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갑자기 커진 하르에 당황한 오우거는 달려드는 하르를 대처하지 못했다.
하르는 이마의 뿔로 오우거의 심장을 노렸다.
이를 알아차린 오우거가 다급히 심장을 두 팔로 가렸다.
하지만 하르의 뿔은 오우거의 두 팔마저 관통하고, 목표했던 심장을 뚫어냈다.
그와 동시에 허물어지는 오우거.
‘어라···?’
긴장이 풀려서인지 갑자기 이렇게 변해버린 탓인지 하르 또한 서서히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다.
* * *
하르가 다시 깨어나자 자신을 호위하는 대장의 무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티아가 바로 옆에서 간호하고 있던 곳도 확인했다.
하르에게 기대어 자고 있는 티아였다.
‘커흐흠!’
하르가 짧게 헛기침하자, 티아가 다급하게 일어났다.
‘깨어나셨군요. 정말로 감사드려요.’
‘아, 네, 뭐···.’
하르는 오우거와의 일을 떠올렸다.
순간 하르가 자신의 몸을 살폈지만 이전의 크기로 돌아간 상태였다.
하지만 하르는 이미 알아차렸다.
자신이 원한다면 오우거를 상대할 때처럼 그렇게 커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티아가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내 대장을 데리고 왔다.
‘정말로··· 감사하네! 무리를 대표해서 말이야.’
‘뭐··· 고기의 보답일 뿐입니다.’
하르에게 고기는 넘친다.
그럼에도 하르는 고기를 가져다준 은혜를 갚은 것뿐이라 말했다.
하지만 대장의 반응이 이상했다.
‘고기···?’
그리고 그 순간 티아가 얼버무리며 이야기를 돌렸다.
하르는 곧바로 눈치챘다.
아무래도 그 고기는 티아가 개인적으로 준 모양이었다.
그것을 깨닫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은 하르였다.
* * *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된 하르는 대장의 무리와 작별을 고할려고 했다.
이 근처에선 더 이상 짝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르는 고민하고 있었다.
티아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티아 또한 하르에게 마음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나는 주인에게 돌아가야하니까.’
방임주의인 주인이지만, 하르는 그런 주인이 좋았다.
그만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르는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티아에게 물어보자.’
하르는 자신의 마음을 티아에게 전하기 결심했다.
* * *
하르가 티아를 따로 불러냈다.
티아는 수줍어하며 하르를 뒤따랐다.
그리고 무리와 떨어져 단둘만이 있게 되었다.
‘티아··· 말해줄게 있습니다.’
‘네···.’
티아는 약간 경직했다.
긴장한 탓이었다.
‘저는 사실··· 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하르였다.
인간을 싫어하고, 증오할 티아에게 사실을 전하는 게 두려웠다.
‘사실은 전 인간이 저를 키워주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 전 인간에 의해 자랐습니다. 지금은 잠시 짝을 찾기 위해 바깥을 나온 거고요.’
티아가 당황했다.
‘인간··· 말이죠···.’
‘네··· 하지만 제 주인은 정말 좋은 인간입니다.’
‘믿을 수 없어요. 그리고 제게 왜 그런 말을 해주는 거죠?’
하르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이야기를 이었다.
‘저와 짝이 되어 인간과 함께 지내주세요.’
‘싫어요.’
단칼에 나온 답이었다.
하르의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일말의 고민도 없을 답을 낸 것은 예상하지 못한 하르였다.
‘당신이 저와 함께 이 무리에서 지낸다면 생각해볼게요. 아니, 당신과 짝이 될게요.’
‘그게···.’
하르는 주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주인들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만큼 여러 인간이 하르를 키워주었기 때문이다.
하르는 잠시 침묵했다.
이내 입을 열고 답했다.
‘그럼··· 어쩔 수 없겠군요···.’
이렇게 하르의 첫구애는 실패로 돌아갔다.
* * *
거점을 떠난 하르가 다시 거점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가출한 지 열흘 째 되는 날이었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은빛 늑대 자체가 희귀한 종이었던 게 컸다.
