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나테아르덴 제국 내부의 상황은 반란군이 현저히 우세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상황이었다.
순차적으로 진군만 한다면 나테아르덴 제국은 2황자 카스테오의 손에 떨어질 예정이었다.
이 모든 것은 벨레스 덕분이었다.
하지만 나테아르덴 제국의 2황자 카스테오는 막사 안에서 벨레스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이봐, 벨레스. 나한테 에피니아 황녀를 안겨주겠다며!”
“음··· 이상하군요··· 연락 없이 사라지다니···.”
벨레스도 현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벨레스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예전에 살려둔 한 명의 인간.
직감적으로 그 인간이 연관되어 있을 것만 같다고 판단한 벨레스였다.
“후후, 점점 재밌어지려고 하네요.”
“뭐? 재밌어? 나는 전혀 재미없어!”
벨레스가 카스테오 황자를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카스테오 황자.”
벨레스의 기세에 눌린 카스테오 황자가 순간 겁을 먹었다.
“뭐···!”
“조금 조용히 해주시죠.”
“으··· 그렇게 조용한 걸 원하면 지금 당장 나가! 난 잠시 혼자 있을 거니까.”
벨레스가 막사에서 나왔다.
그와 동시에 벨레스의 옆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온몸이 검은 사람이었다.
옷이 검은 게 아닌 존재 자체가 검었다.
검은 존재가 벨레스에게 물었다.
“왜 저런 자를 내버려두시는 겁니까.”
벨레스는 옅은 미소를 띠운 채 말했다.
“카스테오 황자처럼 욕망을 감춤 없이 드러내는 인간은 재밌거든요.”
검은 존재는 납득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사라졌다.
혼자 남은 벨레스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게 제 힘에 보탬이 되고요. 잘 익었을 때가 기다려지네요.”
* * *
미케네르 제국에 들려 에피니아와 잠시간의 시간을 같이 보낸 뒤에 준비를 마치고, 나테아르덴 제국으로 향했다.
“조금 긴장되네.”
이런 일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일단은 현재 반란군과 황실군의 상황을 미케네르 제국을 통해 간단히 알게 되었다.
“상황은 반란군이 압도적이고, 주요 도시들은 전부 반란군이 점령한 상태라고 했지.”
나테아르덴 제국의 황실군에게 남아있는 도시는 얼마 없었다.
게다가 전선 또한 황실이 있는 수도까지 펼쳐진 상황이라고 하였다.
‘나는 선인이 아니니까.’
아무리 벨레스가 원흉이라고 하더라도 곧바로 나테아르덴 제국의 황실을 도울 의리는 없었다.
그저 이번 정찰은 오로지 벨레스의 동태를 살필 목적이었다.
뭐, 애당초 나테아르덴 제국민들 사이에선 오히려 황실군보다 반란군이 더욱 인기였다.
그만큼 나테아르덴 제국은 부정부패가 심해 제국민들도 불신하는 제국이었다.
“그나저나 벨레스는 어떻게 싸우는지 궁금하네.”
마치 귀신같은 책사가 반란군에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 책사의 정체를 나는 벨레스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우선은 빨리 가봐야겠어.”
늦장을 부리다간 나테아르덴 제국의 내전을 내 눈으로 확인하기도 전에 끝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 * *
반란군의 막사 안, 카스테오 황자가 모든 이들의 중심에 앉아있었다.
카스테오 황자는 흥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드디어 코앞까지 다다랐다. 드디어! 내가 황제가 된다는 말이다!”
옆에 있던 벨레스가 조용히 말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하하, 이미 끝났다고 봐야지. 매번 전투에 패배한 황실군의 사기는 이젠 걷잡을 수 없어. 이건 반란군의 승리로, 바로 내 승리로 끝이 날 거야.”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카스테오 황자를 향해 환호성을 날렸다.
그런 반응에 카스테오 황자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카스테오 황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황제에 오르자마자 벨레스 네놈은 실각이다.’
반란이 성공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벨레스의 덕분이라는 것을 카스테오 황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스테오 황자는 벨레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작은 약속한 에피니아를 얻지 못했을 때부터였다.
그리고 점점 이상한 기류를 확인한 것이었다.
