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나크라 마을의 참상을 뒤로한 채로 다시 진군을 계속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엔 여전히 불쾌함이 감돌았다.
‘인간같지 않은 녀석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흑마법사들을 찾아 처리하고 싶었다.
나크라 마을의 참상에 옛 나의 가신이자 평범한 사냥꾼 부부의 아들이었던 제이콥이 떠올랐다.
제이콥은 고블린으로 인해 참상을 당했지만 하나의 마을이 사라질 만큼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엔 다를 게 없었다.
“수하르···.”
옆에 있던 에피니아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억지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무렇지도 않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오히려 이 일로 목적이 뚜렷해졌다.
만약 내가 벨레스를 처치하지 못한다면 이런 일이 일상이 되버릴 수도 있다.
조심해야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진군했다.
* * *
어둠이 내린 곳에 천 명의 사람이 있었다.
로브를 입은 자는 500명이고, 나머지는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그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켈튼.
“후으··· 참기 힘들군···.”
버겁게 숨을 내뱉으며 켈튼은 마음을 다스렸다.
이들이 이곳에 숨은 이유는 하나였다.
벨레스의 명에 따라 수하르를 함정에 빠트리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 스스로도 수하르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수하르의 신체 부위를 한 곳이라도 손상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켈튼이 로브를 입은 자들에 중심에 서있는 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흑마법사.”
“왜그러지.”
흑마법사 포트는 무덤덤하게 켈튼의 앞으로 걸어나왔다.
“작전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거지?”
“아주 잘 진행되어가고 있다. 걱정하지 마라.”
“그런가···.”
이들의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였다.
목표물을 어떻게든 이곳으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되도록 혼자서 말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사전작업이 필요했다.
그리고 때마침 좋은 게 있었다.
“지금 놈은 흑마법사에 강한 원한을 가지고 있겠지. 이걸 이용하면 된다.”
포트를 비롯한 흑마법사들은 나크라 마을에서 실험을 했다.
남들이 본다면 손가락질을 할만한 실험이었다.
그런 비인도적인 실험을 한 덕분에 수하르의 분노를 일으킬 수 있었다.
‘우연이였지만 아주 좋게 되었어.’
포트를 비롯한 흑마법사들이 수하르의 분노를 일으키고자 그런 실험을 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은 벨레스를 위해서 한 실험이었다.
그리고 그 실험의 결과 중 하나가 지금 켈튼이 쥐고 있는 창이었다.
“정신이나 꽉 잡아라, 켈튼.”
온갖 사기를 주입한 창이었다.
정신이 오염되는 단점만 제외하면 엄청난 힘을 주는 창이었다.
게다가 착용자가 마나를 사용한다면 사기로 인해 마나가 오염되어 마기로 변해버린다.
그 덕분에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창이었다.
“걱정 마라··· 아직까진 여유로우니까···.”
켈튼의 말에 포트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5백의 흑마법사와 나머지 그분의 종 5백이라면··· 놈을 충분히···.”
포트는 생각했다.
이 정도 병력이면 수하르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만이 아니라 충분히 죽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 * *
진군을 계속하던 중에 또다시 새로운 마을을 만나게 되었다.
전과 같이 벨레스의 기운이 옅게 스며든 마을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마을 사람들에게 스며든 벨레스의 기운을 몰아내주었다.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상하군.’
자꾸만 이상한 마을이 나타났다.
나는 혹시하는 마음에 나크라 마을에서 했던 것처럼 그들의 몸을 낱낱이 살폈다.
하지만 마법에 걸린 흔적도 없었다.
‘그런데 왜 우리를 두려워하는 거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와 같은 의문을 치포르 황자 또한 느낀 모양이었다.
치포르 황자가 내게 말했다.
“트리오 마을은 저희를 환영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모든 마을이 저희를 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건··· 그렇겠네요. 이렇게 많은 이들을 이끌고 다니면 두려움이 먼저 들긴 하겠죠.”
지금껏 다녀갔던 마을들도 그랬다.
처음엔 경계부터 했다.
하지만 치포르 황자에 대한 정체를 밝히는 순간 손바닥 뒤집듯이 반응이 바뀌었다.
“다만 제 정체를 밝혔는데도 이런 반응인 곳은 처음이네요.”
“······.”
뭔가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별다른 근거가 없었다.
트리오 마을은 그저 지금의 카스테오 제국이 마음에 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로 인해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번 마을에서는 휴식을 취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마을 사람들이 경계를 하고 있으니 가볍게 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다음 마을로 가기엔 제법 멀었다.
내 중얼거림을 들은 치포르 황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쉬는 게 좋겠군요.”
“흐음··· 그렇게 하도록 하죠.”
트리오 마을과는 제법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나는 하르를 타고 에피니아와 함께 트리오 마을을 방문했다.
트리오 마을의 안을 하르를 탄 채로 에피니아와 함께 걸었다.
그러던 중에 에피니아가 내게 말했다.
“다른 마을과 다른 점은 없네.”
“아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긴 하지만 말이야.”
트리오 마을의 거리가 휑했다.
정확히는 마을 사람들이 집안에 숨어 나와 에피니아를 감시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여러 시선들이 나와 에피니아에게 꽂히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에피니아가 말했다.
“그렇게 신경 쓰지 마. 아마도 외지인이라 경계하는 것뿐일 거야.”
“그렇겠지만···.”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에피니아가 손뼉을 치며 하르를 가리켰다.
“하르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나를 태우기 위해 제법 커다란 덩치로 변해있는 하르였다.
이런 크기의 뿔은빛늑대를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경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뭐, 하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계속 트리오 마을의 안을 걷던 중에 나는 골목길에서 인기척을 발견했다.
