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휴식을 취한 지 사흘째가 되는 날에 오드는 내게 새로운 소식을 가져다주었다.
바로 벨레스의 근황이었다.
“드디어 벨레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벨레스가요···? 으음···.”
벨레스가 움직였다는 소식이 내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전황으로 보아 벨레스가 움직여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내 짐작이지만, 현재 벨레스의 가장 큰 목표는 나일 것이다.
“이상하네요, 지금 움직여서 도움이 될 게 없는데···.”
지금 움직인 벨레스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중요한 소식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혹시 나를 상대할 방법을 떠올리기라도 한 것인가?’
아무래도 이번 휴식이 끝나고 진군 속도를 올릴려고 했던 것을 포기해야할 것 같았다.
천천히 가더라도 함정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것만 같았다.
“감사합니다, 오드. 조심할게요.”
아직 하루 정도의 휴식시간이 남았다.
모두의 피로가 충분히 풀려 지금 바로 출발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약속된 날은 나흘간의 휴식이었기에 오늘까지는 쉬기로 정했다.
나는 에피니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에피니아, 오늘은 어딜 가볼래?”
모두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와 에피니아는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아니, 날아다녔다.
그 덕에 이 근방에서 좋은 장소는 모두 둘러보았다.
“으음···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까, 갔던 곳 중에 가장 좋았던 곳으로 가자.”
“그거 좋은 생각이네.”
나는 에피니아와 함께 갔던 곳에 대해 생각했다.
‘미터 마을 근처도 괜찮았고, 센티 마을 근처도 괜찮았는데··· 흐음···.’
좋은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관광에 관해서는 박애주의를 가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싫은 경관이 하나도 없었다.
마계와 같이 불길한 기운이 가득찬 곳만 아니라면 모든 게 좋았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역시···.’
마음속에서 결정을 내렸다.
내가 에피니아가 말했다.
“그럼, 동시에 가고 싶은 곳을 말하자.”
“그래, 좋아. 그런데 혹시 둘 다 다른 곳을 말하면 어떡하지?”
“그땐 두 곳을 들리면 되겠지.”
나와 에피니아가 숫자를 센 후에 동시에 말했다.
“펜타 마을!”
“펜타!”
다행히도 나와 에피니아가 말한 곳이 겹쳤다.
내가 펜타 마을을 고른 데엔 이유가 있었다.
‘펜타 마을의 경관은 다른 곳에 비해 그렇게 뛰어난 곳이 아니긴 하지.’
관리가 안 되어있었다.
아니, 애당초 관광지로 쓸 생각은 없겠지.
하지만 펜타 마을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음식이 맛있으니까.’
경관은 다른 곳보다 부족할지언정 그곳에서 파는 음식맛이 아주 좋았다.
그렇기에 나는 음식이 좋았기에 펜타 마을을 선택했다.
에피니아는 어째서 펜타 마을을 선택했는지 궁금했다.
“난 음식이 맛있어서 펜타 마을을 선택했는데 에피니아는 왜 펜타 마을을 선택한거야?”
에피니아가 해맑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어? 나도 음식이 맛있어서 선택한 건데!”
선택한 이유도 같았다.
“그럼, 슬슬 출발해볼까?”
“그래!”
펜타 마을은 우리가 있는 임시 막사와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기에 서둘러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더 있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나는 곧장 에피니아를 들어 안았다.
그리고 곧바로 펜타 마을을 향했다.
“역시, 수하르 네 품에 안긴 채 움직이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
갑작스러운 에피니아의 칭찬.
그 말에 기뻐해야하는 게 맞는지 순간 당혹감에 물들었다.
“그거 칭찬이야?”
“응, 칭찬이야.”
“그렇다면 다행이네.”
얼마지나지 않아 펜타 마을에 도착했다.
펜타 마을은 여전했다.
작은 규모의 마을은 아니었지만, 조용한 곳이었다.
“우선··· 저번에 갔던 식당부터 갈까?”
