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첫 전투 이후로 미케네르 제국군은 후퇴만을 반복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수하르가 도착하기 전까지 병력을 최대한 지키는 게 목적이었다.
애당초 카스테오 제국군이 강한 것도 문제였긴 했다.
“카스테오 제국군은 무슨 약물이라도 한 것인가.”
미케네르 제국군은 광기 넘치는 카스테오 제국군을 두려워했다.
그래서일까 매번 치러지는 전투는 압도적으로 패배할 뿐이었다.
미케네르 황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진짜 미칠 노릇이구나.”
그 옆에선 1황자 레오달트가 황제를 위로했다.
“그래도 누님의 반려가 오시면 전황은 달라질 겁니다.”
“수하르 칼데르트말인가···.”
황제도 벨레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자존심을 굽히더라도 후퇴를 감행한 것이었다.
소드마스터보다 강한 악마를 한낱 인간이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빨리 와줬으면 좋겠군. 이러다가 최후의 방어선까지 다다를 것만 같으니 말이야.”
레오달트 황자가 말했다.
“걱정 마시죠. 제아무리 카스테오 제국군이 미쳐 날뛰어도 우리 미케네르 제국군도 만만치 않습니다. 시간벌이 정도야 충분히 가능하겠죠.”
* * *
제국끼리의 전쟁은 날이 갈수록 확연히 차이가 났다.
계속되는 후퇴에 미케네르 제국군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지금까지 미케네르 제국군에게 큰 손해는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미케네르 황제는 한탄을 감출 수 없었다.
미케네르 제국군의 중추가 모인 자리에서 미케네르 황제가 소리쳤다.
“도대체 켈튼이라는 자는 어디서 나온 괴물인건가!”
미케네르 제국의 검성 중 한 명을 물리친 것으로도 모자라 항상 선두에 서면 용맹함을 뽐냈다.
켈튼의 무력을 두려워한 미케네르 황제는 더 이상 켈튼과 검성의 일기토를 진행시키지 않고 있었다.
“그 켈튼이라는 자를 우리 제국군이 뭐라고 부르는지 알고 있나!”
구석에서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여왔다.
“전장의 악마···.”
미케네르 황제가 손뼉까지 치며 소리쳤다.
“그래! 전장의 악마라고 불리고 있네! 수천, 수만, 수십만의 병사가 그 한 명을 두려워하고 있다네!”
1황자 레오달트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그 켈튼이라는 자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미케네르 제국엔 없으니 말이죠. 누님의 반려가 올 때까지는 어쩔 수 없습니다.”
“후··· 단 한 사람에게 제국의 운명을 맡겨야한다니. 참으로 허망하구나. 이러고도 유구한 역사를 갖춘 제국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황제의 한탄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황제의 말은 틀린 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파스타르는 언제쯤 오는 것이냐!”
“그게··· 소식을 듣고, 빠르게 오고 있다고는 합니다.”
미케네르 제국이 가진 검성들 중 가장 젊지만, 가장 강한 패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파스타르였다.
그러던 중에 회의 중인 곳에 한 사람이 다급히 들어왔다.
“파스타르가 전장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오오···.”
한순간 기뻐하는 황제였지만, 이내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아무리 파스타르라 하여도 켈튼이라는 자는 버겁겠지. 게다가 사기도 바닥을 치고 있으니 말이야.”
레오달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건 그렇겠죠···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기도 하죠.”
“자국의 검성을 믿어줘야 참된 황제라고 할 수 있겠지. 지금 당장 파스타르보고 켈튼에게 일기토를 신청하라고 하거라!”
현상황에서 수하르를 제외하면 미케네르 제국의 유일한 희망이 파스타르였다.
* * *
파스타르는 눈 앞에서 사내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켈튼을 본 파스타르는 생각했다.
‘확실히 강한 자로군.’
하지만 파스타르는 움츠려들지 않았다.
이길지는 모르겠으나 파스타르에겐 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켈튼도 파스타르를 마주보며 생각했다.
‘지금까지와의 상대와는 다르군. 나와 견줄만해.’
켈튼과 파스타르는 둘 다 소드마스터 경지였다.
