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나는 내게 달려오는 하르에게 다가갔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작아지는 하르였다.
막상 하르가 코앞까지 다다랐을 때엔 전의 크기와 같았다.
“내가··· 잘못본 건가···?”
분명 내가 봤을 때는 하르의 덩치가 아주 커다랗게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작아진 상태였다.
이내 하르가 걸어온 발자국을 보았고, 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르가 올 때의 발자국이 점점 작아지고 있던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위험할텐데···?”
하르가 하울링을 하더니 점점 커져갔다.
마치 자신의 강하니까, 안 위험하다고 말하는 듯 했다.
그리고 몸을 숙였다.
“나보고 타라고?”
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하르의 등에 올라탔다.
커다래진 하르의 등은 제법 승차감이 좋았다.
털이 푹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르가 커다랗게만 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확실히 강해진 거 같네.’
난생 처음보는 일이지만, 하르라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었다.
“하르야, 가자!”
나는 하르를 타고, 다시 벨레스군의 후미를 뒤쫓기 시작했다.
***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채 벨레스군의 후미를 쫓았다.
내가 본 벨레스군은 이상함 그 자체였다.
“쉬질 않네.”
휴식 따윈 없다는 듯 계속해서 진군하는 벨레스군이었다.
물론 그런 고된 행군에 벨레스군에서는 낙오자도 발생했다.
하지만 그 낙오자는 내버려두고 진군하는 벨레스군이었다.
낙오자를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가던 길에 쓰러진 낙오자를 밟고 가는 모습은 광기에 가까워보였다.
“일단··· 벨레스는 앞쪽에 있는 것 같군.”
후미에서 최대한 소란을 피워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만큼 저들은 뒤쳐진 사람에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우선···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하르에게 몇 번이고 경고했다.
적에는 벨레스라는 괴물이 있으니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도망치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벨레스군의 후미를 습격했다.
팔찌에 마나를 불어넣어 갑옷을 착용한 채로 말이다.
***
벨레스군의 선두엔 마차 한 대가 있었다.
그 마차를 감싸듯이 많은 수의 병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마차 안에는 벨레스 혼자만이 탑승한 상태였다.
“지루하군···.”
벨레스는 가끔 생각했다.
카스테오 황자의 그 오만함을 말이다.
욕망이 잘 드러나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카스테오 황자를 벨레스는 판단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을 잘듣는 꼭두각시인형이 되었다.
그렇기에 재미는 조금 반감한 상태였다.
그러던 찰나에 치포르 황자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치포르 황자라··· 재밌는 생각이 났군!’
벨레스는 치포르 황자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카스테오 제국민들에게 재밌는 공연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잡혀버린 유일한 희망, 치포르 황자! 그런데 인망있던 치포르 황자는 극적인 도움으로 다시 카스테오 황제를 물리치고, 황제에 자리에 오른다.’
벨레스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치포르 황자는 황제의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성격이 바뀌고, 전 카스테오 황제처럼 악정을 한다. 그것도 전보다 더 심하게 말이지.’
벨레스는 자신이 생각해냈지만, 아주 좋은 생각이었다고 자찬했다.
‘그나저나···.’
치포르 황자가 있는 곳에서 이상한 소문을 들은 벨레스였다.
치포르 황자의 편에 선 자경단이 신기한 힘을 쓴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벨레스는 그자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진짜 힘을 물려받은 자들이겠지.’
몇 번 마주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벨레스였다.
하지만 벨레스에겐 더 좋은 일이었다.
‘부하가 늘겠군.’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 뒤에서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는 벨레스에겐 강하고, 특별한 부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순간 이상함을 감지한 벨레스였다.
벨레스가 마차의 창을 내려 소리쳤다.
“도대체 왜 이렇게 시끄러운 것이냐!”
묘하게 주변이 시끄러웠다.
한 병사의 눈을 벨레스가 노려보았다.
그러자 멍한 표정으로 병사가 말했다.
“지금··· 후미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벨레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치포르 황자 정도는 자신이 데려가기 위해 벨레스는 직접 만들어낸 부하들은 카스테오 제국의 황실에 두고왔다.
그렇기에 평범한 병사들만 데리고 갔다.
