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나는 파트와 켈튼이 하르를 쫓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에 곧바로 하르에게 직행했다.
적의 견제도 많이 약해진 것으로 보아 적들 대부분이 하르를 쫓고 있는 모양이었다.
“실수했어···.”
적들의 목표는 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를 쫓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하르를 쫓을 줄이야.”
대충 이해가 되었다.
켈튼과 포트 둘 중에 누가 하르를 쫓는다는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선택은 분명 내가 하르를 구하기 위해 갈 것이라 짐작해서 한 선택이겠지.
그리고 짐작은 정확했다.
“내가 너무 안일했어.”
하르와 켈튼, 포트는 점점 가까워져갔다.
이대로 가면 나보다 먼저 하르를 만나게 된다.
많이 강해진 하르지만 소드마스터를 상대할 수는 없다.
‘하르가 위험해!’
게다가 켈튼은 소드마스터 그 이상의 경지인데다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신의 경지에 필적해지지 않았는가.
서두를 필요가 생겼다.
* * *
켈튼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켈튼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이유는 하르를 쫓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점점 정신줄을 잡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번 해소를 했음에도··· 이렇게 되다니···.”
포트가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당연하지. 그 창은 내가 만든 역작 중에서도 역작이다.”
제법 위험한 상태로 들어가려는 켈튼이지만, 포트는 걱정이 없었다.
포트가 예상한 대로 하르를 쫓으니 수하르가 하르에게로 오기 시작했다.
수하르와 켈튼이 만나기만 한다면 켈튼에게 이상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곧 따라잡겠군.”
하나 확실한 건 포트와 켈튼이 수하르보다 먼저 하르를 만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포트는 기뻤다.
“놈이 방향을 틀어 늑대에게로 오는 것으로 보아 제법 소중한 녀석이겠지.”
수하르의 소중한 것을 눈앞에서 잃게 만들 생각을 하니 기쁨을 숨길 수 없는 포트였다.
* * *
하르는 계속해서 뛰었다.
하지만 거리는 계속해서 좁혀졌다.
‘···큰일이다.’
하르는 후회했다.
만약 자신의 주인과 헤어진 후에 곧바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주인에게로 향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위험을 너무 늦게 알아차린 탓에 하르는 수하르에게 갈 기회도 놓치고 말았다.
‘···싸워야겠어!’
거리는 계속해서 좁혀지니 더 이상의 도망은 무리였다.
오히려 하르는 체력낭비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싸움을 선택했다.
물론 다수의 인간을 상대하기엔 하르는 부족했다.
‘그리고 아직 거리가 있으니까.’
그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인간이 나타나기 전에 인간을 정리하면 충분히 상대가 될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주인 또한 지금의 상황을 눈치채고 하르 본인에게 오고 있을거라 믿었다.
‘조금만 버티면 될 거야.’
하르는 도망치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인간들을 해치웠다.
원거리에서 행해지는 공격은 크기를 조절해가며 피하고, 최대한 인간들의 목을 노리며 전투를 최소화했다.
하르는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싸웠다.
수십의 인간을 해치운 하르였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후···.’
그러다 문득 불어오는 바람에 익숙한 냄새를 맡은 하르였다.
‘주인!’
하르는 인간을 상대하던 것을 멈추고, 곧장 주인의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달렸다.
그러는 순간 게름칙한 기운을 하르는 느꼈다.
‘······!’
엄청난 속도로 전에 보았던 그 위험한 냄새가 나던 인간이 가지고 있던 창이 하르에게로 날아왔다.
하르가 그 창을 피하기에는 창의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다.
그리고 바람이 붐과 동시에 풀이 들춰지며 그토록 기다리던 주인의 얼굴을 보였다.
주인을 발견했다는 기쁨에 하르는 자신에게 창이 날라오고 있다는 것도 잊고 주인을 향해 짖었다.
“왈!”
하르는 옆구리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낌과 동시에 일그러지는 주인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 * *
반신의 경지에 오른 뒤에 내 감각은 매우 뛰어나졌다.
시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잠깐의 바람과 동시에 풀이 들춰지며 하르가 보였다.
그와 동시에 하르에게 날아가는 창의 존재도 확인했다.
“안, 안 돼!”