“그래!”
저번에는 펜타 마을에 거주 중인 주민에게 식당을 물었다.
그러자 대다수의 주민이 한 식당을 이야기했다.
여관에 딸린 식당인데 이곳이 맛집이라는 소리를 하였다.
펜타 마을에 거주중인 대다수의 주민이 인정한 곳이었다.
“벌써부터 기대되네.”
그 식당의 음식은 대부분이 처음보는 맛이었다.
메뉴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안의 맛이 달랐다.
그렇기에 전에 먹어봤던 음식이라도 새로운 음식처럼 느껴졌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나테아르덴 제국이었을 적에 황실에서 근무했던 요리사라고 하였다.
에피니아가 한 식당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 저기였었지?”
에피니아가 가리킨 곳은 메르지포더란 이름의 여관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기억하고 있네.”
“다녀간 지 얼마 안되었는데 잊어버리면 안 되지!”
우리가 다녀갔던 곳이 메르지포더 여관 안의 식당이 맞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저번에 들렀던 메르지포더의 분위기는 이렇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서 지금처럼 사람들이 줄 서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물론 맛만으로 따졌을 때엔 줄 서 먹을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사람이 많았다.
줄을 서고 있는 한 주민에게 물었다.
“혹시 오늘 무슨 일이 있나요?”
그러자 주민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아니, 당신 펜타 마을 주민이 맞는 거야? 그 소식을 듣고도 무슨 일인지 모르다니!”
“저희는 펜타 마을에 주민이 아닙니다.”
조금은 진정하며 납득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주민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겠네. 오늘 매트피그가 잡혔어.”
매트피그라면 잘 알고 있는 동물이었다.
가축으로 키우는 피그와 비슷하지만 다른 동물이었다.
사납고,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매트피그는 가축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렇기에 야생에서나 볼 수 있는 게 매트피그였다.
하지만 가축용으로 쓰이지 않는 데엔 다른 큰 이유가 하나 있었다.
‘매트피그는 질기기로 소문났지.’
매트피그를 먹어본 사람들은 고기의 질김에 감탄할 정도라고 하였다.
게다가 고기엔 누린내까지 났다.
그런 매트피그였기에 이런 주민의 반응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매트피그는 맛도 없고, 질기지 않나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우리의 메르지포더 여관의 텐더 요리사가 요리한다면 다르지.”
“네?”
“텐더가 하는 매트피그는 천상이야··· 한 번 그 맛을 본다면 잊을 수가 없지.”
매트피그를 먹었을 적의 기억에 빠진 듯한 주민이 황홀경에 가득찬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나와 에피니아의 기대감은 한층 더 커져갔다.
“하여튼 자네들은 운이 좋아. 가격은 꽤 비싼지만 매트피그를 먹을 수 있으니 말이야.”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나와 에피니아는 줄이 줄어들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줄이 모두 줄고, 우리 차례가 찾아왔다.
꽤나 고생 중인지 약간 지친 듯한 표정의 종업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몇 분이실까요?”
“두 명이요.”
“그렇다면 저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구석진 공간에 있는 작은 테이블이었다.
나와 에피니아는 그곳에 앉았다.
그리고 메뉴판을 확인했다.
“저번에 봤을 때는 없었는데···.”
새로운 메뉴판이 있었는데, 거기에 매트피그로 만든 메뉴가 있었다.
나와 에피니아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매트피그로 주문을 넣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매트피그 요리가 나왔다.
‘통구이이네?’
약간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통구이라고하면 재료 본연의 맛이 가장 중요한 요리가 아닌가.
더 이상의 기대없이 나이프를 통구이에 가져다대었다.
그러자 다시 내 기대가 한없이 치솟아올랐다.
“어···?”
그 질긴 고기를 가진 매트피그가 나이프를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였다.
그 말인즉, 질긴 게 아니라 부드럽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대박이네···!”
“그러니까!”
마침 에피니아도 나와 같이 나이프로 고기를 찔러본 모양이었다.
