일 터.
‘물론 땅의 모든 것을 황제가 관리하는 게 아니지만.’
최종적으로 관리하는 자는 황제다.
제국의 땅의 주인이 바로 황제다.
‘일도 미친 듯이 많겠지.’
나는 단호히 말했다.
“저는 황제라는 직위에 욕심이 없습니다.”
“오호···.”
“저는 그저··· 에피니아와 함께 정처 없이 대륙을 떠돌아다니다가 한적한 곳을 골라 정착할 생각입니다.”
황제는 약간 불만인 듯하였다.
“그렇다면 내게 손주는 어떻게 보여줄 생각이지?”
손주···?
에피니아의 반응을 살폈다.
그 순간 에피니아와 눈이 마주쳤다.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는 에피니아.
“그때는··· 찾아뵙긴 해야죠.”
“흐흠, 당연하지.”
“그래도 아이는··· 아마 정착한 뒤의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되도록 제국과 가까운 데에 정착하면 좋겠군.”
확답을 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행을 하며 에피니아와 상의 끝에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건··· 확답을 못 드리겠습니다.”
“허허, 거참. 그나저나 내가 사위의 뒷조사를 좀 해봤는데···.”
뒷조사?
“제법 훌륭하던군. 모아둔 재산도 많아서 내 딸을 고생시킬 일은 없겠어.”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 일을 할 생각입니다.”
“하긴 블랙 용병이 의뢰 한 번만 해도 충분한 돈이 되니까.”
다행히도 황제와의 이야기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황제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에피니아와 함께 알현실을 빠져나왔다.
“후··· 긴장했다.”
“고생했어. 그럼, 이제는 내 차례인가?”
이제는 칼데르트가를 가서 보고할 일만 남았다.
이번엔 에피니아가 고생하겠지.
하지만 테시아르 어머니나 아버지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에 에피니아를 곤란하게 만들진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데이브 형이 더 귀찮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온 김에 하르 좀 보러가도 될까?”
순간 당황하는 에피니아.
“아··· 그게···.”
그런 에피니아의 반응에 나 역시 당황했다.
“왜? 설마 하르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게··· 가출했어.”
“으음···?”
내가 잘못 들었나?
“하르가 가출했어. 오늘···.”
가출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냔 말인가.
“그게 무슨 소리야?”
“그··· 하르를 위해서 전문가를 초빙해서 기르고 있는데.”
“응.”
“갑자기 어제 저녁에 사라진 거야.”
“어제 저녁에?”
일이 왜 이렇게 꼬인 걸까.
“곧바로 알아차렸지. 하르가 사라졌다는 건.”
그건 다행이었다.
“그런데 전문가가 말하더라.”
“뭘 말했는데?”
“하르가 사라진 이유를 말이야.”
이유라니 도대체 뭘까.
에피니아가 큰 걱정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위험한 이유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 짝을 찾기 위해 떠났대.”
“뭐···?”
“짝 말이야. 아내를 찾으러 떠났대.”
“아내를 찾으러···?”
에피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르도 이제 성체가 되어서 짝을 찾을 시기가 찾아왔다. 원래 자주 이런다고 하더라.”
“아··· 그래···?”
이상한 감정이었다.
새끼 때부터 길렀던 늑대가 이젠 짝을 찾으러 떠나다니.
시원섭섭한 느낌이랄까.
아마도 황제가 느끼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얼마나 걸리려나?”
“전문가의 말대로라면··· 아마도 짧으면 일주일, 길면 여섯 달?”
범위가 너무 넓었다.
하지만 나는 하르를 믿고 있었다.
“···하르면 분명 일주일 만에 돌아올 거야. 그도 그럴 것이 하르는!”
돌연변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은빛 늑대의 상위종이 아닌가.
무려 뿔 은빛 늑대의 돌연변이다.
“우수하니까!”
그런데 한순간 걱정이 스쳐 지나간다.
‘혹시라도 모습이 다르다고 차별 받으면 어떡하지?’
하르는 어떻게 보면 시작의 종이다.
새로운 은빛 늑대의 계보다.
어떤 은빛 늑대도 하르와 똑같은 은빛 늑대는 없다.
심지어 뿔 은빛 늑대도 말이다.
그렇기에 짝을 못 찾고, 방황하는 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니야, 그래도 하르는 강하니까!’
보통의 은빛 늑대보다 강한데, 심지어 뿔 은빛 늑대보다 강하다.
동물의 세계에선 강한 자가 미남일 터.
나는 하르가 건강히 돌아올 거라 굳게 믿기로 정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나와 에피니아였다.
“그럼, 하르를 보는 건 어쩔 수 없네. 바로 출발할까?”
“어···? 어디를?”
그야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
“칼데르트령으로 말이지.”
“벌, 벌써? 나 아직도 긴장되는데?”
“어차피 칼데르트령까지 가는 데에 시간이 걸리니까, 천천히 가보자.”
최소한의 준비를 끝으로 나와 에피니아는 칼데르트령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