뛰어난 시력 덕분에 하르가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실제 거리는 제법 떨어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제발 운이 좋게 하르가 그 창을 피했으면 했다.
하지만 그 바람이 무색하게도 창은 하르를 꿰뚫고 지나갔다.
“······.”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 했지만, 어떻게든 하르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하르에게 도착하니 하르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곧바로 알아차렸다.
하르를 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 흉흉한 기운이 실린 창 때문이 분명했다.
사기가 하르를 좀 먹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사기를 몰아내며 하르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는 것 뿐이었다.
“하르야, 정신차려! 제발···.”
하르가 죽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었다.
서서히 생명의 불꽃이 꺼저가는 하르를 나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반신의 경지에 오른 나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미안해···.”
전장에 데려오는 게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같이 있을걸···.”
내가 기르기로 했지만, 오히려 타인의 손에 더 맡겨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르를 방치했다는 것을 내 스스로도 알고 있다.
“아, 맞다. 임마, 너 짝도 있잖아.”
하르는 죽으면 안 된다.
“네 짝도 있는데 이렇게 가면 안 된다.”
내가 못 해준 게 많았기에 지금 죽으면 안 된다.
훗날 벨레스를 잡고, 에피니아와 함께 하르를 데리고 즐겁게 살려고 했다.
지금까지 못 준 애정을 나중에 한꺼번에 주려고 했다.
아직 애정도 못 줬는데 이렇게 가면 안 되었다.
“하르야··· 제발 좀··· 정신 좀 차려봐···.”
하르가 힘겹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게 얼굴을 내밀며 내 볼에 흐르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 후 하르는 힘없이 머리를 떨구었다.
곧바로 알아차렸다.
하르는 죽었다.
“······.”
하르를 관통한 창의 주인이 누군지 나는 알고 있다.
켈튼의 창이다.
“죽여버리겠어.”
감정에 몸을 맡기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분노한 상태로 싸우는 것은 내 약점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최대한 마음을 다스려보려고 했지만 다스려지지가 않았다.
하르와의 마지막 작별 중에서도 적들은 계속해서 나를 공격해왔다.
제대로 된 이별도 하지 못했다.
“크하하하하, 꼴이 아주 좋아보이구나.”
도착한 포트가 나를 보며 비웃으며 한 말이었다.
현재 내 꼴이 보기가 좋다는 말에 나는 더욱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리고 포트의 옆엔 켈튼이 있었다.
나는 이를 물며 켈튼과 포트를 향해 낮게 읊조렸다.
“네놈들이랑 잠깐이라도 말을 섞을 생각 따윈 없다.”
어느새 적들은 나를 포위한 상태였다.
도망치면서 수를 제법 줄였다고 생각했으나 아직 칠백명 정도의 사람이 남아있었다.
“크하하하, 켈튼 방금 들었나?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던 놈이 말 한번 잘하는구나.”
나는 저들이 혹시라도 하고 있을 오해를 풀어주기로 했다.
“나는 네놈들을 상대할 수 없어서 도망친 게 아니다.”
좀 더 여유로운 공간에서 싸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괜히 이곳에서 전력을 다하면 이후에 벨레스를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도망쳤다.
그런 것들은 개의치 않으면 상대도 되지 않을 녀석들이었다.
“혹시 모를 일을 생각해서 도망친 거였지··· 하지만··· 네놈들은 나를 화나게 했어.”
포트가 조롱하는 듯한 말투와 함께 나를 비웃었다.
“어이쿠, 그러셨어요? 이거 무서워서 어쩌나?”
포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곧바로 포트에게 퇴마검을 날렸다.
포트는 급하게 방어 마법을 펼쳤지만, 퇴마검은 방어 마법을 모조리 깨트리며 포트를 향해갔다.
그리고 포트의 목을 퇴마검이 관통하려는 순간에 켈튼이 움직였다.
어느새 켈튼의 손엔 그 흉흉한 창이 들려있었고, 그 창으로 퇴마검을 쳐낸 것이었다.
“고맙군··· 켈튼···.”
켈튼은 힘겨워 보이는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살폈다.
켈튼의 손은 살가죽이 벗겨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 정도까지 차이가 났을 줄이야.”