“에피니아, 잠깐만.”
나는 골목길의 안쪽으로 들어섰다.
골목의 안에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울먹이는 듯한 표정을 짓는 여자아이였다.
내가 겁을 준 것만 같아서 여자아이에게 사과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사과를 하기도 전에 여자아이가 충격적인 사실을 내게 전했다.
“저희 엄마를 구해주세요.”
반쯤 울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여자아이였다.
갑자기 엄마를 구해달라니.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니?”
말을 하며 여자아이를 살폈다.
하지만 마법에 걸린 흔적도 벨레스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아이가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흑마법사들이 마을 사람들을 어디론가 데려갔어요. 저희 엄마도 같이요.”
“뭐?”
흑마법사들이 데려갔다니.
마법의 흔적은 물론이고 벨레스의 기운마저 느껴지지 않았는데 흑마법사라니.
‘잠깐만···.’
생각해보니 너무 기운을 맹신했다.
여자아이의 말대로라면 인질을 잡고 있으니 굳이 마법을 걸지 않더라도 됐을 것이다.
“혹시 그 흑마법사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고 있니?”
내 말에 여자아이는 한 곳을 가리켰다.
마을 뒤편에 위치한 높은 산이었다.
“그래, 내가 구해줄게.”
조금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여자아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시가 급한 상황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뒤돌아 에피니아에게 다가갔다.
“에피니아, 빨리 돌아가서 병사를 불러줘.”
흑마법사라면 나 혼자서도 충분할 것이다.
게다가 트리오 마을을 확인한 결과 남아있는 흑마법사나 벨레스의 기운을 가진 이들은 없었다.
그렇기에 에피니아에겐 혹시모를 위협에 대비해 트리오 마을을 지켜줄 병사를 불러달라 하였다.
“가자, 하르야!”
나는 하르를 타고, 여자아이가 가리킨 산을 향했다.
* * *
흑마법사 포트는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미끼를 물었구나.”
마침 켈튼도 지금 한계까지 다다른 상태였다.
“이제 약간 결계를 풀도록 해라.”
벨레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진 결계였다.
그렇기에 수하르는 절대 감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목표가 이곳을 찾아와줘야만 했다.
그렇기에 결계를 풀어 약간의 기운만 감지하도록 한 것이었다.
“운명도 모르고 함정으로 기어들어 오는 꼴이라니··· 불쌍하기 그지없구나!”
앞으로 펼쳐진 전투를 생각하니 파트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 * *
소녀가 가리킨 산에 오르던 중에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불쾌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여러 가지 섞인 느낌이었다.
“이 기운들은···.”
마나를 비롯해, 사기, 마기였다.
그리고 그 기운이 느껴지는 곳은 멀지 않게 있었다.
“저기겠구나.”
흑마법사들은 분명 저곳에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대략적으로는 알겠으나 자세하게는 모르겠다.
“몇 명이 있는지조차 감지가 안 되다니.”
뭔가 이상한 수를 쓴 모양이었다.
흑마법사들이 납치한 마을 사람들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이미 늦어버린 게 아닌가하는 걱정이 생겨났다.
그런 생각에 나는 하르를 재촉했다.
“하르야, 어서 빨리 가자.”
그 기운이 풍기는 곳으로 달렸다.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이상함은 극에 다다랐다.
“정말로 이상하군.”
어느정도 거리가 좁혀졌으니 감지가 확실하게 되어야만 정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략적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것은 있었다.
“저곳엔 벨레스는 없겠어.”
벨레스가 가진 기운은 감출 수 있다고 감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소드마스터 정도에겐 숨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만은 숨길 수 없다.
그렇기에 저곳에 벨레스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뭐, 벨레스만 없다면 걱정할 건 없겠지.”
그리고 기운이 풍겨지는 곳의 입구에 도착했다.
하나의 굴이었다.
밖에 안을 확인해보려했지만 제법 넓고, 긴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기운이 풍기는 것은 확실했기에 나는 걸어들어갔다.
‘도대체 얼마나 깊은 거야?’
굴의 상태를 확인해보니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로 파낸 모양이었다.
그리고 가장 기운은 격하게 느껴지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인가···?’
굴 안에 있을 리가 없을 문이 있었다.
이 문 너머에 흑마법사들이 있을 것이었다.
‘음··· 역시···.’
굴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의 힘으로 문을 가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당황하는 흑마법사들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지.’
다른 인질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니 분명 이 문 안에 있을게 분명했다.
나는 문을 향해 적지 않은 기운을 방출했다.
그리고 문이 부서진 탓에 흙먼지가 일어나며 약간은 뿌옇게 된 입구를 통과했다.
그 직후 이상했던 감지가 돌아왔다.
‘이게 무슨···!’
아무래도 이 문이 경계였던 모양이었다.
단번에 알아차렸다.
내가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말이다.
처음으로 감지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도 불쾌한 기운을 풍기는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천 명···.’
그정도 되는 사람이 감지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전부 적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다음으로는 마을 사람들이었다.
흙먼지가 옅어지며 눈으로 마을 사람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죽었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였다.
마법진 위에서 생기를 뺏기고 있었다.
이미 대다수의 사람이 죽어있었다.
‘설마?’
아무래도 이렇게 많은 적들의 기운을 느끼지 못한 것이 결계 탓이었고, 그 결계가 평범한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인 모양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충 절반은 흑마법사고, 나머지 절반은 검사나 창술사, 궁사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저자는?’
이들의 중앙에 게름칙한 분위기의 창을 쥐고 있는 인간은 전에도 보았던 인간이었다.
켈튼.
전과는 다르게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함정이군···.”
그러자 흑마법사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답해주었다.
“함정이지.”
아무래도 나를 쉽게 보내줄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