돌아오는 길에 대장의 무리와 마주쳤지만, 티아는 하르를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약간 상처를 입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하르는 생각했다.
‘더 먼 곳으로 떠나야하나···?’
일부러 미케네르 제국의 수도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곳에 은빛 늑대 무리는 대장의 무리가 유일했다.
더 먼 곳으로 갈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하르는 말 못하는 고민이 생겼다.
하르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티아가 떠올랐다.
그것 때문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미련이라도 남은 걸까···.’
하지만 하르가 생각한 조건과는 너무 다른 그녀가 티아였다.
티아 생각을 떨치려고 해도 계속해서 떠올랐다.
‘미치겠군.’
문득 떠오르는 생각으론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고, 티아의 곁을 머무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인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르에게 부모와 비교되는 존재가 바로 주인이니 말이다.
‘골치 아프구나··· 골치 아파···.’
* * *
벌써 가출을 감행한지 이주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짧은 시간에 짝을 구할 거라고 생각했던 하르였지만, 생각과 반대로 시간은 점점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을 아직도 못 떠나고 있고.’
티아에 대한 미련 때문에 하르는 못 떠나고 있었다.
하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사냥을 하고, 계속해서 티아에게 선물했다.
티아도 냄새로 누가 선물했는지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답이 없으니···.’
하르는 이제 진짜로 포기해야할 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하르는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다급해보이는 발소리 들었다.
냄새를 보아 대장의 무리에 있던 녀석이었다.
‘왜 나를 찾아온 겁니까?’
잠시 숨 고른 대장의 무리에 속한 녀석이 말했다.
‘티아와 대장을 비롯해 많은 녀석이 인간에게 잡혀갔습니다.’
‘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이 이곳밖에 없었습니다··· 제발··· 저희 무리를 도와주십쇼.’
대장의 무리가 인간에 습격당했단 사실을 들은 하르는 전과 같이 몸부터 움직였다.
티아의 냄새를 따라 인간을 추격해가기 시작했다.
옅은 피 냄새만 나는 것을 확인한 하르는 약간은 안도했다.
‘보아하니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닌거 같군.’
대장의 무리에 있던 녀석은 하르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쳐졌다.
결국 하르 혼자서 가게 되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하르의 눈에 한 마차와 마차와 이어진 철창 감옥을 발견했다.
철창 감옥에는 티아와 대장을 비롯해 많은 뿔은빛늑대가 있었다.
‘대장의 무리가 아니었던 녀석들도 있구나.’
아마도 전에 납치당한 녀석들이라고 하르는 판단했다.
‘고민할 시간도 없겠어.’
마차는 벌써 숲 밖을 향하고 있었다.
하르의 뿔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하르의 크기가 오우거를 상대했을 때처럼 다섯 배가량이 커졌다.
“크르르릉!”
전보다 빨리진 속도와 힘으로 땅을 박찬 하르였다.
하르가 마차와 충돌했다.
마차는 부서지며 멈추었다.
하르는 이마의 뿔을 이용해 철창 감옥을 잘라냈다.
그리고 안에 있던 모두가 뛰쳐나왔다.
티아가 하르에게 다가갔다.
‘또··· 도움을 받았네요.’
‘크흠···.’
하르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하르는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확인했다.
부서진 마차 안에서 다섯의 인간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아니, 이게 뭔 날벼락이야! 어, 형님 저거 좀 보십쇼.”
“뭐? 어···? 저게 뭐야? 저것도 은빛 늑대야?”
“저거 팔면 꽤나 돈이 될 것 같은데요?”
다섯의 인간이 천천히 하르에게 다가갔다.
다섯 인간의 무기엔 전부 마나가 깃들기 시작했다.
‘마나를 사용하는 인간이구나!’
하르는 천천히 다섯의 인간을 경계했다.
그리고 다섯의 인간이 먼저 하르에게 달려들었다.
하르는 차분히 앞발의 발톱으로 인간의 무기와 부딪혔다.
‘오호··· 내 발톱에도 마나가 깃들어있구나!’