“걱정 말게, 그 창에 모든 것을 맡기면 켈튼 자네는 충분히 저놈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야.”
나는 튕겨난 퇴마검을 다시 내 손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퇴마검이 내 손에 돌아오는 순간 내 주위에 있던 오십 정도의 적들을 베어냈다.
“단 한 명도 이곳에서 살아갈 수 없을 거다.”
포트가 두려움에 가득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크흐··· 우, 우리가 할 말이다. 이곳이 네놈의 무덤이다.”
잠시 말을 흐린 포트가 이어 말했다.
“저 늑대 놈처럼 말이야.”
포트의 말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분노로 이성을 잃고 곧바로 포트에게 달려들었다.
수많은 마법과 공격들이 내게로 쏟아졌지만, 압도적인 힘으로 전부 날려버렸다.
그리곤 곧장 포트에게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켈튼의 창이 나를 다시 막았다.
“비켜.”
퇴마검의 실로 켈튼의 창을 감아서 치운 뒤에 켈튼의 정면을 베었다.
그 후에 포트에게 다가갔다.
포트가 다급하게 영창하는 게 보였지만, 그보다 내 검이 더 빨랐다.
“크헉.”
목이 절반가량 베인 포트는 그 자리에서 목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나는 그런 포트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적의 수뇌부를 두 명이나 처치했음에도 적은 포기하지 않았다.
“거슬리네.”
나는 전부 쓸어버릴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마치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검을 휘둘렀던 것처럼 생각을 비우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차근차근 한 명씩 적을 베어냈다.
꽤나 기운을 썼지만 내 안에서 맴돌던 방대한 양의 기운은 여전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그 굴 안에서 정리하는 편이 더 나았다.
괜히 도망친다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
어느새 적 대부분이 쓰러트렸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하르에게 다가갔다.
“내 잘못이 크다···.”
차라리 계속 같이 도망갔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전부 내가 잘못 결정을 내린 탓이었다.
“내가 왜 그런 걱정을···.”
내가 하르를 따로 보낸 이유를 다시금 떠올렸다.
내가 이들을 상대하고 지친 상태를 벨레스가 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을 했던 걸까···.’
벨레스가 준비한 함정이라기에 엄청난 위험이라도 숨어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치지도 않을 정도의 적이었다.
“어서 돌아가야겠어.”
내가 발을 돌릴려던 찰나였다.
내 뒤에서 흉흉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피했다.
흉흉한 기운은 켈튼의 창이었다.
“분명 켈튼은···.”
켈튼을 분명히 베어냈다.
숨을 거둔 것도 확인했다.
나는 창을 던진 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켈튼?”
붉게 충혈된 눈과 내가 베어낸 상처가 치료되어 있는 켈튼이었다.
아무래도 그 정도 상처는 저절로 치유되는 모양이었다.
“다시 죽여버리면 되는 일.”
치유되지 않을 정도로 조각내어 버리면 된다.
나는 다시금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리고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켈튼이 허공에 손을 내밀더니 멈추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에 켈튼의 손에서 그 흉흉한 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켈튼이 창이 날아갔던 곳을 확인했다.
땅에 박혔던, 켈튼이 날렸던 창이 흐릿해져가고 있었다.
‘보아하니 저 창은 주인에게로 돌아갈 수 있나보군.’
아직 창이 흐릿할 때 나는 켈튼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켈튼의 근처에 도달하기도 전에 나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마법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적들이 쏘아대는 마법은 어느정도 무시할 수 있었지만, 이번 건 달랐다.
담긴 힘이 무시할 정도가 안 되었다.
나는 멈추며 내게로 날라온 마법을 베어냈다.
그리고 그 마법을 쓴 자를 확인했다.
“리치?”
흑마법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로브를 뒤집어쓴 웬 뼈다귀가 있었다.
곧바로 그 리치의 정체를 깨달았다.
“포트···!”
리치에게서 옅게 풍겨오는 기운은 포트의 것이 분명했다.
포트는 죽은 뒤에 리치로 다시 부활한 모양이었다.
리치가 된 포트가 구강뼈를 달싹이며 말했다.
“크크크, 제대로 다시 한번 겨뤄보자고.”
그와 동시에 내가 방금 처리했던 적들이 다시금 뼈다귀의 모습의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