물론 켈튼이 상대한 이들 모두가 소드마스터였다.
하지만 이 둘은 소드마스터 경지를 넘었다.
반신의 경지라는 큰 벽이 존재하지만, 소드마스터를 뛰어넘은 경지였다.
로토 왕국의 검성이 이룬 경지기도 했다.
“반갑군. 파스타르라고 한다.”
“켈튼이다.”
파스타르와 켈튼이 자세를 취했다.
켈튼의 창과 파스타르의 검이 빛났다.
그리고 둘은 서서히 서로에게 다가갔다.
점점 빨라지며 둘이 부딪히는 순간, 짧은 시간 동안 수백, 수천의 합이 오갔다.
그럼에도 둘은 멈출 기색 없이 싸웠다.
이윽고 다시 거리가 벌어졌다.
파스타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당신도.”
“내가 본 사람 중에 두 번째로 대단해.”
“나 또한 마찬가지.”
파스타르의 첫 번째는 수하르였고, 켈튼의 첫 번째는 벨레스였다.
서로의 경지는 매우 같았다.
쉽게 결판을 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결판을 내는 게 좋겠지.”
“······.”
다시금 파스타르와 켈튼이 부딪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결판은 나지 않았다.
막상막하 그 자체의 상황이 펼쳐졌다.
결국 둘은 무승부로 합의를 보게 되었다.
“다음번은 내가 이기도록 하마.”
“···너에겐 무리다.”
서로의 진영으로 되돌아갔다.
사기가 바닥을 향하던 미케네르 제국이었지만 이번 일기토로 사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이 무승부 소식은 미케네르 황제까지 빠르게 퍼졌다.
“역시 파스타르구나!”
레오달트 황자도 기뻐했다.
“그렇습니다! 역시 콜로세움의 챔피언답습니다.”
“그나저나 파스타르와 켈튼이 동급이라니··· 그렇다면···.”
미케네르 황제는 최근에 받은 편지를 확인했다.
조만간 수하르가 도착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쟁의 흐름을 우리가 가져올 수도 있겠구나.”
수하르만 도착한다면 전쟁의 흐름이 바뀔 것이었다.
파스타르와 켈튼이 동급이라는 것은 수하르라면 켈튼을 이길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 * *
전쟁은 쉬지 않고 계속 진행되었다.
전처럼 일방적인 전투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일기토가 아닌 전장에서 파스타르와 켈튼이 다시 만나게 되었다.
파스타르가 켈튼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무기가 바뀌었군.”
파스타르의 말대로 켈튼의 창이 바뀐 상태였다.
전에는 평범해보이는 창이었다면 이번 창은 묘한 기운을 품은 창이었다.
그 창에 파스타르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감지했다.
“그분께서 내게 새롭게 내려주신 힘이다. 전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그래 보이는군.”
창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켈튼의 기세가 달라졌다.
파스타르는 패배를 직감했다.
하지만 지금의 둘이 마주하게 된 것은 일기토전이 아니었다.
전장이었다.
파스타르는 곧바로 말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에 잠시 멍하니 서있던 켈튼이 뒤늦게 파스타르를 쫓기 시작했다.
“도망칠 사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명예를 건 일기토라면 모를까, 전장에서 만났으면 도망칠 수도 있는 법이지.”
행동이 늦었던 켈튼은 그대로 파스타르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복귀한 파스타르는 곧바로 보고를 올렸다.
이제는 켈튼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보고로 올린 것이었다.
더 이상의 일기토는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미케네르 제국이었다.
막다른 길에 몰렸다는 것을 알아차린 미케네르 황제가 허공에다 중얼거렸다.
“도대체 언제쯤 도착하는 것이냐···.”
* * *
켈튼이 새로운 창을 들고 온 후부터 다시금 전황은 카스테오 제국군 쪽이 우세해졌다.
게다가 많은 미케네르 제국군이 켈튼을 피해 도망치는 파스타르를 목격한 탓에 사기 또한 떨어진 상태였다.
그렇게 방어선은 빠르게 무너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켈튼을 선두로 계속해서 진군하는 카스테오 제국군이었다.