‘어떻게 황자인, 곧 황제가 될 나보다 벨레스가 더 인기가 있냔 말이다!’
그 이유는 카스테오 황자 본인도 알고 있었다.
첫째로는 벨레스가 참여한 전투는 전부 승리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말이다.
두 번째로는 점점 모이는 벨레스의 사람 때문이었다.
제법 신기한 힘을 가진 이들이 묘하게 벨레스만을 따랐다.
그렇기에 카스테오 황자는 벨레스가 두려웠다.
그래서 황제가 된 순간 벨레스를 실각시키기로 정했다.
‘흐흐, 내 장기말이 되어 열심히 일하다 망해버리거라. 벨레스!’
하지만 이런 카스테오 황자의 생각을 벨레스가 모를 리 없었다.
벨레스 또한 생각했다.
‘점점 욕망이 무르익어가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습니다. 황자님.’
* * *
나는 제시간에 맞춰 전쟁의 중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테아르덴 제국의 수도였다.
황실군이 막는 입장이라 더 유리해야 정상이지만, 반란군의 기세는 눈에 보일 정도로 황실군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호···.”
제법 떨어진 거리지만 확실하게 보였다.
반란군의 막사 쪽에 벨레스가 있었다.
전과 다르게 좀 더 선한 모습처럼 보였다.
“역시 카스테오 황자 곁에 벨레스가 있었군.”
그리고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벨레스가 태양 아래에서도 멀쩡했던 것이었다.
“태양을 극복했거나 아니면 다른 수를 쓴 것인가?”
나는 좀 더 반란군을 살폈다.
그러고 알아차렸다.
“반란군 모두가 벨레스의 기운을 품고 있구나!”
이상하리만치 높은 반란군의 사기의 근원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중심으로 보이는 인물마다 벨레스의 기운이 강하게 받아들인 상태였다.
“이건··· 뭐··· 반란군이라기보단···.”
벨레스의 군대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하지만 내가 아닌 이들은 이런 벨레스의 기운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에 단순한 반란군으로 생각할테지.
“이제 슬슬···.”
수도를 건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유의 깊게 살피기 시작했다.
* * *
전투를 시작하기 앞서 카스테오 황자가 단상에 올라섰다.
“이제 곧 나는 황제가 될 몸이다!”
반란군의 찢어질 듯한 함성이 이어졌다.
“내가 황제가 되는 순간, 우리 반란군은 더 이상 반란군이 아니다. 이제는 정정당당하게 황실군이라는 이름을 내걸 수 있다.”
반란군의 환호성이 점점 커졌다.
“그렇다면 자네들은 영웅이 되는 거지! 자, 어서 나를 황제로 만들어주거라!”
그와 동시에 반란군이 환호성이 최고조에 도달했다.
만족스럽다는 듯 단상에서 내려온 카스테오 황자.
벨레스에게 카스테오 황자가 말했다.
“이제 진격시켜!”
“예, 카스테오 황자님. 아니, 카스테오 황제님!”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의 양상은 황실군이 수도를 지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듯이 황실군이 반란군을 마중 나왔다.
“대장전을 신청하는 바요!”
나테아르덴 제국 황실군에서도 용맹하기로 소문난 기사, 메테라 후작이 외쳤다.
메테라 후작은 나테아르덴 제국의 여섯 검성 중 한 명이었다.
그런 메테라 후작을 카스테오 황자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으음··· 대장전이라···.”
사실상 처음으로 하는 대장전이었기에 카스테오 황자는 약간 긴장했다.
물론 카스테오 황자가 출전하는 게 아니라 그저 군에서 가장 강한 대표를 내보내는 것임에도 말이다.
옆에 있던 벨레스가 말했다.
“받아들이시죠.”
“흐음··· 하지만 메테라 후작은 소드마스터란 말이지···.”
“전에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제 데려왔던 부하가 소드마스터를 압도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전의 전투에서 벨레스가 직접 데려온 부하들은 제각각 훌륭한 무예를 뽐냈다.
심지어 이전 전투에서 둘만으로 소드마스터 압도할 정도로 말이다.
“흐음··· 하지만 그때는 둘이 아니었는가.”
“솔직히 말해서 혼자로도 충분했을 겁니다.”