하지만 강한 세뇌를 거는 것은 잊지 않은 벨레스였다.
그 강한 세뇌가 독이 되었다.
“쯧, 이 멍청한 녀석들! 이런 것 하나도 보고를 안 올리고 말이야!”
벨레스가 마차 밖을 나왔다.
그리고 길게 이어진 군의 후미로 향했다.
많은 수의 병사 때문에 가는 것이 조금 지체되었다.
그리고 벨레스는 발견할 수 있었다.
이상할 치만큼 커다란 덩치를 가진 늑대와 벨레스에게만은 기분 나쁜 기운으로 느껴지는 백색의 전신갑옷을 입은 인간이 후미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
벨레스의 기운이 지척까지 다다른 순간 나는 곧바로 후퇴를 감행했다.
하르의 등에 타고, 곧바로 뒤로 도망쳤다.
도망치는 순간 나는 뒤를 확인했다.
벨레스가 어이없다는 듯 서 있는 모습이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와 하르를 뒤쫓으려고 하였다.
‘어림도 없지!’
나는 염동력을 이용해 주변 나뭇가지를 꺾었다.
그리고 힘을 실어 벨레스에게 날렸다.
‘이전의 복수다!’
날아가는 수많은 나뭇가지를 벨레스는 하나씩 쳐냈다.
얼굴을 보니 꽤나 화가 난 모양이었다.
이내 화를 다스린 것인지 다시 평온한 표정으로 바뀐 벨레스였다.
“하르야! 우린 어서 도망치자!”
***
벨레스는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
한순간 자신을 약올리고 있다는 것으로 느낀 벨레스였다.
벨레스가 도착하자마자 수하르와 하르가 도망쳤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벨레스였다.
“그나저나 방금 이 기운은···.”
나뭇가지를 뿌리칠 때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전과 다르게 많이 힘을 뺀 모양이었지만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째서 수하르 칼데르트가 이곳에 있는 거지?”
벨레스는 이미 수하르의 진행방향을 알고 있었다.
이곳에는 수하르가 없어야 정상이었다.
이내 수하르는 제2기사단과 따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린 벨레스였다.
“오호··· 그렇단 말이지···?”
벨레스는 진행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제아무리 수하르가 후미를 공략한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합류할 제2기사단을 처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런 짓을 벌인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
내 생각과 달리 벨레스는 차분했다.
“으음··· 계속해서 진군한다라···.”
분명 화에 못이겨 나를 쫓아올 거라 생각했다.
이내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행방향이 바뀌었다?”
계속가기만 하면 치포르 황자와 만나게 될텐데 굳이 방향을 바꾸었다.
무언가 의심스러웠다.
이내 그 목적을 알아차렸다.
“제2기사단이 목표구나!”
원군을 저지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아니라면 나에 대한 복수인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뭐···.”
내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물론 내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벨레스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가가 문제지.
“하르야, 다시 후미를 공략하러 가자!”
나는 곧바로 후미를 공략해가기 시작했다.
***
얼굴이 붉어진 벨레스는 가까스로 화를 참고 있었다.
“으으··· 수하르···!”
계속되는 후미에 대한 공격에 진군 속도가 자꾸만 늦춰지고 있었다.
무시하고 가려고 해도 끈질기게 공격했다.
벨레스가 직접 움직이면 그제서야 도망을 치는 수하르였다.
“젠장··· 어쩔 수 없겠군.”
수하르를 잡기 위해 후미에서 기다리던 벨레스였다.
하지만 그 마저도 예상한 수하르가 이번엔 후미가 아닌 선두를 공략한 것이었다.
그로인해 진군속도가 완전히 멈춰버렸다.
“수하르를 먼저 쫓아야겠어.”
그렇다면 적어도 피해는 생기지 않을 거라는 벨레스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했다.
수하르를 쫓아가니 더 이상 수하르는 공격을 하지 않았다.
“젠장··· 이번엔 내가 졌군···.”
피해가 줄었음에도 벨레스는 불만을 토로했다.
그야 당연했다.
벨레스의 목적은 치포르 황자였다.