그에 반해 미케네르 제국군은 다시금 후퇴만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미케네르 제국군은 최후의 방어선에서 카스테오 제국군을 맞이하게 되었다.
* * *
수시로 전황을 들었다.
최소한의 휴식만을 취한 채로 전장으로 달려나갔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나쁜 소식뿐이었다.
“역시 먼저 움직여야 했나?”
자그마한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내 옆에 있던 에피니아가 이런 내 감정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빠르게 전장에 도착하는 것뿐이니까.”
내가 이끄는 군대를 마중 나와준 것은 에피니아였다.
에피니아와 합류한 뒤에 멈추지 않고 달렸다.
하지만 꽤나 거리가 있는 탓에 목적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곧이었다.
거리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신의 말이 맞는 거 같아. 괜한 걱정을 할 때가 아니긴 하지.”
그리고 곧 우리는 미케네르 제국이 정한 최후의 방어선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내가 처음으로 목격한 것은 대치 중인 두 제국군이었다.
현재 미케네르 제국군은 더 이상 후퇴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카스테오 제국군은 단 하나의 방어선만 함락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서둘러 미케네르 제국군의 막사로 향했다.
막사 안에는 1황자 레오달트와 미케네르 황제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도착했습니다.”
미케네르 황제가 반색하며 나를 반겨왔다.
“딱 맞춰 도착했구나!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 일기토를 해줄 수 있겠나?”
“예, 가능합니다.”
그리고 나는 일기토가 펼쳐질 중심으로 갔다.
그곳에는 켈튼이라는 자가 있었다.
보아하니 소드마스터 이상의 경지에 오른 상태라는 것을 곧바로 파악했다.
게다가 켈튼의 창엔 벨레스의 기운이 담겨있었다.
“벨레스의 종이로구나.”
켈튼는 나를 두렵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도대체 누구십니까?”
“알려줄 의리는 없는데?”
“흡···.”
척보아도 켈튼은 매우 긴장한 상태였다.
켈튼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내가 벨레스와 비교되는 강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켈튼의 얼굴에는 낭패라는 감정이 깃들어보였다.
“일기토를 진행하도록 하지.”
“······.”
벌써부터 단념하는 듯한 켈튼이었다.
일기토를 하려는 그 순간 카스테오 제국군의 진형으로부터 무언인가가 나에게 날아오는 것을 감지했다.
나는 곧바로 그것을 낚아챘다.
그것의 정체는 나뭇가지였다.
그것도 내가 벨레스에게 던진 것과 매우 흡사한 나뭇가지였다.
“설마···?”
나는 누가 던진 것인지 확인부터 했다.
역시 벨레스였다.
카스테오 황제 옆에 있던 벨레스가 던진 것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벨레스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복수라는 겁니다.’
나는 벨레스를 확인한 순간 바로 벨레스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나는 다시금 일기토에 집중했다.
그러는 순간 나는 믿지 못할 광경을 보고 말았다.
켈튼이 도망치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보아하니 나뭇가지를 던진 그 순간 켈튼에게 무어라 말한 모양이었다.
어쩌다 보니 홀로 남게 된 나는 당혹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미케네르 제국군이나 카스테오 제국군도 마찬가지였다.
이내 미케네르 제국군 측에서 찢어질 듯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우오아아와!”
“켈튼 저 겁쟁이 녀석!”
“명예도 없는 켈튼!”
“수하르 칼데르트, 만세!”
석연치 않은 승리였다.
최소한 저 켈튼이라는 자를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너무 긴장을 놓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일기토에서 도망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케네르 제국군의 환호성과 함께 미케네르 제국군이 진군을 시작했다.
‘일단은 벨레스의 기운부터 없애야겠군.’
나는 기운을 퍼뜨려 카스테오 제국군에게 담긴 벨레스의 기운을 몰아냈다.
그러자 광기가 사그라진 카스테오 제국군이었다.
“겁쟁이만 있는 카스테오 제국군을 몰아내자!”
광기가 없는 카스테오 제국군과 사기가 최고조로 오른 미케네르 제국군과의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어느샌가 카스테오 제국군의 중추로 보이는 이들은 후퇴한 모양이었다.
이번 전투로 많은 카스테오 제국군을 포로로 만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