“그럼, 자네를 믿겠다.”
카스테오 황자가 외쳤다.
“그 대장전 받아들이도록 하지.”
그러자 메테라 후작은 매우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적 열세에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는 황실군이었다.
이번 대장전에서 승리를 올린다면 분명 조금이라도 사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추가로 반란군에 속한 강자를 처리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메테라 후작은 자신의 옆에 있던 페터 백작에게 말했다.
“그럼, 다녀오겠네.”
“부디··· 승리를 쟁취해주시길···.”
메테라 후작이 전투의 중심으로 걸어 나왔다.
이에 벨레스는 한 사람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 눈길에 의미를 파악한 사람이 메테라 후작에게 다가갔다.
긴 창을 든 긴 머리의 사내였다.
“자네의 이름은 뭔가?”
“켈튼.”
켈튼의 대답이 맘에 들지 않은 것인지 메테라 후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말이 짧군. 이래 봐도 나는 후작인데 말이야···.”
“곧 시체가 될 녀석에게 말을 높일 필요는 없지.”
“뭣이!”
메테라 후작이 먼저 켈튼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둘은 교차했다.
승부는 한순간이었다.
교차한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메테라 후작의 목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땅을 울릴 정도의 환호성이 반란군에게서 들려왔다.
페터 백작이 황실군에게 외쳤다.
“다들 후퇴하거라!”
이곳에서 전투를 치를 경우 승리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한 페터 백작이었다.
하지만 벨레스가 한발 빨리 움직였다.
“다들 진군하라!”
뒤로 도망치는 황실군을 반란군이 압도적으로 학살했다.
수많은 이가 죽어갔다.
물론 황실군의 사람이 대다수였다.
“크흑···!”
페터 백작은 이를 꽉 깨물며 계속해서 후퇴를 감행했다.
하지만 뒤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기운에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다.
그리고 한 화살이 페터 백작을 관통했다.
그 화살에 페터 백작은 즉사했다.
활을 든 벨레스가 낮게 중얼거렸다.
“으음··· 활도 제법 재밌군···.”
* * *
나는 매우 놀랐다.
벨레스가 크게 관여한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창을 쓰는 켈튼이라는 자는 소드마스터를 한 합으로 이겨버렸다.
“보아하니 반신의 경지에 오른 건 아닌 것 같지만···.”
내 기준으로 꽤나 준수한 실력을 가진 자였다.
나는 더 이상 전투를 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무참하구나···.”
너무나도 일방적인 학살에 나는 차마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돌아가기 전에 한 가지 선물을 주기로 결심했다.
“어디 한번···.”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를 대충 꺾었다.
자연력을 불어넣어 최대한 단단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막겠지만, 경고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나는 나뭇가지를 쥐어 벨레스를 조준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벨레스를 향해 나뭇가지를 던졌다.
나뭇가지는 엄청난 속도로 벨레스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목적을 이루진 못했다.
벨레스는 눈치채고, 내가 던진 나뭇가지를 붙잡았던 탓이었다.
“어서 도망쳐야겠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 * *
벨레스는 어디선가 강한 기운을 느꼈다.
곧바로 그 강한 기운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벨레스는 급하게 손을 들어 그 강한 기운이 담긴 무언가를 붙잡았다.
“오호···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통이구나···.”
손의 살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강한 기운이었다.
벨레스는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너무 멀었기에 보이진 않지만, 한 기운이 느껴졌다.
“드디어 나를 막으러 찾아왔구나!”
벨레스는 그자가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이렇게 강한 기운을 가지고 다시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벨레스였다.
“대륙 통일이 마냥 심심하지만은 않겠구나!”
다만 벨레스는 한 가지 걱정을 했다.
“나테아르덴 제국을 차지한 뒤에는 잠시 힘을 비축할 필요가 있겠군.”
방금 힘을 보아 충분히 자신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판단한 벨레스였다.
그렇기에 벨레스는 힘을 비축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수하르의 계획대로였다.
수하르가 나뭇가지를 던진 목적은 단 하나였다.
벨레스가 수하르 자신을 경계해 시간을 끌어주는 것을 원했다.
그 시간 동안 수하르는 왕국으로 돌아가 군대를 일으킬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