하지만 수하르가 방해한 탓에 미케네르 제국군이 먼저 도착하게 되었다.
“아마··· 치포르 황자는 미케네르 제국군과 합류하겠지.”
치포르 황자가 미케네르 제국의 손에 넘어간 것이었다.
“일이 재미없게 되어버렸어.”
재밌는 공연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에 대한 분노는 자연스레 수하르에게 향하게 되었다.
“수하르··· 이 수모는 기억하마···.”
수하르를 쫓던 벨레스가 카스테오 제국의 황실로 돌아가려할 때였다.
“어딜 도망가시나?”
벨레스의 귓가에 울리는 불쾌한 목소리.
바로 수하르였다.
***
이번 기회에 벨레스를 충분히 약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벨레스를 제외하면 오합지졸이다.’
일반 병사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는 것은 이번이 기회일 수도 있겠다.
나는 이번 기회에 벨레스를 쓰러트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하르에겐 벨레스가 없는 곳을 맡기고 벨레스에게 몸을 드러냈다.
“어딜 도망가시나?”
“수하르, 네놈···.”
여전히 백색의 갑옷을 착용한 상태라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벨레스는 내 정체를 이미 깨달은 모양이었다.
“수하르라니··· 그게 누구지···?”
이미 최후의 방어선에서 벨레스에게 내 정체를 들켰다.
하지만 약올릴 생각으로 시치미를 떼보았다.
그리고 그것에 효과는 뛰어났다.
“네놈이··· 나를 우롱하는 데에 재미가 들렸나보구나···!”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모양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노려 자연력의 탄환을 벨레스에게 날렸다.
다급히 벨레스가 자연력의 탄환을 막아냈다.
“오호··· 역시 막을 줄 알았어···.”
제법 가까운 거리에서 빠른 속도로 날렸는데 벨레스는 막아냈다.
아마 소드마스터라도 못 막을 공격이었음에도 말이다.
“역시 반신의 경지!”
“오호··· 역시나 네놈도 이 경지에 오른 모양이구나.”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벨레스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네놈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다니 혹시 나를 이길 줄이라도 알았던 것이냐?”
나는 순간 고민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번에는 실력 파악이 주된 목적이었다.
물론 벨레스를 쓰러트릴 목적이 크지만, 아직까지 벨레스의 제대로 된 실력을 보진 못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주기로 했다.
“으음··· 그냥 실력 파악을 좀 하러 왔달까?”
“크하하하하, 실력 파악이라··· 그래 좋지. 어디 한번 제대로 상대해주마!”
나는 긴장을 하며 퇴마검을 뽑아들었다.
오랜만의 강자였다.
식은땀이 절로 났다.
벨레스가 풍기는 기운이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벨레스가 내게 외쳤다.
“겁이라도 먹은 것이냐!”
그와 동시에 무수한 검은 탄환이 벨레스의 손에서부터 뿜어져나왔다.
무차별적인 공격이었다.
나는 나에게 닿을만한 탄환만 모두 쳐내었다.
제법 손에 묵직한 감각이 느껴졌다.
“오호··· 이 정도···?”
솔직히 말해서 실망했다.
조금 약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괜한 걱정이었다.
“칫, 역시 이 모습으로는 안 되겠군.”
약간 거무잡잡했던 벨레스의 피부가 검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날개와 뿔이 솟아났다.
지금까지 봐온 악마와는 달랐다.
인간보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게 악마지만, 눈앞에 있는 벨레스는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인간과 더 흡사했다.
‘그래, 말하자면 마인 같네.’
인간과 악마가 섞인다면 저런 느낌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벨레스가 완전히 변해버린 후에 벨레스의 기세가 남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벨레스를 향해 외쳤다.
“역시 반신의 경지라면 이래야지! 그런데···.”
벨레스의 변화는 몸뿐만이 아니었다.
“왜 다 벗고 있냐?”
벨레스는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벨레스의 중요 부위는 없어서 다행이었다.
“네놈의 그 장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아.
아무래도 저 검은 것은 피부면서도 갑옷인 모양이었다.
궁금증이 해소된 나는 나역시 제대로 기운을 뿜었다.
벨레스와 나의 기운이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땅이 흔들릴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