자신감을 얻은 하르는 다섯의 인간을 간단히 쓰러트렸다.
모두 쓰러트리고, 혹시 모를 증원을 대비해 서둘러 도망쳤다.
어느 정도 거리를 도망친 후에야 다시 티아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티아가 하르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할게요.’
‘네?’
‘저는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
‘어··· 그런데··· 왜···?’
‘하지만 인간은 싫어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이 있었기에 티아와 하르는 짝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티아가 말을 덧붙였다.
‘인간이 싫어도 다른 암컷한테 당신을 뺏기는 게 더 싫을 거 같아요. 게다가 당신은 절 두 번이나 구해줬죠.’
하르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니까, 제가 약간 양보할게요.’
순간 하르의 얼굴이 밝아졌다.
‘전 당신과 짝이 될 거예요. 하지만 저는 따로 지내는 걸로 할게요.’
‘그래도··· 상관없는 겁니까?’
한 짝을 이루면 말 그대로 평생을 같이한다.
떨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짝이 되어도 떨어져 있겠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다만 한 가지 부탁드릴게요.’
‘무엇이든!’
‘한동안은 저와 여기서 무리에 있어줘요.’
하르가 잠시 고민했다.
전혀 나쁠 리가 없는 조건이었다.
하르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르는 티아와 짝이 되었다.
* * *
나와 에피니아가 칼데르트가를 방문했다.
가족 모두가 축복해주었다.
아버지와 테시아르 어머니도 에피니아에게 별다른 부담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내 예상대로 데이브 형이 문제였다.
“수하르! 정말로 축하한다! 그런데 그냥 약혼보다 결혼이 낫지 않니?”
데이브 형이 수시로 찾아오며 내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겐 그저 골치 아플 따름이었다.
시간이 별로 지나지도 않았는데 테시아르 어머니와 에피니아의 사이가 어느새 매우 좋아졌다.
마치 엄마와 딸 같은 사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 둘의 모습을 본 아버지가 말했다.
“이렇게 둘을 놓고 보니 나나 수하르 너나 참으로 미녀를 얻었구나.”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애당초 에피니아는 아카데미 시절부터 꽤나 한 미모를 하였다.
아카데미 시절엔 조금 귀여운 듯 했다면 성숙해진 지금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마찬가지로 테시아르 어머니의 미모 또한 상당했다.
사랑하면 아름다워진다고 했나.
‘여전히 아버지와 사랑하는 사이니까.’
중년의 나이에도 그 미모가 줄지 않았다.
간단한 인사치례도 마쳤으니, 더 있기를 바라는 테시아르 어머니와 아버지를 뒤로 한 채 나와 에피니아는 다시 미케네르 제국으로 향했다.
* * *
내가 다시 미케네르 제국으로 향한 데엔 이유가 있었다.
“나테아르덴 제국의 반란을 정찰해볼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해?”
“너라면 걱정 없겠지.”
에피니아의 승낙도 떨어졌다.
미케네르 제국이 나테아르덴 제국과 붙어있는 것을 이용해 국경을 넘을 생각이었다.
확실하게 해야만 했다.
‘벨레스가 2황자의 뒤에 있는 건 확실하지만.’
어떤 상황인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확실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아마도 나테아르덴 제국의 반란은 성공으로 끝이 날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미케네르 제국의 확률이 컸다.
그것을 대비하기 위한 정찰이었다.
‘정찰을 끝낸 후엔 로토 왕국으로 잠시 돌아가고 말이야.’
로토 왕국으로 돌아가서 군대를 일으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미케네르 제국의 편에 서서 벨레스와 맞서 싸울 생각이었다.
만약 내 예상과 달리 반란이 성공적으로 끝나고도 미케네르 제국에게 전쟁을 걸지 않으면 곤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자신하고 있었다.
‘무조건 전쟁을 선포할 것이야.’
무어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확실했다.
전쟁을 선포하지 않아도, 이미 벨레스를 파악한 것으로 내겐 명분도 있고, 내가 가진 패가 여러 개가 있으니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