매트피그의 통구이를 적정량 잘라서 앞접시에 옮겼다.
그리고 입으로 직행시키려던 찰나에 다급하게 종업원이 다가왔다.
“잠시만요!”
나와 에피니아는 손을 멈추고, 종업원을 바라보았다.
“네? 왜그러시죠?”
“전용소스를 깜빡했습니다. 이거에 찍어드시죠!”
종업원이 소스를 나와 에피니아 앞에 두었다.
그러곤 쏜살같이 떠나버렸다.
나는 소스를 앞에 두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내 결정했다.
‘역시 첫입은 고기 본연의 맛을 느껴야지.’
매트피그의 고기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감격했다.
입안의 고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맛 또한 전혀 누린내가 없었다.
‘어라?’
사라졌다고 생각한 고기가 다시 나타났다.
씹는 맛까지 일품이었다.
순간 왜 매트피그가 가축용이 안되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나는 매트피그를 가리키며 에피니아를 바라보았다.
“이거···.”
에피니아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피니아는 지금 감격의 순간에 빠져들고 있었다.
방금의 나와 같이 말이다.
그 순간을 방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나는 소스에도 고기를 찍어먹어보았다.
‘오호··· 이 맛은 또···.’
약간 매콤한 소스였다.
그런데 그 안의 오묘한 맛이 존재했다.
강한 향신료의 맛이었다.
소스만 맛본다면 자주 먹고 싶은 맛이 아니었다.
하지만 매트피그의 고기와 어울러지는 순간 환상의 조화를 이루어냈다.
“정말 운이 좋았긴 했네!”
마지막 순간 이 음식을 먹게 된 내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매트피그 통구이를 다 먹었다.
약간의 아쉬움이 감돌았기에 추가로 주문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한 명당 시킬 수 있는 양이 정해졌기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하려고 했다.
‘아니지··· 잠깐!’
지금 매트피그를 못 먹는 이유는 한 명당 시킬 수 있는 양이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왜 시킬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는 건가.
그 이유는 단순했다.
너무 맛있기 때문이 아니라 매트피그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에피니아에게 진지하게 권유했다.
“우리··· 매트피그 사냥할까?”
“갑자기 왜?”
“사냥해서 이곳에 가져다주면 양껏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에피니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전에 에피니아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마지막 날인데··· 매트피그 사냥이나 하자고?”
“응.”
“그것도 음식 때문에?”
“응.”
“에휴··· 어쩔 수 없지··· 그래, 매트피그 사냥하자.”
역시 허락할 줄 알았었다.
에피니아도 역시 부족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매트피그를 더 시킬 수 없다는 종업원의 말에 절망한 표정까지 드러냈으니 말이다.
“그럼, 빨리 가자.”
쉽게 볼 수 없는 동물이 매트피그다.
하지만 내가 진심을 발휘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로 사냥하러 가자!”
“알겠어!”
* * *
매트피그를 사냥하기 정한 순간부터 사냥은 끝난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기운이 퍼트렸다.
그리고 매트피그의 기운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매트피그 무리를 발견했다.
‘그런데···.’
매트피그가 무리를 짓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매트피그 무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 기운은··· 하르인데?’
하르를 포함한 여러 기운이 매트피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설마?’
생각해보니 하르를 카스테오 제국에서 볼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당연히 짝을 찾으러간 하르였기에 다시 만난다면 미케네르 제국의 황실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것으로 보아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미케네르 제국에선 짝을 못 찾아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감지되는 기운의 위치상으로는 마치 하르가 무리의 대장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하르의 바로 옆에 딱 붙어있는 기운도 있었다.
‘그렇다면··· 짝을 찾았지만 야생에 살기로 정한 건가?’
그렇다면 내게 다가온 이유가 없지 않는가.
어쨌건 내가 감지한 곳에 매트피그와 하르가 있었다.
가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에피니아를 들어 안고, 하르가 사냥 중으로 추측되는 매트피그 무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